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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너머

무언가 있다. 잘 알 수도 있고 전혀 모를 수도 있는. 그걸 찾아다녔다. 그리고 일곱 명의 남자에게서 빛 같은 걸 봤다. 사라질 수도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는. 2012년을 이들에게 건다

UpdatedOn December 23, 2011



" 최효종의 개그 - 최효종은 작년 가을 <아레나>와 인터뷰했다. 3개월 만에 그를 다시 만났다. 연말 시상식이 열리기 전이었고 그가 헬리콥터에서 내려오기 전이었다. "

당신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쁘고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다.
나는 헬리콥터에 매달려 있다. 누군가 내 손을 잡고 있다. 만약 그 누군가가 손을 놓으면 떨어질 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하고 있는 개그가 지루해질 수도 있고 누군가 재미없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욕을 할 수도 있다. 나는 절대로 상처받지 않을 각오가 돼 있다. 내가 거품이란 것을 안다.
거품인지는… 모르겠다. 인기란 건 사람을 쓸쓸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바쁘게 산다. 어떤 위치에 올랐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을 많이 봤다. 가수도 그렇고 탤런트도 그렇고 개그맨도 그렇고. 그중 어떤 친구는 스케줄이 많으면 “그런 거 내가 왜 해?”라고 말한다. 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다. 또 언제 이런 날이 올지 모르니까.
이런 날은 또 온다. 수년간 <개그콘서트>를 봤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도 많이 봤지만, 2011년 가을의 최효종처럼 인기가 구름을 뚫고 올라간 건 못 봤다. 내려오는 데만도 한참 걸릴 것 같다.
시기가 잘 맞았다. 그리고 고소 건이 컸다. 그게 없었으면 ‘애정남’과 ‘사마귀 유치원’이 평범하게 재미있는 코너였을 텐데, 고소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어른들도 나를 많이 알게 됐다. 하지만 2012년에 누가 또 날 고소해줄 수는 없다. 고소 한번 하겠나?
광고도 많이 찍었다. 대한민국의 돈을 전부 끌어 모으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훨씬 많이 버는 사람이 있다.
돈을 많이 벌면 일하기 싫어지지 않을까? 개그맨이란 직업은 시청자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고되지 않나?
아이디어 회의만 없어도 좀 괜찮을 텐데. 돈을 많이 벌면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나는 해보고 싶은 게 많다. 앞으론 그 일에 대해 생각해볼 거다. 그걸 다 하고 난 후에는 이 일이 나에게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
유명해진 후에 여자친구에게 달라진 게 있나? 더 잘해준다든가?
없다. 오늘도 싸웠다.
아니 왜? 부자가 돼서 더 좋아하지 않나?
여자친구는 내가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진 것에 반응이 없다. 넉넉한 집안에서 자라서 그런 것 같다. 내가 바빠져서 오히려 싫어한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거 보고 예뻐서 쫓아갔었다고 들었다.
너무 예뻤다. 지금도 너무 예쁘고. 그래서 쫓아가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일이 많아도 일요일엔 스케줄 거의 안 잡는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만난다. 앞으로 더 잘해줄 자신 있다.
있는 남자의 자신감이란 이런 건가?
나는 술도 안 마시고 친구도 잘 안 만나기 때문에 돈 쓸 일도 없다. 집에도 일찍 들어간다.
‘애정남’과 ‘사마귀 유치원’ 둘 다 많이 익숙해졌다. 새 코너를 준비하고 있겠지?
준비는 끊임없이 한다. 매일 회의한다. 아직 구체화된 건 없다. 하지만 강박은 없다. 아까도 말했지만 누군가 손을 놓으면 내려올 수도 있는 거다.
<아레나> 독자들이 인터뷰를 읽을 때쯤이면 이미 1월이겠지만, 지금은 12월 초고, 연말 시상식이 열리기 전이다. 최효종은 유력한 수상 후보다.
그렇다. 무슨 상인가가 중요하다.
생각해둔 수상 소감이 있나?
없는데…. 작년에 신인상을 타서 올해는 담담하다. 아, 수상 소감 말할 때 사람들 이름은 말하지 않아야 할 것 같다.
