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인스타그램 카카오 스토리 네이버포스트 블로그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FEATURE

건축가 양진석의 러브 하우스

양진석과 만난 사람 지키는 집수리 마스터, 김재관

On September 14, 2017 0

아티스트가 그러하듯 건축가들도 자신의 작품에 이름을 단다. 그 이름에선 당연히 건축가의 작업 성향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건축가 김재관이 수리한 집들 역시 그곳에서 인생을 꾸릴 누군가의 이름이 떡 하니 달려 있어,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그는 ‘아무개 씨’를 위해 자신이 가진 재료와 재능을 내어놓으며 집을 최대한 ‘잘’ 고쳐 쓰는 방법에 대해 늘 고민한다. 집은 편의보다 사람을 먼저 헤아려야 한다는 철학을 실천하는, 집수리에 푹 빠진 건축가 김재관을 만났다.

3 / 10
/upload/living/article/201709/thumb/35914-256667-sample.jpg

무회건축연구소의 김재관(오른쪽), 양진석 건축가가 북악산 아래 경사 지대 다세대주택에 터를 잡은 김재관의 집 3층 평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무회건축연구소의 김재관(오른쪽), 양진석 건축가가 북악산 아래 경사 지대 다세대주택에 터를 잡은 김재관의 집 3층 평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저는 건축가로서 특별함을 내세우는 것보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반영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건축가임에도 누군가의 흔적이 깃든 집을 수리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어요. 집수리 프로젝트 이름은 보통 ‘OO이네 집수리’라 명명하죠. 그럴싸한 이름 보다 오롯이 그곳에 살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하며 고쳐요.

 

건축가에게 이미 지어진 공간을 다시 매만지는 작업은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일과 같아서, 실전으로 들어가면 그야말로 골머리를 앓게 마련이다. 빈 땅에 새로운 건물을 올리는 일이 아닌, 누군가 설계한 건물을 다시 용도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은 그야말로 각색을 필요로 하는 한편의 드라마. 겉모습보다 감싸고 있는 살을 뜯어내고 속을 들춰야 질문에 맞는 해답을 주고, 그런 다음에야 새로운 건축주의 삶을 고스란히 덧붙이는 작업이 순조로워진다. 건축가인 동시에 집수리 전문가로 알려진 김재관, 그가 2년 전 단단히 마음먹고 직접 수리한 명륜동 다세대주택에 건축가 양진석과 <리빙센스>를 초대했다.  

 

 PROJECT 01  

율리아네 집
서초동 예술의전당과 우면산이 감싼, 안뜰 같은 위치에 자리 잡은 구옥. 율리아는 건축가 김재관을 만나 새로운 라이프를 선물 받았다.

3 / 10
/upload/living/article/201709/thumb/35914-256668-sample.jpg

Copyright 김재관

Copyright 김재관

 

 PROJECT 02  

유진이네 집
오랜 주택가에서 30여 년의 세월을 살아온 부암동 구옥. 건축가 김재관이 솜씨 있게 다시 새 숨을 불어넣은 유진이네 집.

3 / 10
/upload/living/article/201709/thumb/35914-256669-sample.jpg

Copyright 김재관

Copyright 김재관

북악산 아래 자리 잡아 서울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좋은 집이네요. 이 주택은 소장님이 직접 수리하신 거죠? 맞아요. 북악산 아래 경사지대에 세워진 다세대주택인데, 2년여 전 이사 와서 직접 수리했어요. 원래는 평범한 아파트에 살았어요. 주택에 살고 싶었지만, 살고 있는 아파트를 처분해도 서울에서 주택을 살 엄두를 낼 수 없어 생각조차 하지 않았죠. 그런데 하루는 경제학과 교수인 친구가 북악산 아래를 거닐며 이런 솔깃한 얘길 했어요. 지금 이 집을 예로 들고요. “저 집은 다세대주택인데, 주택에 살고 싶으면 네가 살아야 하는 부분만 구매하면 되지 않아? 나머지는 보증금을 가지고 네 명의로 저 집을 사면 넌 살 공간의 값만 지불하면 돼.” 흔히 나누는 일상 대화였지만, 저는 예로 들었던 이 집이 꼭 마음에 들었어요. 당시 정동에 살았는데, 매물로 나오지도 않은 이 집을 보려고 굳이 일부러 이곳까지 와서 한 번씩 둘러보곤 했어요. 그러다 마침 기회가 왔죠.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주택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온 거네요? 네, 아내의 지인을 통해 이 집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당장 지불해야 하는 값은 1억1000여만원이었는데, 4개의 층을 가진 41평 다세대주택을 얻은 거예요. 초반에 이 집에 왔을 때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시야였어요. 주택이 밀집한 언덕 높은 집에서 이 집의 울타리는 허울뿐이었죠. 안쪽이 고스란히 외부의 시선으에 드러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가장 먼저 공간을 구획했어요. 현재 모습이 되도록요.

