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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MAL, RUSSIA

On January 17, 2018 0

순백의 눈이 사방을 메우고 끝도 없이 계속되는 곳. 스마트폰 알림 소리에 지쳐 잠시나마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싶어 러시아로 여행을 떠났다. 러시아는 지금 청춘 여행자의 새로운 로망이 되고 있다.

혼자 있는 순간의 완벽함, 시베리아행 열차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배경으로 세계에서 가장 긴 열차를 타는 기분은 어떨까? 스마트폰 중독자인 내가 와이파이 서비스가 되지 않는 지역을 간다면? 그렇게 혼자 떠나기로 결심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부터 모스크바까지. 확인을 요구하는 무수한 이메일이 끔찍이 싫어졌기도 했고. 결론부터 말하면, 이 여행은 29년 인생 중 최고의 순간을 기록하게 했다. 그래서 말이다. 잡다한 집안일부터 직장 일까지 말끔히 처리한 뒤, 온전히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면?

지금 당장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라! 열차 안에서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여유를 부려도 괜찮고, 말없이 차창 밖을 보기만 해도 환희에 젖으며, 활짝 웃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생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똑같다. 스크린 속에서 혹은 SNS에서 보던 아름다운 풍경과 정말 똑같아 컵라면을 먹어도 낭만이 터진다. 한 폭의 풍경화 같은 설원을 배경으로 열차가 계속 달린다. 꼬박 6박 7일, 1백56시간, 9334km, 크고 작은 도시 90여 곳과 강 16개를 지난다. 생각보다 춥지도 않고 게다가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 티켓 값만 공유하면,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 편도 티켓 15만원, 시베리아 횡단 열차 4인실 티켓 45만원, 모스크바에서 한국행 편도 35만원으로 10박 11일을 다녀왔다(3개월 전 예약 기준, 시베리아 횡단 열차 2개월 전 예매).

그 외 비용은 쓰기 나름이지만, 숙박은 열차 안에서 해결하니 공짜고, 4인실은 1회 무료 조식 포함이라 한 끼 비용을 아낄 수 있다. 한국에서 컵라면을 3~4개 챙겨 가면 더 좋다. 지금 당장 ‘스마트폰 서비스 안 됨’이 뜨는 시베리아행 티켓을 내밀고 떠나자. 미지의 운명 속에 두려움을 안고 1분 1초를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서만 시간을 쓸 수 있는 날은 살면서 없을지도 모른다.

- 프리랜스 에디터 최보경

3 / 10
눈이 쌓이기 시작한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시작점, 블라디보스토크 역.

눈이 쌓이기 시작한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시작점, 블라디보스토크 역.

  • 눈이 쌓이기 시작한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시작점, 블라디보스토크 역.눈이 쌓이기 시작한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시작점, 블라디보스토크 역.
  • 1회 무료 제공되는 열차 안의 조식.1회 무료 제공되는 열차 안의 조식.
  • 기념품으로 사오기 좋은 열차 전용 컵(3천7백50루블).기념품으로 사오기 좋은 열차 전용 컵(3천7백50루블).
  • 테트리스 성당으로 유명한 모스크바 상트바실리 성당.테트리스 성당으로 유명한 모스크바 상트바실리 성당.
  • 시골역 같은 블라디보스토크 역 내부.시골역 같은 블라디보스토크 역 내부.
  •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의 130지구 초입에 자리한 서점.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의 130지구 초입에 자리한 서점.
  • 시베리아 횡단 열차 001호.시베리아 횡단 열차 001호.
  • 영하 24℃를 견디게 해준 이르쿠츠크의 카페 카스트로.영하 24℃를 견디게 해준 이르쿠츠크의 카페 카스트로.



고요한 항구 도시, 블라디보스토크

일종의 오기였다. 평소 여행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어디론가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마음속 단단히 자리 잡았다. 결연한 의지와 달리 통장 잔고는 넉넉지 않았고, 목적지로 삼은 건 결국 일본, 홍콩 언저리쯤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어때? 지인이 다녀왔는데 괜찮다더라고.” 그러잖아도 추운 날씨에 러시아라니. 생각지도 못했지만 흥미로운 구석이 있었다. ‘물가가 저렴한 데다 즉흥적인 여행이라면 이 정도는 가야 한다’는 친구의 말에 또 한번 오기가 발동했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블라디보스토크행을 결심한 뒤, 극강의 추위를 경험할 기회는 일상을 버틸 초연한 명분이 되었다. 대부분의 이들은 걱정의 한마디를 건넸다.

