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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을 느끼지만 욕망이 채워진 듯한 느낌

GUILTY BUT PLEASURE

On July 21, 201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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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달갑지 않은 건 새벽의 단잠을 깨우는 모기 때문만이 아니다. 애초 여름 앞에 ‘노출의 계절’이라는 수식어는 누가 붙이기 시작한 걸까? 언어의 힘은 대단해 별일 없이 봄을 보내고도 여름이 되면 다이어트의 압박에 시달린다. 매년 그런 것처럼.

‘여름밤’과 ‘치맥’은 이음동의어다. 그 유혹을 어찌 떨칠 텐가. 그건 성자에게나 허락된 일이다. 사실 갈증을 달래는 건 두 모금이면 충분하다. 남은 맥주는 치킨과 페어링. 갈증이 먼저였는지, 치맥욕이 먼저였는지는 이미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갓 튀긴 바삭한 닭 껍질만큼 여름밤에 잘 어울리는 음식은 없다는 사실뿐. 그리고 이 적나라하고 만족스럽지만 죄책감이 느껴지는 현장을 찍어 SNS에 올린다. 첫 태그는 #길티플레저, 두 번째 태그는 #다이어트내일부터.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의 사전적 의미는 ‘죄의식을 동반하지만, 했을 때 즐거운 일’로, 죄책감을 느끼거나 남한테 이야기하기 부끄럽지만 막상 하고 나면 즐거운, 쾌락을 느끼는, 비로소 욕구와 욕망이 채워진 듯한 느낌이 드는 무언가를 말한다. 우리는 저마다의 길티 플레저를 갖고 있다. 그게 치맥이든, 무절제한 홈쇼핑이든, 게임 OST 듣기든 말이다.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 차마 입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은밀하고 사적이면서 짜릿한 이야기. 이달 〈나일론〉 피처팀에서 준비한 나일로니아 28명의 길티 플레저와 함께 욕망의 여름밤을 보내시기를.

 

GUILTY SURVEY
나일로니아 24명의 '길티 플레저 서베이'를 통해 타인의 쾌락을 합법적으로 관음하시라.

서로 연인이 있으면서도 친구인 이성과 섹스
죄책감이 들지만 어떤 끌림에 의해 일을 저질렀을 때. 물론 공개 불가. 인간관계가 파괴될까 우려돼서다.
26세, 남, 노동자

주말 밤에 배달 음식 시켜서 영화 보기
밥을 먹고 들어와서 배가 부른데도 ‘나만의 행복한 주말 밤 의식’을 위해 습관처럼 음식을 시킨다. 배달 서비스 앱 ‘배달의 민족’ VIP 회원. 통장 잔고가 없을 때는 폰 결제를 해서라도 주문한다. 나의 길티 플레저는 철저히 비밀. 이미 저녁 먹은 걸 뻔히 아는 친구나 가족이 알면 돈 낭비에 살찐다고 잔소리할 테니까.
26세, 여, 패션 마케터

한 가지 종류의 배달 음식을 브랜드별로 주문하기
치킨이 먹고 싶은 날에는 모든 브랜드의 치킨을 주문한다. 1일 3개 브랜드 정도. 배달 앱 레벨이 만랩에 이르면서 이게 나의 길티 플레저임을 깨달았다.
29세, 남, 뉴스 편집 기자

<프로듀스 101 시즌 2> 본방 사수, 내려받아 보고, 투표하고, 짤 줍는 것
친구들에게 <프로듀스 101> 얘기를 꺼낸 순간 느낀 따가운 눈빛에 이제는 어디 가서 함부로 <프로듀스 101>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나의 성 정체성에 오해를 사고 싶지 않다. 나는 스트레이트인 <프로듀스 101> 시청자다.
27세, 남, 국민 프로듀서

블랙 팬츠를 사는 것

같은 브랜드, 같은 모델의 바지가 2개 이상이 되었을 때. 옷장을 열었는데 입을 하의가 블랙 팬츠뿐이라 난감하다. 평균 비용은 팬츠당 10만~30만원. 거리낄 건 없지만 남에게 내 길티 플레저를 말하지는 않는다. 남들이 알고 나면 나의 쾌감이 떨어질 것 같아서.
31세, 남, 스타일리스트

집 화장실 환풍기에 대고 담배 피우기

기본적으로는 집에서 담배 피우는 걸 정말 싫어하지만 종종 샤워하면서 피운다. 이후 뜨거운 물을 30분 정도 틀고 수증기로 화장실을 가득 채운다. 그러면 얼추 담배 냄새가 빠지는데 그런 스릴이 쾌감을 준다. 물론 부모님이 아시면 화를 내시겠지만.
23세, 남, 배우

술 마시고 화장 안 지우고 자기
직업 특성상 피부 관리에 엄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지막 체력을 다해 술을 마시고 귀가하는 새벽녘에는 나만의 룰에서도 자유롭고 싶어 그냥 침대로 직행. 그다음 날부터는 죄책감에 더 열심히 클렌징을 한다. 가끔 이게 뭐 하는 건가 싶다.
23세, 여, 호텔리어

할 일이 있음에도 페스티벌 가기
군 입대가 며칠 뒤라 지인들과의 약속이 한창 많을 때였는데, 다 팽개치고 페스티벌에 갔다. 이후로도 종종.
27세, 남, 학생

홈 쇼핑
주문 후 받은 지 1년이 지나도 박스조차 뜯지 않은 각종 생필품과 주방용품, 화장품 등이 어마무시하게 쌓여 있다. 홈 드라이 세제 1L짜리 5통을 유통 기한 안에 다 쓰려면 주말마다 5회 이상 손빨래를 해야 할 지경.
39세, 여, 에디터