건축가들은 집을 사자마자 특별하게 수리하고 살 거라 생각하지만 실은 일반 사람들과 크게 다를 게 없죠. 층마다 용도를 달리하고, 계단실 옆 코너를 목공용 창고처럼 사용하고 있네요. 법적으로 지하에 속하는 1층은 외부에서 진입 가능한 출입문이 있어 임대를 줬어요. 가장 위층인 테라스 층 내부 공간도 필요한 사람들에게 임대를 하고 있죠. 제가 서재로 쓰는 곳도 가끔 워크숍이나 필요로 하는 사람들한테 내주고요. 현관 앞 공간에 장비를 걸어두고 현장에 나갈 때 사용하거나, 목수일을 할 때 쓰는 작업 도구들을 정비해 뒀어요.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과는 초면이지만 집에 관해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집을 통해 새롭고 재미있는 경험들을 하고 있어요.

건축가가 집수리를 전담한다? 집수리는 통상 건축가들이 하지 않는 작업이죠.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건축가로서는 주로 종교 건축물 설계를 해왔는데, 막다른 골목에 다달았어요. 신념과 가치관이 다르다 보니 더 이상 소통이 되지 않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어요. 서로 통하지 않게 되자 모든 게 어려워졌어요. 현실적으로 공감이 되니까 좌절하는 순간이 왔고요. 나를 위해서도 건축주를 위해서도 해서는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만둔다고 해도 무언가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도 아니었어요. 5년 전 시점에선 특히나 건축의 영역이 축소되고 변화되고 있음을 느꼈어요. 내가 그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필요로 하는 집수리로 눈을 돌렸어요.

집수리를 시작하면서 설계만 맡았나요? 아니면 시공까지 하신 건가요? ‘설계만 하겠다, 시공까지 맡겠다’ 이런 판단과 정리를 할 겨를이 없었어요. 어느 날 처음 뵌 분이 신문에 소개됐던 제 기사를 손에 쥐고 찾아왔죠. 남편에게 ‘집’을 선물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집에 대한 열망이 강한 분이었어요. 건축에 대해 반년 동안 공부를 하고 원하는 집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노트로 적어둔 걸 봤어요. 건축가가 누군지도 몰랐는데, 자신의 집을 맡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분은 행복한 일이라고 말하더군요. 

3 / 10
/upload/living/article/201709/thumb/35914-256670-sample.jpg

건축가가 소나무로 짜 넣은 책장과 평상 그리고 멀바우 원목테이블과 의자로 아늑한 서재를 만들었다.

건축가가 소나무로 짜 넣은 책장과 평상 그리고 멀바우 원목테이블과 의자로 아늑한 서재를 만들었다.

명륜동 건축가의 자택 내 새로 설계해 수리한 구옥. 어설픈 것보다 잘하는 것에 집중한다는 그의 고집은 건축 재료를 선택할 때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시멘트 벽돌은 친근한 소재지만, 그의 손에서 나타난 결과물은 언제나 정교하다.

명륜동 건축가의 자택 내 새로 설계해 수리한 구옥. 어설픈 것보다 잘하는 것에 집중한다는 그의 고집은 건축 재료를 선택할 때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시멘트 벽돌은 친근한 소재지만, 그의 손에서 나타난 결과물은 언제나 정교하다.

명륜동 건축가의 자택 내 새로 설계해 수리한 구옥. 어설픈 것보다 잘하는 것에 집중한다는 그의 고집은 건축 재료를 선택할 때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시멘트 벽돌은 친근한 소재지만, 그의 손에서 나타난 결과물은 언제나 정교하다.

지인이 선물한 옛 풍금은 아내의 악기. 김재관 소장이 작업한 판 화작품을 나란히 서재 입구에 걸어 두었다.

지인이 선물한 옛 풍금은 아내의 악기. 김재관 소장이 작업한 판 화작품을 나란히 서재 입구에 걸어 두었다.

지인이 선물한 옛 풍금은 아내의 악기. 김재관 소장이 작업한 판 화작품을 나란히 서재 입구에 걸어 두었다.

