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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희의 여행육아

여행은 아날로그적으로!

On September 29, 2017 0

 



요즘 같은 세상에 여행처럼 아날로그적인 행위가 또 있을까? 우리는 직접 짐을 꾸려야 한다. 길을 걸어야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더듬더듬 자신을 소개해야 한다.

잘 모르는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낯선 맛을 음미해야 하고, 생소한 샤워기 아래서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머리를 감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땡볕 아래에서 줄을 서거나 상점에 들어가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을 일일이 뒤적거리는 일도 예사다.

요컨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평소 클릭 몇 번으로 필요한 일을 완수하고 물건을 눈앞에 배달시키는 마술을 실컷 부려대다가, 여행을 하며 갑자기 가장 아날로그적인 체험들 속으로 풍덩 빠진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좋은 여행을 할까?’에 대한 답도 사실은 여기에 있다. 아날로그적인 것을 즐기면 된다. 아침에 (휴대폰 알람이 아니라) 새소리를 들으며 일어나서, (네이버 뉴스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얀 면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연다.

창문 밖 커다란 나무 그늘에서 또 다른 여행자가 버터를 곁들인 빵과 커피를 마시고 있다. (밤에 온 카톡에 답을 하지 말고) 그의 옆자리에 앉아 ‘굿모닝!’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나도 따뜻한 빵을 집어 잼을 바르면서 (검색이 아니라) 수첩을 열어 오늘의 목적지를 확인하고, 가기 전 설레는 마음을 실컷 느낀다. (다시, 버스 시간을 검색하지 말고) 숙소 주인에게 버스 시간을 묻는다.

그리고 (버스 시간에 맞춰 뛰지 말고) 천천히 걷는다. 이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가 있을 것이다. 이 여행은 가장 느리고 가장 비효율적일 것이다. 때문에 더 많은 것들이 내 여행 속으로 들어올 것이다.

예쁜 고양이를 쓰담쓰담 하는 일, 잘생긴 이웃 청년의 윙크, 꽃집에 새로 도착한 꽃향기…. 클릭으로 처리하는 ‘간접’ 체험의 일상에서 벗어나 나는 더 많은 것들과 ‘직접’ 찐하게 만나기 위해 이 여행을 떠나왔다!


‘어떻게 하면 아이와 좋은 여행을 할까?’에 대한 답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이와 하는 여행이야말로 특히 아날로그적이어야 한다. 아이는 몇 걸음 걷다 말고 비둘기에게 말을 걸어야 하니. 몇 걸음 걷다 말고 아이스크림의 유혹에 빠질 테니.

그래서 아이와 여행할 때 엄마는 가장 느슨하고 비효율적인 일정을 짜둬야 한다. 평소의 디지털식 일 처리 속도를 버리고, 흙을 만지고, 바람을 느끼고, 물병의 물을 나눠 마시며, 손끝으로, 발끝으로, 수공예품을 만들 때처럼 한 땀 한 땀 잣고 엮는 아날로그 일정을 선택해야 한다.

아들이 두 돌을 넘겼을 때 처음으로 놀이동산에 갔다. 함께 간 엄마들은 유모차부터 빌려와 아이들을 태웠다. “얘들한텐 너무 넓고 입장료도 비싸다. 빨리빨리 밀고 다니며 보여줘야 한다.”

나는 양해를 구했다. “그럼 따로 다녀야겠다. 우리는 아이 걸음으로 볼 수 있는 만큼만 보고 가겠다.” 그날 아들은 놀이동산을 전부 훑진 못했지만 자기가 관심이 가는 것에서 자기가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렀다.


여행을 떠나며 세상 전부를 보여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야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이것을 먼저 챙겼으면 한다. 가기 전, 엄마가 세상을 알고 싶은 호기심을 지녔는지. 가서는, 엄마가 세상과 교류하는 기쁨을 느끼고 있는지. 돌아와서는, ‘내 아이’뿐 아니라 ‘그곳에 사는 아이’까지 함께 잘 살아가는 세상이기를 바라는 큰 어미로 한 뼘 자라났는지. 이 세 가지는 여행이 아날로그적일수록 더 가능해진다.

이 세 가지만 잘 챙긴다면 엄마는 필시 좋은 여행을 한 것이다. 엄마가 좋은 여행을 하면, 아이도 반드시 좋은 여행을 한다.

 

 >  오소희 씨는요…

여행 작가이자 에세이스트. 13년 전 당시 세 살이던 아들 중빈이를 데리고 터키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라오스, 아프리카, 남미 등 세계 구석구석을 누볐다. 학교에서 체득한 지식보다 길을 걷고, 보고, 체감하는 여행의 힘을 믿는다. 블로그(blog.naver.com/endofpacific)에서 그녀의 여행기를 만날 수 있다.

Credit Info

기획
황선영 기자
오소희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www.gettyimagebank.com)

2017년 09월호

이달의 목차
기획
황선영 기자
오소희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www.gettyimageba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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