왜?
작년에 진짜 고마운 사람들 중에 몇 명을 빼먹었다. 참 신기하다. 만날 보는 사람들인데 이름 말하는 걸 빼먹다니.
그 이름을 지금 불러보자. 다 적겠다.
변기수, <개그콘서트>의 쌍둥이 형제 이상호와 이상민, 안윤상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내게 늘 큰 힘이 돼준다. 작년에 이름 못 불러서 1년 내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미안하다.
인기가 많아져서 질투하는 사람은 없나?
아직은 괜찮다. 더 잘돼야지. 그런데 오늘 찍은 사진, 여태껏 찍었던 사진 중에 최고다. 정말 멋있다. 다른 데선 이런 포즈를 요구 안 한다. 개그맨 같은 포즈만 취해달라고 한다.
여기는 대한민국 최고의 남자들만 온다는 <아레나>의 하우스 스튜디오다. 그런데 오늘 수요일인데 나와 있어도 괜찮나? <개그콘서트> 회의할 시간, 아닌가?
조율하고 왔다. 다행히 많이 이해를 해준다. 항상 고맙다. 개그맨들한테는 어쩌면 이런 시간이 일생에 한 번밖에 없을 수도 있으니까.
이런 기회가 여러 번 올 거라니까. 그렇게 믿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평생 바쁠 줄 안다.
뼈가 있는 말이다. 우리가 약속한 시간이 다 됐다. 이제 어디로 가나?
삼성동 코엑스에 광고 찍으러 간다.
우리 3개월 만에 만났다. 그 사이 전 국민이 아는 스타가 됐는데, 최효종은 달라진 게 없다.
아니다. 요즘 자꾸 ‘연예인병’에 걸린다. 나도 모르게, 대스타가 된 것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안 되는데, 그러면 안 된다.
대스타는 올해 시상식에서 눈물을 흘릴 예정인가?
작년에는 아주 조금 눈물이 났다. 그런데 올해는 많이 날 것 같다. 아주 많이 날 것 같다. 물론 상을 받게 되면.
사회자가 말한다. “최효종 씨, 수상 소감 부탁드립니다.” 
지금 이 순간은 누구에게도 고맙지 않습니다. 오직 시청자 여러분과 네티즌 여러분께만 고맙습니다. 모든 게 여러분 덕입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강구룡의 디자인 - 강구룡은 그래픽디자이너다. 그의 작업을 보는 건, 일종의, 아는 사람만이 누리는 호사다. 그의 기학학적이고 이성적인 디자인은 뇌가 아니라 마음을 겨냥한다. 아이러니다."

2009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포스터를 보고,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한글 타이포그래피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2011년 10월에 있었던 의 포스터도 인상적이었다. 이 둘을 동일 인물이 디자인했다는 건 최근에 알았다. 웹에 누군가 당신의 작업을 포스팅하며 이렇게 썼다. ‘룰을 창조했다.’ 꼭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또래 친구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나는 내 걸 하려고 아등바등대는 것 같다. 표현을 안 하면 스트레스 받는 체질이다. 그래서 포스터도 만들고 도 기획했다.
의 포스터를 주변 사람들한테도 보여줬다. 물론 대단히 실험적인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왜 마음을 만졌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나는 영감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가 직관적으로 그리는 타입은 아니다. 선배 디자이너들은 그런 타입이 많다. 그런데 내 또래는 그런 걸 배척하는 세대다. 나는 프로세스를 모듈화시켜 알고리즘을 만드는 방식을 좋아한다. 설명서대로 따라 하면 누구나 같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순서도를 그리듯, 인풋 아웃풋 프로그램을 짜듯 작업한다. 선배들의 작업이 감성적이라면 내 작업은 기하학적이고 이성적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내 작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 안에서 감성을 발견한다.
맞아, 그거다.