그럼 그분이 처음으로 소장님한테 집수리를 맡기신 건축주네요? 그렇죠. 처음으로 대대적인 집수리 상담을 받은 건데, 공사까지 맡을 생각은 아니었어요. 건축가로 활동하면서 직접 해볼 일이 없기도 했고요. 프로젝트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처음부터 ‘가벼운’ 계약이라는 조건으로 진행했어요. 실측부터 시작해 총 5단계로 건축주의 눈도장을 받으며 설계를 진행했어요.

가벼운 계약이라니, 처음 듣는 프로젝트 과정인데요? 설계를 나눠 진행하는 것도 흥미롭고요. 설계된 결과물의 견적은 어떻게 나왔나요? 초기 설계에서는 견적이 8000만원으로 정리됐는데, 건축주에게 꼭 필요하고, 내가 하고 싶은 설계를 다 넣어 봤더니 1억5000만원이 나왔어요. 견적서를 검토해보니 액수는 모두 똑같았는데, 시공업체에서 평단가를 맞추기 위해 아이템을 소급했구나, 하는 추측을 했죠. 제가 그동안 경험했던 것을 토대로 직접 견적을 내보니 1억원 정도가 나왔어요. 이제 이를 실행하는 사람만 잘 만나면 되겠구나 싶었는데. 아뿔싸! 건축주는 당연히 제가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어요. 그 바닥 경험이 20여 년인데, 마음 한편으론 이 정도쯤이야,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도 소장님은 건축가들 중에서도 여러 분야를 경헙해서 많은 도움이 되었겠는데요. 설계를 오래 해왔던 것이 인테리어하는 데도 쓸모가 많아요. 견적, 구조 계산, 재료의 물성에 관심이 많았던 평소 관심사가 이 일을 계속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으로 다가왔어요. 소위 까마득한 ‘업자’로서 제2의 인생이 시작된 거죠(웃음).

결국 리모델링 건축 예산은 맞춰진 거네요? 결론적으로 우여곡절 끝에 시공 비용을 맞추게 된 거죠. 바로 서초동 주택인 ‘율리아네 집’이에요. 건축주가 그 집을 통해 행복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몇 년 동안 하셨죠. 사람들이 생각하는 집, 집의 위력, 반대로 위악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절절하고 생생하게 경험했죠.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죠. 건축에 대한 담론을 나누었을 때의 허무함이 싹 사라지면서 알차고 꽉 찬 매력을 느꼈어요.

건축가 김재관의 서재 겸 작업 공간. 나무로 공간의 틀을 짜 넣은 것 역시 필연적 배경을 무대로 만든 건축가의 솜씨다.

건축가 김재관의 서재 겸 작업 공간. 나무로 공간의 틀을 짜 넣은 것 역시 필연적 배경을 무대로 만든 건축가의 솜씨다.

건축가 김재관의 서재 겸 작업 공간. 나무로 공간의 틀을 짜 넣은 것 역시 필연적 배경을 무대로 만든 건축가의 솜씨다.

20여 년간 건축가로 활동했는데, 완전히 집수리(리모델링) 세계에 눈을 뜨게 되셨네요? 리모델링은 미래형 산업으로 여겨졌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유지되지는 않은 편이에요. 학창 시절 아파트 문화에 관한 논문을 썼어요. 외국 사람들은 한국의 아파트 문화에 대해 이해를 잘 못해요. 서구에는 없던 일이고 새로운 현상이죠. 물론 이들에게도 아파트 전성 시대가 있었지만요. 아파트라는 주거공간이 모던의 상징일 때도 있었지만 이런 막연한 방식이 해답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서는 트렌드를 선도하는 양 현혹되어 자연스럽게 이동된 것이죠. 개인화된 삶의 편의를 대신해주는 기능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어요. 택배를 받아주는 대리인, 단열. 난방 걱정도 없고, 이웃 주민의 간섭도 없어 무엇보다 마음이 편하죠. 다른 나라도 그러했듯 우리나라도 이제 변화를 맞을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집수리로 업을 전향하고 나서 제 일이 더 많아질 거라고 확신했지요. 낡은 집을 고치려는 수요가 많아지리라는 제 판단이 물론 항상 옳았다고 할 순 없지만요.

원래 소장님은 손으로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제가 설계를 포기해야 했던 이유들이 있어요. 설계사가 갖춰야 할 능력들이 있는데요. 저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원하는 만큼 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어요. 그전까지 남들이 잘하는 것을 바라보면 심적으로 힘겨웠어요. 열심히 했음에도 스스로 충족되지 못했어요. 내가 도달하지 못하는 목표를 향해 가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내가 가진 재능이 원하는 지점에 도달하지 못하니 누구도 도전하지 않았던 리모델링 영역으로 건축의 지향점을 바꾼거죠.

