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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자 이야기

어떤 이에게 서울은 굉장히 작은 도시지만, 어떤 이에게는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꿈의 도시다. 서울에서 꿈을 키우며 오늘의 서울을 만들어온 남자들을 만났다.

On September 15, 2015

서울 대표 선수

논현동 백종원

충청남도 예산 출신으로 구수한 사투리가 인상적인 백종원은 요식업에 도전하면서 서울로 상경했다.

사업이 잘되자 자만했고, 자만이 독이 되어 돌아와 주저 앉아야 했다. 독기를 품은 그가 선택한 건 잘나가는 사람들만 모인다는 논현동이었다.

현재 논현동 먹자골목에만 그가 운영하는 16개의 매장이 있다. 지난해에는 지상 4층 건물을 130억원에 매입하면서 논현동 부동산 부자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

‘논현동’ 하면 생각나는 사람은 단연 백종원. 그런데 정작 그가 사는 동네는 방배동이라는 사실!


압구정동 유재석

서울 수유동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유재석은 2000년 압구정동으로 이사 온 후 15년째 살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전망을 자랑하고 압구정 중심가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어 조용하기까지 하다.

2011년 <무한도전-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이적과 함께 ‘압구정 날라리’를 부를 정도로 동네 사랑이 지극하다.

2006년 <엑스맨>으로 주가를 올리기 전부터 동네에서는 유명 인사였다고.


평창동 서태지

종로구 일대를 주름잡고 있는 스타는 서태지다.

2013년 이은성과 결혼한 후 신혼집으로 선택한 평창동 대저택은 총 990㎡(3백 평)로 시가 50억원을 호가한다.

인테리어 비용만 10억원이 들었으며 잔디 구장이 연상되는 앞마당부터 수영장, 음악 스튜디오까지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무한도전>을 통해 공개된 그의 집은 럭셔리 그 자체.

집이 공개된 이후 평창동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었다고 하니 과연 평창동의 남자라 불릴만 하다.


방배동 박명수

예능에선 유재석의 뒤를 좇는 2인자지만 부동산 재테크만큼은 1인자다.

줄곧 여의도에 살았던 박명수는 2012년 방배동에 둥지를 틀었고, 지난해 12월엔 88억원을 들여 주차장과 식당으로 사용되는 토지와 건물을 매입하면서 방배동 부동산 부자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미모의 치과의사 아내와 서래마을 일대에서 데이트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면서 서래마을 브란젤리나 커플로 불린다.

방배동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스스로를 ‘방배동 살쾡이’라 부르며 DJ 활동을 펼치기도.


한남동 소지섭

한남동 유엔빌리지의 유명 인사가 있다. 바로 ‘소간지’ 소지섭.

유엔빌리지 입구에 있는 마트에 종종 모습을 드러낸다는 그는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에 모자를 눌러썼을 뿐인데 ‘간지’가 몸을 타고 흐른단다.

마을 주민들과도 스스럼없이 인사할 정도로 수더분한 성격이 톱스타의 또 다른 면모를 드러낸다.

마을 안에 위치한 그의 집은 깔끔한 외관과 럭셔리한 내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고급 빌라 중에서도 손에 꼽힌다.


합정동 양현석

합정동 양현석을 빼놓고는 서울 남자를 논할 수 없다.

YG 사옥을 포함해 YG 패밀리의 체육 시설로 쓰이는 건물과 어린 시절 살던 집, 직접 운영하는 클럽 NB까지 모두 합정동 인근이다.

소속 아티스트의 숙소 역시 합정동의 고급 오피스텔에 마련해줄 정도로 큰손이다.

게다가 홍대 앞 번화가에만 몇 채의 건물이 있어 홍익대학교 인근 부지는 모두 양현석 소유라는 말이 나올 정도.

그가 소유한 부동산은 시가 2백억을 웃돈다고 하니 입이 떡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청담동 조영남

압구정동에 유재석이 있다면 청담동 터줏대감은 단연 조영남이다.

시가 60억원에 달하는 프리미엄 빌라에 살고 있는 그는 방송을 통해 자신의 집을 자주 공개했다.

그는 미팅이 있을 때면 주로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해 점심 식사를 대접한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완벽한 조망이 특히 압권이다. 현재 조영남은 9층에 살고 있으며, 13층엔 가수 비가 산다고.


망원동 자취남으로 알려져 현재는 망원시장 아이콘으로 등극한 장미여관 육중완.
이태원의 조용한 골목길에 식당을 내 그곳을 장진우 거리로 탈바꿈시킨 장본인.
방송 일 때문에 일주일의 반 이상을 상암동에서 보낸다는 구 양배추 현 조세호.


