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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최고의 캐릭터

On November 11, 2011 0

조인성보다 좀 덜 잘생기고 유재석보다 좀 덜 웃겨도, 나에게 최고인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각 잡지사의 피처 에디터들에게 그들이 꼽는 최고의 드라마 캐릭터를 물었다.


<네 멋대로 해라>고복수
월드컵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지난 2002년 여름, 드라마 한 편이 조용히 시작됐다. 몇 번이나 예고편을 봤지만 귀를 사로잡는 음악 외에 인상적인 건 없었다. 볼 마음이 없었다. 더욱이 (조인성이 아니라) 양동근이 주인공이었고, (재벌 3세가 아니라) 소매치기 얘기라서. 하지만 이 드라마가 영화 <여고괴담>과 드라마 <해바라기>를 쓴 인정옥 작가의 작품이라기에 살짝 솔깃했고, 다른 채널에선 딱히 볼 게 없어서 눈길을 두었다. 그렇게 보기 시작한 이 드라마의 1회가 끝났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순전히 양동근이 연기한 ‘고복수’ 때문이었다. 소매치기 2범, 출소하자마자 뇌종양 진단을 받은 남자. 누가 봐도 ‘세상의 떨거지’로밖에 보이지 않던 그가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인생에 무슨 굴곡이 저리 많을까 싶을 정도로 일이 터졌지만, 그는 쉽게 화를 내지 않았다. 세상에 버려진 것처럼 살아온 그이지만, 그는 세상을, 한 여자를 제대로 사랑할 줄 알았다. 복수의 삶이 새드엔딩을 맞을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았기 때문에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복수가 아버지(신구 분)와 밥을 먹는 신만 봐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렇게 복수는 마음속에 콱 박혔다. 드라마가 끝난 지 이미 10년이 지났고, 그 이후로 드라마 수십 편을 봤지만 고복수만큼 마음에 콱 박힌 캐릭터는 없었다. 그래서 난 여전히 늦여름엔, 울 준비를 하고 <네 멋대로 해라>를 본다. “아직도 난 세상의 떨거지입니다”라고 읊조리며 슬프게 웃는 복수가 그리워서다.
조윤미(<나일론> 피처 에디터)

<느낌>한준
<느낌>은 국내 드라마의 3대 요소인 ‘출생의 비밀’을 소재로 한 청춘 드라마다. 방영 당시, 드라마 OST를 부른 최고의 인기 듀오 ‘더 블루’의 김민종과 손지창을 비롯해서 소피 마르소 뺨치는 청순미를 보여준 우희진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이들 못지않게 주목을 받은 이정재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다. 전형적인 드라마 주인공 이름을 가진 삼형제 한빈(손지창 분), 한현(김민종 분), 한준(이정재 분) 중 막내인 한준은 밝고 저돌적이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그렇기 때문에 상처도 가장 많이 받지만 적어도 빈처럼 우유부단하거나 현처럼 사랑 앞에서 비겁하지 않다. 장난스럽게 “형들, 밥 좀 먹읍시다”, “텔레비전 좀 봅시다” 등 ‘~합시다’ 하는 특유의 말투로 까불거리면서 휴 그랜트도 울고 갈 눈웃음을 치다가도, 김유리(우희진 분) 앞에만 서면 결국 슬픈 눈이 돼버리는 한준을 보고 있으면 텔레비전 속으로 들어가 보듬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술에 살짝 취해서 자신에게 팔짱을 끼는 유리를 벅찬 얼굴로 바라보며 “분위기 좋은데? 시간이 영원히 멈추면 좋겠다”라는 느끼한 대사를 전혀 느끼하지 않게 할 수 있는 건 한준이라서 가능했다.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앳된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지금 보면 좀 어색할지 몰라도 <느낌>의 한준에게선 소년에서 청년이 되는 스물두 살 남자의 꾸밈없고 건강한 매력과 가슴 저릿한 청춘을 볼 수 있다. 얼마 전 이 드라마를 다시 보며, 내가 늘 이상형이라고 노래를 부르던 이정재는 까불거리고, 진지하고, 솔직한 ‘한준’으로서의 이정재라는 걸 절감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이정재는 웃는 얼굴 빼고는 아직도 내게 어색하고 생경하다.
이상희(<나일론> 어시스턴트 피처 에디터)

