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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성 대통령’ 박근혜

드라마틱 인생 풀스토리 & 여성·교육·복지… 이렇게 바뀐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 대한민국 최초의 2세 대통령. 대한민국에서 처음인 독신 이공계 출신 대통령.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헌정 사상 최초의 기록을 여럿 만들어내면서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의 딸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 파노라마와 앞으로 바뀌는 것들.

On October 06, 2013

2012년 12월 19일, 국민은 그녀를 선택했다.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의 탄생이었다. 박근혜(60세) 당선인은 당선이 사실상 확정되는 순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축하 행사에 참석해 지지자, 시민들과 함께 기쁨을 나눴다. 박 당선인은 당선 첫 소감으로 “이번 선거는 국민 여러분의 승리”라고 말했다. 아래는 박 당선인의 대국민 메시지와 이날 사회를 본 KBS 이지애 아나운서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선거는 국민 여러분의 승리입니다.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살리려는 열망이 가져온 국민 마음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제가 선거 기간 중에 가는 곳마다 저에게 신뢰와 믿음을 주신 그 뜻,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국민께 드린 약속, 반드시 실천하는 민생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거를 치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선거운동 하는 중에 큰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그래서 저를 돕던 소중한 분들(고 이춘상 보좌관과 김우동 홍보팀장)을 떠나보내게 되었어요. 가장 힘들었습니다.”
선거운동 중 언제 가장 보람 있었나요?
“시장에서 제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시던 분들, 추운 날씨에도 오랜 시간 기다리시면서 저에게 신뢰와 믿음을 보내주신 분들과 마주했을 때, 그때 가장 행복하고 보람 있었습니다.”
오는 2월이면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합니다. 어떤 대통령이 되고 싶나요?
“제가 크게 세 가지를 약속드렸어요. 민생 대통령, 약속 대통령, 대통합 대통령. 그 약속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요?
“선거 기간 중에 만나뵌 많은 국민 여러분, 주먹만 한 알밤을 들고 와서 제 손에 쥐어준다든지 격려하고 응원하던 분들이 많이 생각납니다. 지금도 눈에 선하고 다시 뵙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국민 여러분께 한 말씀 해주세요.
“새로운 시대를 여러분께서 열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보내주신 신뢰, 제가 그 뜻을 깊이 마음에 새기면서 우리 국민 여러분 모두가 꿈을 이룰 수 있는, 작은 행복이라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국민 행복 시대를 제가 반드시 열겠습니다.”

다음 날 국립현충원 방문으로 하루를 시작한 박 당선인은 이곳에서 전직 대통령들을 참배한 뒤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당선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박 당선인은 먼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신 문재인 후보님과 지지자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저나 문재인 후보님 모두 대한민국을 위하고, 대한민국의 주인이신 국민 여러분을 위한 마음만은 같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국정 운영에서 국민을 위한 이 마음을 늘 되새기겠다”고 말했다.

이어 박 당선인은 “다시 한 번 ‘잘살아보세’의 신화를 만들어 국민 모두가 먹고사는 걱정하지 않고, 청년들이 즐겁게 출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는 분 없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겠다. 이것이 진정한 국민 대통합이고, 경제 민주화이고, 국민 행복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박 당선인은 “저에 대한 찬반을 떠나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나가겠다”며 상생과 공생의 정신, 튼튼한 안보와 신뢰 외교 등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잃지 말 것을 당부했다. “국민 한 분 한 분이 새로운 꿈을 그리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나라, 국민과 함께 국민 행복 시대를 열어나가겠습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변화와 개혁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이뤄내겠습니다. 그 길에 국민 여러분이 늘 함께해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의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박근혜 당선인이 걸어온 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34년 만에 청와대로 돌아간다. 박 당선인은 1979년 11월 21일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9일장을 치른 뒤 두 동생 근령, 지만과 함께 쓸쓸히 청와대를 떠났다. 그녀가 오는 2월 25일 국민의 환호 속에 18대 대통령으로 다시 청와대에 입성한다. 한때 교수를 꿈꾸던 대통령의 딸이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녀가 걸어온 삶의 궤적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부모를 모두 흉탄에 잃었고, 자신도 목숨을 잃을 뻔한 테러를 당했다. 야당 대표를 지냈지만 대선 경선에서 패배한 뒤 비주류의 설움도 톡톡히 겪었다. 박근혜 당선인의 운명은 참으로 얄궂었다.

