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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부터 생업까지,

2016 오피스텔 라이프

사회 초년생의 고민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소자본 사업가의 결의, 화류계 여성의 한숨, 불법 시술 숍을 운영하는 주부의 말 못 할 사정과 불법 과외 선생님의 노곤한 삶이 녹아 있는 곳. 오피스텔에 사는 사람들.

On March 2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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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라이프

좋은 학벌, 단번에 국내 최고 대기업 합격까지. 다 갖춘 듯 보이는 싱글남에게 오피스텔은 ‘화려함과 자유’를 의미한다.

남들이 선망하는 대기업, 그중에서도 주요 계열사에 다니고 있는 27세 남자입니다. 제게 오피스텔은 ‘인생 첫 자유의 공간’입니다. 처음으로 독립해 회사 근처의 오피스텔로 들어왔거든요. 처음 오피스텔에 들어왔을 때는 저도 드라마 남자 주인공처럼 살 수 있을 줄 알았죠. 모던하게 꾸미고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콘셉트로 음식도 만들어 먹고요.

그러나 현실은 다르더군요. 일단 야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10분 안에 잠들어버리기 일쑤죠. 오늘 아침에는 싱크대가 막힌 걸 발견했어요. 몸이 아파 혼자 누워 있을 때는 서럽기도 하죠. 그래도 처음 만끽하는 자유는 달콤하네요. 속옷 바람으로 돌아다닐 수도 있고, 주말에는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와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으니까요.

설날에 집에 내려갔을 때 모든 일가친척이 제게 덕담을 해주셨어요. 부모님도 대기업 사원인 저를 자랑스러워하시는 게 느껴지고요. 그런데 말이죠. 사실 저, 요즘 회사를 그만둘까를 고민 중이에요. 집하고 회사만 드나드는 이 삶이 너무 힘들어요. 워커홀릭인 회사 선배들을 보면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더 암담하고요.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그저 오피스텔에서 기타를 뚱땅거리는 자유의 시간만이 저를 위로해주고 있습니다. 돈 많이 벌어서 프리미엄급 오피스텔로 이사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텨보려고요. 오피스텔은 제게 동기부여이자 직장생활의 싱글 라이프 그 자체입니다.
 

706호는 불법 과외 중

오피스텔이 불법 과외의 온상이 된 지는 오래다. 놀고싶은 중1, 발등에 불 떨어진 고3, 학비에 허덕이는 선생님까지 모두 만날 수 있다.

취업 준비 중인 28세 명문대 졸업생입니다. 제게 오피스텔은 ‘학비를 벌어다 준 곳’입니다. 몇 년 전 휴학생 신분으로 했던 오피스텔 과외 덕분이죠. 사실 불법 과외라 말하기 민망하네요. 오후 6시쯤이면 수업이 끝난 아이들이 오피스텔로 들어와요. 오피스텔 과외는 학부모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들킬 일이 없어요.

참 많은 학생들이 옵니다. 저는 고등학생을 가르쳤어요. 일대일 영어과외였죠. 뉴질랜드에 가서 8년 동안 살다 와서 영어 하나는 자신이 있었어요. 우리 오피스텔 과외방은 새벽 2시까지 불이 켜져있었어요. 가르치는 학생들이랑 에너지 드링크에 얼음 넣어 마시던 게 생각나네요. 아직 다 크지도 않은 아이들이 카페인 음료를 물처럼 벌컥벌컥 마시는 모습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오피스텔에서 며칠째 쪽잠을 자면서도 학비를 벌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피곤한 것도 몰랐어요. 일주일에 사흘만 일하면 아쉽지 않게 벌 수 있더라고요.

취준생으로 대학을 졸업하려니 불안한 마음이 들어요. 다시 불법과외를 시작할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자칫 편하게 돈 버는 것에 맛이 들려서 정식으로 취업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질까봐 고민이에요. 다시는 오피스텔에 불법과외교사로 발을 들일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화류계 여성 A양

역세권의 오피스텔에는 성매매 장소인 ‘오피방’에서 일하는 A양. 그녀에게 ‘오피방’ 즉 오피스텔은 벗어나고 싶은 굴레와도 같다.

이렇게 말하려니 부끄럽지만 저는 논현역 근처 일명 오피방에서 일하는 32세 여자입니다. '오피방'은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오피스텔을 이르는 속어에요. 제게 오피스텔은 ‘고달픈 삶의 현장’입니다.

타 지역 오피방은 시간당 13만원이 기본가고 외모, 나이, 학벌 등의 스펙에 따라 가격이 덧붙습니다. 하지만 '강남에서 뛸 만하다'는 평가를 받으면 가격은 자기가 정할 수 있지요. 출근 시간 10분 전에 호수와 현관문 비밀번호를 문자로 보내오면, 그때부터 저의 오피스텔 라이프가 시작됩니다.

