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재는 자신의 마음을 대변할 단 하나의 단어 대신 길고 아름다운 선을 그려내기로 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의 이 같은 주장은 여러 디자이너 사이에 꾸준히 회자돼왔다. 디자인의 주요 목적이 ‘기능성’임을 증명하는 근거이자 실용적 관점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법한 인과 관계를 지녔기 때문. 그러나 디자이너 김충재가 이 명제를 줄곧 언급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문장 속 논리에 의구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반문해 ‘조금 불편하지만 아름다운’ 형태의 디자인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모든 제품이 뛰어난 실용성을 갖추고 있지는 않잖아요. 기능에 따른 디자인이 아닌, 오히려 형태가 기능을 제안하는 방식을 시도하고 싶었어요.”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를 통해 다름 아닌 ‘잘생긴’ 외모로 주목받는 디자이너.
모델처럼 큰 키와 여느 배우 못지않은 수려한 생김새 덕분에 그는 단 한 차례의 등장만으로도 커다란 이슈를 몰고 왔다. 크게 달라진 일상을 경험하고 있으리라 예상했겠지만, 의외로 작가의 태도는 담담하다. “기안84 형이 먼저 출연을 제안했어요. 이번을 계기로 저와 제 작품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좋을 거라고요. 실제로도 <나 혼자 산다> 출연 이후 긍정적인 변화가 더 많아요.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이런 일들에 대해 유연하게 생각해보려 노력 중이에요.”
<2016 서울디자인페스티벌> <2017 밀라노디자인위크> 등 세계적인 대규모 페어를 비롯해 얼마 전 막을 내린 분더숍과 브랜드 ‘CollagE’의 컬래버레이션 전시 <Outline>
작가의 열린 이념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신당창작아케이드 내 위치한 작업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대학원 졸업 후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했던 그에게 작업 도구 및 시설이 두루 구비된 이곳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여러 작가와의 교류가 가능하다는 점도 편안한 보금자리로서의 역할을 해주었다. 반면 김충재가 공유하는 것은 공간만이 아니다. 그는 곧게 뻗은 직선을 활용해 관객과 소통을 실현하는 연결 고리로 삼는다. “처음에는 막연히 직선으로 이루어진 것들을 좋아했어요. 사용하기는 불편할지 몰라도, 심미적으로 아름다우니까요. 그런데 이런 요소가 기하학이나 건축에도 많이 쓰이잖아요. 제가 지향하고 추구하는 분야와 잘 어울려 내면의 이야기를 전할 좋은 매개체가 되어줄 것 같았죠.”
두 의자를 이어놓은 듯한 ‘커플의자’부터 최근 선보인 삼각형 잔 ‘피라미드’ 등 작품들의 공통 실루엣은 가느다란 직선이다. 그리고 그 끝은 제품을 사용하고 보는 이에게 닿아 작가의 말을 고스란히 전한다. “언젠가 어떤 분이 제 작품을 보고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이걸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라고요. 말하자면 그냥 하는 거예요. 입 밖으로 꺼내고 싶은 말들이 참 많은데, 이걸 직설적인 단어로 전하기보다는 어떠한 결과물에 담아내고자 해서요. 각자의 시각에 따라 모두 다르게 해석하고, 저마다의 상황을 투영해볼 수 있도록 말이에요.”
김충재는 자신의 마음을 대변할 단 하나의 단어 대신 길고 아름다운 선을 그려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