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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화백과 떠난 일본 히로시마 힐링 여행

만화가에게 연재란 전쟁이다. 일단 연재가 시작되면 작업실도, 문하생들도, 만화가의 머릿속도 온통 전시 상황이 되는것이다. 수십 년째 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허영만 화백에게도 연재는 버거운 일이다. 그래서 아주 가끔, 휴전의 선언하고 여행을 떠난다. 이번에는 일본의 히로시마, 천천히 쉬엄쉬엄, 허영만 화백의 여행길에 <우먼센스>도 함께했다.

On December 06, 2013


‘국민만화’ <식객> 시즌 2를 카카오 페이지에 연재하는 허영만 화백이 오래간만에 짐을 꾸렸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허 화백은 자타가 공인하는 여행 마니아. 히말라야의 8,000m급 산 베이스캠프를 여러 차례 올랐고, 캐나다와 뉴질랜드는 캠핑카로 누비고, 대한민국 해안을 요트로 일주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일본 구석구석 온천과 맛을 찾아 순례하고 <맛있게 잘 쉬었습니다>(가디언)라는 여행 책을 내기도 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일본의 히로시마. 우리의 다도해처럼 수천 개의 섬이 아름다운 세토내해(瀨戶內海)의 고즈넉한 풍경 속으로 방향을 잡았다. 우리에게 ‘원자폭탄’으로만 각인된 히로시마는 일본의 여러 지방 중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적게 찾는 여행지다. 하지만 일본을 대표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이쓰쿠시마(嚴島) 신사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벼랑 위의 포뇨>의 배경이 된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도모노우라(の浦), 바다를 내려다보며 온천을 즐길 수 있는 멋진 료칸(旅館) 등으로 서양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지역이기도 하다. 계속되는 연재와 취재로 몸과 마음이 지친 허영만 화백은 이번에 6일의 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오전에 한 곳 오후에 한 곳 정도만 여행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평소보다 기간은 두 배쯤, 하루에 둘러볼 장소는 절반 이하로 줄인 것이다. 천천히, 쉬엄쉬엄. 만화가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조선통신사가 반한 아름다움 도모노우라(の浦)
히로시마의 첫 발길이 이른 곳은 도모노우라. 히로시마의 남쪽 끝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아름답지만 소박한 작은 바닷가 마을. 하지만 이곳은 일본의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만엽집>에도 등장할 만큼 유서 깊은 곳이다. 그뿐만 아니라 18세기 당시 일본에 오는 조선통신사가 꼭 들러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마을 중심의 다이조루는 조선통신사가 머물던 영빈관이다. 사방이 트인 거실에 앉아 저 멀리 바다와 섬 풍경을 보니, 1711년 이곳을 찾은 조선통신사가 남겼다는 ‘일본제일경승지’라는 문구가 빈말이 아님을 알겠다. 오죽했으면 거실에서 보이는 작은 섬 이름이 선취도(先醉島, 선인들이 취할 만큼 아름다운 섬)일까?

도모노우라의 아름다움에 취한 사람은 조선통신사들만이 아니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 또한 도모노우라에 푹 빠졌다. 그는 아예 이곳에서 6개월 이상 머물며 작은 바닷가 마을을 구석구석 돌아보았단다. 아침마다 단골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스케치를 하고, 단골 식당에서 밥을 먹고, 다시 골목을 돌며 이미지를 구상하고… 이렇게 태어난 작품이 <벼랑 위의 포뇨>(2008)다.

일본 전통 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모노우라의 옛 골목엔 미야자키의 단골 찻집이 여전히 성업 중이다. 우리가 가는 날 마침 문을 닫아 아쉬웠지만, 점심은 그의 단골집에서 먹을 수 있었다. 식당 입구에는 미야자키가 이 식당을 그린 그림으로 메모지를 만들어 손님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만엽집>에 등장할 정도로 오래된 마을은 작은 식당 하나에도 많은 이야기가 전하는데, 이 식당은 미야자키 하야오 말고도 또 한 사람의 유명인과 연관이 깊었다. 바로 ‘메이지 유신의 풍운아’ 사카모토 료마다. 에도 막부 말기에 지방 무사로 태어난 료마는 일본 전국을 다니면서 쇄국의 길을 걷는 막부를 타도하고 일본을 근대화하기 위한 활동을 벌인다. 겨우 32세의 나이에 암살당하기까지 일본 전국을 떠돌며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료마는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역사 소설가 시바 료타로의 작품 <료마가 간다>를 통해 전 일본인의 우상이 되었다.

