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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서울 카페 8곳

On January 16, 2009 0

지금 서울은 수많은 카페로 서성거린다. 머릿속에 딱 떠오르는, 10년 뒤에도 가고 싶은 카페는 왜 단박에 생각나지 않는 걸까. ‘이상적인 카페’라는 말에 근접한 서울의 카페 8곳에게 물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도로 한복판에서, 그러니까 홍대 주차장 앞에서, 신사동 가로수길 세븐일레븐 앞에서, 명동 중앙우체국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우유부단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 어디 가지?” 마땅한 카페를 찾지 못한 후의 ‘가장 일반적인’ 선택은 그날의 오후를 조급하게 만든다. 뭔가 특별한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은, 유명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에서 잘 안 들리는 친구의 목소리에 소리 질러야 할 때 절정에 다다른다. 서울에 카페는 숨이 턱에 찰 정도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카페들 중에서 우리가 10년 뒤에도 아무렇지 않게 들어서서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은 얼마나 될까? 자연스레 그 커피숍에 들어갔는데 반가운 얼굴을 오랜만에 만날 수 있을까? 좋은 걸 찾으려고 할 때는 정말 싫어하는 것을 리스트로 작성해보면 된다. 카페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1. 맹탕의 커피 맛. 2. 백 번도 더 들은 지겨운 대중음악. 그리고 3시간 앉아 있는 동안 같은 음반을 세 번째로 듣는 것. 3. 혼자 책을 읽고 싶은데 몇 번 왔다고 자꾸 말 거는 주인장. 그리고 그 얘기는 결국 여기 카페만 한 곳이 없다는 자랑. 4.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화장실. 그리고 어김없이 쏟아지는 찬물. 5. 세 번 불러야 가져다주는 무뚝뚝한 서비스. 6. 남자친구와 싸운 얘기까지 들리는 테이블 간 너무 가까운 거리. 7.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은 것도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또 카메라 렌즈 앞에서 “저희 카페에선 사진 찍을 수 없거든요.”라고 굳이 말하는 고집. 8. 내야 할 돈을 머릿속에 굴리고 있어야 할 정도로 비싼 커피 값. 9. 사람을 안절부절 못하게 하는 너무 화려한 인테리어 등등.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도 각자의 기준과 마음은 다 다를 테지만 우선순위 몇 개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반가운 마음이 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광화문의 유명한 카페에 갔을 때다. 갈 데가 없어 추위에 떨며 한참을 기다리다가 안에 자리가 나기에 들어갔다. 아르바이트생에게 이런 말을 들었을 때는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만든다 할지라도 다신 오고 싶지 않았다. “저기, 비켜주셔야 제가 치우거든요?” 커피 값 5천원에 대한 서비스가 어느 정도인진 모르겠지만 그런 타박을 들은 이후로 우리의 대화는 시무룩해졌다. 오늘의 저녁을 또 망치고 말았구나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애써 그 얘기를 안 하려고 했지만 기분이 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홍대의 어느 카페에선 ‘물은 셀프서비스’라는 대답을 들은 황당한 경험도 했다. 2명이서 4인용 자리에서 앉았다가 ‘2명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핀잔을 들은 경험은? 화려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카페에서 아래위로 훑어보는 종업원의 눈총을 받은 경험은? 기분이 상하는 건, 우리가 너무 까다롭기 때문일까?

우리는 까다롭다. 그날의 대화가 2009년 다이어리를 살까 말까 하는 시시껄렁한 내용이더라도 카페 안의 사람들은 음악, 추위, 커피 맛, 서비스, 테이블 사이 간격까지 신경 쓴다. 다시 홍대 주차장에서, 신사동 가로수길 세븐일레븐 앞에서, 명동 중앙우체국 앞에서 옷깃을 세우고 발을 동동 구르더라도 아무 데나 가고 싶지 않은 게 우리의 기억이다. “커피나 한잔 할까?”라는 상식적이고 진부하고 관습적인 이 말에는, 소개팅 한 번에 ‘어렵게 낳은 아들이 서울대 법대 수석하는 스토리’ 정도의 기대가 잔뜩 걸쳐 있다. 따뜻한 곳에서 몸을 녹이면서 좋은 음악에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방해받지 않고 너와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한 기대이므로. 어쩌면 모든 게 너무 빨리 변하는 도시 탓이라고 말하고도 싶다. “괜찮은 카페 발견했어, 거기 가자.”라고 말한 지 채 한 달도 안 돼 우리의 발걸음은 다른 데로 향한다. 한참을 마음에 들어 다녔는데 어느 순간 주인이 바뀌고 커피 맛이 바뀌기도 하는 게 서울이다. 카페 주인 입장에서 보자면 연예인이 뜨면 헌신짝처럼 버리는 무심한 팬처럼 북적거리기 시작하면 발길을 뚝 끊는 손님의 태도가 억울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고고한 척 손님을 골라 가며 받으려는 거만한 태도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게 손님이다.

