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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의 영어두뇌 만들기> ⑤ S.A.I.L 학습법

Read a Lot! 많이 읽기가 필요한 이유

On May 15, 2018 0

영어 사교육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지만 정작 외국인을 만나면 절절매는 현실이 ‘대한민국 영어의 현주소’입니다. 그 괴로움을 잘 알기에 내 아이만큼은 영어로 고통받지 않길 바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입소문난 영어 교육법을 따라하지요. 그런데 뭔가 조금 아쉽지 않던가요? 왜 이런 교수법이 좋은지, 그렇게 따라하는 게 정말 맞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있지 않던가요? <박순의 영어두뇌 만들기>에서는 ‘외국어로서’ 영어를 학습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효과적인지 신경학적 관점에서 분석했습니다. <박순의 영어두뇌 만들기> 5편은 ‘영어두뇌’를 만들기 위한 세부 전략인 S.A.I.L 학습법 중 네 번째 키워드에 해당하는 ‘L: Read a Lot(많이 읽기)’입니다.

PROFILE

PROFILE

박순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밌고 효과적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영어교육자.

‘외국어로서의 영어’를 학습하는데 있어 뇌과학이 제공한 중요한 단서를 바탕으로, 신경학적 관점에서 ‘영어두뇌’에 대해 연구 중이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영어교육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에서 ‘신경언어학과 영어교육’을 강의했다.

<아이의 영어두뇌>, <뇌과학으로 알아보는 혁신적 영어 학습법>의 저자이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중학사이버영문법>과 EBSLang 등의 교재를 개발했다. KBS <스페셜다큐>, EBS <다큐프라임>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지난 토요일 오후에 들렀던 국립 세종도서관 어린이자료실 열람석에서 본 일입니다. 엄마와 딸이 함께 앉아 책을 읽고 있더군요. 바로 옆 서가에서 빼왔음 직한 영어 책을 나지막이 소리 내어 읽는 아이의 발음이 돌돌돌 흐르는 시냇물 소리처럼 유려합니다.

강세도 정확하고 인토네이션도 훌륭합니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 앞자리를 보니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로 보이더군요. 아이가 문장 몇 줄을 시원하게 읽고 나자 엄마가 간단한 설명을 덧붙여줍니다. 고개를 끄덕인 아이는 다음 글을 소리 내어 읽습니다.


저희 집의 경우도 주말 중 하루는 도서관에 가서 아이가 마음 내키는 대로 책을 읽도록 하는 게 일종의 ‘루틴’입니다. 가족 모두 대출 카드를 만들어둔 덕분에 주말에 아동도서 20여 권을 빌려서 집에 돌아가곤 합니다.

그중 열다섯 권 정도는 도서관에서 일단 몇 장 읽어보고 나서 대출할지 말지를 아이들이 직접 결정하고, 그 외 다섯 권가량의 책은 제가 서가를 돌아다니며 골라줍니다. 외국어인 영어 소리에 거부감을 분명하게 표시했던 첫째 아이는 우리말과 글을 우선했습니다.

덕분에 일찍부터 한글 읽기가 능숙해진 아이에게 영어를 많이 들려주고 영어책도 직접 읽어주니 외국어에 대해 거부감보다는 호기심을 차차 드러내더군요.

이렇게 ‘소리가 먼저(Sound First)’ 단계를 충실히 거치다가 이때다 싶었던 7세경부터 영어 읽는 법을 명시적 훈련을 통해 가르쳤더니 차츰 아이 스스로 영어 단어를 소리 내어 읽으며 흡족해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이가 영어 CD나 DVD로 보고 듣거나 소리 내어 읽은 문장을 우리말로 고스란히 번역해준 적이 없어요.

영유아용 영어책은 대개 시각 단서로 이뤄진 ‘픽처북’이므로 어떤 뜻인지 아이가 짐작해내는 경우가 많았고, 스스로 원해서 시청하는 영어 DVD 동영상도 제 스스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대목을 거의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우리 첫째는 첫 칼럼에서 이야기했듯이 작년 초 해외에 나갔을 때 복잡한 영어 안내문을 저보다도 더 빠르게 읽어 이해했고, 제가 미국 학회에 다녀오면서 사다 준 영어 게임의 매뉴얼을 순식간에 읽고 반 친구들을 위해 한글로 번역해줄 정도의 독해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영어 책 읽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1분에 140개 단어 속도로 소리 내어 읽을 수 있었습니다(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평균 낭독 속도는 1분에 약 150개 단어입니다).

