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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할 것 없는 나라의 팀 버튼

On January 29, 2010 1

팀 버튼의 영화는 곧 개봉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하나같이 기괴하고, 외모는 보다시피 <크리스마스의 악몽> 속 해골 캐릭터만큼이나 음침하다. 하지만 모마(MoMA,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전에 없는 성대한 회고전을 열어준 이 괴짜 감독은 자신은 따뜻한 사람이며 자신의 영화는 늘 긍정적이었다고 말한다.

영화감독으로서 진정한 작가가 되는 것과 블록버스터 제조기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리고 둘 다가 되는 것은 오직 소수의 감독만이 이룩할 수 있는 드문 위업이다. 만약 이 그룹에 속한 검은 왕자가 있다면 그건 (논쟁의 여지없이) 바로 팀 버튼일 것이다. 슬쩍만 봐도 그의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팀 버튼 말이다. 파노라마 같은 오프닝, 화려하고 어딘가 위협적인 미학과 팝아트 컬러들, 핑핑 도는 의인화된 기계들, 그리고 지나치게 큰 두개골과 슬프고 표정이 풍부한 눈을 가진 생명체들을 보라. 버튼은 너무나 철저하게 봉인된 세계를 창조해 우리의 초라한 현실, 그러니까 평범하고 특징 없는 사람들과 유머 감각이 부족하고 편협한 사람들로 가득한 세계는 영화가 시작되는 동시에 극장의 불빛과 함께 사라진다.
버튼의 영화들을 좀 더 폭넓은 관점에서 고찰해본다면 많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코미디, 공포, 기상천외함, 기발함, 인간애, 그리고 연민을 담고 있다. 교활하고 입을 실로 봉한 해골(<크리스마스의 악몽>), 가죽 옷을 입고 손 대신 다루기 힘든 부엌 가위를 달고 있는 미친 과학자의 창조물(<가위손>), 이성의 복장을 즐겨 입는
B급 영화 감독(<에드 우드>), 혹은 살인을 저지르는 노래하는 이발사(<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의 이야기>) 등 버튼 영화의 주인공들은 이해받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이자 기이함에도 불구하고(혹은 그 때문에) 지지받을 가치가 있는 인물들이다. 맨해튼 미드타운에 위치한 모마의 조각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하얀 방에서 하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버튼과 마주 앉아 있다 보면 그가 그런 주인공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늘 그렇듯 헝클어지고 뻣뻣한 새치 머리에 검은 버튼다운 셔츠와 블랙 진을 입고 검은 안경을 끼고 있는 버튼의 모습은, 마치 1985년 무렵 음울한 밴드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의 멤버처럼 보인다. 그는 왠지 이곳과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드로잉, 수채화, 코스튬 디자인, 스토리 보드, 소품, 인형 등 지금까지 팀 버튼의 영화들을 아우르는 이번 행사는 모마가 단 한 명의 영화감독에게 할애한 가장 큰 규모의 전시회일 것이다. 공식 기자 회견장에서 팀 버튼은 2001년에 만든 <혹성탈출>처럼 비평 면에서 실패한 작품에 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은 농담으로 비껴갔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취한 상태에선 절대 영화를 만들지 말라는 것뿐입니다.” 그는 <나일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줄곧 솔직하고 자기 비하적인 상냥함으로 일관해 선글라스를 쓴 채 인터뷰하는 사람 중 세상에서 유일하게 친절해 보였다.