소장님에게서 집에 대한 장인 정신이 엿보인다고 할까요? 저는 천부적 재능을 가졌다거나, 오랫동안 같은 일을 즐기지는 못해요. 내가 못하는 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가고자 하는 순간, 비로소 가야 할 길이 보이기 시작한 거죠. 다른 말로 좋게 버무린다면 건축계의 ‘멀티플레이어’ 정도죠. 저는 건축가로서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집은 누군가를 짓는 일이에요. 그냥 ‘침실’이 아니라 ‘누군가 잠들 방’인 거죠. 사람들은 자기 집에 대한 설명을 충분하게 못해요. 건축가들은 이들의 꿈을 해몽하는 일을 하죠. 원하는 건축 방식에 대해 언어화하는 것도 건축가의 역할 중 하나예요.

3 / 10
/upload/living/article/201709/thumb/35914-256674-sample.jpg

직접 만든 이동형 의자 위에 놓인 노트. 기록을 중시하는 건축가의 정교한 고민들이,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현장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직접 만든 이동형 의자 위에 놓인 노트. 기록을 중시하는 건축가의 정교한 고민들이,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현장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집수리라고 하면 새로운 터전 위에 설계하지 않고 기존의 조건 위에 다시 짓는 일이잖아요. 신축보다 제약이 많아 제한적인 방식으로 하실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 안에서 최대한의 것으로 만들어내요. 주어진 것이 ‘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건축의 ‘조건’인 셈이죠. 제가 가진 재료들을 가지고 ‘잘’ 짓는 방법들을 늘 고민해요. 그게 제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수리 현장에서 김재관 소장님의 모습이 어떨지 상상되는데요. 한 번은 겨울철에 진행된 현장 작업에서, 너무 오랫동안 서서 지켜보다 동상에 걸린 적도 있어요. 집을 뚫어지게 노려보다(?) 그렇게 됐지만, 현장에 있을 땐 넋을 빼놓을 정도로 집중하게 되거든요. 건축가에게 설계는 그냥 뚝딱 스케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자신만의 언어를 담아내는 거예요. 공간을 새롭게 끊임없이 정의 내리다 보면 새로운 생각들이 나오고, 내가 가진 언어 내에서 다듬고 재정비하게 되죠. 철학이란 것이 어떤 현상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데 능숙한 말들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없지 않은데, 그럼에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러한 방식에 제 철학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건축은 정말 여전히 어렵지만, 해볼 만해요. 재미있지 않나요?

SPECIALIST OF THIS MONTH

SPECIALIST OF THIS MONTH

건축가 김재관
영국 옥스포드 브룩스 대학교를 졸업하고 영국 홉킨스 건축 설계사무소를 거쳐 무회건축연구소를설립했다. 지난 1998년 <강정교회> 설계로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했다. 낡은 집과 허름한 집, 한 물간 집, 오래된 집만 골라 녹슨 철근, 심드렁한 돌덩이에 자연의 산물을 덧붙이고 수리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며 산다.

INTERVIEWER

INTERVIEWER

건축가 양진석
교토대학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서울시 건축위원회 심의위원, 와이네트워크와 와이그룹 대표를 맡고 있다. 건축 설계와 디자인 작업 외에 강연과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건축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러브하우스 플랫폼 앱을 개발해 새로운 건축 서비스를 선보인 데 이어, 최근에는 양양에서 설해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아티스트가 그러하듯 건축가들도 자신의 작품에 이름을 단다. 그 이름에선 당연히 건축가의 작업 성향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건축가 김재관이 수리한 집들 역시 그곳에서 인생을 꾸릴 누군가의 이름이 떡 하니 달려 있어,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그는 ‘아무개 씨’를 위해 자신이 가진 재료와 재능을 내어놓으며 집을 최대한 ‘잘’ 고쳐 쓰는 방법에 대해 늘 고민한다. 집은 편의보다 사람을 먼저 헤아려야 한다는 철학을 실천하는, 집수리에 푹 빠진 건축가 김재관을 만났다.

Credit Info

기획
김미주 기자
사진
김준영
촬영협조
무회건축연구소, 와이네트워크

2017년 9월

이달의 목차
기획
김미주 기자
사진
김준영
촬영협조
무회건축연구소, 와이네트워크

0 Comment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