이태원 골목대장
CHANG JIN WOO


지금 어느 동네에 사나요?

경리단길요. 서울 올라와서 홍대 부근에도 살아보고, 강남에도, 서래마을에도 살아봤는데 이 동네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강북과 강남 모두 다 가깝고 한강에다 남산까지 있잖아요. 처음 이곳에 자리 잡았던 건 순전히 월세 때문이었어요. 사실 이 동네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저렴한 지역이었거든요. 지금은 그때보다 많이 올랐죠.

다양한 곳에서 살아봤네요. 동네마다 특징이 좀 다르죠?
홍대 거리, 강남, 서래마을 모두 좋은 곳이에요. 강남은 뭐든 편리해요. 맛있는 음식점이 즐비하고 유동 인구도 많지요. 홍대 거리는 놀 수 있는 것이 많고 자유로운 분위기고요. 서래마을에는 좋은 집이 특히 많았어요. 그런데 사실 이제는 모든 동네가 비슷해진 것 같아요. 점점 동네의 특징을 잃어간다고 할까요? 그래도 이태원은 좀 달라요. 일단 다국적 주민이 모여 산다는 특징이 있죠. 포용력이 있는 동네라고 생각해요.

진우씨가 처음 왔을 때와 지금의 경리단길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요?
예전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요즘은 많아졌다는 거? 그렇다고 장사가 더 잘되진 않아요. 그만큼 비슷비슷한 식당도 많이 생겼으니까요. 그나마 다행인 건 이 골목은 이태원의 다른 지역보다는 아직 조용하다는 거예요. 이태원역 근처는 너무 시끄럽고 이것저것 잡스럽게 많이 생겼잖아요. 그런데 이 동네는 매장에 큼지막하게 간판을 다는 집도 거의 없어요.

이곳이 싫었던 적은 없나요?
아직까진 딱히 없어요. 그러니까 지방 출신인 제가 계속 서울에 살겠죠. 포항 동네와 비슷해요. 여기 되게 시골스럽잖아요. 뒤에 산도 있고요.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바다가 없는 거예요. 고향이 포항인데 어려서부터 수영하며 노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얼마 전엔 울진에 다녀왔는데 그곳 바다에서 친구들과 함께 수영하고 노는 게 정말 좋았어요.

‘청년 재벌’이 사는 집은 어떤가요?
보증금 5백만원에 월세 50만원짜리 반지하 셋방에서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면서 살고 있어요. 사람들은 왜 부동산을 잘 살고 못 살고의 기준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가게가 많다고 하지만 사실 이 가게들도 다 월세예요. 사람들은 건물을 사서 가게를 운영하라고들 하는데 왜 굳이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요즘 이 건물 하나 사려고 해도 50억 가까이 돼요. 저한테 만약에 50억이 있으면 저는 건물을 사기보다 그냥 하고 싶은 거 하고 놀면서 여생을 보낼 것 같아요. 원래 소유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뭔가를 가지면 떠나고 싶을 때도 떠날 수가 없잖아요.

어느 날 집주인이 나가라고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이사 가면 되죠. 다른 곳으로 가서 장사를 시작해야죠. ‘월세 올려달라고 하면 어떡하지? 얼른 돈 모아서 이 건물 내가 사야겠다’ 하는 마인드로 장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월세가 너무 올라 버틸 수가 없다는 건, 그 사람이 장사를 잘 못한다는 의미기도 해요. 그런 사람은 장사를 그만해야죠.

돈 버는 일에는 통 관심이 없나 봐요. 식당도 점심 영업은 안 한다면서요?
음식을 만들기까지는 준비할 게 정말 많아요. 특히 장진우 식당은 주방이 워낙 작기 때문에 준비하면서 요리를 동시에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오후까지 준비를 다 해놓고 저녁에 손님을 받는 거죠. 점심 장사를 하려면 새벽에 나와 일해야 하는데 그렇게 고생하면서 꼭 일해야 하는 걸까요? 제 수익 올리겠다고 스태프더러 꼭두새벽부터 나와 일하라고 하는 게 맞는 거예요? 내 수익이 조금 줄더라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다면 당연히 그걸 선택해야죠. 제 철칙 중 하나가 ‘오래 일하지 않는다’라는 거예요. 쉴 때는 근처 갤러리도 가고, 운동도 좀 하고 그래야죠.