1952년 대구 출생
1974년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19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 피격
1974~1979년 퍼스트레이디 대행
1974~1980년 걸스카우트 명예총재
1982~1992년 육영재단·영남대 재단 이사장
1994~2005년 정수장학회 이사장
1997년 한나라당 입당
1998년 제15대 국회의원(대구 달성 보궐선거)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대구 달성)
2002~2002년 한국미래연합 대표운영위원
2004~2006년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대구 달성)
2007년 제17대 대선 경선 패배
2011년 비상대책위원장
2012년 제19대 총선 비례대표 당선, 제18대 대통령 당선

‘골목대장’이었던 대통령의 장녀
박 당선인은 1952년 2월 2일 대구시 삼덕동에서 박정희와 육영수 사이의 첫째 딸로 태어났다. 1958년 장충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성심여중, 성심여고에 진학했다. 그녀는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모래주머니놀이,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세 종목을 두루 잘하면 동네 골목대장으로 등극할 수 있었는데, 나는 골목대장이 되기에 충분했다”고 했을 만큼 활달한 유년기를 보냈다. 박 당선인은 1970년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는데, 이는 “산업 역군이 돼 나라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에 따른 것이다. 1972년 ‘10월 유신’으로 대학가는 ‘반유신 독재 타도’를 외치는 시위가 연일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박 당선인은 당시에 대해 “점점 학과 공부에 매달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라고 말했다.

22세의 퍼스트레이디 시절
대학 졸업 후 박 당선인은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어머니 육 여사가 1974년 8·15 경축 행사에서 저격당해 숨졌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급하게 귀국한 그녀는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던 그때의 심경을 “심장이 잘려나가는 듯한 고통에 몸서리쳤다”고 적었다. 이후 박 당선인은 5년간 퍼스트레이디로서 각종 행사를 주관하며 국정에 참여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과는 조간신문을 놓고 시사토론을 벌였을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이는 박 당선인이 세계를 보는 안목을 키우는 시기였다.

퍼스트레이디 당시 유명한 일화는 1979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부부의 방한 때다. 박 전 대통령과 카터 전 대통령은 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와 한국 인권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여 회담 분위기가 안 좋았는데, 이때 박 당선인이 카터의 부인 로잘린 여사와 따로 만나 북한의 위협과 한국의 특수성을 설명했다. 이후 로잘린은 카터 전 대통령을 설득했고,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1979년 10월 27일 새벽, 박 당선인은 또 한 번의 비극을 맞는다. 어머니를 잃은 지 5년 만에 아버지도 서거한 것이다. 피습당한 아버지의 유고 소식을 들은 그녀의 첫마디가 “전방에는 이상이 없습니까?”였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일화다. 당시 27세였다.

정치 입문 이후 선거의 여왕이 되기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추모 사업을 지속하던 박 당선인은 1980년 영남대 이사장직과 함께 어머니가 남긴 육영재단 이사장직도 맡았다. 그 후 육영재단 운영을 그만둔 뒤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기와 독서, 시 쓰기, 단전호흡, 불교 경전 읽기 등을 통해 심신을 단련했다. 30대 후반에는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녀는 40대 이후에도 조용히 살아가며 종종 정치에 나설 것을 제안받았지만 단호히 거절했다. 하지만 1997년에 발생한 IMF는 그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녀는 자서전에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이처럼 어이없이 무너지나 하는 절박한 마음이 들었다”며 “나라가 이렇게 흔들리는데, 혼자 편하게 살면 훗날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회고했다. 이때의 충격으로 그녀는 ‘정치인 박근혜’로서의 길을 선택한다. 1997년 12월 10일, 제15대 대통령선거를 8일 앞두고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지지 선언을 하면서 박 당선인은 본격적인 정치 인생을 시작한다.