기계로 만든 형태에서 뜨거운 아름다움을 느낄 때가 있다. 좀 변태 같은가? 예를 들면 맥도날드 영수증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거나, 수학 문제를 푸는 순서와 과정이 감성적이라고 받아들이는 거다. 또래 친구들 중에서도 내가 유난히 이런 걸 좋아했다. 아, 그리고 재밌는 게 있다. 포스터는 이성적인 과정을 통해 만들었고, 그래서 질서정연해 보이지만, 사실은 삐뚤삐뚤하다. 무슨 말이냐면, 나도 예전엔 컴퓨터로 선을 그리면 오차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허상이었다. 인쇄라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똑같은 건 없다. 색도 마찬가지다. 같은 농도의 빨간색으로 디자인해도 인쇄된 걸 자세히 보면 다 다르다.  
자신이 남과 다르다고 느끼나?
그렇지 않다. 나는 다만 생각한 걸 안 흘리고 표현하는 것 같다.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표현은 실력이나 능력보다는, 왜 표현해야 하느냐, 결국 자의식의 문제다. 자의식은 스스로 만드는 거다. 한 번은 누구나 잘 그릴 수 있지만 그걸 10년 동안 그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다. 스스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목적도 있어야 하고. 그런데 우리 쪽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그냥 보고 넘어간다. 예를 들면 좋은 영화나 시를 감상하고 넘어가는 거다. 표현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끝내지를 않고 표현에 대해 되풀이 생각한다. 그래야 작가가 되는 거다. 솔직히 지금 한 질문을 정확히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남과 다른 독특함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보다, 내가 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고 있다.
당신이 여자고 예뻤다면 지금 내가 안았을 거다. 2012년엔 어떤 작업을 할 건가?
컴퓨터로 하는 게 지겨워서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걸 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드로잉도 컴퓨터로 선을 긋는 게 아니라 손으로 그리고, 폰트도 직접 자르고 색을 칠해볼 거다.
은 2012년에도 하겠지? 처음에 어떻게 기획했는지 궁금하다. 홍보가 더 됐으면 많은 사람들이 보러 갔을 텐데.
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다. 친구들이랑 같이 시작했다. A4 용지를 많이 쓰니까 그걸로 뭔가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이라 돈도 없었고. 하지만 A4 용지는 안 비싸니까. 그게 발판이 돼서 2회 때부터는 휴렛팩커드에서 후원을 받았다.
사소하게 시작한 전시가 의미 큰 전시가 됐다.
A4 용지는 ‘지금’이라는 시대를 대변하는 도구이자 상징이다.
올해는 캘리그래피 작가와 만화가도 초대할 생각이다.
당신은 유연하다. 그래서 주목받는 디자이너가 됐을까?
이름이 특이해서 그런 게 아닐까? 구룡. 아홉 마리 용. 무협지 주인공 같다.
알렉세이 브로드비치를 좋아한다고 들었다. 전설적인 아트 디렉터가 되고 싶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그의 교육 방식이다.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면서 어떤 디렉션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를 놀라게 해라.” 사진가 만 레이가 콘트라스트가 강한 실험적인 사진을 찍은 것도 이 한마디 때문이었다.


"윤상현의 라디오 - 윤성현은 밤에 라디오를 듣는 외로운 사람들이 어떤 힘에 의해 서로 연결돼 있음을 아주 짧게 이야기했다. 긴 위로보다 따뜻했다."

연출했던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연출과 진행을 다 한 <심야심당>으로 밤 시간대 라디오의 오랜 관습을 허물었다.
<심야식당>이 시작된 2009년만 해도 새벽 2시에 방송 3사의 라디오를 전부 여자 아나운서가 맡고 있었다. 고전적인 의미의 심야 라디오였다. 부드러운 진행, 친절한 말투, 따뜻한 위로, 이런 것들이 중심인. 라디오에서 수십 년간 반복된 문법이었다. 그래서 나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고, 내가 지닌 냉소적이고 까칠한 부분을 부각시켰다. 목적을 갖고 한 일종의 롤플레이였다.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니까, 이런 진심이 청취자들에게 전해질 거라고 믿었다. 나중에 다른 방송사도 그 시간대 진행자를 남자로 바꿨고, 독설 진행자라고 할 수 있는 신해철 씨가 라디오에 복귀했다. <심야식당>이 기존의 관습에 돌을 던진 거다.