카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본다. 음, 나는 영화 <카페 뤼미에르>에 나오는 먼지가 햇빛 속에서 부서지는 그런 톤의 아늑한 카페이면 좋겠어. 교토 근교 아라시야마에 갔을 때 발견한 그 커피숍도 좋았어. 할아버지가 커피를 내려주고 손님들은 모두 동네 분 같았는데 짧은 안부를 주고받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갔잖아. 심지어 우리처럼 아라시야마를 여행 온 일본의 젊은이들이 그 카페에서 파르페를 시켜 먹으며 주인 할아버지와 함께 사진도 찍고 웃었지. 난 파리의 문학인과 예술인이 드나들던 카페보다 에드워드 호퍼의 유명한 그림 ‘나이트호크스(Nighthawks)’에 나오는 간이식당 같은 카페가 더 좋더라. 밤에 출출할 때 부담 없이 찾아갈 수도 있잖아. 밀라노 근처 벨라지오에서 화장실이 너무 급해 들어간 카페도 좋았어. 화장실로 일단 달려가는 데도 신경도 안 쓰고 커피를 주문하건 그냥 나가건 상관없다는 그 여유로운 태도가 왠지 고맙더라고. 귀여운 주크 박스와 색색의 설탕 과자도 팔고. 아버지가 얘기하신 광주의 한 다방도 궁금해. 아버지가 대학생이던 시절엔 커피에 생달걀을 얹어줬는데 배고프고 할 일도 없어서 하루 종일 다방에 앉아 있으면 아주머니가 생달걀을 몇 개씩 더 얹어주곤 했대.

이야기는 카페를 직접 만드는 사람들에게로 이어졌다. ‘믿음직스러운 기준으로 움직이고 있는’ 서울의 카페 8곳에게 이상적인 카페를 만나는 일에 대해 물었다. 찾아가는 길은 적지 않았다. 이 중 자신의 기준에서 봤을 때 이상적인 카페라고 생각되는 곳이 있다면 직접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신사동 645-24번지 : 카페 에이
1. 카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말로 대신할까 한다. “에이랜드는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섬의 이름입니다. 비밀스럽고 신선한 섬이지요. 저희는 그런 섬이고 싶습니다. 볼수록 매력적인 공간. 이 작은 섬 안에서 모두 즐거우면 좋겠습니다.” 그런 바람으로 카페를 열었다.

2. 요즘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훌륭하고 멋스러운 건물들이 어딘지 모르게 삭막한 분위기를 풍긴다고 생각했는데 나무와 화단이 사라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 와중에 정말 우연찮게 너무도 푸르른 나무와 널찍한 화단이 있는 이 장소를 발견했다. 우리 카페의 기본 콘셉트가 친환경임을 생각할 때 이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멋진 정원에 걷기 좋은 거리, 여기에 열 수밖에 없었다.

3. 우리 가게가 잘 어울리게 만드는 건진 모르겠지만 모든 손님이 각각 다 잘 어울리는 것 같다.

4. 재즈를 주로 트는데 날씨나 계절, 시간대, 그리고 DJ의 감정(?)에 따라 구체적인 장르는 달라진다. 많이 튼 뮤지션은 키스 자렛, 브랫 멜다우, 팻 매스니, 트리오 토이킷, 데미언 라이스 등이다.

5.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카페에서 만들어 내는 음식과 음료의 맛이다. 두 번째로 중요한 건 음료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 그리고 세 번째는 이 모든 것을 제공하는 스태프의 마음가짐, 즉 편안한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너무 과하지도 않고 너무 소홀하지도 않은 서비스, 무심한 듯 보이지만 손님의 컵에 물이 얼마나 남았는지, 실내 온도는 적정한지 신경 쓰는 것.

6. 어린 손님들. 7. 카페니까 일반적인 수다들이겠지?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그 집 소파에서 최대한 편한 자세로 풀어놓는 수다면 좋겠다. 우리 카페에 대한 얘기도 좋고.