1998년 4월, 재·보선에서 대구 달성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된 박 당선인은 한나라당 부총재로서 2002년 제16대 대선을 앞두고 ‘당권과 대권의 분리’와 ‘국민 참여 경선’을 요구했다.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탈당,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기도 했다. 그해 5월엔 북한 평양을 방문해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박 당선인은 2002년 대선에서 지지율이 1% 안팎으로 곤두박질치자, 대선 한 달을 앞두고 다시 한나라당에 들어갔다. 대선에 패배한 한나라당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 하지만 당시 당대표였던 박 당선인은 대선 불법자금 ‘차떼기’와 탄핵 역풍으로 여의도 당사를 두고 영등포 ‘천막 당사’ 생활을 자처했다. 이로 인해 그해 “50석도 얻기 힘들다”던 17대 총선에서 1백21석을 얻어내며 위기를 극복했다.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는 신촌 유세에서 면도칼 테러를 당하는 위험천만한 순간을 맞기도 했다. 수술에서 깨어나자마자 “대전은요?”(병석에 누워서도 선거를 걱정하는 외마디)라고 말한 것도 박 당선인의 ‘공적 마인드’를 보여주는 일화다.

세 번의 대선 도전, 그 열매를 맺다
두 번째 대선 도전인 2007년에는 한나라당 경선에서 ‘경제 살리기’를 내세운 이명박 당시 후보에게 당심(黨心)에서는 이겼지만 민심(民心)에서 패배해 결국 고배를 마셨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여당 내 야당’으로 때로는 조용히, 때로는 쓴소리를 쏟아내며 이명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기도 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박 학살’ 공천이 자행되자, 박 당선인은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배신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특히 세종시 수정안을 두고 지난 2009~2010년에 두 계파는 격돌했다.

이후 2011년 10·26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 다시 한나라당이 존폐 위기에 몰리자 그해 12월에 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 당을 전면 쇄신했다. 당명과 로고, 정강정책까지 ‘중도 보수’를 타깃으로 전환했고, 이런 쇄신책을 통해 지난해 4·11 총선에서 제1당으로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박 당선인은 지난해 8월 20일 전당대회에서 84%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제18대 대통령선거 새누리당 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이후 그는 각종 여론 조사에서 소위 ‘안철수 효과’ 등으로 야당 후보에게 1위 자리를 내주기도 했지만, 문재인 후보로 야권이 단일화된 이후엔 줄곧 1위 자리를 지켜왔다. 선거 막판에는 여러 가지 변수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마침내 국민들의 선택을 받으며 제18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첫 여성 대통령, 첫 과반 대통령, 첫 부녀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는 ‘처음’이란 수식어가 가득하다. 온통 전례 없는 일로 그의 탄생 자체가 대한민국의 ‘새 역사’이다. 그만큼 박 당선인에게 거는 국민의 기대도 크다. 정치에 대한 큰 실망과 좌절을 경험한 국민에게 이제 여성 대통령 박근혜가 보여줄 새로운 정치는 또 어떤 모습일까. 분열과 갈등을 극복해내야 하는 중요한 시기, 그녀가 선거 기간 내내 강조한 정치 쇄신과 국민 통합으로 진정한 국민 행복의 길이 열리길 기대해본다.

청와대 인테리어·의전·경호…
독신 여성 대통령 탄생으로 인한 변화 5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당선인은 최초의 독신 대통령이기도 하다. 이에 각종 행사의 의전 및 청와대 일부 조직의 변화가 예상된다.