아까 걸어오는 길에 ‘방범포차’를 봤는데 동네 할머니들이 점심 식사를 하고 계시던데요?
그건 영업이 아니라 봉사활동이에요. 매일 하진 못하고 매주 수요일마다 이 근처 식당들이 돌아가면서 급식 봉사를 해요. 밥으로 돈을 벌었으니 밥으로 나누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었어요. 용산구청에 가서 ‘이런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제안했더니, 이 근처에 사시는 독거노인들과 다문화 가족 아이들을 식당으로 보내주시더라고요. 처음엔 10명쯤 오시던 것이 지금은 40~50명까지 모이세요. 메뉴는 매번 달라지는데 오늘은 복날이라 삼계탕을 대접했어요.

돈 벌어서 주로 어디에 쓰나요?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죠 뭐. 맛있는 것을 사 먹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여행도 가고요. 근처 갤러리를 돌아보다가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사기도 해요. 오늘 아침에도 신진 작가의 작품 하나를 사 왔어요. 아주 오래된 자동차를 사서 이것저것 분해하고 정비하는 걸 좋아해서 한때는 자동차도 사모았어요. 타려고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집과 직장이 가까우니까 차 탈 일은 거의 없거든요. 스쿠터 하나면 족하죠.

지방에서 장사할 생각은 없나요?
이미 지방에도 가게를 냈어요. 프랜차이즈 말고 직영점으로요. 프랜차이즈는 왠지 다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인 것 같아요. 저야 이름만 빌려주면 되는 거지만, 혹시 그 가게가 잘 안 되면 어떡해요. 가게 주인은 물론이고 그 가족들까지… 너무 많은 사람이 슬퍼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 관점으로 보면 확실히 프랜차이즈보다는 직영점을 고수해야 할 것 같아요.

아, 그런데 아까 방범포차에 계셨던 건가요?
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장진우 1은 갤러리에 있었고, 장진우 2는 삼청동에서 미팅 중이었어요. 장진우 3은 방범포차에서 급식 봉사를 하고 있었네요. 제 꿈이 바로 그거예요.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거요. 다른 사람 슬프게 하지 않는 사람, 자기 좋아하는 일 마음껏 할 수 있는 사람 되는 거요.


상암동 자취남
CHO SE HO

한순간에 벼락 스타가 된 게 아니다. 지난 10년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내공이 드디어 빛을 발하고 있는 것뿐이다. tvN <코미디 빅리그>에 4년째 출연 중인 개그맨 조세호는 거의 매일 상암동에 있는 tvN으로 출근한다. 절친 남창희와 함께 대표적 상암동의 남자로 꼽힌다.

당신은 서울 남자인가요?
1982년 8월 9일에 마포구 망원동에서 태어났어요. 저를 둘러싼 ‘재벌설’이 있는데 사실 굉장히 평범하게 자랐어요.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일본으로 갔고 그곳에서 잠시 살면서 일본어를 배웠죠.

지금은 어디에 사나요?
현재는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살고 있어요. 절친 남창희씨와 후배 개그맨 김주호씨와 함께요. 동네 주민분들도 친절해서 아주 만족하고 있어요. 상암동에 있는 여러 촬영지들과 가깝고 염창동에 있는 저희 소속사 사무실과도 멀지 않아 지리적으로 아주 적합해요.

상암동에는 얼마나 자주 오나요?
<코미디 빅리그> <올리브쇼 2015> <한끼의 품격> 등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녹화가 주로 상암동에서 있어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오게 돼요. 이렇게 말씀드리다가 알았어요. 제가 일주일에 반 정도를 상암동에서 지내고 있군요.

상암동에서 꼭 가봐야 하는 맛집이 있나요?
‘양평닭갈비’를 추천합니다! 정말 ‘최고의 맛’이에요! 숯불에 구워 주시니까 더 맛이 좋은 것 같아요. 함께 먹는 막국수도 맛있어요. 상암동에 올 일이 있다면 꼭 한 번 들러 드시고 가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서울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한 동네가 있나요?
화곡동요. 어릴 때 화곡동에 살아서 정이 가는 걸까요.(웃음) 이 동네는 저에게 추억이 가득한 곳이에요. 지금은 어른이 됐지만, 다시 한 번 그곳에서 살아보면 다른 느낌의 화곡동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요?
한 곳을 꼽기 어렵네요. 저는 장소 불문하고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하거든요. 어쩜 그렇게 맛집들이 쏙쏙 숨어 있는지…. 새로 생긴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너무 재미있고요. 저는 서울 자체를 좋아해요.