점심을 먹고 옛 마을 구석구석을 걷다가 일찌감치 숙소로 들어갔다. 바닷가에 자리 잡은 호텔 ‘오후테이 료칸’은 옥상의 온천이 인상적이었다. 탁 트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노천 온천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즐기는 온천이다. 다음 날 조금 일찍 일어나 옥상의 노천 온천에서 일출을 맞았다. 수백 년 전 조선통신사들도 이런 호사를 누렸겠지.

고풍스러운 운치를 간직하고 있는 도모노우라 등대. 탁 트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즐기는 오후테이 료칸의 노천 온천은 호사 그 자체다.

80여 개 전통 사찰이 모여 있는 오노미치(尾道)
히로시마 동쪽의 작은 도시인 오노미치는 얼기설기 엮인 수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히로시마에서도 교통의 요지인데, 이곳 또한 상업도시라기보다는 아기자기한 골목길이 그림 같은 곳이다. 오노미치 여행은 지은 지 1200년이 넘었다는 센코지(千光寺)가 있는 센코지 산 전망대에서 시작된다. 케이블카를 닮은 로프웨이를 타고 산 정상에 이르면 오노미치의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에 이른다. 여기서부터 ‘문학의 오솔길’ ‘절의 길’ 등의 이름이 붙은 아담한 길을 거꾸로 내려오게 된다. 이 길에는 고양이를 그려 넣은 1천여 개의 귀여운 돌이 여행자들을 반긴다. 소노야마 순지라는 화가가 행운을 주는 의미로 그린 것이란다.

해상 교통의 요지였던 오노미치에는 부유한 상인이 많았다. 이 상인들이 뱃길에서 부처님의 가호를 입기 위해 절을 세우기 시작해, 지금은 이 근방에 사찰만 80개가 넘는단다. 센코지 산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골목길 중 ‘절의 길’이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일본의 고대 문화를 이끈 쇼토쿠 태자가 세웠다는 조도지(淨土寺)도 그중 하나다.

이날도 역시 일찌감치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의 숙소로 문을 열었다는 니시야마 료칸의 분위기는 독특했다. 서양식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고 할까?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이 지역을 대표하는 료칸으로 자리를 잡았단다. 그래서 일본을 대표하는 바둑 타이틀전인 본인방과 명인전이 이곳에서 열리기도 했다고. 료칸 입구에는 다음 달에 열리는 명인전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또한 이곳은 드라마 <싸인>에도 등장했다고 한다. 주인공인 박신양이 촬영했다는 방은 드라마처럼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겼다.

일본 고대 문화를 이끈 쇼토쿠 태자가 616년 세웠다는 조도지(淨土寺)는 일본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주지스님은 3년 뒤 창건 1,400주년을 맞아 성대한 기념행사를 치를 계획이라고 한다. 고대 사찰로 향하는 길엔 고양이를 그려 넣은 돌 1천여 개가 여행객을 반긴다.

일본 대표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쓰쿠시마(嚴島) 신사
고백하자면, 히로시마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쓰쿠시마 신사를 알지 못했다. 이곳이 원폭 돔과 함께 히로시마를 대표하는 세계문화유산이며, 바다 위에 떠 있는 이 신사의 도리이(鳥居, 나무로 만든 신사의 정문)를 보기 위해 수많은 서양인들이 일본을 찾는다는 사실도. 이쓰쿠시마 신사가 있는 미야지마 섬은 일본의 3대 절경 중 하나란다. 593년에 창건되었다는 이쓰쿠시마 신사는 1168년에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단다. 신사 앞에는 바다와 도리이가 있고 뒤로는 산이 있으니, 일본식 배산임수라 볼 수 있겠다. 그리하여 신사는 섬과 바다와 어울려 하나의 압도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금강산’을 보았으니, ‘식후경’을 챙길 차례. 일본 최대의 굴 양식장을 갖춘 히로시마의 굴요리를 맛보기로 했다. ‘줄 서서 먹는 맛집’ 랭킹에서 일본이 2위를 했다는 굴요리 전문점 카키야(牡蠣屋)가 마침 미야지마에 있단다. 가보니 과연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오랜 기다림 끝에 먹는 굴요리가 맛이 없을 수 없다. 거기다 굴과 찰떡궁합인 와인 샤블리를 한 잔 곁들이니 천국이 따로 없다. 여행 내내 허영만 화백을 괴롭히던 감기 몸살도 저 멀리 날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짜 맛의 향연은 그날 저녁에 펼쳐졌다. 천황이 묵어갔다는 료칸 ‘이와소’에 짐을 풀었는데, 숲 속에 자리 잡은 이 멋진 료칸이 <미슐랭 가이드> 원 스타를 받았단다. 료칸이 <미슐랭 가이드> 스타를 받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일본에서 이곳이 유일하다고. 그래서일까? 보통 료칸은 숙식이 포함되는데, 이곳은 저녁만 따로 팔기도 한다.