8. 이상적인 카페라 하면 아무래도 손님과 교감을 잘하는 곳이 아닐까 싶다. 그 카페를 알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는 손님들과 그런 분들과 어떻게 신뢰를 유지하는지 아는 카페의 관계. 그런 흡사한 카페를 베니스에서 가본 적이 있는데, 낮 시간의 관광객이 빠져나가고 난 뒤 베니스인이 카페에서 서로 이름을 부르며 그날 있던 일이나 소소한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tel. 02-542-7654 www.a-land.co.kr

통의동 35-11번지 : 카페 스프링컴레인폴
1. 8년 동안 에디터로 일했는데 연차가 늘고 나이가 들수록 ‘자아실현’이라는 원초적 본능이 더욱 강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꽃과 케이크를 배우다보니 자연스레 카페를 열고 싶어졌다.

2. 낡은 골목, 산책, 고양이, 화분, 자전거 등 좋아하는 단어를 나열하다보니 강남과 홍대는 자연스레 제외됐다. 그러던 중 디자인 문구 브랜드인 공책(O-CHECK)의 통의동 사무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뒤로 이 동네에 반해 자주 들락날락했다. 번잡하지 않으며 신사 같은 느낌을 주는 이 동네가 좋았다. 이후 공책 실장님의 도움으로 공책 사무실 건물 1층에 카페를 열었다.

3. 노트북을 켜놓은 뒤 커피 석 잔 정도는 가뿐히 마실 수 있는 작가 언니, 색색깔 색연필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다이어리에 그림 그리는 것이 취미인 여대생, 여행을 뜨겁게 갈망하는 직장인, 주말 갤러리 투어가 취미인 뚜벅이족 직장인이 잘 어울릴 것 같다. 워낙 카페가 조용하다보니 왁자지껄 수다 떨던 손님들은 그 분위기가 불편해 대부분 일찍 자리를 뜬다. 4. 항상 CD로만, 음반 전체를 들려주는 걸 원칙으로 한다.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닌데, 점점 우리 카페만의 분위기가 잡히면서 자연스레 여성 보컬 곡을 많이 틀게 됐다. 코린 베일리 래, 카를라 브루니 등의 음악을 많이 틀었다. 최근엔 차은주, 손지연, 소히 등.

5. 개성 넘치는 인테리어, 원가 생각하지 않고 만들었을 것 같은 커피와 디저트, 그리고 주인과 직원의 친절함.

6. 10대와 흡연자?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하기보다는 좋은 재료를 쓰고 조금 더 받자는 주의였다. 그래서 어린 친구보다는 직장인이 더 많이 온다. 금연 카페라 흡연자도 없다.

7. 큰맘 먹고 떠나는 여행 이야기, 연말 파티 계획, 누구누구의 생일 이야기, 공연 이야기, 전시회 이야기 등 즐거운 에너지로 넘쳐나는 수다라면.

8. 지금은 없어졌지만, 통의동에 있었던 ‘팬(fan)’이라는 카페를 너무 좋아했다. 4명의 아티스트가 의기투합해 만든 공간이었는데, 손님이 많아 북적북적 돈을 버는 곳이 아닌데도 전혀 심심해 보이지 않았다. tel. 02-725-9554 club.cyworld.com/cafespring

안국동 6-1번지 : 카페 소원
1.
이 공간이 예전 윤보선 대통령 시절에 창고였다. 이곳의 분위기가 좋아 뭔가를 해야겠단 생각을 했는데 그게 바로 카페였다.

2. 도시의 콘크리트와 유리는 너무 차갑다.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불편하고 안절부절못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곳도 한옥이고 현대적인 것보단 옛날의 따뜻한 느낌을 좋아해서 카페에 오는 사람도 그런 따뜻함을 경험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곳에 열었다. 이 집 자체는 정통 한옥이라기보다 일본식과 중국식이 섞인 건물로, 카페를 만들 때도 창틀이나 천장 등 구석구석에서 옛날 집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3. 요란하지 않고 너무 현대적이지 않은 사람. 멋을 알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 4. 조용한 음악. 일하는 사람도, 손님도 지루해질 수 있으니 장르는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튼다. 그중 경음악이나 클래식, 특히 <노다메 칸타빌레> OST를 많이 틀었다.