그러나 여아일언중천금. 친구와 나는 기어코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도착했다. 저녁쯤 마주한 낯선 도시의 풍경은 서울과 별다르지 않았다. 다만 조금 이른 고요함이 찾아와 사방이 정적에 휩싸인 듯했다. 곳곳에 녹아든 세월의 흔적이 웅장하면서도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일단 고픈 배부터 채우자며 반드시 맛봐야 한다는 킹크랩 메뉴를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그러고 나선 간단한 간식거리와 맥주를 사러 마트를 찾았다. 왜인지 주류 코너의 전등은 모두 꺼져 있었고, 직원의 설명과 몸짓을 유추해 ‘밤 10시 이후로는 주류를 구매할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행히 바, 펍 등의 가게에는 해당하지 않아 바로 옆 ‘문 바(Moon Bar)’라는 이름의 한 공간으로 아쉬움을 달래러 갔다. 첫날 밤, 간판 위 그려진 커다란 달처럼 우리는 몇 시간 동안 깊고 환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로부터 이틀간, 블라디보스토크에는 거대한 폭설이 예고돼 있었다. 밖으로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조금씩 눈이 내렸고, 그 기세는 점점 더해져 앞조차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새하얗게 펼쳐진 도시를 보며 낭만에 젖은 탓일까. 순백의 열매를 만끽하는 사람들에게서 삶을 향한 의젓함마저 느껴졌다. 도로 위 멈춰 선 차들은 경적 한 번 울리는 일 없이 가만히 차례를 기다렸다. 카페 안 대화를 주고받는 목소리에는 침착함과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다 골목 사이 그려진 독특한 벽화를 발견했다. 그림 속 인물의 표정을 보자 형언할 수 없는 숭고한 ‘자유’가 느껴졌다. 그들만이 지닌 장용한 범위의 ‘수용’을 목격하는 동시에 오기 대신 어떠한 계기를 얻은 순간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금 서울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여전히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나 역시 금세 회색빛을 되찾았다. 하지만 어쩐지 처연한 기분이 드는 날이면, 그곳에서의 사흘을 떠올리고는 한다. 차지만 희고 느린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도시. 생소함보다는 편안함이 감도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말이다.

- <나일론> 피처 에디터 박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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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문 둘째 날과 셋째 날, 평생 처음 보는 엄청난 양의 폭설이 내렸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문 둘째 날과 셋째 날, 평생 처음 보는 엄청난 양의 폭설이 내렸다.

  •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문 둘째 날과 셋째 날, 평생 처음 보는 엄청난 양의 폭설이 내렸다.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문 둘째 날과 셋째 날, 평생 처음 보는 엄청난 양의 폭설이 내렸다.
  • 여행 첫날 도착한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여행 첫날 도착한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 마트 한쪽에 자리한 반찬 제품들.마트 한쪽에 자리한 반찬 제품들.
  • 뷔페 방식으로 자유롭게 메뉴를 고를 수 있는 어느 식당.뷔페 방식으로 자유롭게 메뉴를 고를 수 있는 어느 식당.
  • 뷔페 방식으로 자유롭게 메뉴를 고를 수 있는 어느 식당.뷔페 방식으로 자유롭게 메뉴를 고를 수 있는 어느 식당.
  • 굼 백화점 인근 거리 풍경.굼 백화점 인근 거리 풍경.
  • 러시아 특유의 건축 양식이 눈에 띄는 포크롭스키 성당.러시아 특유의 건축 양식이 눈에 띄는 포크롭스키 성당.
  • 호텔 근처 핫 플레이스로 꼽히는 바 ‘셀피(Selfie)’.호텔 근처 핫 플레이스로 꼽히는 바 ‘셀피(Selfie)’.
  • 달 모양 간판이 인상적인 ‘문 바’의 내부. 옆 테이블 술자리를 즐기던 남녀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달 모양 간판이 인상적인 ‘문 바’의 내부. 옆 테이블 술자리를 즐기던 남녀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순백의 눈이 사방을 메우고 끝도 없이 계속되는 곳. 스마트폰 알림 소리에 지쳐 잠시나마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싶어 러시아로 여행을 떠났다. 러시아는 지금 청춘 여행자의 새로운 로망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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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LEE JI YOUNG

2018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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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LEE JI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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