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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프렌치 레스토랑 파씨오네

On October 03, 2013

마음을 움직이는 꾸밈없는 맛, 프렌치 레스토랑 파씨오네를 찾다.

한 입 먹는 것만으로 ‘정말 환상적인 맛이다!’라고 외치게 되는 요리의 매력은 오래가지 않는다. 처음부터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는 지나친 노력이 상대에게 부담을 주는 것처럼, 먹는 이를 사로잡으려고 과도하게 기교를 부린 음식은 본연의 맛을 잃어버려 그 매력마저 금세 퇴색되고 만다. 두고두고 생각나는 음식은 ‘죽여주게 맛있는 음식’이라기보다 ‘온전히 그 맛을 내는 편안한 음식’이다. 사실 한국에서 ‘프렌치 요리’는 특별한 기대와 권위를 갖고 있다. ‘특별한 날이니 프렌치 요리를 먹자’고 하지 ‘오늘은 편안하게 프렌치 요리나 즐길까’라고는 잘 안 한다. ‘프렌치 요리=파인 다이닝’이라는 선입견이 지배적이다. 특별한 대우를 받는 듯한 고급 서비스와 예술적인 미식의 향연. 이런 것들이 ‘파인 다이닝’의 덕목인 것은 맞지만, 모든 프렌치 요리가 ‘파인 다이닝’일 필요가 있을까? 프랑스 사람이라고 날마다 새로운 미각에 몸을 떨며 정장을 차려입고 식사를 하지 않는 것처럼. 여유롭게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은 날, 파씨오네를 찾았다.

평화로운 맛 - 채소라비올리

하얀 테이블에 앉으면 이곳의 오너 셰프 이방원 씨가 커다란 칠판을 들고 다가온다. 오늘의 메뉴가 빼곡히 적힌 칠판이 다소 무거워 보이기도 하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차례차례 그날의 음식을 설명한다. 매일 바뀌는 그날의 코스 메뉴에서 메인은 생선과 고기 두 가지 중 선택이 가능하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애피타이저는 이탈리아식 만두인 채소라비올리로 가지, 토마토, 적채, 양배추, 당근 등 한 가지 재료만 들어가 채소 본연의 향과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수분이 많은 채소는 오래도록 볶아 수분을 날리거나 재료에 어울리는 허브를 약간 섞을 뿐이다. 각기 다른 맛의 라비올리는 오래도록 뭉근히 끓여낸 채소 콩소메 국물에 따뜻하게 담겨 나온다. 은은하면서도 각자의 향이 확실하고, 개성 있으면서도 조화로운 맛이다.

1 별다른 꾸밈이 없지만 편안하고 쾌적한 파씨오네의 내부.
2 이방원 셰프의 유일한 취미는 바로 그림 그리기. 따로 배운 적도 없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캠퍼스 위에 속마음을 펼쳐낸다.
3 힘든 과정을 동고동락한 셰프들과는 지금도 이메일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다.