신해철의 방송은 몇 번 듣고 안 들었다. 독설도 좋고 불친절도 좋은데, 소통이 안 된다.  
그게 신해철 씨의 스타일이다. 말씀을 많이 하신다. 그분의 방식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으며 사람들의 사연과 이문세 아저씨가 해주는 이야기를 너무 좋아했다. 그런데 30대인 지금은 웬만한 라디오에서 DJ가 해주는 이야기가 구구절절 마음에 와 닿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멘트를 길게 하지 않았다. 길어야 2~3분. 1시간짜리 방송이었는데 멘트의 총량이 10분을 넘지 않았다. 멘트가 없는 날도 많았다. 나는 그러면서 사람들의 고민을 한마디로 환원시켰다. 한마디 말로 카타르시스를 주건, ‘그건 네 탓이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주건, 그래서 ‘진짜 잘못한 사람을 우리가 같이 욕하자’ 선동을 하건, 관습적인 어휘가 아니라, 한마디로 뭔가를 줄 수 있는, 그런 방식을 고민했다. 다행히 들어주시는 분들이 ‘불친절한 것 같은데, 진심이 있구나. 우리를 이해하는구나’ 혹은 ‘소통이 되는구나’라고 느꼈던 것 같다.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서 유희열의 ‘자뻑’ 캐릭터도 함께 조율한 건가?
방송 초기 어떤 프로그램이면 좋겠다, 정도의 간략한 코디네이션은 있었다. 하지만  희열이 형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하자고 이야기한 적은 없다. 라디오는 DJ의 매체다.
그 짧은 대화만으로도 유희열이 이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윤성현 PD랑 하는 거니까 조금 더 자유로워도 되겠어.’
우리는 비슷한 코드를 많이 공유하고 있었다. 음악 프로그램이니까 제일 중요한 게 음악인데 작가들, 나, 희열이 형이 좋아하는 음악이 서로 비슷했다. 음악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 이른바 문화라고 할 수 있는 것들도 촉이 비슷했다. 코너 짤 때도 긴 얘기가 필요 없었다.
언젠가 다른 인터뷰에서, 타 방송사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심야식당>과 비슷해지면 <심야식당>을 계속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2011년 가을에 <심야식당>과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이 종영됐다. 윤성현 PD가 어떤 방송으로 복귀할지 기다리는 사람이 꽤 많다.
청취자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콘텐츠 제작자로서 의무가 있다. 윤성현이라는 PD가 하면 색깔은 분명하겠구나, 생각이 드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자신 있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은 결국 청취율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게 돼 있다. 중요한 건 어떤 방식으로 가는가다. 윤성현이 조금 다른 식으로 접근했다는 것, 그게 청취자들이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이며, 당신이 소중한 이유다.
라디오가 수십 년간 지킨 고전적인 문법들을 답습하지 않아도 청취율에서 일등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자신감 주머니라도 갖고 있나?
그 시간에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어떤 형태의 소비 패턴을 지닌 사람일 테고 문화적으로는 어떤 코드를 좋아하는 사람일 거라는 이해.
2012년에 <유희열의 라디오천국>과 동일한 시간대에 연출을 한다면 어떤 DJ와 하고 싶나? 
이효리랑 12시? 2시도 괜찮겠다.  
왜 이효리인가?
이효리는 우리나라를 한 번 들었다 놨을 정도로 매력이 있는데 그동안 극히 단면적인 부분, ‘섹시 아이콘’으로만 부각됐다. 이효리의 다양한 매력을 라디오에서 이야기를 통해 풀어갈 때 사람들이 그녀를 더 좋아할 것 같다. 그리고 일단 내가 이효리를 좋아한다. 핑클 시절부터 팬이었다.


"윤성현의 영화 - 윤성현은 <파수꾼>의 감독이다.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도 대종상 신인감독상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감독상도 그가 받았다. 하지만 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윤성현은 본질을 생각한다."

반짝 주목받고 사라진 감독이 많다. 올해 가장 주목받은 젊은 영화감독으로서, 당신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나?
당연하다. 그런 걸 생각하면 건방질 필요도 없고 주눅 들 필요도 없다.
