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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브로 직조한 세계 몬도 그로소

오사와 신이치의 또 다른 이름인 몬도 그로소(Mondo Grosso)는 이탈리아어로 `커다란 세계`라는 뜻이다. 최고의 음악 프로듀서이자 디제이인 그는, 심장박동에 정확히 포개지는 비트와 온몸의 신경을 타고 흐르는 그루브로 자신만의 음악적 세계를 구현해낸다. 치밀한 사운드를 설계하는 장인, 오사와 신이치와의 인터뷰.

UpdatedOn March 21, 2006

 빛을 완전히 거두어 시선을 아무리 움직여도 어둠밖에 잡히지 않는 공연장. 긴장을 고르는 청중의 숨소리가 아득하게 들린다. 이때 객석을 향해 몇 줄기 조명이 꽂히듯 던져지고, 사방으로 어지럽게 움직이던 빛은 무대 위 한 지점에서 우뚝 멈춰 선다. 이제야 한 사내가 눈에 들어온다. 그는 건성으로 하는 손인사처럼, 자신의 주위에 둘러서 있는 육중한 장비들을 능숙하고 무심하게 건드리기 시작한다. 기기에 연결된 전선을 타고 흘러와 스피커를 통과한 뒤 공기 중으로 도약하는 비트는 쿵쾅거리는 심장에 대고 주먹질을 하는 것 같다. 유전자에 세상의 모든 리듬을 기억한 이종(異種)의 생물처럼 보이는 이 남자에게, 사람들은 비명 같은 환호를 보낸다. 몬도 그로소, 즉 오사와 신이치의 공연은 이런 식이다.

약속 장소였던 시부야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그는 무대 위에서의 모습과는 다소 느낌이 달랐다. 스키니 진을 피부의 일부인 듯 감고 있는 마른 다리로 휘청휘청 걸어와, 까무잡잡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그려 인사했다. 천장이 높은 공연장을 완전히 제압하던 그 남자와 달리, 체구가 작고 태도가 온순해 보였다. 떠들썩한 활기가 훅하게 느껴지는 무대 한가운데보다 움직임과 소리가 간소한 풍경에 잘 어울릴 사람 같았다. 하지만 생각이 분명해 보이는 두 눈은 여전히 강한 인상이다. 결코 말이 많지는 않았다. 인터뷰 시작 즈음에는 묻는 내용에만 입을 열었으며, 그나마도 대답이 간결했다. 하지만 대화가 진행되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던 자세는 점점 편안해지고 있었다. 그는 어떠한 경계심도 없이 모든 종류의 음악에 귀를 열고 있으며, 음악은 이미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렸다고 이야기했다. 이제 얼굴에 걸친 웃음이 좀 더 분명해졌다.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들러본 적이 있다. 웹에 직접, 그것도 자주 글을 쓰는 것 같았다.

소소한 일상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식이다. 다른 아티스트들은 사적인 생활, 혹은 음악 작업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는 게 보통이지만, 나는 비교적 꼼꼼하게 글을 적는 편이다.

사실 항상 당신이 꽤 무뚝뚝하고 비밀스러운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얼굴을 드러내는 사진을 찍거나 인터뷰를 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그래서 일상을 친절하게 기록하는 모습이 다소 의외였다.

그런 오해는 비단 내 경우만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일 것이다. 다른 뮤지션의 경우에도, 음악이나 몇몇 사진에서 노출된 이미지와 그 사람 자체는 서로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생각을 글로 보게 된다면 그에 대한 느낌은 많이 바뀔 수 있다고 본다.

글 쓰는 것은 좋아하나?

최근 2년 여 전부터 흥미를 갖게 됐다. 인터넷 덕분에 예전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된 듯하다. 내가 워낙 악필이라서(웃음).

예전 한국 공연도 언급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몇 차례 공연을 가진 적이 있는데 어떤 느낌이었나?

일본과 크게 다른 점은 없다. 뭐랄까, 한국 사람들은 일본 클럽에 대해 뭔가 다른 것을 기대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차이를 못 느끼겠더라. 물론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다.

무대에 오를 때의 기분은 어떤가. 항상 특별한 희열을 느끼는가?

디제잉을 할 때 말인가? 음, 그보다는 긴장을 한다. 찾아온 사람들은 많은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물론 공연을 진행하다 보면 점점 다른 생각을 비우고 그에 몰두하게 되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을까?

사실 끝나고 나면 전부 잊어버리는 편이다. 그래도 한국에서 2004년 12월 31일에 했던 공연은 기억할 만했다. 내가 했던 디제잉 중에 가장 많은, 아마 4, 5천 명 정도의 인원이 모였으니까. 영국 DJ인 피트 통과 함께 했는데 좋은 콘서트였고, 즐거웠다.

디제잉을 하는 것 외에, 단순히 클러버로서 즐기기 위해 클럽에 가는 경우도 있나?