5. 첫 번째로 중요한 건 분위기. 두 번째로 중요한 건 위치. 세 번째는 맛이다. 인테리어 디자인 일을 하는데 예쁜 소품을 외국에서 구입할 때마다 이걸 우리나라에서도 팔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요란하지 않고 분위기를 내줄 수 있는 소품을 카페에 함께 전시하고 있다. 소량이지만 오는 사람들이 구경할 수도 살 수도 있도록 하는 것, 애초에 카페를 열 때 내가 생각한 취지 중 하나였다.
6. 자리가 별로 없다. 오는 사람마다 “어 자리가 별로 없네?”라는 말을 많이 해서 놀라곤 한다. 커플도 별로 없는 것 같다. 7. 사람들이 자유롭게 하고 싶은 얘길 모두 할 수 있으면 좋겠다.
8. 뉴욕의 파크 애버뉴에서 만난 조그만 카페. 커피 전문점으로 분위기가 따뜻하면서도 오래된 느낌이다. 뉴욕에 갈 때마다 꼭 들른다. tel. 02-722-3252 www.littlegardensowon.co.kr

팔판동 40-1번지 : 카페 로쏘
1. 유학 생활 때문인지 남편과 나 둘 다 커피 문화에 익숙해졌고 왜 우리나라엔 맛있는 커피가 없을까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여행지에서 들어간 한 카페에서 커피를 직접 볶는 과정을 보게 됐다. 사람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진다는 그 모습이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커피 볶는 방법을 배웠다. 둘 다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게 음악과 커피여서 좋아하는 취향이 자연스레 카페 문화와 연결됐다. 사람들이 우리 집에 오면 “너희 집이 카페 같다.”는 말을 하기도 해서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즐거운 일이 좀 더 생산적으로 돌아오길 바랐다.

2. 어느 날 삼청동 길을 산책하다가 60~70년대 옛날 느낌이 나는 이 골목에 들어섰다. 아침이면 커다란 우유 트럭이 서 있는 모습 등이 시간을 초월한 느낌이었다. 번화한 큰 대로변에 있으면 손님은 많겠지만 오래도록 유지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좋은 커피 맛을 찾는 사람이라면 굳이 큰길가에 있지 않아도 알아서 잘 찾아오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조용한 공간에서 커피 맛을 천천히 즐기기엔 이곳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3. 가끔 연세 있는 교수님들이 청바지에 잠바 차림으로 오는데 여기와 더없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세 있는 분들이 혼자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모습이 보기 흔한 광경은 아니니까.

4. 음악에 신경을 쓰고 싶어 진공관 앰프도 설치해놓았다. 주로 재즈와 월드 뮤직을 많이 튼다. 존 콜트레인, 에디 히긴스 트리오 등.

5. 가장 중요한 건 커피 맛. 두 번째는 서비스의 질. 손님들의 이야기가 방해를 받지 않도록 사생활 침해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세 번째는 카페의 위치. 호젓한 곳에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

6. 케이크. 7. 젊은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난 모습이 참 보기 좋더라. 여럿이 모여 다양한 얘기를 하는 게 좋겠다.

8. 파리의 카페 몽파르나스. 커피도 마실 수 있고 저녁엔 술도 한잔 할 수 있고 배고플 땐 간단한 요기도 할 수 있는 편안한 곳이다. 그 분위기에 압도돼 하고 싶은 걸 못하는 카페가 아니라 뭐든 할 수 있는 카페라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tel. 02-722-2622

한남동 683-110번지 : 카페 눈
1.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매니저 일을 했다. 사람들도 좋아했고 그 일도 좋아했는데 카페가 없어지게 됐다. 어차피 큰 욕심도 없고 사람들도 좋아해서 하던 거 하자고 생각했다. 내 욕심이 좀 적어지면 더 많은 사람에게 베풀 수 있겠단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카페를 열었다.
2. 이태원의 한적한 골목이어서 쉽게 발견하긴 힘든 곳이지만 원하는 사람들은 오게 되어 있단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일하던 카페의 그 기억과 경험을 믿었다.

3. 쑥스러워하기도 하는 평범한 사람들. 튀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공간에서 심심하고 불편해한다. 이 공간 자체가 특별할 게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마감재도 별로고, 대단한 인테리어도 아니고.

4. 계절마다 음악이 달라진다. 루시드 폴이나 요 라 텡고, 제프 핸슨를 많이 틀었다. 여름엔 하우스 계열의 음악을 튼다. 5. 첫 번째는 커피 맛. 두 번째는 음악. 세 번째는 사람 냄새 나는 주인장. 지나친 관심은 안 되지만 말 한마디를 해도 따뜻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커피가 모자란다 싶으면 “한 잔 더 드릴까요?”라고 말하는 게 그리 어려운 건 아니니까. 그런 신뢰가 사람들을 다시 오고 싶게 하는 것 같다. 기분이 안 좋을 때 이 카페에서 혼자 쉬고 싶다는 마음이 가능한 곳이면 좋겠다.