묵묵한 오너 셰프가 불러일으키는 감동

호텔 양식당에서 근무하던 그는 유독 프렌치에 애착이 깊었다. 당시 한국에는 프렌치나 이탤리언 등의 전문 레스토랑이 전무하다시피 했고 ‘양식 레스토랑’으로 불리는 곳에서 이탤리언 요리도 하고 프렌치 요리도 하는 식이었다. 2000년에 들어서야 정통 프렌치 요리를 내놓는 레스토랑이 하나둘 생겼고 그 시초라고도 할 수 있는 ‘라미띠에’로 자리를 옮긴 이방원 셰프는 이때부터 전문적으로 프렌치 요리만을 해왔다. 그러다가 재작년 불현듯 본고장인 프랑스로 연수를 떠날 결심을 하고 일종의 인턴십이라고 할 수 있는 레스토랑 ‘스타쥬’ 프로그램에 지원한다. 주로 요리학교를 수료한 병아리 셰프들이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20여 년의 경력에도 주저 없이 선택한 것이다. 오랜 시간 쌓아온 실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니 흡수하는 속도와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셰프가 자존심을 버리고 ‘본고장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리라’는 단순한 목표 아래 묵묵히 1년여 동안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다. 하루에 세 시간만 자면서 새벽부터 일터에 나가 자정이 넘어서야 들어오는 고된 프로그램이었다. 그가 일했던 미슐랭 3스타의 ‘라스트랑쥬’에서는 오전 8시부터 자정까지 16시간의 근무시간 동안 별도의 식사 시간이 없고 오후 3시 30분부터 5시까지 하루에 한 번 1시간 30분의 휴식 시간만이 허락되었다. 이 셰프는 근처 공원에서 바게트 하나로 끼니를 때우고 벤치에서 잠시나마 눈을 붙였다. 마치 어린 셰프의 무용담을 들려주는 듯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이 셰프는 참 담담하다. “그래서 비라도 오면 더 힘들었어요.”
탄탄한 요리 실력과 오랜 시간 쌓아온 내공으로 미슐랭 레스토랑에서도 인정받은 이 셰프는 점점 큰일을 맡았다. 정신없이 바쁘고 고된 시간에 셰프가 마음의 안식을 얻은 곳은 동네 할머니가 운영하는 작은 비스트로였다. 파인 다이닝에 비해 소박하지만 프랑스인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먹는 가정식과 와인을 파는 비스트로는 유서 깊고 뛰어난 맛을 자랑하는 곳이 많다. 미슐랭 3스타의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는 그도 할머니가 해주는 비스트로의 음식이 눈물겹도록 맛있었다. 매주 휴일마다 비스트로에서 음식을 먹던 그는 20년 동안 프렌치 요리를 하면서도 스스로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깨달았다. 프렌치라고 무조건 어렵고 격식을 차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신선한 재료로 정성 들여 만드는 편안하고 맛있는 프랑스 음식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놀라움은 그가 일하던 ‘라스트랑쥬’의 주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주방에서는 ‘이 재료와 재료는 맞지 않아’라는 고정관념은 설 자리가 없었다. 모두가 자유롭게 ‘새로운 맛’을 찾아 새로운 시도를 서슴지 않았다. 동료들과 음식에 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배워가며 또 한 번 자란 그는 1년 뒤 한국에 돌아와 ‘열정’이라는 뜻의 레스토랑 ‘파씨오네’를 차렸다.

채소와 해산물
이름이 너무 정직해서 당황스러울 정도인, 말 그대로 계절 채소와 해산물을 다양하게 조리하는 메뉴다. 버터와 소금만을 사용해 순간적으로 빨리 익혀낸 싱싱한 새우와 키조개가 탱글탱글하게 씹히며 입안 가득 진한 풍미를 낸다. 양배추와 당근 등은 올리브유에 볶거나 그릴에 굽는 등 재료에 맞춰 다양하게 조리하며 생선 머리와 뼈로 육수를 우려내고 토마토와 크림을 더한 소스를 곁들인다.

달팽이스튜
앙증맞은 파이지 속에 그레이비소스를 넣어 진하게 끓여낸 달팽이스튜가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소박한 요리. 쇠고기의 진한 맛을 우려낸 그레이비소스와 양파와 버섯, 졸깃하게 씹히는 달팽이가 어우러져 행복한 맛을 낸다.

정갈한 맛, 긴 여운

셰프 이방원은 ‘파씨오네’의 편안한 프렌치가 대중의 프렌치에 대한 부담을 허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특별한 요리’ 보다는 ‘맛있는 요리’로서의 프렌치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 많이 고민한 끝에 탄탄한 기초 위에 좋은 재료를 맛있고 건강하게 조리하는 ‘기본’이 결국에는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매일 바뀌는 메뉴는 스테이크 일색의 기존 프렌치에서 벗어나 부모님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 해산물, 수준급으로 조리한 가금류와 양고기 등으로 셰프의 조용한 열정을 담아 다채롭게 채워지고 있다. 특별히 원하는 메뉴가 있다면 미리 예약해 주문할 수 있다.
주소 서울 강남구 신사동 646-23 2층

메뉴 점심 코스 38,000원 저녁 코스 65,000원
영업시간 정오~오후 10시(일요일 휴무)
문의 02-546-771

마음을 움직이는 꾸밈없는 맛, 프렌치 레스토랑 파씨오네를 찾다.

Credit Info

포토그래퍼
김나윤
어시스트
오혜숙
에디터
강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