갑작스런 관심이 부담스럽다고 말할 줄 알았다.
현실에 발을 디뎌라, 구름 위에 뜬 기분이 들 수도 있고 어느 순간 지옥에 있는 기분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일희일비하면 일 못한다, 중심을 네 안에 둬라, 라는 얘기를 배우들한테 입버릇같이 한다. 결국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관심은 물론 좋지만, 그건 견고한 돌멩이가 아니다.
<파수꾼>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잘했다. 이제훈, 서준영, 박정민은 ‘올해의 발견’ 수준이었다. 어떤 기준으로 이들을 캐스팅했나? <드래곤볼>에 나오는 ‘스카우터’라도 갖고 있나?
내 영화에서 캐릭터를 잘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인가밖에 고민 안 한다. 오디션을 많이 봤고  그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있는 친구를 뽑았다.
이제훈이 너무 잘생겨서 캐스팅할 때 망설였단 얘길 들었다.
우리가 고등학생으로 인지할 수 있을 정도의 선에서 잘생겨야 하는데, 이제훈은 너무 잘생겼다. 그런데 카메라에 철저히 담고, 메이크업을 안 하니까 나아졌다. 영화 <친구>는 시대적 배경이 옛날이니까 장동건이 나와도 이질감이 없지만, <파수꾼> 같은 영화는 아니다.
당신은 ‘우리가 고등학생으로 인지할 수 있을 정도’에서 잘생겼다.
당신도 만만치 않다.
A형인가?
O형이다.
시니컬한 성격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나를 잘 모르겠다.
1982년생이다. 젊은 신인 감독에게 촬영 현장은 어떤 건가? 화나면 소리도 지르나?
어렸을 때는 다혈질이었다. 자존심 싸움, 소위 이야기하는 고등학생 간의 권력 관계에서 지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 <파수꾼>의 기태같이 강해 보이게 행동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나한테 안 좋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화가 나도 꾹 누른다. 그게 습관이 돼서 이제는 화가 안 난다. 운전할 때를 제외하곤.
신도 서울에서 운전하면 끼어들기를 할 거다. <파수꾼>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감독의 연출력에 찬사를 보냈다. 감정의 세부를 인지하는 감각, 그걸 드러내는 방식이 돋보였다고 한다. <연출의 정석>이나 <성문 기본 연출> 같은 거라고 읽었나?
내 관심사를 표현한 거라 어려울 게 없었다. 뭘 표현할까 늘 고민하고, 그것들 사이의 연관성을 생각한다. 
러브콜을 많이 받을 텐데, 상업자본이 들어온 영화를 찍게 되면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나는 당신의 앞날이 궁금하다.
구스 반 산트는 보기에 따라 마니아적이라고 할 수도 있고 대중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는 스필버그도 좋아하고 제임스 캐머런도 좋아한다. 리들리 스콧도 좋아한다. 내가 나를 곰곰이 보면 대중적인 면이 있다. <파수꾼>은 상업 영화가 아니고, 작가적인 면을 지닌 영화지만 그럼에도 대중적으로 관심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소위 얘기해서 <쉰들러리스트>도 대중 영화다. 상업 영화든 독립 영화든 재미있으면 관객은 보는 것 같다.
감독으로서 당신의 포지션을 생각해본 적 있나? 한국의 영화감독은 박찬욱도 있고 봉준호도 있고 윤제균도 있다. 당신은 이들 혹은 다른 감독들 사이에서 어디에 있나?
어떤 포지션에 있고 싶다는 바람은 있다. 상업적인 방향과 작가주의적인 방향이 융합된 지점이다. 모든 영화감독의 바람일 거다. 그런데 이게 나한테 안 맞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면 완전히 작가주의적으로 갈 수도 있다. 그 반대일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선 완전히 상업적인 방향은 안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모르겠다, 미래를 알 순 없다. 그런데 상업적이라고 해서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윤제균 감독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작품이 정말 재밌다.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조화를 이루면 좋은데 자본은 그걸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좋아하는 걸 포기하고 흥행만 생각하며 만드는 게, 나한테는 도박으로 느껴진다. 흥행이 될까 안 될까, 이 패를 던질까 말까, 이런 것을 고민해야 하니까. 그리고 만드는 사람의 동력 자체가 약해진다.