서울에서 가장 싫어하는 건요?
당연히 교통체증이죠. 직업 특성상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요. 촬영 시간을 맞춰야 하니까 이동하면서 차가 많이 막히면 저도 매니저도 많이 초조하죠. 촬영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보통 3시간 전에는 출발합니다.

개그맨으로서 상암동이 좋은 이유가 있나요?
아무래도 방송국을 비롯해 여러 미디어 환경이 상암동에 모여 있으니까요. 팬분들과 길 가다가도 가벼운 대화를 나눌 수 있을만큼 접근성이 좋죠. 소통이 가능해요. 뿐만 아니라 개그맨은 트렌드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하는데 상암동엔 트렌디한 사람들이 많아요.

서울 스타일은 어떤 걸 말하는 걸까요?
서울 스타일이라…. 전국 팔도의 모든 것이 모여 있는 곳이 서울이잖아요. 다채로운 사람들이 공존하는 도시라고 생각해요.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다 보니 문화도 다양하고요. 사람들의 개성이 드러나는 게 서울만의 매력이 아닐까요?

외국인들에게 서울을 소개해주세요.
‘서울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겪어본 사람은 없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만큼 멋진 도시죠. ‘흥’을 즐길 줄 아는 워커 홀릭이 가득하고 매력적인 트렌드가 공존하는 곳이 서울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생각하는 서울 여자는 어떤 스타일의 여자인가요?
한마디로 표현하면 ‘넘사벽’이에요.(웃음) 그만큼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여성이 바로 서울 여자들이 아닐까요? 전 이 도시의 여성들을 보면 참 멋지다고 생각하거든요.


홍대 앞 노는 오빠
ROSE MOTEL

어디에 사나요?
육중완 서울 망원동이오. 따뜻한 정과 옛 향수가 느껴지는 망원시장이 포인트죠. 근처에 저렴한 맛집이 많아 돈 없는 연인들이 데이트 비용을 절약하기에 더없이 좋아요.
강준우 처음 홍대 앞에 왔을 땐 완전 홍대 거리 중심 상가건물 5층에서 육중완 형과 다른 작곡가 형 이렇게 셋이 함께 살았어요. 치명적인 월세와 소음에 시달리다 결국 2년 만에 성산동으로 이사했지요.
임경섭 방송국 근처인 상암동에 살고 있어요. 와이프가 촌사람이라 연예인 보려고 이쪽으로 터를 잡은 것 같아요.(웃음)
배상재 석촌호수 근처요. 호수도 좋고 근처 잠실 한강공원 잔디밭에 앉아서 먹는 ‘치맥’에 중독되서 말이죠.
윤장현 저는 서울에 올라온 이후 마포를 벗어난 적이 없어요. 망원동, 서교동, 합정동을 거쳐 결혼한 지금은 성산동에 살고 있어요. 결혼 전엔 지하실을 전전했는데 이제는 주택가에서 남들처럼 작은 가정을 이루고 예쁜 부인이랑 알콩달콩 깨 볶으며 신혼을 보내는 중입니다.(웃음)

다들 지방 출신인데 평소에 멤버들끼리 대화할 때 말투는 어떤가요?
육중완 저희는 완벽하게 서울말만 구사합니다.(웃음) 사실 아무도 못 고쳤고요. 멤버 중엔 배상재씨가 서울 말투에 가장 가깝지 않나 생각합니다. 특히 방송할 때 가식적으로 서울 사람인 척하거든요.(웃음)
배상재 표준어를 어느 정도 구사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순수 서울 혈통의 친구들이 사투리 좀 그만 쓰라고 해서 무안했던 적이 있어요.
윤장현 상경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신기하게도 제가 이야기만 하면 모든 사람이 전라도 사람인 걸 금방 알아채더라고요. 그런데 또 고향에 내려가면 “왐마 장현이 서울 사람 다 되었구만”이란 말을 많이 들어요. 아마도 사투리도, 서울말도 아닌 ‘서투리’를 쓰고 있나 봐요.
임경섭 신경 써서 서울말 쓰고 있는데 방송 관계자분들이 계속 서울말을 쓰라고 하셔서 죽겠어요.(웃음)
강준우 서울말을 쓰려고 ‘억수로’ 노력을 많이 했어요.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나선 그냥 막 사투리를 씁니다.(웃음) ‘인자는’ 신경 안 써요.

