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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 맥주

On April 07, 2017 0

늦은 여름휴가를 떠났다. 캘리포니아 수제 맥주를 마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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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드디어 아껴둔 여름휴가를 쓸 기회가 왔다. 앞뒤 주말을 끼어서 장장 열흘. 아시아권을 벗어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이날을 기다려왔다는 듯 항공사 마일리지는 딱 미주 구간 이코노미석 왕복을 끊을 수 있는 만큼 모여 있었다.

사실 벼르던 목적지가 있었다. 캘리포니아. 늦가을 바람에 몸서리치며 겨울을 걱정하던 어느 날, 잡지를 뒤적이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맥주를 들이켜고 직립 보행이 힘들 정도로 서핑을 즐기는 사진 속 캘리포니언들을 보고 난 뒤부터였다. 맥주라면 가까이 일본에도 넘쳐나고, 금쪽같은 열흘 휴가를, 사진 한 장에 꽂혀서, 아이슬란드도 아닌 그 ‘흔한’ 미국이 웬말이냐며 친구들이 오지랖을 떨었다. “인생이란 아주 사소한 어떤 걸로 결정되기도 하잖아. 야구 배트에 공이 맞아 날아가는 순간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마음 같은 건 평생 이해 못할 것들 같으니라고!”라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이 지면으로 대신한다.

LA로 들어가 샌프란시스코로 나오는 동선을 짠 건 순전히 그 사이에 산재해 있을 브루어리와 탭룸에 들른다는 심산 때문이었다. 크래프트 비어, 수제 맥주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나라마다 모양새와 사정이 조금씩 다르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수제 맥주에 도전하다>(2013)는 미국 소규모 브루어리 산업의 ‘지역 경제 발전 효과’를 주로 설명한다. 텍사스 주는 와인 소비보다 맥주 소비가 21배 높으며 지역의 소규모 브루어리는 연간 세금 6천만 달러(약 688억원), 직업 9천 개, 급여 2억 달러(약 2300억원)를 창출할 수 있다고. 인터뷰이는 이 숫자는 적게 잡은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텍사스 주만의 일은 아니었다. 미네소타 주의 탭룸 오너는 “일단 문을 열면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했다. “이 맥주를 마시면 특별한 기분이 들 거예요. 주방 너머에 있는 내 이웃이 지금 직접 만들고 있는 맥주니까요. 대량 생산한 맥주에 비할 바가 아니죠.” 지역 레스토랑과 슈퍼마켓에서 지역 맥주를 우선적으로 판매하고 고객이 이를 소비함으로써 수익이 지역에 되돌아가는 선순환을 유도하는 구조. 가보니 정말 그랬다. 샌디에이고의 모든 레스토랑에서는 국내에서도 이미 유명한 발라스트 포인트와 (그보다는 지명도가 덜하지만) 칼 스트라우스를 메인으로 판매했다. 캘리포니아 주이지만 네바다 주와 인접한 팜스프링스에서는 네바다 맥주가 자주 발견됐고, 같은 맥락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킨포크 라이프’의 도시, 포틀랜드가 있는 오레곤 주의 맥주를 마주쳤다.

여행지에서의 밤 시간은 길고도 귀한 법. 저녁을 먹은 뒤에는 밤 10시에 칼같이 문을 닫는 홀푸드마켓으로 달려가기 바빴다. 호텔 주변에 24시간 영업하는 슈퍼마켓도 많았지만 맥주의 종류는 홀푸드마켓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서울이었다면 병당 1만2천원에 마셨을 발라스트 포인트를 4천원대에 사면서 “미쳤네, 미쳤어!”를 남발했다. 뭐라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들뜬 게 분명해 보이는 나에게 현지인은 웃으며 “You like it?”이라 물었다. 보면 모르겠니. 완전 신났잖아. 모닝 맥주로 하루를 시작했고, 물보다 맥주를 많이 마셨으며, 한번 마셔본 맥주는 되도록 자제하며 방탕한 열흘을 보냈다. 그럼에도 마셔보지 못한 게 더 많다. 어쩌겠는가. 다시 차곡차곡 마일리지를 쌓을 수밖에.

늦은 여름휴가를 떠났다. 캘리포니아 수제 맥주를 마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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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SIN JEONG WON

2017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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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 JEONG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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