다음 작품은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나?
결정됐다면 저 벽에 무언가 더덕더덕 붙어 있을 거다.
천천히, 아주 느리게 하면 좋겠다.  
창작자인데 많이 해야지. 내가 쓴 시나리오가 아니더라도 좋은 시나리오가 있으면 연출하고 싶다. 생산하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2011년은 고맙고 기쁜 해지만, 누군가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해였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대답할 거다. 가장 의미 있는 해는 2010년이었다. <파수꾼>을 촬영했고 <시선 너머>라는 옴니버스 인권 영화도 만들었다. 굉장히 힘들었지만 생산적인 해였다.
그런데 혹시, 완벽주의자인가? 책상이 너무 깨끗하다. 담배도 안 피운다고 들었다. 말투에도 뭔가 절제하는 듯한 뉘앙스가 있다.
책상이 깨끗한 건 사무실에 잘 안 나오기 때문이다. 이제 열심히 나오려고 한다. 내가 좀 게으르다. 집에서 잠자는 걸 좋아하고. 
배우를 보는 눈, 연출력에 대해 각각 질문했을 때 재능과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그 뉘앙스를 감지하는 건 예리한 독자의 몫이지만, 윤성현은 윤성현의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굳이 꼽자면, 뭐가 본질이고 본질이 아닌지 보는 것. 나는 어릴 때부터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들은 시험 같은, 눈앞에 있는 것을 보고 그 영역 안에 있는 걸 가치 있게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게 허상이라고 생각했다. 강남의 시멘트 콘크리트 안의 한구석을 차지하는 게 목표인 인생을 살고 싶진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본질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늘 생각했기 때문에 공부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어머니는 이러셨다. 얘가 머리는 안 나쁜데 공부를 안 한다고.
우리 엄마랑 똑같다!
나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했어도 못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 원하는 것을 하고 있다. 그리고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박성준과 김승일의 시 - 박성준과 김승일은 안양예고 문예창작학과를 다녔고 2009년에 문단에 데뷔했으며 2012년 3월 즈음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첫 시집이 나올 예정이다. 둘이 서로 묻고 대답했다. "

김: 너랑 나 사이에 경쟁 구도가 있다고 생각해?
박: 아니. 환경이 같다고 해서 경쟁 구도에 있는 건 아니지.
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린 지향점이 다르잖아. 예를 들면 나는 시를 쓸 때 음악성을 배제해왔어.
박: 나는 음악성이 내 시의 전부라고 생각해. 요즘 시는 음악성을 배제하는 것이 유행이 되어버렸어.
김: 그래서 내가 유행 때문에 음악성을 배제한다고? 내가 다루고자 하는 것들, 예컨대 개인, 상황, 관계들을 시로 다룰 때 꼭 음악성이 돋보여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박: 네가 말하는 개인이라는 단어는 내가 생각하는 개인과 달라. 김승일의 개인은 보편성을 포함한 개인이야. 그런데 나는 보편성이 없는 개인에 대해서 다루지.  
김: 첫인상 얘기나 해볼까? 예고 문창과 때 얘기. 박성준은 뚱뚱하고, 더럽고, 듬직한 사람이었지.
박: 꺼져. 넌 완전 ‘김승일 어린이’였잖아. 버디버디로 자꾸 시 보내줬던 거 생각 나냐? 넌 참 남의 얘기를 듣고 싶어 했어.
김: 내가 쓰는 게 시인지 아닌지 알고 싶었으니까.
박: 나는 습작 시절에는 남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시를 쓰면서 보냈지. 넌 너밖에 몰라서 네 맘대로 썼잖아. 그래서 네가 나 엄청 싫어했지. 나쁜 놈!
김: 넌 상 많이 받았고, 나는 못 받았고. 그러니까 당연히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상 받는 사람한테 문제가 있다, 그렇게 생각한 거지. 내가 훌륭한 사람인데. 너만 상 받으니까.