6. 먹을거리.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카페여서인지 먹을거리가 없다. 팬케이크나 와플에 점심 값 이상의 가격을 받는 요즘 카페 분위기는 여기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여건도 안 되지만 제대로 하지 않는 이상 하지 말자는 주의다. 출출한 사람들은 빵을 사와서 먹어도 괜찮으니까.

7. 이상하게 우리 카페엔 혼자 많이들 온다. 어느 이야기라도 괜찮다. 오랜만에 본 친구의 안부도 묻고 요즘 심정 얘기, 일 얘기, 연애 얘기, 나이 먹는 이야기들?

8. 리도 섬의 한 동네 카페. 여기보다 더 작은데, 출근하는 사람들이 서서 에스프레소 한잔 마시고 가는 곳이었다. 아침을 대신할 수 있는 뜨끈한 파이도 팔고. 졸린 오후가 되면 또 한두 명씩 와서 커피를 마시고 가는 그런 곳. 손님은 거의 동네 사람 같았는데 서로에게 간단한 안부를 묻는 그런 곳.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카페였다. tel. 02-793-9198

소공동 112-20번지 : 카페 숲
1.
도시 속의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만들었다. 꽃과 맛있는 음식이 있는 그런 공간.

2. 이 길을 너무 좋아했다. 지금은 다소 퇴색되었지만 원래 여기가 서울의 1번지였고 번화가였다. 이 카페의 공간도 1937년에 지은 것으로 천장이 높고 벽돌을 쌓아 만든 조적식 건물이다. 역사가 깊은 문화재급 건물인 데다가 천장 높은 건물이라는 것. 매력적이었다.
3. 문근영. 예쁘니까. 4. 천장이 높고 바닥재가 나무라서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OST를 틀었더니 라이브 듣는 느낌이 났다. 그래서 자주 튼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나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도 많이 틀었다. 옛날 동네니까 옛날 음악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5. 첫 번째로는 맛. 좋은 재료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커피 기계에 돈을 투자해야 하고 좋은 맛을 뽑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샌드위치를 유기농 재료로만 만드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두 번째는 분위기. 만들려는 사람의 구체적인 콘셉트가 없다면 카페는 생명력이 없다. 문고리 하나까지도, 벽 색깔까지도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야 한다. 세 번째는 서비스. 카페 주인이 좋아서 가는 곳이기도 한 게 카페다. 리필을 원했을 때 당연히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걸 돈 받겠다고 생색내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마음이 편하고 포근한 곳, 몇 시간 앉아 있어도 눈치 보이지 않는 곳이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좋겠다.

6. 미소녀 종업원. 7. 카페는 무엇을 하기 위해 가는 건 아닌 것 같다. 큰맘 먹고 오는 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묻어 있는 카페면 좋겠다. 카페에 와서도 자연스레 커피 얘기, 음악 얘기, 나무 얘기 하면 좋겠다. 어떻게 키워야 화분이 안 죽는지 물어도 좋고.

8. 친구를 6시간 기다린 밀라노의 카페였다. 여행 중이라 연락처도 없어 계속 그곳에서 기다려야 했는데, 배가 불룩하고 콧수염이 난 맘씨 좋아 보이는 주인이 커피를 계속 주고 자기 먹으려고 산 것도 주고 말동무도 해주고 그랬다. 다른 곳을 여행하는 것보다 거기에 있던 6시간이 더 좋았고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tel. 02-765-2046

합정동 360-17번지 : 카페 플랫
1.
졸업하고 웹디자인 기획 일을 했다. 매일 새벽 2~3시에 집에 들어가는 삶을 살 자신이 없어서 여자친구와 돈을 모아 열었다. 어떤 카페를 만들고 싶은지 생각해보니, 몇 시간 앉아 있어도 편안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카페 이름을 한 음 내린 ‘플랫’이라고 지은 것도 그런 이유다.
2. 특유의 자유롭고 예술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홍대를 골랐는데, 공간이 사람을 압박하는 곳, 사람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조금만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가 보이는 곳에는 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당인리 발전소 앞길에 위치한 이곳을 발견했다.