가지 않는다. 하하.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롤링스톤스의 기타리스트인 키스 리처드도 개인적으로 라이브 하우스를 다니지는 않는다고 하더라. 그와 비슷하지 않겠나? 싫어하지는 않지만 일부러 찾는 경우는 없다.

한국에서는 <Next Wave> 앨범에서 보아와 함께 작업한 ‘Everything needs love’가 많이 알려져 있다.

곡이 먼저 완성된 상태에서 참여할 가수를 찾던 중이었다. 그때 보아 쪽에서 그녀 앨범에 리믹스를 부탁한다는 연락이 왔다. 의뢰받은 곡을 들어봤는데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리믹스 작업을 수락하며 ‘Everything needs love’의 보컬도 함께 제의했던 것이다. 무척 만족스러운 작업이었다.

혹시 한국 예술계의 분위기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있는가? 한국에서는 아티스트에게 끊임없이 한국적인 것을 요구하고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경우는 어떤지 궁금하다.

글쎄, 일본의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할 것이다. 일본은 예술에 있어, 특히 음악의 경우가 더욱 그러한데, 일본 문화의 색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좋은 뜻으로 말하자면 경계심 없이 다양한 세계의 음악을 듣고 영향을 받으며, 피드백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신들이 지닌 음악의 역사를 잘 모른다는 뜻이 될 수도 있겠다.

내가 외국인이라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당신의 음악에서도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일본적인 느낌은 찾을 수 없다.

하하, 나 역시 그렇다.

몬도 그로소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종종 월드 뮤직의 분위기가 많이 묻어난다. 그에 대한 관심은 오래된 것인가?

특별히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없다. 어떤 뜻으로 월드 뮤직이라는 말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시대의 모든 음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월드 뮤직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세계의 음악이라는 뜻인데, 그건 결국 빌보드로 대표되는 미국 팝 이외의 음악을 뭉뚱그려 지칭하는 말이다. 아주 싫어하는 단어다. 미국인이 붙인 이름이고, 그들의 차별주의가 드러나는 말이니까.

하하, 당신 말이 맞다. 무안하니 재빨리 다음 질문. 일본은 상대적으로 한국에 비해 음악 활동을 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한다. 한국의 경우 음반 불법 복제도 많고, 무엇보다 음반 판매량이 많지 않다. 일본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지만 나와 같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 즉 디제이를 한다거나 하는 이들에게는 역시 어렵다. 정말 한정된 사람 이외에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 힘들다는 건 마찬가지니까. 디제이에게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곳은 여전히 유럽이나 미국 쪽이 아닐까 한다.

당신처럼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그런 어려움을 느낀다는 말인가?

하하. 세계적으로 유명한지는 모르겠지만 마찬가지로 어려움이 있다. 일본에서 음악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좋아하기는 한다. 누가 뭐래도 내가 태어난 곳이니까. 하지만 지역적 핸디캡 같은 것은 분명 존재한다.

단지 나는 디제잉이나 내 앨범 작업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뮤지션을 위한 작곡 혹은 프로듀싱 역시 병행하고 있다는 게 다른 디제이와 다르다고 하겠다. 대중적인 팝에도 관심이 있는 편이고. 그러니까 트랙 메이커라기보다는 송라이터의 측면이 있다. 디제잉만을 했다면 일본을 벗어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당신이 본명 대신 사용하는 이름인 몬도 그로소(Mondo Grosso)는 이탈리아어로 ‘큰 세계’라는 뜻이다. 일본 음악 환경에 대한 갑갑함이 어느 정도 드러난 것일까?

처음에 네 명으로 구성된 밴드로 음악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씩 떠나고 결국 혼자 남았지만. 그래도 이미 네 장 정도의 음반을 발표한 시점이었기 때문에 밴드 시절의 이름을 계속 사용하기로 한 것뿐이다.

밴드를 만들던 당시 내가 살던 곳이 교토의 작은 마을이었다. 하나의 반어적인 장난 같은 거다. 이렇게 작은 곳에서 음악을 하고 있지만, 이름만은 ‘커다란 세계’라는 식이다. 당시 깊은 뜻은 전혀 없었다. 다소 시니컬한 태도일 수도 있겠고.

그룹으로 활동할 당시와 혼자 작업하는 음악은 얼마나 달라지게 됐는가?

그룹 혹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음악의 스타일이라는 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듣는 쪽에서 새로운 음악이 등장하면 그쪽으로 귀를 기울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만드는 사람도 새롭고 흥미로운 느낌을 발견하면 시도해보고 싶어진다. 하지만 내 안의 기본 취향은 그대로다. 스타일은 바뀌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음악이 변화했다는 말도, 바뀌지 않았다는 말도 모두 맞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좀 더 오래전 이야기를 들어보자. 처음으로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됐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때 브라스밴드에서 트럼펫을 불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 그게 처음일 것이다. 중학교에 다니면서는 학교 수업 시간에 클래식 기타를 배우게 됐다. 나에게 현악기가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었다.