코인 노래방 가기
자취를 시작한 이후 수중에 1천원짜리가 한 장이라도 있으면 나는 이미 코인 노래방 안.
25세, 남, 대학생

카페에서 빨대 2개씩 챙기기
빨대로 음료를 마시는 걸 좋아해 항상 여분의 빨대를 습관처럼 챙긴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카페 알바생이라 밝힌 분이 ‘진상 손님들’에 대해 쓴 걸 봤는데, 거기에 내가 있더라.
22세, 여, 학생

1996년 발매된 PC 게임 <삼국지5>의 ost 음반을 듣는 것
길을 걸을 때 5번 트랙 ‘화룡진군’을 듣고는 하는데, 마치 백만 대군을 이끌고 행진하는 장군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발걸음에 힘이 실린다. 지난해 직장 동료와 같이 탄 차에서 블루투스로 연결된 내 폰을 통해 우연히 ‘화룡진군’이 울려 퍼졌는데, 그 후로 한동안 조용하고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지금은 집에서만 이 음반을 듣는다.
32세, 남, 포토그래퍼

디저트 사치
고객에게는 절약하라고 말하면서 나는 한 조각에 1만원짜리 케이크를 먹을 때.
26세, 남, 컨설턴트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기
남는 시간에는 자기 계발을 하든 문화생활을 하든 시간을 값지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어디 쉽나.
25세, 여, 회사원

아이돌 덕질
아이돌이 나오는 콘서트나 뮤지컬 티켓 대부분은 10만원을 훌쩍 넘는다. 뮤지컬은 두세 번 가기 때문에 30만원 가까이 쓴다. 언젠가 이 얘기를 했을 때 반응이 “헐” “부자네” 식으로 비꼬듯 말하는 걸 들은 후부터 남들에게는 굳이 말하지 않거나 가격을 줄여 말한다.
22세, 여, 학생

폭력적이고 잔인한 영화 감상
엄마가 방 안에 들어와서 “넌 왜 이런 영화를 보니?” 하며 이상한 눈빛으로 물으셨다.
29세, 남, 무직

1990년대 가수들의 유튜브 영상 찾아 보기
신나게 동영상을 찾다가 누가 뭐하냐고 하면 “그냥 이것저것” 혹은 “음악 듣고 있었어”로 돌려 말하는 나 자신을 보며 길티 플레저임을 자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요즘 인스타그램에 1990년대 스타의 촌스러운 노래와 패션을 공유하는 사람이 많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전한다.
33세, 여, 에디터

레진코믹스에서 야한 웹툰 읽기
새로 산 스마트폰에 레진코믹스 앱을 설치하지 않는다. 누가 혹시라도 볼까 봐. 구글로 검색해 접속한다. 친구에게도 말한 적 없다. 난 친구 사이에서 연애도 모르는 순진한 이미지다. 지켜줘야지.
29세, 여, 에디터

의류 숍에서 피팅만 하기
아웃도어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의류와 장비에도 관심이 생겼는데, 고가의 제품은 구매하기 쉽지 않아 입어보는 것으로 대리 만족한다. 매장 직원들 대부분이 친절한 편인데, 구매할 생각이 아예 없이 갈 때면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그럼에도 계속한다.
36세, 여, 창업 준비 중

지나가는 여자 얼평하기
연인과 데이트하던 중 지나가는 여자의 점수를 매겨 말했더니 경멸하는 눈으로 쳐다봤다. ‘아, 입 밖으로 내면 안 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27세, 남, 회사원

휴대전화 소액 결제
한 번에 수십만원을 결제하기도 한다. 무일푼인 상황에 결제일이 다가와 곤란한 적이 종종 있다.
23세, 여, 취업 준비생

옷과 신발을 계속 구입하고 끊임없이 먹는 것
부모님이 옷을 버리라고 잔소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사람이기 때문에 과하게 먹으면 살이 찐다. 그걸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계속 먹는다.
23세, 여, 마케터

바람피우는 것
한때 미친 듯이 사랑을 했고 없으면 죽을 것만 같던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매일 가던 카페 바리스타에게 빠져 바람을 피운 적이 있다. 하지 말아야 하는 걸 알지만 왠지 모를 뿌듯함과 위태로움 사이에서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요즘엔 클럽에 간다.
27세, 남, 에디터

복수
지하철이나 백화점 등에서 무례하게 굴거나 내 진로를 방해하는 자들에게는 실수인 척 가방으로 치거나, 발을 밟는 등의 방법으로 복수한다. 저지른 후 어쩔 줄 몰라하며 미안해하는 척하는 건 기본. 만약 직업적인 관계에서 나에게 갑질을 하거나 손해를 끼치는 자에게는 일정 기간의 ‘쿨타임’을 거친 후 복수한다. 쿨타임이 길수록 상대가 입는 충격은 강하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내가 복수를 즐긴다는 걸 말하지 않는다. 그들도 언젠가 복수의 대상이 될 수도 있으니까.
37세, 남,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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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MY PLEASURE

Credit Info

EDITOR
SIN JEONG WON
일러스트
STUDIO ONSIL
어시스턴트
PARK SO HYUN,PARK SI ON, KIM JI HYUN, KIM SUN HEE

2017년 07월호

이달의 목차
EDITOR
SIN JEONG WON
일러스트
STUDIO ONSIL
어시스턴트
PARK SO HYUN,PARK SI ON, KIM JI HYUN, KIM SUN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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