3. 글쎄, 단골이 생각나는데 혼자 와서 아메리카노 한 잔 시키고 책을 읽거나 컴퓨터로 작업을 하는 말 없는 여자 분이 생각난다. 혼자만의 시간을 잘 즐기는 사람이라고 하면 될까?
4. <안경>과 <카모메 식당> OST를 많이 틀었다. 치보 마토와 비 더 보이스, 리사 오노, 나오미 앤 고로, 스나가 티 익스피리언스도.

5. 순서대로 말하면, 편안한 분위기, 음악. 가격이다. 우리는 저렴한 비용으로 임대했고, 해서 굳이 비싸게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또 내가 커피를 배운 곳의 철학이 그랬다. 주스건 커피건 모든 메뉴가 2천원이었다. 왜 그런지 물었더니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커피 맛을 보여주고 싶다는 게 그분의 이유였다. 그 철학이 좋았다.

6. 소파가 없다. 7. 나 같은 경우는 카페에 가면 영화나 음악 얘기를 많이 한다. ‘이 커피 맛있다’는 얘기도 좋겠다.

8. 도쿄 여행을 가면 가이드북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듣도 보도 못한 역에 내리는 걸 좋아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신주쿠와 이케부쿠로 사이에 있는 ‘다카다노바나 역’에 내렸다. 평범하고 다소 휑하기도 한 동네였다. 목적 없이 골목길을 걷는데 철길 옆에서 ‘다방 커피’라는 곳을 발견했다. 알파벳으로는 ‘dabang coffee’라고 써 있었는데 그게 너무 웃겨서 들어가봤다. 아주 작은 카페였는데 커피도 너무 맛있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그 경험이 너무 좋아 카페를 차리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됐다. 후에 도쿄에 갈 때마다 들렀는데 매번 문이 닫혀 있었다. 세 번쯤 갔을 때였나, 누군가가 안에 있기에 물었더니 그 카페는 이제 없어졌다고 했다. 그 커피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부암동 278-5번지 : 카페 드롭
1.
삼청동 OIOI 카페를 함께 만든 사람들과 시작했는데, 우리 자체가 서비스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호텔 경영, 회계 등 여러 일을 해봤는데 직장 생활보단 카페에서 커피를 만드는 일이 더 좋더라.

2. 우리가 만드는 커피는 느린 커피다. 드립이라 오래 걸리는데 너무 빠른 템포로 커피를 원하는 곳과는 맞지 않는단 생각을 했다. 그런 곳에선 우리가 줄 수 있는 서비스가 제한된다.

3. 단골이 생각난다. 50대 중반 정도 되는 분인데 사슴이 그려져 있는 커플 스웨터 입고 아내와 함께 늘 여길 찾는다.

4. 가벼운 팝과 재즈. 잭 존슨의 은 특별히 많이 튼 것 같은데, 태양열로 녹음하고 포장도 콩기름으로 한 음반이라 우리 카페의 ‘친환경’ 콘셉트와 잘 맞는 것 같아서다.

5. 첫 번째는 카페의 정직한 방향성이다. 트렌드가 바뀌어도 고수할 수 있는 모토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기본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유기농 커피콩을 수입하고 꾸밈없이 만들어, 먹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그런 노력.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그런 모토에 충실한 커피의 맛과 공간이겠다. 인테리어를 통유리 창으로 만든 의도 역시 밖에서 우리가 하는 일들이 투명하게 보였으면 하는 생각에서다.

6. 친절함. “부암동의 그 까칠한 커피숍”이라고 하면 다 여긴 줄 안다더라.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커피를 만드는 과정에 충실하다보면 조금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말을 걸어오면 최대한 충실하게 답변하려고 하지만 먼저 말을 걸진 않는다.

7. 일흔 된 어머니가 오십 정도 된 아들과 함께 커피 마시러 오기도 하는 등 우리 카페의 손님은 연령대가 다양해 무난히 어떤 이야기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은 와서 과외도 하고 어떤 사람은 홈쇼핑에 올릴 사진도 찍는다. 그 다양성이 좋다.

8. 멜버른의 ‘사하라’ 커피숍. 아주 작은 공간인데 회벽 칠을 한 것 같은 벽에 썩어가는 나무 소재의 의자와 테이블. 아주 삭막했다. 가장 좋아한 메뉴는 ‘아이스 허브 티’. 직접 돌절구에 허브 잎을 찧어서 얼음을 넣어 마시면 된다. 모든 메뉴가 그렇다. 그 자체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다. 너무 삭막한 분위기 안에서 음료는 다 살아 있다는 것, 하나의 스토리가 카페 안에서 만들어졌다. tel. 02-394-0045 www.dropp.co.kr

- 에디터 : 나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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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언

200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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