서울에는 왜 온 건가요?
임경섭 10년 전쯤에 연예인이 되고 싶어서 올라왔다가 낙향했는데, 지금의 와이프를 놓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왔죠.
강준우 음악적 미래를 찾으러요. 부산에 살다가 ‘서울은 좀 안 다르겠나’ 싶어서 벼르다 서른 전에 올라온 거예요.
배상재 기타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서 2000년도에 올라왔어요. 그땐 돈이 없어 기타랑 옷 몇 벌만 들고 새벽 버스로 힘들게 용기 내서 상경했죠.
윤장현 시골에서 음악 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썩을 바에 차라리 폭삭 썩더라도 서울 가서 한번 해보자 하는 생각이었어요.
육중완 2008년 봄에 왔어요. ‘고구마’라는 팀을 만들면서 제가 만든 음악을 직접 부르고 들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올라왔죠. 그때부터 고생도 함께 시작됐죠.(웃음)

‘음악’의 중심은 역시 홍대 앞인가요?
육중완 방송국이죠!(웃음) 농담이고요, 홍대 거리입니다. 지방에서 음악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저처럼 생각할걸요.
임경섭 나도 홍대 거리에 한 표!
강준우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요즘은 많이 변한 것 같아요.
배상재 예전엔 서울 전체가 음악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어요. 강남 쪽엔 멋진 스튜디오도 많았고, 여의도엔 방송국, 대학로엔 수많은 공연장이 있었으니까요.
윤장현 역시 음악의 중심은 ‘내가 서 있는 자리! 내 가슴속! 바로 나! 세상의 중심도 바로 나!’가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제가 있는 홍대 거리를 꼽겠습니다.

혹시 서울 남자인 척해본 적이 있나요?
강준우 처음 막 “상경했을 때 부산 사람들이 서울 택시를 타면 일부러 돌아간다”는 유언비어를 들은 터라 겁을 ‘억수로’ 먹었거든요.(웃음) 택시를 타면 “아저씨 홍대 가주세요” 라는 말을 서울말로 하려고 “아저씨 홍대에~가주세요오~” 하고 끝만 올려 말하곤 했죠. 그리고 일부러 전화하는 척하면서 “어~ 그래~ 나 서우울~이야~” 하고 말했던 기억도 나요.
임경섭 고향인 마산에서 햄버거 가게를 갔는데, 한번 테스트 삼아 어설픈 서울말로 주문한 적이 있어요.
배상재 서울에서 반 년쯤 보내고 고향에 놀러 갔을 때 서울 남자인 척했어요. 왠지 서울 남자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때 알게 된 사실은 ‘서울 남자’보다 ‘잘생긴 남자’가 인기가 많다는 것. 역시 말투보다 외모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윤장현 저는 그냥 얼굴만 봐도 사람들이 해남 사람인 줄 알더라고요. 얼굴에 논두렁이랑 밭두렁이랑 된장이 다 있다고 누군가 이야기해준 생각이 나네요.(웃음)
육중완 저 역시 말 안 해도 지방 사람인 걸 알던걸요?(웃음)

서울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동네가 있나요?
강준우·임경섭·윤장현 이태원요. 꼭 외국에 사는 기분이 들 것 같아요.
육중완 저는 압구정동요. 어릴 때 고향 집에서 TV 보면 서울에서 가장 잘사는 동네로 나왔거든요. 잘사는 느낌을 경험하고 싶었어요.
배상재 북촌이나 효자동, 부암동 쪽요. 조용한 동네의 주택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마당에선 리트리버를 키우는거죠. 나중에 아이들이 태어나면 집에서 신나게 뛰어놀 수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서울에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강준우 음악 일은 기본이고 요식업계에 진출해보고 싶어요. 먹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정말 맛있는 음식점을 내볼 작정이예요.
임경섭 와이프와 함께 건강한 문화생활을 누리고 싶어요! 쭉요!
배상재 잠실 주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요!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제 원대한 꿈입니다. 동네에 조그만 선술집을 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장사를 하기보다 장현이 형이랑 같이 편하게 먹고 싶어서요.(웃음)
윤장현 장미여관의 잠실 주경기장 단독 콘서트가 목표고요, 개인적으로는 자전거로 서울의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것이 꿈입니다.
육중완 서울에서 주어지는 행복이라면 뭐든지 좋아요!


청담동 신사
GENTLEMAN

명품 매장들이 즐비한 대로를 지나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맞춤 양복점 하나가 보인다. 박정희 전 대통령, 대기업 총수 일가들의 옷을 지어오며 이미 상류층 사이에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세기양복점’이다. 이곳은 아버지 윤인중 원장과 아들 윤일석 대표가 함께 운영한다. 고급스러운 청담동 거리에서도 가장 ‘청담동’다운 장소다.

