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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자. 날자

나 이런 편지를 받았다.

UpdatedOn December 23, 2011


1. 놀자
나 이런 편지를 받았다.
‘편집장의 글을 읽고 이런 느낌을 받았어요.
엄마가 미안하다. 유학은 나중에 보내주마.’
지난달 이 지면에 썼던 글 때문이다. 
정확히 ‘에이어워즈 행사에 많이 초대하고 싶지만 여건이 안 돼 죄송하다’고 썼었다.  
나의 부채 의식을 정확히 읽어낸 독자다.
후두둑. 더 미안해져버렸다.
마음만 부자인 엄마가 돼버렸다.

나 마음을 꺼내 쓰다듬었다.
“그래요, 아드님들.
가끔 또래도 계시던데, 제가 <아레나> 지면에선 대장이니까
그냥 이렇게 편하게 말할게요.
사실 저 미안한 마음이 안타까운 마음보다 크진 않아요.
같이 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심통이 났었거든요.”
정말 그랬다.
아들 밥해줄 시간인데
밭도 매야 하고 땅도 파야 해서 화딱지가 났었다.

나 나눌 게 많다.
“그래요, 아드님들.
<아레나>가 흥겹게 움직이면, 그 흥이 재잘대는 공기를 타고 아드님들 엉치뼈를 콕콕 찌를 거예요. 이게 그 유명한 베르누이 법칙과 일맥상통하는 건데… 여튼 공기가 가벼워져서 아드님들은 의자를 박차고 날아가게 되는 거죠. 정확히 이걸
에이(     )토스테론 증상이라고 하죠.” 
이건 가족력이라 같은 피라면 백 퍼센트 같은 증상을 보인다.
우리가 좋아하는 걸 좋아하고 우리가 궁금해했던 걸 궁금해하는 바로 그 사람이라면 당연히 에이토스테론 증상에 시달릴 거다.
같은 피가 아니라면 몸에 별 반응은 없을 거다.
심각할 거 없다.
맘 맞으면 같이 놀고,
안 맞으면 같이 안 놀면 되고.

나 건넬 게 많다.
2012년의 첫 달.
달뜬 맘으로 가족의 징표를 만들었다. 
1년 365일 우리를 칭칭 동여맬 부적 같은 걸 만들었다.
그게 아드님들이 전해 받은 검은색 다이어리다.
그게 손안의 갤러리가 된다면 신날 것 같았다. 
그래서 예술가 13명의 손을 빌려 미니 화집처럼 만들었다.
쓰고 또 써도 흠집 하나 안 날 튼튼한 놈이면 싶었다.
그래서 아드님 손을 떠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군말을 섞진 않았다. 여백을 채우는 건 아드님의 몫이라 여겼다. 
하지만 겉장엔 큼지막한 글씨를 박았다.
‘Take your pleasure seriously’
그림자가 폴짝거리며 따라오는 느낌이다.
이 마음 품고 같이 놀자.
우리 방식대로 놀자.

2. 날자
나 이런 질문을 받았다.
“나는 왜 못 날아요, 엄마?”
어, 어, 그러게 말이다.
평생 이런 질문 받게 될 줄 몰랐다.
몰랐으니 답안을 준비하지도 못했다.

나 이런 생각을 했다.
“My son, you are just at the beginning.
Just follow your dreams
wherever they go.”
앤서니 퀸처럼 긴 호흡으로 말하리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런 철학적인 말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아들은 세 살이다. 

나 이런 생각도 했다.
“그래, 아들아.
새들이 빠르게 움직이면, 윗부분 기압이 순간 낮아진단다. 그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기압이 높은 아래쪽 공기가 새의 몸을 위로 들어 올리게 돼. 이런 걸 베르누이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음… 이 법칙이란, 기체의 속력이 빠르면 기압이 낮아진다는 거지.”
요한 볼프강 파울리 박사처럼 냉철하게 원리를 짚어주고 싶었다.
또한 그러지 못했다.
논리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아들은 아직 기차와 기(가)차다를 구분하지 못한다.

결국 나 이렇게 말했다.
“날고 싶니?”
“네에.”
“정말 날고 싶니?”
“네에에~.”
“그래, 날자.”
“….”
“비행기 타자.”
세 살 아들과 마흔세 살 엄마는 그렇게 함께 날았다.

나 생각한다.
아들은  
하늘을 나는 원리를 배우고 싶은 게 아니다. 
그저 날고 싶은 거다.
그래, 그렇게 믿고
날자.
우리가 날 수 있는 방식대로 날자.

p.s
지난달 개인 메일 주소를 공개한 후 편지를 수두룩하게 받았다. 콕콕 찔리는 말도 많았고 팍팍 기운 나는 말은 더 많았다. 미천한 레터를 마음에 차곡차곡 보관하고 계신다는 이무성 님, 네이버 생중계를 제안해주신 신재인 님, 저를 ‘신의 한 수’라 불러주신 gto3082님, 라이프스타일을 움직이는 씨앗이 잡지라 생각한다고 적어주신 박세민 님
……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찡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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