바다에 떠 있는 비경으로 유명한 이쓰쿠시마 신사. 해신을 섬기는 신사로, 용궁을 재현하기 위해 물에 뜬 모습으로 지었다. 숲 속에 자리한 료칸 이와소는 천왕이 묵고 갈 정도로 그 분위기와 음식이 일품이다.

히로시마를 찾는 관광객의 필수 코스 평화기념공원
마지막 일정은 히로시마의 또 하나의 세계문화유산, 원폭 돔이었다. 원폭 돔은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다. 당시 물산장려관(상공회의소) 건물이었던 원폭 돔은 가까이에서 원자폭탄이 폭발했음에도 기적적으로 완파를 면했다. 물론 돔 지붕은 앙상한 뼈대만 남고, 일부 벽은 무너졌지만 말이다. 피폭 당시 주변 건물은 흔적도 없이 날아갔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도착하니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이곳은 일본 최고의 ‘수학여행 성지’란다. 그들은 멀리 원폭 돔이 보이는 평화기념비에서 묵념을 하고, 바로 옆 평화기념관에 들러 원자폭탄 투하의 참상을 둘러본다. 허영만 화백은 평화기념공원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한국인위령비부터 찾았다. 이 위령비는 원자폭탄이 터지고 25년이 지난 1970년에 세워졌다. 그 전까지 한국인 피해자들은 잊힌 존재였다.

이쓰쿠시마 신사를 찾은 서양인들도 이곳이 필수 방문 코스다. 평화전시관은 원자폭탄으로 인한 참상을 고발하고, 원자폭탄 없는 세상, 전쟁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곳이다.

돌아오는 날, 마지막 점심은 히로시마식 오코노미야키였다. 우리네 빈대떡과 비슷한 오코노미야키는 ‘자기가 좋아하는 재료’(오코노미)를 ‘굽는 요리’다. 그런데 재료를 섞는 방식에 따라 히로시마식과 오사카식 두 가지가 있다. 오사카식이 모든 재료를 한데 뒤섞어서 굽는다면, 히로시마식은 재료를 켜켜이 쌓아 굽는다. 우리나라에서 오코노미야키를 주문한다면 십중팔구 오사카식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재료의 식감이 살아 있는 히로시마식 오코노미야키 또한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둘의 공통점은 싸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서민의 음식이라는 것. 다만 오사카식이 빈대떡이라면 히로시마식은 피자에 더 가까워 보였다.

도모노우라에서 오코노미야키까지, 6일간의 히로시마 여행이 모두 끝났다. 천천히, 쉬엄쉬엄. 덕분에 허영만 화백의 몸살도 잦아들었다.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둘러봐야 할 평화기념공원. 원폭 투하의 상처와 참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 TRAVEL INFO

    AIR
    인천에서 히로시마까지 매일 아시아나 직항이 있다. 소요시간은 1시간 20분.

    SIGHTSEEING
    센코지(千光寺)_센코지 절은 오노미치의 상징으로 봄에는 벚꽃나무 1만 그루와 철쭉 4천 그루가 만개하고, 초여름에는 등꽃이 만발하는 아름다운 절이다. 센코지 절이 있는 산 정상에서는 오노미치 시가와 세토우치 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절경으로 이름이 높다. www.ononavi.jp
    이쓰쿠시마 신사_자연경관과 인간의 창조물이 조화를 이루며 극적인 장관을 연출한다는 이유로 유네스코는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www.miyajima-wch.jp
    평화기념공원_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이 투하된 도시 히로시마가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조성한 공원. www.kankou.pref.hiroshima.jp

    RESTAURANT
    온후나야도 이로하(御舟宿いろは)_084-982-1920, 다이우즈미 정식 1천6백80엔, www.vesta.dti.ne.jp/npo-tomo/iroha
    카키야(牡蠣屋)_0829-44-2747, 카키야 정식(牡蠣屋定食) 2천엔

    HOTEL
    호텔 오후테이 료칸_1박(석식·조식 포함) 1만5천7백50~4만9백50엔, www.ofutei.com
    니시야마 별관_1박(석식·조식 포함) 1만8천9백~4만2천1백엔, www.nishiyama-b.jp
    이와소_1박(조식 포함) 1만9천9백50~4만2천엔, www.iwaso.com

CREDIT INFO

기획
장은성
글&사진
구완희
2013년 11월호

2013년 11월호

기획
장은성
글&사진
구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