박: 나는 너를 질투했어. 김승일만이 갖고 있는 정서가 있었으니까. 지금은 좀 달라. 우리가 등단을 하면서 서로 가보지 못한 곳으로 교차해서 걸어간 것 같아. 너는 형식, 방법론을 강화하는 대신 정서를 감추기 시작했고, 나는 정서를 전면에 드러내면서 시의 형식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심을 덜 갖게 됐지. 김승일의 매력이었던 정서가 사그라진 것은 아쉽지만, 그에 비해 형식 면에서는 아직도 가끔 질투를 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어.
김: 나는 질투하는 대신 포기를 했지. 예를 들면 아까 얘기한 음악성. 네 시를 보면 시라는 것이 결국은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어. 근데 난 너처럼 쓸 수가 없거든. 그래서 포기를 했지. 대신 내가 쓸 수 있는 것을 찾으려고 했어. 서사, 한계에 대한 인식 같은 것들.
박: 칭찬만 하는 것 같다. 단점이나 얘기해보자.
김: 넌 외국 소설을 안 읽잖아. 한국 시집만 읽고. 외국 시도 안 읽고.
박: 넌 여자한테 약하잖아. 모든 여자한테. 엄마, 후배, 선배, 짝사랑했던 여자들까지.
김: 너랑 다니면 부끄러워. 너 나랑 있으면 대화의 대부분이 욕이잖아. 무서워.
박: 미친! 넌 사회화가 전혀 안 되어 있어. 대학교 시험 보는 날짜도 몰랐지, 
김: 그래 그딴 거 말곤 단점을 찾기가 어렵겠지.
박: 다시 시 얘기하자. 나는 네 시가 위트 있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들이 여러 가지 장치와 말장난을 이용해 위트를 만들어낸다면, 김승일의 위트에는 장치가 없는 게 매력이지. 또 김승일 시를 이해하는 데 위트만큼 중요한 키워드는 ‘연민’이라고 생각해. 예를 들어서 네 시에 자주 등장하는 아이들끼리의 싸움은 폭력적이지 않지. 그건 서로 연민 관계에 있기 때문이지.
김: 내가 조금 더 명징한 상징체계를 사용할 수는 없었던 걸까?
박: 넌 너의 방식이 있는 거야. 이제 내 얘기해봐.
김: 네 시는 귀신에 대한 시가 무척 많지. 귀신은 분석하거나 해석할 수 없는 것, 명명할 수 없는 것이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박성준은 귀신을 경험하고 있다고. 네가 쓴 시 중에 ‘고통의 축제’가 있잖아. 정현종 시인 것 베낀 거.
박: 제목만 빌려온 거야!
김: 근데 정말 박성준하고 어울리는 문장이라고 생각해. 축제는 경험하는 거지. 말로만 듣는 축제가 무슨 축제야. 박성준이 경험한 것들이 독자를 다시 경험시키는 것. 근데 우리 너무 서로 띄워주기만 한 거 아니야?
박: 띄워줄 만하니까 띄워주지. 우리가 아무리 서로 띄워줘도 문학 하는 현실은 초라하니까.
김: 난 아닌데.
박: 나도 아니야.
김: 그래, 그럼 됐지 뭐.


"홍철기의 음악 - 홍철기는 음악가다. 그의 음악은 낯설다. 그의 음악이 음악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게 옳을까? 음악이 뭔데? 홍철기의 소박한 팬을 자청하는 미술가 이미연이 물었다. "

즉흥 음악가, 노이즈 음악가, 실험 음악가 등으로 불린다. 이런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그렇게 불리곤 있지만 사실 내가 하고 있는 음악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이런 음악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어릴 땐 가요도 듣고 팝도 들었다. 다양한 음악을 듣다가 그럼 어디까지를 음악이라고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생겼다. 또 음악이라는 게 어떤 쾌감을 주지 않나? 나는 멜로디나 박자가 없는 음악을 들으면서 즐거움을 느끼곤 했는데 그게 잘 맞았던 거다. 처음엔 나도 인디 록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들의 방식이 이미 과거의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나자 현재 경계에 있는 음악은 뭘까, 궁금증이 커지게 되었고 지금과 같은 형태의 음악을 하게 됐다.