두 사람 모두 서울에서 태어났나요?
윤인중 원장(이하 아버지) 아들은 서울 출신이지만 저는 충청북도 청원 출신이에요. 그때만 해도 교장 선생님께서 “서울에 가야 한다. 여기서는 군수의 아들밖에 못 사귀지만 서울에 가면 대통령 아들도 만날 수 있다”고 하셨지요.(웃음) 그때는 ‘감히 내가 어떻게 서울엘 가겠어?’ 하고 생각했죠.

서울에 온 지 40년 이상 됐다고 들었어요. 그 당시 서울의 풍경이 궁금하네요.
아버지 처음 제가 서울에 올라온 건 스물한 살 때였어요. 1950~60년대 초 서울은 죄다 판자촌이었고 높은 건물은 아예 없었죠. 명동에 11층짜리 유네스코회관을 짓는다고 라디오에서 중계방송을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종로 한복판의 도로도 자동차가 다니는 딱 두 차선만 포장도로였고 나머지는 다 흙길이었어요.

서울에 올라와 어떤 나날을 보냈나요?
아버지 흔히 ‘서울은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곳’이라고들 하잖아요. 저 역시 처음 상경해서 하루하루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달려야만 했죠. 서울에 와서야 재단사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대한복장학원에 들어갔어요. 그때 원장님이 칭찬을 많이 해주셨는데 그때 들은 격려가 정말 큰 힘이 돼 오늘까지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그 힘으로 1970년부터 지금까지 양복점을 운영했지요

처음 소공동 롯데호텔에 있던 가게를 최근 청담동으로 옮긴 이유는 뭔가요?
아들 소공동에 있을 때 유달리 강남 쪽에서 찾아 오시는 손님들이 많았어요. 청담동이 패션으로 특화된 곳이기도 하고, 명품 브랜드 매장과 함께 있어야 우리 양복점이 좀 더 빛을 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5년 전에 여기로 옮겼죠.

벌써 멋쟁이들 사이에 유명한 장소가 됐어요.
아들 확실히 젊은 손님이 많이 늘었어요. 맞춤 양복이 사실 젊은 분들 사이에서 유행할 만한 아이템은 아닌데도, 요즘은 많이 찾아 오세요. 결혼을 앞둔 분들이 웨딩 예복 맞추러 많이 오시고요.

옛날과 비교했을 때 맞춤 정장의 트렌드는 어떻게 바뀌었나요?
아들 남자 옷은 여자 옷보다 변화의 폭이 크지 않아요. 물론 어깨 패드가 얇아졌다거나 실루엣이 좀 더 슬림하고 타이트해졌다거나 하는 변화는 있지요. 맞춤 양복은 유행을 너무 추종해도 안 되지만 뒤처져도 안 돼요. 적절한 선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남자들을 주로 만나실 텐데 옛날 서울 남자와 오늘날 서울 남자를 비교한다면요?
아버지 신체 조건은 확실히 좋아진 것 같아요. 6·25 직후인 1950년대에는 남자들의 평균 키가 165cm였거든요. 밭에 가서 하루 종일 일하던 사람들이라 체형도 구부정할 수밖에 없었고요. 생활 방식이 서구화되면서 점점 남자들의 키도 커지고 어깨도 펴진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옷발’이 잘 받는 체형이 된 거죠.

서울 남자들이 옷 입는 걸 보면 어떤가요?
아들 예전에는 으레 몸에 잘 맞는 맞춤 정장을 입어야 ‘옷을 잘 입는다’고들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 ‘잘 입는다’는 개념이 바뀐 것 같아요. 아무래도 격식을 갖추어 옷을 입어야 한다는 의식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래도 클래식 연주회나 결혼식에 갈 때는 반드시 정장을 입고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버지 시간과 장소, 경우에 맞춰 옷을 입는 것이 옷을 잘 입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잔칫집에 갔는데 한 청년이 검은색 넥타이를 매고 온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옷에 대한 기본적인 착장 규칙을 너무 모르는데 그걸 지적해줄 사람도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죠.

옷을 잘 입는 셀러브리티는 누구일까요?
아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TPO에 맞게 옷을 잘 입으시는 것 같아요. 신라호텔 이부진 사장도 과하지 않으면서 적절하게 옷을 잘 맞춰 입으시더라고요. 강연으로 유명한 김창옥 교수도 저희 가게 옷을 애용하시는데 위트 있는 패션 감각을 지닌 분이시더군요.