트럼펫이나 클래식 기타로 걸음을 뗐다는데, 지금의 음악과는 느낌이 너무 다른 것 아닌가? 이후 음악에 대한 관심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왔다고 생각하나?

기본적으로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그건 여기서 전부 말하기에는 너무 긴 이야기다. 한 가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1980년대, 그러니까 열여섯 살 때부터 몇 년간 뉴웨이브나 펑크에서 받은 영향이 대단히 크다는 것이다. 하나의 장르로 생각되기 쉽지만 설명이 간단하거나 명료하지 않은 음악 스타일이다. 그 안에는 여러 종류의 음악이 있다. 재즈, 록, 펑크, 솔, 무엇이든지 간에. 거기서부터 음악을 알아가기 시작했으므로 나의 음악적 뿌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뉴웨이브라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그 시기에 음악을 들었던 건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런 식으로 모든 장르의 음악을 수용하는 무브먼트가 없지 않나.

당시에 특별히 좋아하던 아티스트는 누구인가?

그다지 널리 알려진 사람들은 아니어서 모를 수도 있겠다. 제임스 챈스 앤 컨토션스(James Chance & Contortions), 영국 밴드인 더 팝 그룹(The Pop Group), 어 서튼 레이시오(A Certain Ratio) 등이다.  펑크 혹은 뉴웨이브 계열의 음악들이다.

음, 역시 하나도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여러 요소가 혼재된 음악을 들었고, 지금 당신의 음악에도 다양한 느낌이 섞여 있다. 경계를 허무는 작업에 흥미가 있나?

스스로 그런 식의 경계를 없앤 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이미 오래전에 그에 대해서는 잊었다. 내 안에는 이미 어떠한 경계선도 없다.

음악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저 나는 음악을 너무 좋아하고, 내게서 그것을 빼버리면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어 버린다. 이미 나의 일부이기 때문에 음악이 있고, 그리고 내가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직업, 즉 일로서 음악을 평생 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내가 원하더라도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고. 그렇더라도 아마 어떤 형태로든 음악은 그만두지 않을 듯하다.

<Next Wave> 앨범을 발표한 지도 시간이 좀 흘렀다. 다음 음반 계획은 없나?

아직은 잘 모르겠다. 매번 음반 작업을 할 때마다 ‘이걸로 마지막이다’하는 생각으로 임한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 그런 기분이 된다.

단지 지금 관심이 가는 것은 영화음악을 한다든가, 몬도 그로소라는 틀 이외의 음악이다. 프로듀싱에도 흥미가 없어졌다. 전과 같은 형태의 음악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 음악에 흥미가 있는 줄은 몰랐다.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나?

원래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이탈리아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와 음악가 니노 로타의 작업처럼, 영상을 보면 음악이 생각나고 음악을 들으면 영상을 떠올릴 수 있는, 상호관계가 유기적인 그런 음악을 해보고 싶다.

그렇다면 영화를 자주 보고, 그 음악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겠다. 최근 본 작품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가장 최근에 극장에서 본 것은 <게이샤의 추억>이다. 1월쯤이었는데, 그 이후로는 극장을 찾지 못했다. 영화음악은, 음, 괜찮았다. 서양인의 작업이지만 충분히 일본적인 색깔을 느낄 수 있었고,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그런데 그다지 기억에 남아 있지는 않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꼭 별로였다는 투로 들릴 것 같다.

집에서 DVD로 본 <이터널 선샤인>도 기억에 남는다. 음악도 마음에 들고, 전반적으로 무척 느낌이 좋았다. 코기스의 곡인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s’를 벡이 다시 불렀는데 영화에 무척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작품 자체보다 음악이 더 좋았던 영화일 수도 있겠다.

몬도 그로소의 음악 중에도 그처럼 멜로디의 감정이 섬세하고 이야기를 품고 있을 법한 인상의 곡들이 있다. ‘1974 Way Home’은 무척 좋아하는 음악이다. 제목부터 뭔가 의미를 담고 있을 것 같다.

음,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특별한 내용이 있는 곡은 아니다. 내가 자란 곳이 시가현의 오우치시라는 곳이다. 정말 자연이 아름답고, 산으로 둘러싸인 데다 냇물이 흐르는 진짜 시골이다. 원래 멀어지고 나서야 처음으로 고향의 좋은 점을 깨닫게 되지 않나. 그런 향수 어린 이미지의 함축인 것이다. 타임머신이라도 있다면 정말 1974년의 하교길로 돌아가고 싶다는, 뭐 그런 느낌의 음악이 아닐까.

실망하지 않았다. 좋은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공연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3월 25일이다. 장소는 쉐라톤 호텔이고, 단독 공연이다.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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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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