세계 최고의 박물관 중 하나인 모마가 당신을 단순히 영화감독이 아닌 아티스트로 평가하고 있어요. 기분이 어떤가요?
물론 좋아요. 하지만 사실 이상하기도 해요. 이 모든 것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지거든요. 영화를 만들 때, 특히 대형 영화사와 제작할 때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위축되죠. 그런데 이 전시회는 그보다 더 낯설어요. 저는 연설가나 작가가 아니에요. 그래서 일기를 그림으로 그렸어요. 무언가에 대해 말하지 않고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심리적으로 더 편안하게 느껴졌으니까요. 그건 아주 고요하고 사적인 과정이에요. 그런데 이제 그 과정을 모든 사람에게 공개했죠.
처음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느낀 때는 언제였나요?
디즈니사에 들어가서 제가 엉터리 애니메이터라는 걸 깨닫고 나서인 것 같아요. 다행히 그 당시에 디즈니는 묘한 시기를 겪었어요. 그들은 미래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과거에 얽매여 있었죠. 나중에 보니 그 시기가 제겐 도움이 됐어요. 저는 아무것에도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요. 애니메이션을 만든 후 몇 년 동안 그냥 방에 앉아서 그림만 그렸죠. 제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도 없었어요.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림만 그리고 돈을 받았으니까요. 얼마 후 제가 작업하고 있던 프로젝트들 중 어떤 것도 빛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저의 내적인 상태를 탐구하는 데 정말 유익하고 중요한 시기였어요.
당신의 첫 스톱 모션 단편 영화인 <빈센트>를 만들 때 빈센트 프라이스(50년대 공포 영화의 대표 배우)가 직접 내레이션을 했잖아요.
그가 참여한 건 굉장한 일이었어요. 빈센트 프라이스는 제가 자라면서 늘 봐온 사람이니까요. 사람은 접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어요. 그는 아주 괴팍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지만 제가 줄거리를 보내자 친절한 메모를 보내왔고 그 프로젝트에 열정적이었어요. 프라이스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었어요. 덕분에 긍정적인 분위기에서 시작할 수 있었어요. 제 커리어를 시작하는 데 처음부터 축복을 받은 셈이죠. 왜냐하면 빈센트 프라이스의 지원이 <빈센트>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요.

(상단부터)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 <비틀쥬스>(1988). <가위손>(1990).

직접 각본을 쓰진 않았지만 첫 극영화인 <피위의 대모험>은 당신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많은 주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워요.
네, 그 작품이 제 첫 영화라는 점에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 작품에 쉽게 감정 이입이 되었으니까요. 덕분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고요. 그리고 그런 첫 경험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짓게 마련이죠. 그보다 더 완벽한 첫 영화는 상상할 수 없어요. 그것을 만들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할 때 말이죠. 저는 첫 영화로 아카데미상 같은 걸 받은 사람들을 알고 있어요. 저는 그것이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피위의 대모험>은 사랑을 받기도 하고 미움을 받기도 한 영화예요. ‘올해 최악의 영화 리스트’에 오르기도 했고요. 그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저마다 영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흥미롭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제가 균형 잡혀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모든 사람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생각을 하게 됐으니까요.
자신의 영화 중 가장 아끼는 작품이 있다면요?
모든 작품이 조금씩 다 마음에 들어요. <가위손>은 개인적인 영화이기 때문에 중요했고, <크리스마스의 악몽>은 몇 년 동안 작업해온 특별한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그런 초기작은 제게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모든 것을 즐겨요. 감독은 각각의 작품에 빠져들어야 해요.
<가위손>이 개인적인 작품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정말 에드워드(조니 뎁 분)에게 감정 이입이 되었어요. 아시죠? 잃어버린 10대 시절 말이에요. 학창 시절 친구나 데이트 상대가 없던 사람은 그 기억들이 평생 상처가 돼요. 지금은 파티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다 해도, 자신이 괴짜라고 느껴본 경험은 늘 저를 따라다니죠. 최근 어떤 행사장에 갔는데 제게 많은 관심이 쏠리더군요. 그 순간 저는 10대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었어요.


- words : APRIL LONG
- photo : FLORA HANITIJO

[기사 전문은 <나일론> 2010년 2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Credit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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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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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RA HANITIJO

2010년 01월호

이달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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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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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RA HANITIJO

1 Comment

이윤경 2009-09-25

사진 너무 이뻣어요^^

마지막 페이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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