가업을 이어받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어쩌다 같은 일을 하게 된건가요?
아들 원래는 다른 곳에서 직장 생활을 4년 정도 했어요. 우연히 어떤 기사를 봤는데 ‘한국에서는 절대로 옷을 맞춰 입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걸 보고 오기가 생겼어요. 적어도 우리 아버지가 만든 옷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아버지 아들이 워낙 꼼꼼하고 섬세해서 이 일이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옷에 필요한 재료들을 최고급으로 바꿨고, 젊은 세대도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을 했지요.

두 분, 싸울 때도 있나요?
아들 처음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의견 충돌이 있어요. 하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과정이 있어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거니까요. 고인 물은 썩잖아요.

계속 청담동에서 가게를 운영하실 건가요?
아버지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여기 있을 것 같은데요? 그새 정이 들었어요. 소공동 롯데호텔 지하에 있을 때는 밖에 눈이 오는지, 비가 오는지도 몰랐어요. 근데 여기 와서는 밖에 해 뜨고 지는 것도 보고 눈 내리는 것도 보고, 멋진 서울 풍경을 보니 정말 좋더라고요.

인터뷰를 마치고 촬영이 이어졌다. 아버지와 아들은 요청하는 대로 묵묵히 포즈를 취했다. 사진 촬영장비를 함께 옮겼고 길가의 표지판을 함께 치웠으며 촬영이 진행되는 내내 한 번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고급 의상보다도 더 멋진 애티튜드를 갖춘 ‘진정한 청담동 럭셔리 패밀리’를 만나고 왔다.

남성지 에디터가 바라본 서울 남자



청담동
전통적인 부촌. 명품 패션 거리가 있고 고급스러운 바도 많다. 여기는 걷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대부분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기 때문이다. 청담동 골목은 희귀한 차가 흔하게 보이는 희한한 골목이다. 낮에는 패션 숍, 밤에는 ‘볼트 82’ 같은 바가 핫하다. 청담동에도 술집은 많지만 만취한 사람은 드물다. 역시 술값이 비싸서일까?

남자
단정한 차림의 30~40대 남성이 많다. 화려해 보이진 않는데 알고 보면 몸에 걸친 옷들이 전부 명품인 경우가 많다. 이 동네 남성들에게 손목시계는 자존심이다. 유행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 것도 청담동 남자의 특징이다. 청담동에선 유독 남자들끼리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다. 싱글 몰트위스키 바와 같은 위스키 문화가 번지고 있어서다.


이태원
해밀턴 호텔의 뒷골목에 들어서면 진정한 이태원이 시작된다. 이태원을 이국적이라고 하는데, 외국인이 많아서만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내국인도 이국적으로 보인다. 하여튼 이태원의 분위기는 자유롭다. 무슨 옷을 입고 있어도 여기선 아무도 신기해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한강진역 방향으로 골목에 있는 술집들이 핫하다. 경리단길이야 말할 것도 없고.

남자
이태원 남자는 세 부류다. 퇴근하고 놀러 온 직장인 남자, 문신과 수염이 눈에 띄는 남자,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 대개 서양 남자들은 한국 여자에게 당당하게 접근한다. 먼저 말을 걸고 여자들 사이에 엉덩이를 비집고 앉는다. 그래서인지 이태원에선 한국 남자들도 없던 용기를 쥐어짜내 여자들에게 접근한다. 영어권 남자들과 경쟁하다 보니 다른 지역 남자들보다 적극적인 편이다.


가로수길
힙하다. ‘힙스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가로수길은 꾸준하다. 이게 다 ‘패션 피플’ 때문이다. 이 거리를 지날 때면 옷차림에 예민해진다. 가로수길은 점심에 분주하고 저녁이 되면 세로수길이 바빠진다.

남자
가로수길 유동 인구 중에는 패션계 종사자들이 유독 많다. 유명 남자 모델도 종종 눈에 띈다. 그들은 화려하고 블링블링하게 하고 다니지 않는다. 요즘 트렌드가 놈코어라서 그렇다. 값싼 옷, 단순한 옷, 흔히 말하는 베이식 아이템을 주로 입는다. 안 꾸민 것 같지만 실은 엄청 고민한 거다. 이게 고수의 패션이다. 훤칠하게 잘생긴 스타일리시한 가로수길 남자들은 ‘젠틀’이라는 아이템을 기본으로 장착했다. 특히 여자에게 친절하고 다정하다. 잘생긴 남자들이 그렇게 하니까 더 멋져 보인다. 인도를 향해 활짝 열린 ‘커피스미스’의 테라스를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작아진다.
  