세종도서관에서 만난 여자아이든, 제 아이든 이렇게 유창하게 영어를 읽게 된 아이의 두뇌는 그렇지 않은 아이의 두뇌와 달라집니다. 영어두뇌와 그렇지 않은 두뇌는 물리적으로 다른 구조를 갖게 된다는 뜻이죠.




 ->  글 읽기를 담당하는 두뇌의 ‘특별 전담팀’
다음 그림은 사람의 두뇌를 아래쪽에서 바라본 것인데요, 사람의 눈으로 들어오는 시각정보는 뒤통수의 후두엽 끝에 있는 1차 시각피질(primary visual cortex)을 거친 후 바라보는 대상의 종류에 따라 별도로 처리하는 ‘특별 전담팀’으로 각각 전달됩니다.

머리 뒤쪽의 후두엽과 귀 안쪽의 측두엽이 만나는 곳의 가장 바깥쪽에 일상적인 사물을 알아보는 부위(그림에서 노란색으로 표시된 곳), 그 안쪽에 얼굴을 알아보는 부위(그림에서 녹색으로 표시된 곳), 그리고 가장 안쪽에 장소 관련 정보를 알아보는 특별 팀이 자리를 잡지만, 글을 읽는 법을 배우지 않은 두뇌에는 글자를 알아보는 곳(그림에서 자주색으로 표시된 곳)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두뇌 ‘특별 전담팀’들, 출처 : Dehaene. (2009), p. 74]


알파벳 같은 복잡한 문자 시스템이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난 것은 아니고 처음에는 주변의 사물을 본뜬 그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알파벳 A는 본래 뿔 달린 소의 모습을 본떠 ‘’로 기록하였고, S는 뱀의 모양을 그린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복잡한 문자를 갖고 있지 않던 고대인들은 주변의 사물을 알아보는 뇌 부위(위 그림의 가장 바깥 부분)를 활용하여 원시 글자를 식별했을 겁니다. 문자를 익히기 시작하는 어린아이도 그 부위를 활용하므로 아이에게 글은 처음엔 그림으로 인식되죠.

그런데 문자 시스템이 점차 복잡해지면서 해당 두뇌 부위가 점차 확장되었고 점차 얼굴을 알아보는 두뇌 부위 쪽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 같습니다. 사람이 눈으로 가장 빨리 알아보는 대상은 얼굴입니다.

오랜 옛날, 앞에서 다가오는 이가 내 친구인지 적인지를 알아보는 속도에 생사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죠. 우연인지 필연인지 글을 읽기 위한 두뇌의 ‘특별 전담팀’이 얼굴 인식 센터와 겹치면서 인간은 글을 읽는 데 있어 놀라운 속도와 효율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그림문자는 점차 복잡하고 체계적인 문자 시스템으로 변했고, 인간의 두뇌는 놀라운 적응 능력을 발휘하여 빛나는 속도로 글을 읽을 수 있는 부위를 개발해냈습니다.


Good morning처럼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사이트워드(sight words: 한눈에 자동적으로 의미와 소리를 알아보는 단어나 구 단위의 덩어리를 말하며 ‘일견 단어’라고 번역합니다)로서 저장되는 이 ‘특별 전담팀’의 실력은 실로 대단해서 1초당 약 27단어(글자가 아닙니다!)까지도 인식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실험 결과 밝혀졌습니다(단, 안구의 움직임이라는 물리적인 제약이 있을 경우에는 초당 약 8단어, 즉 1분에 약 500개 단어를 인식하는 게 한계입니다).




 ->  단어 인식 특별 전담팀을 개발시키는 ‘다독’

[언어 처리를 담당하는 두뇌 속 ‘고속도로’들, 출처 : Kandel et al. (2013), p.435]


두뇌 속의 특별한 팀을 개발하는 비결은 ‘횟수’와 ‘세기’입니다. 신경회로에 얼마나 자주 전기신호가 흐르게 만드느냐(빈도), 그리고 얼마나 강한 신호가 흐르느냐(강도)에 따라 사람의 두뇌에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아이의 두뇌 속에 단어를 알아보는 특수 영역을 개발시키는 유일한 방법도 그 신경회로에 신호가 자주 흐르도록 하는 것이죠. 요컨대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면 자연스레 길이 생기듯 많이 읽으면 두뇌 속에 길이 열리고 길이 모이는 곳에 ‘센터’가 생깁니다.


