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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이른 여름휴가

On July 07, 2017 0

 


나도 한때는 여름이면 록페스티벌을 검색하고, 음악에 맞춰 신나게 시간과 돈을 탕진한 뒤, 근처 펜션이나 캠핑장에서 밤새 고기 굽고 술을 마시던 청춘이었다.

아내도 한때는 여름이면 시원하고 한적한 북카페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소설 한 권을 독파하던 청춘이었다. 우리 둘은 결혼했고, 지금은 애가 둘이다. 아직 30대이니 청춘의 피는 여전한데, 애 둘의 부모이니 그 피가 동맥경화가 온 듯 돌지 않는다.

우리 둘은 아이 둘을 데리고 갈만 한 피서지를 찾고 있다. 분명한 것은 록페스티벌이나 북카페는 아무래도 어렵겠다는 일상화된 체념이다. 이른 여름휴가로 제주도를 택한 것은 아이 데리고 다니기 그나마 불편하지 않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이제 네 살과 다섯 살의 문턱을 지나가는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로 나가기에는 우리 부부의 여행 경험이 너무나 부족했다. 제주도는 일단 말이 통하고, 운전도 직접 할 수 있고, 음식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부푼 마음에 예약은 진즉에 해치웠지만 날짜가 다가오자 왠지 모를 긴장감이 고개를 들었다. 별 탈 없이 다녀올 수 있을까, 아이들은 즐거워할까, 어디 아프지나 않을까….

고향 집에 가거나 다른 가족들과 함께하는 여행이 아닌, 우리 넷이 이렇게 멀리 떠나는 건 처음이었으니 설렘보다 걱정이 큰 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제주도에는 가족 단위 여행객이 많았다. 공항에서부터 기내에 들고 탈 수 있는 유모차가 눈에 띄었다. 저가 항공 여객기 곳곳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우는 소리, 뽀로로 등등의 아이 달래기용 동영상 소리가 들렸다.

제주공항 도착 후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둘째와 안아 달라 떼쓰는 첫째와 자기 덩치를 자랑하고 서 있는 여행가방 여럿을 끌고 렌터카 셔틀버스를 찾아야 했다. 차를 빌리려 대기하는 동안 아이가 똥을 누었고, 당연하게도 기저귀를 갈 시설은 없었다.

여차저차 처리를 하고 카시트 대여 업체로 차를 몰았다. 아이들은 빌린 시트가 어색한지 낮잠을 이루지 못하고 칭얼거렸다. 검색해 찾아간 고기국수 집에서 둘의 낮잠은 폭발했고 여러 고난 끝에 호텔에 체크인할 수 있었다.


제주도에는 아이들을 위한 테마 박물관이 몇 있다. 우리는 그중 일본에서 건너온 오랜 역사의 캐릭터 박물관 하나와 냉장고 나라를 지키는 의리 있는 친구들 캐릭터로 꾸민 공원 한 곳에 가기로 했다.

그것들이 왜 하필 제주도에 있어야 하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우리 같은 아이 부모에게는 적당한(피할 수 없는) 선택지였다. 그곳에는 우리 같은 처지의 부부가 많았는데, 다들 피가 돌지 않는 듯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는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아이를 쫓아다니며 이런저런 포즈를 요구했다. 대부분 아이가 가만히 있질 않아 촬영이 쉽지 않았다. 입장료는 비싸게 느껴졌고 어떤 시설물은 조악했다.

사진을 한 장이라도 건지는 게 우선이라 아이들이 좋아하는지 어쩐지 살필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지쳐갈 즈음에 놀이시설 뒤편 카페에 들렀는데 시원하게 트인 제주 남쪽 바다가 나타났다. 우리 부부는 잠시 아이들 손에 주스 하나씩을 맡겨두고 나란히 바다를 바라보고 앉았다.

별다른 감상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저 시원했다. 하나는 매일 반복되는 육아와 가사 노동에 지쳤고 다른 하나는 역시나 반복되는 출퇴근과 야근에 지쳤을 것이다. 아이들은 “우와, 바다다” 한 번 외치더니 한라봉 주스를 꿀꺽꿀꺽 잘 삼키고 있었다.

여행이라고 해야 모두 아이들 위주의 일정이다 보니 여행이 아닌 고행이기도 하지만 우리 이 정도면 잘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잔파도처럼 잠시 스치는 걸 보니 이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았다.


앞으로 해마다 아이들과 여행을 다녀야 하겠지만, 그것이 부모의 기쁨이겠지만, 덧붙여 작은 다짐도 해본다. 무작정 아이들 위주는 아닌 일정이어야겠다고. 부모인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는 휴가도 필요하다. 제주도든 남태평양이든 그 어디든 부모인 우리의 피를 돌게 할 여름휴가가 필요하다.

서효인 씨는요…

서효인 씨는요…

시인이자 은재·은유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아빠. 남들보다 염색체가 하나 더 많은 첫째 딸 은재를 키운 기록을 담은 산문집 <잘 왔어 우리 딸>을 펴냈다. 아이 키우는 부모들이 주목한 사회적 이슈를 그만의 시선으로 전달하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황선영 기자
서효인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www.gettyimagebank.com)

2017년 07월호

이달의 목차
기획
황선영 기자
서효인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www.gettyimageba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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