<순풍산부인과>박영규
“야, 영규야” 하면 별 이유 없이 웃음이 터졌다. “아, 장인어른 왜 그러세요”는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개인기였다. ‘영규’는 ‘찌질한’ 가장이었다. 현실에도 ‘찌질한’ 가장은 많았지만, 그들은 권위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었다. 자신의 초라함을 인정하지 않았다. 힘 없는 자신이 온전히 설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어서. 그들은 ‘찌질’해서 우울했고 권위 때문에 외로웠다. 자식들의 친구도 될 수 없었고 듬직한 남편도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영규’는 찌질함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물론 그에게도 어떤 자의식이 있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중요한 걸 알았다. 어떤 상황이라도 우선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 아내에게 기대어 아이처럼 울고 돈 만원을 받아내기 위해 장인어른과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아빠면서, 엄마의 남편인, 가장 역시 보통 사람이란 사실을 막연히 체득했다. 지금 돌아보면 현실에서 아버지들의 권위는 많이 허물어졌다. 누군가는 그것 때문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하지만 세상에 찌질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수천억원을 가진 재산가도 삶의 어떤 부분에선, 어이없이 나약하다(밤마다 침대 위에서 고개를 숙일 수도 있다). 역설적이게도 가장은 가장이기 때문에 가족에게 외면을 받았으며, 자의든 타의든 권위를 내려놓은 가장은 행복해졌다. 그들에겐 가족이 있다. ‘IMF’라는 암흑기에 사실적이고 원초적인 가장 ‘영규’가 있었다. 그가 연 지평 위에 우리 모두 발을 딛고 있다. 그런데 이런 거 다 집어치우더라도, 웃겼잖아. ‘영규’가 나와서 방귀 뿡뿡 낄 때마다 웃었잖아. 아냐? 그렇게 웃긴 아빠 또 봤어?
이우성(<아레나> 피처 에디터)

<연애시대>유은호
트레이닝 바지에 후드 티, 커트 느낌의 단발이 잘 어울리는 여자. 매일 아침 자전거로 출근한다. 직업은 피트니스 센터의 트레이너. 철없는 백수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으며 한 번의 이혼 경력이 있다. 딱히 취미도, 별다른 꿈도 없다. 간간이 작업을 걸어오는 남자들이 있지만 헤어진 지 2년이나 된 철없고 무심한 전남편과 쓸데없는 밀당으로 세월을 보내는 중이다. 이런 게 로맨스 드라마 여주인공의 스펙이라니. 그런데 이 초라한 헤로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밀당 중인 옛 연인이 있든, 수년째 혼자인 모태 솔로든 누구라도 깊이 몰입해서 그녀와 같은 심정으로 극 중 인생을 살게 했다. 물론 비결은 잔잔하면서도 여운을 남기는 스토리 전개와 그에 걸맞은 음악, 가슴 저린 구절을 읊는 내레이션 효과, 많은 것을 들 수 있겠지만 가장 크게는 이 드라마의 모티브가 된 월하노인 설화 탓이 아닐까 싶다. 모든 사람의 새끼손가락에는 보이지 않는 붉은 실이 묶여 있다는. 그리고 그것이 진리인 듯 헤어져도 헤어져도, 헤어지지 못하고 잊지 못하는 이 순정의 여인. 그러니 장면 장면을 보면서 ‘나랑 똑같다’며 울고 웃고 공감하며 동일시하고 만다. 심지어 이 꾸밈없이 털털한 여주인공의 외모까지 닮았다고 착각하면서(그녀는 다름 아닌 손예진인데도). 종종, 어쩌면 이 세상에 정말 유은호라는 사람이 또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6년 동안 매일 밤 <연애시대>를 보면 이렇게 된다.
김혜미(<코스모폴리탄> 피처 에디터)

<카이스트>이민재
대부분의 일요일 저녁엔 몸이 배배 꼬인다. 학교나 회사에 가야 하는 월요일이 코앞에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데1999년의 일요일은 달랐다. 밤에 방영한 드라마 <카이스트> 덕분에 빨리 해가 지기만을 기다렸다. 얼마나 좋아했는지 비디오테이프에 녹화까지 하면서 봤다. 카이스트 공학도의 생활과 고민을 <학교>보다는 학술적으로, <남자 셋 여자 셋>보다는 현실적으로 다룬 송지나 작가의 이 작품은 대중적으로 꽤 인기를 얻었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는 카이스트 전산과 학부생이자, 로봇축구 동아리 ‘미스터’의 회장을 맡고 있는 이민재(이민우 분)였다. 천재나 괴짜뿐인 카이스트에서 보통 사람의 대표 캐릭터를 맡아 그의 역할이 더욱 튀어 보였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성격이라서 친구들에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도와주는 장면이나 잡동사니가 가득 든 민경진(강성연 분)의 가방을 슬쩍 빼서 대신 들어주는 장면에서 반한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모습,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치졸함을 바닥까지 드러내는 게 이민재의 진짜 매력이다. 후배들을 못 믿어서 하루에 열댓 번씩 전화를 해 잔소리를 하거나, 아이큐 150인 단짝 친구 김정태(김정현 분)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모습, 정만수(정성화) 때문에 대학원 시험에 불참하게 되자 그를 붙잡고 교수님에게 해명하라고 말하는 모습은 몇 번을 돌려봐도 마음을 잡아끈다. 이보다 인간적인 캐릭터를 본 적이 있는가? 이 기회에 매번 친구들에게 당하고, 손톱만 한 문제에도 성실하게 고민해줘 드라마 내용을 이끌어준 이민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김윤정(<더 트래블러> 피처 에디터)

assistant editor LEE SANG HEE
일러스트 KIM YE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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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ANG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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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YE SHIN

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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