재미가 없는데도 많이 읽기는 어려운 법이므로 영어책을 즐겁게 많이 읽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스토리가 담긴 책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또 한 가지는 어휘력입니다.

영어 단어 분야 전문가들에 따르면 쉬운 난이도의 성인 대상 소설은 최소 4000단어 수준의 어휘력이 요구되며, 책 속에 등장하는 단어의 98%를 알아야 읽기를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만일 한 페이지에 대략 300단어가 들어 있는 책을 읽는다면 모르는 단어가 6개 내외 정도여야 즐기면서 많이 읽기가 가능하다는 뜻이죠. 소리를 중심으로 하는 ‘S, A, I’ 단계를 충실하게 거친 학습자라면 대부분 어렵지 않게 도달해 있을 수준입니다.


많이 읽기를 꾸준히 실천하면 두뇌의 신경회로가 탄탄해지고 그 회로로 연결되는 특별 팀이 꾸려져 아이의 두뇌에 물리적이면서도 동시에 질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즉, 많이 읽으면 단어 인식 전담팀이 두뇌에 생겨나므로 한눈에 척척 알아보는 어휘와 단위가 증가하고, 이렇게 되면 읽은 글 속에 담긴 정보를 종합해서 이해하는 질적인 차원의 도약이 가능해집니다.

‘영어두뇌’가 개발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텍스트 속을 유유히 헤쳐 나가며 시간적 여유를 누리게 되죠. 이 여유란 글을 빠르게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생기는 ‘인지적인 자유’를 뜻합니다.

아이들의 두뇌는 0.1초 정도에 불과한 시간적 여유 동안에도 은하계 끝까지 다녀오고 과거와 미래로의 시간 여행을 자유롭게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런 아이는 문자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글을 장악해 정보를 흡수합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듯이 아이는 글의 존재를 잊고 책 속을 헤엄치며 영어의 바다를 자유로이 항해합니다. 반면에 문자를 다스리지 못하는 아이는 물에 익숙하지 않은 생물이 물에 빠진 것처럼 같이 가면 갈수록 힘이 드니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면 머지않아 포기해버릴 확률이 급격히 높아집니다.

많이 읽기를 즐기지 않는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 정도의 아이는 1년에 대략 10만 단어 정도를 읽고, 평범한 학생은 100만 단어를 읽지만, 능숙하고 즐겁게 많은 책을 읽는 아이는 약 1,000만에서 5,000만 단어까지도 읽을 수 있다고 합니다.

1년 내내 달랑 책 2권 읽는 아이와 수백권 읽는 아이의 지적 능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막대한 차이가 발생하리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  ‘영어두뇌’ 만들기가 필요한 이유
대한민국에서 영어교육 사교육비로 매년 지출하는 비용은 연간 약 19조원입니다. 이처럼 자녀의 영어교육에 투자하는 부모들의 열정과 정성은 세계 어느 곳 못지않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 실력은 60개 국가 중 ‘보통’ 수준인 24위에 머물러 있습니다(EPI 보고서).

영어두뇌를 만든다는 건 가능한 한 모국어에 가깝게 영어 처리 영역을 형성시키는 일입니다. S.A.I.L. 같은 최적의 방법으로 영어의 ‘신경 고속도로’를 뚫어주면 도서관에 앉아 토플·토익 책만 들이파느라 정작 중요한 공부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대학생들도 줄어들 거라 봅니다.
- 박순의 영어 두뇌 만들기 ⑤편 끝

 

영어 사교육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지만 정작 외국인을 만나면 절절매는 현실이 ‘대한민국 영어의 현주소’입니다. 그 괴로움을 잘 알기에 내 아이만큼은 영어로 고통받지 않길 바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입소문난 영어 교육법을 따라하지요. 그런데 뭔가 조금 아쉽지 않던가요? 왜 이런 교수법이 좋은지, 그렇게 따라하는 게 정말 맞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있지 않던가요? <박순의 영어두뇌 만들기>에서는 ‘외국어로서’ 영어를 학습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효과적인지 신경학적 관점에서 분석했습니다. <박순의 영어두뇌 만들기> 5편은 ‘영어두뇌’를 만들기 위한 세부 전략인 S.A.I.L 학습법 중 네 번째 키워드에 해당하는 ‘L: Read a Lot(많이 읽기)’입니다.

Credit Info

기획
한보미 기자
박순
일러스트
이현주

201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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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미 기자
박순
일러스트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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