홍대 거리
홍대 거리는 크게 홍대 입구, 상수동, 연남동으로 나눌 수 있다. 상수동과 연남동은 연령대가 다소 높은 데 반해 홍대 앞은 젊음의 열기로 가득하다. 고등학생 티를 못 벗은 젊은 남자와 여자들이 서로를 힐끔거린다. 술 마시고 주정을 부리는 외국인도 많다. 먹거리를 제외하고 논하자면, KT&G의 상상마당을 꼽을 수 있다. 독립영화 상영관이 있고 음악 공연도 열린다. 독립 문화가 발전된 지역이기 때문에 상업성이 적은 문화 공간에 사람들이 자주 방문한다. 이 외에도 재즈를 연주하는 소극장이 있으며, 클럽은… 너무 많다.

남자
왜 스무 살의 남자들은 앞머리로 눈을 가리는 걸까?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그들의 습성은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깡마른 20대 초반 남자가 가장 많다. 그들은 마른 몸을 더 말라 보이게 하는 스키니한 옷을 입는다. 그 외에 ‘나 음악 해요’라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는 청년들도 눈에 띈다. 힙합 스타일과 피곤한 로커 스타일이 두루 섞여 있다. 홍대 거리의 남자들은 거침이 없다. 여자에게 먼저 다가가 전화번호를 묻는다. 클럽에선 더하다. 물론 여자들도 만만치 않다.
 


성수동(건대 앞)
1990년대 대학가의 분위기를 지닌 몇 안 되는 동네다. 고급스럽다기보다는 싸고 편하다. 최근에는 뚝섬유원지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양꼬치집들이 핫하다.

남자
평범한 남자 대학생이 대부분. 보통의 20대 남자가 궁금하면 여기 가보면 된다. 유행을 크게 앞지르거나 독특한 개성을 지닌 사람도 없다. 평범 그 자체다. 술 마시고 외박하기 좋은 옷이다. 남자는 두 부류다. 술 취한 여자를 지하철역으로 끌고 가거나, 뒷골목 모텔로 가거나. 지하철역과 모텔 골목 앞에는 항상 싸우는 커플들이 있다. 왜 인지는 모르겠다.
  


서촌
조용하다.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작은 가게들이 남아 있고, 세련된 공간도 많다. 과거에는 대림미술관이 있는 영추문 앞 골목이 인기를 끌었는데, 최근에는 통인시장 뒤쪽 골목에 사람이 붐빈다. 작고 독특한 카페와 술집이 가정집들 사이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배화여고에서 경복궁역 방향으로 시장 골목에 들어서면, 요즘 핫한 ‘효자바베’ 같은 청년들이 운영하는 맛집이 등장한다.

남자
지적으로 보이는 남자가 많다. 뿔테 안경을 쓰고, 와이셔츠를 입었다. 회사원 같지는 않은데, 굳이 그렇게 입었다. 이 공식을 벗어난 남자가 보인다면 이태원이나 홍대 거리, 강남에서 놀다가 한 번 놀러 온 남자일 거다. 이 동네 남자들은 술보다 커피와 더 친해 보인다. 반듯해 보이는 남자도 이곳에선 꼭 셀카를 찍는다. 10대나 40대나 연령에 상관 없이 서촌에선 그렇다.
 


여의도
낮에만 바쁘고 밤이 되면 썰렁하다. 밤에는 만취한 남자가 인도에 앉아 있는 모습도 간혹 볼 수 있다. 회사가 즐비한 동네라 주말에는 사람이 없다. 평일 점심 장사만 하는 음식점이 많다. 여의도는 뭐니 뭐니 해도 한강공원이 최고다. IFC몰과 함께 주말에 사람이 많은 유일한 지역이다. 주말에는 가족 단위, 평일 저녁에는 회사 동료끼리 이곳을 찾는 경우가 많다.

남자
대기업에 다니는 전도유망한 금융맨이 많다. 슈트를 빼입은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도 자주 볼 수 있다. 그들은 대체로 슈트 핏이 살아 있다. 운동으로 다진 탄탄한 몸매가 옷발을 살게 한다. 전통적인 성공한 남자의 상이 이곳에 있다.
 

CREDIT INFO

취재
이예지·정희순·정지혜 기자, 조진혁(<아레나> 에디터)
사진
이재희, 최항석, 서울문화사 DB
2015년 09월호

2015년 09월호

취재
이예지·정희순·정지혜 기자, 조진혁(<아레나> 에디터)
사진
이재희, 최항석, 서울문화사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