1 청와대 제2부속실 폐지 검토 : 박 당선인은 독신 여성이기 때문에 ‘퍼스트레이디’도 없고 ‘퍼스트젠틀맨’도 없다. 그러다 보니 영부인을 담당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은 아예 없어지거나 기능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본관 1층에 자리한 영부인 집무실도 텅 빌 가능성이 커졌다.
2 여성 보좌진 확대 가능성 : 박 당선인이 청와대에 입성한 뒤에는 여성 보좌진이 더 늘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박 당선인의 첫 공식 행보를 수행한 청와대 경호단도 여성의 숫자가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당선인은 앞서 대선 후보 시절에도 덩치 큰 남성 경호원들은 시민들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여경 특공대 출신 여성 경호원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안전을 책임지도록 했다. 앞으로 18대 대통령 경호실에는 절반 이상이 여성으로 채워질 가능성도 있다.
3 한층 강화된 경호 : 청와대 경호처는 당선인 본인은 물론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의 경호를 담당한다. 그뿐만 아니라 경호처에서 운영하는 방탄 차량도 제공받는다. 박근혜 당선인의 경우 경호 대상은 본인뿐이므로, 그에게만 경호가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박 당선인의 주위에는 근접 경호 요원은 물론, 폭발물 검측 요원·통신 지원 요원·보안 관리 요원·의료 지원 요원·음식물 검식 요원 등이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4 청와대 내부 정비 : 청와대 내부 구조를 박 당선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정비할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의 살림 공간을 독신 여성에 걸맞게 정비하고, 여성 보좌진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청와대 내 여자 화장실을 더 늘릴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5 당선인의 ‘짝’ : 독신인 박 당선인으로 인해 국빈 접대 등 공식 행사나 해외 순방 등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반드시 배우자가 동반하는 행사가 있을 때는 박 당선인이 누구를 동반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근혜 시대 달라지는 여성·보육·교육 정책들

1 교육
●참고서가 필요 없는 ‘교과서 완결 학습’ 체제 구축 : 학습자가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교과서 개발, 초·중·고에 질 높은 교과서의 무상 공급이 가능하도록 교과서 관련 예산 대폭 확대.
●인성 교육 우선 수업 강화 : 공동체 정신과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협력 학습 확대.
●초등학교를 온종일 돌봄 학교로 운영 : 희망하는 초등학생을 학교가 오후 5시까지 책임지고 돌보는, 초등학교 ‘온종일 돌봄 학교’ 도입 추진. 다양한 예체능 프로그램, 놀이·체험 활동 등을 무료로 운영(급식 및 방과 후 프로그램 무료 제공), 오후 5시 이후에도 추가적인 돌봄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위해 밤 10시까지 연장 운영.
●중학교 과정 중 한 학기의 필기시험을 없애고 ‘자유학기제’ 운영 : 진로 탐색의 기회로 꿈과 ‘끼’를 살려주는 교육 체제 구축.
●초등학교에 ‘체육 전담교사 확보’, 중·고등학교엔 ‘1인 1스포츠’ 도입.
●고등학교 무상교육 실시 : 고교 무상교육을 단계적으로 실시해 수업료, 입학금, 학교운영지원비, 교과서 대금을 무상 지원.
●사교육비 경감 정책 추진 :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의 학교별 다양화를 추진하고, 초등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은 무상화하며, 수시는 학생부 또는 논술 위주, 정시는 수능 위주로 대입제도의 단순화 추진.
●2014년까지 반값 등록금 실현.
●선행학습 금지법 시행 : ‘공교육 정상화 촉진법’을 제정해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시험을 금지하고, 공교육 정상화.