손님들은 공무원, 학생, 군인, 외국인 남자, 노인들까지 아주 다양하답니다. 남들에게 쉼터가 될 법한 오피스텔이 제겐 영혼을 파는 작업의 현장입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이 일을 선택하지 않을 거예요. 이미 익숙해져 그게 더 슬퍼요. 그럼에도 놓지 못하는 건 아무 능력 없는 제가 이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에요.

오피스텔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제게 가장 두려운 소리입니다. 단속에 걸리면 골치 아프니까요.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나’ 싶은 생각이 강력하게 드는 순간이지요. 돈은 일단 차곡차곡 모아두고 있어요. 생각보다 쓸 일이 없어요. 언젠가 이 오피스텔을 벗어나 전 세계로 여행을 다니는 게 꿈입니다.
 

8평에서 시작합니다

녹록지 않은 현실을 돌파하려는 젊은 사업가들에게 오피스텔은 생계의 장소다. 누군가에게는 ‘꿈의 베이스캠프’다.

36세의 예비 사업가입니다. 동업할 친구와 함께 오피스텔에서 살며 사업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직장 생활 7~8년 하다 보면 누구나 자신만의 사업을 하고 싶어 하잖아요. 회사와 상사가 주는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내 일’을 하고 싶어 어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구상한 사업은 연예인 팬클럽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냥 평범한 물건이라도 좋아하는 스타의 얼굴이 새겨져 있으면 비싸게 주고라도 사고 싶은 마음을 공략해보려고요. 오피스텔을 선택한 건 저희가 여자니까 안전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친구나 저나 직장 생활하며 모아둔 돈이 그리 많지 않아, 월세가 비싸지 않은 곳으로 골랐습니다. 발품을 많이 팔았죠.

처음에는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이 다 말렸습니다. 무엇하러 그런 큰 모험을 하느냐고, 결혼은 언제 하겠냐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고요. 하지만 수많은 잔소리에도 제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준비했어요.

제 주변에는 소자본으로 창업을 준비하는 30대가 꽤 많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오피스텔은 숙식과 일을 동시에 해결해주는 참 고마운 곳입니다. 온라인에서, 또 오프라인에서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과 정보를 나누는 재미 또한 쏠쏠하답니다. 성공담을 들으면서 자극도 받아요.

첫 사업이니만큼 큰 욕심은 부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일단은 작게 시작하면서 가늘고 길게 버텨보자는 게 우리의 모토입니다. 두려운 마음이 들 때마다 생각합니다. ‘언젠가 우리가 살았던 8평 오피스텔을 웃음 섞인 추억으로 회상할 날이 올 거야’라고 말이죠.
 

워킹맘은 투잡 중

공부하는 남편을 대신해 가장의 역할을 맡아 고군분투하는 주부 B씨. 가정을 책임지는 그녀에게 오피스텔은 또 다른 직장이다.

29세의 피부과 실장입니다. 제게 오피스텔은 ‘투 잡의 공간’입니다. 내로라하는 최고 명문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남편이 경제적으로는 별 도움이 안 돼 투잡 전선에 뛰어들었죠.

제 월급도 많은 편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오피스텔에 피부 관리실을 열게 됐어요. 제 전문 분야이기도 하고 쉽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피부 관리실을 선택했는데, 반영구화장이랑 문신으로 분야를 넓혀볼까 고민 중입니다. 의외로 이런 곳이 꽤 많은데, 장사가 잘되는 곳은 일 년에 한 번씩 이사를 간다고 하더라고요. 불법이라 누가 신고할까 봐서요.

‘돌팔이는 아니야’라고 합리화하지만 불법인 걸 알기 때문에 마음은 늘 찜찜해요. 걸리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지요. 오피스텔은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까지만 문을 여는데, 여러 유형의 손님이 옵니다. 저는 그들의 피부에 난 트러블을 관리해 줍니다. 정성스럽게 관리해주면서도 피부과의 3분의 2가격으로 진행하다 보니 손님이 점점 많아지더라고요.

바쁜 사람들을 위해서 금요일에는 밤늦게까지 오피스텔을 열어둬요. 아주 친한 손님들은 자고 가라고도 해요. 오피스텔에서 우리만의 뜨거운 ‘불금’을 보내는 셈이죠. 빠듯한 살림에 여윳돈이 생겨 다행이긴 하지만, 사실 몸도 마음도 피곤해요. 쉬지 못하니 제 피부가 나빠지게 생겼다니까요. 이렇게 스트레스 받는 것까지 감안하면 가끔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밑지는 느낌이 듭니다.

CREDIT INFO

취재
정지혜 기자
2016년 03월호

2016년 03월호

취재
정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