2 출산 보육·육아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 추진 : 맘 편히 아이를 낳고 키우는 세상을 위해 임신 초기 12주일 이내, 말기 36주일 이후에는 1일 8시간을 6시간으로 단축 의무화, 단축한 시간에 대해 임금 삭감 금지.
●‘아빠의 달’ 도입 : 아빠가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월 통상임금의 100%를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원. 현재 육아휴직 급여는 월 통상 임금의 40%를 지급하고 있는 실정.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 확대 : 취약 지역에 국공립 보육시설을 매년 50개씩 신축, 매년 1백 개씩 기존 운영 시설을 국공립으로 전환.
●부모 선택권이 보장된 맞춤형 보육 서비스 제공 : 획일적인 아이 돌봄 서비스를 기본형(현행 아이돌보미 파견), 종합형(기본형+가사 서비스), 보육교사 파견형 등 수요자 맞춤형 보육 서비스로 다양화.
●영아 종일제 돌봄 서비스 확대 : 만 2세(현행 만 0세)로 확대하되 취업모(맞벌이 포함), 다자녀, 장애 부모로 한정하고, 시간제 돌봄 서비스는 시설 이용과 시설 미이용 및 미취업모 자녀 등으로 나누어 차등 지원.
●육아휴직 사용 확대 : 초등학교 3학년(현행 만 6세 이하)까지 1년 이내 육아휴직 사용 가능하도록 확대.
●노산 등 고위험 임산부의 진료비 지원, 고위험 분만 통합치료센터 설립.
●저소득층 아이에게 분유와 기저귀 무상 제공, 노산 임산부에게 경비 지원.
●다자녀 가구 지원도 대폭 확대 : 셋째 아이부터는 대학 등록금을 전액 지원, 민영주택의 다자녀 특별 공급을 현재 5%에서 10%로 지원 확대.
●한 부모 가정 자녀 양육 지원금 인상 : 현재 월 5만원에서 15만원으로 3배 인상.
●이혼 가정의 양육비 이행 기관 신설 :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이혼 가정의 어려움을 해결.

3 여성
●여성 인재 10만 양성 프로젝트 추진 : ‘여성 인재 아카데미’를 설립해 공공·민간 부문의 여성 리더를 집중 육성, 2017년까지 10만 명의 여성 인재 양성.
●재취업을 원하는 여성을 위한 직업훈련과 직장 알선 강화 : ‘새로 일하기 센터’를 매년 30개씩 확대, 여성 훈련 과정 예산을 두 배로 늘려 다양한 직업훈련과 직장 매칭을 통해 맞춤형 일자리를 찾을 계획.
●경력 단절 여성의 숙련 수준에 맞는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 제공 확대.
●돌봄 서비스 종사자 처우 개선 : 돌봄 서비스의 유형 및 임금체계의 표준화 등을 통해 체계적 관리 시스템을 구축, 돌봄 서비스 수요자에 대해 실질적 표준안 제공.
●적극적 고용제도 정착을 통한 여성 고용 확대 : 여성 근로자의 고용 기준 미달 범위 확대를 통해 적극적 고용 개선 조치 강화(현행 여성 고용률 60%에서 70%로 확대).

4 의료 보건
●4대 중증 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 부담 : 4대 중증 질환(암,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 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해 총 진료비(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를 모두 포함)를 건강보험으로 급여 추진.
●저소득층 및 중산층의 환자 본인 부담 의료비 경감 : 소득 수준에 따라 50만원부터 5백만원까지 50만원 단위로 세분화해 상한금액 설정.
●실직자의 건강보험료 부담 완화 : 현행 보험료 경감 방식을 유지하되, 임의 계속가입 기간을 2년으로 연장 추진.
●어르신 임플란트 진료비 경감 : 65세 이상 어르신 중 임플란트가 필요한 대상자를 기준으로 가장 필요한 부위인 어금니부터 건강보험을 적용, 단계적으로 재원을 고려해 부위별 확대 적용.
●신체장애, 치매 환자를 노인 장기요양보험 대상에 포함.
●저소득층에 대한 보호 기능 강화 및 필수 의료 중심의 보장성 강화.

CREDIT INFO

츼재
정은혜 기자
사진
이호영<일요신문>, 박근혜 당선인 측 제공
2013년 01월호

2013년 01월호

츼재
정은혜 기자
사진
이호영<일요신문>, 박근혜 당선인 측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