당신은 주로 턴테이블 플래터에 금속판이나 플라스틱, 줄자 등을 마찰시키면서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사실 좀 섬뜩하다.(웃음)
듣는 사람을 괴롭히려는 건 아니다. 같이 들어보자는 거다. 우리가 음악을 통해서 듣는 소리들은 사실 굉장히 좁은 영역의 소리들이다. 그런데도 그밖의 소리들은 안 듣거나 들려도 그냥 지나치고 넘어간다. 한 친구는 그걸 ‘열등한 소리’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런 소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싶은 거다.
그럼 피드백이나 하울링 소리에 대한 관심은 어떤 것인가?
좀 이상한 관심일 수도 있는데 소리를 전달하는 기계들 자체의 소리가 궁금했다. 마이크나 PA, 스피커처럼 소리를 녹음, 재생, 증폭시키는 장치들도 입력된 소리를 전기나 진동으로 바꾸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소리를 똑같이 재현하는 장치는 아니다. 피드백이나 하울링은 기본적으로 어떤 소리의 입력 없이 발생하는 소리다. 말하자면 그건 기계에 대한 음악적 접근이고 턴테이블에 대한 관심도 사실 같은 거다.
당신은 솔로 활동뿐 아니라 ‘불길한 저음’ ‘아스트로노이즈’의 멤버이기도 하다. 주로 즉흥연주를 하는데 앨범 녹음은 어떻게 하나?
음반용 녹음이나 편집을 따로 하진 않고 즉흥으로 솔로 연주나 협연한 것을 바로 녹음해서 앨범을 낸다. 내 입장에서는 이렇게 공연과 앨범 제작을 직접 기획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하지 않으면 공연할 수 없고, 아무도 이런 음악의 음반을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음반 시장은 이윤 창출이 목적이기 때문에 음악과 음악 아닌 것을 구분하려고 애쓰긴 하는데 한국이 이런 경향은 좀 더 세다. 음악과 음악 아닌 것을 구분 짓고 자신은 그중에 음악이란 걸 하기 때문에 안심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한 번은 사운드 아트에 대한 좌담에서 당신은 ‘즉흥 음악은 민주주의에 가깝다’고 말했는데.
아, 내가?(웃음) 즉흥이라는 건 사실 모든 음악에 있다. 그런데 즉흥 음악을 작가 개인의 예술 방법이나 창작의 자유 이상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다. 코넬리우스 카듀, 프레데릭 셰스키 같은 사람인데 그 배경에는 유럽 68혁명과 미국 흑인인권운동이 있었다. 나도 기본적으로 이들의 생각에 관심이 있고 자극을 받고 있다. 또 노이즈 음악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현재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소리들을 음악 안으로 끌어들이고 밀어 넣는 것이기 때문에 통쾌하고 재밌다. 또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술도 그렇고 정치도 그렇고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하면 두려워한다. 모두 평등하고 모두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면 사실 사람들은 불편해하고 거기에 속하기를 꺼려한다. 음악도 비유하자면 마찬가지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무슨 음악이냐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이런 모순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2012년에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작년에 해외 투어까지 50회 정도 공연을 했다. LIG 트라이앵글 프로그램 일환으로 런던 공연이 남아 있는 상태지만 올해는 공연을 좀 줄이고 싶다. 대신 투어를 하면서 만났던, 우리와 비슷한 생각으로 작업하는 친구들과 실제 협연을 하고 결과물을 만드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 


"이말년의 만화 - 이말년을 만나러 안산에 갔다. 얼마 전에 결혼한 이말년은 빠르면 올해 <이말년씨리즈>에서 <이말년 삼국지>로 ‘갈아탈’ 예정이다. 가능할까? 이말년이 차도 잘 그리고 동물도 잘 그리는 건, 가능할까? "

드디어 만났다. 왜 계속 인터뷰 안 하겠다고 했나?
기본적으로 만화 그리는 사람들은 음침하다. 하하. 학교 다닐 때 보면 있잖아, 구석에서 만화 그리는 애들. 걔네가 커서 이렇게 된다. 그런 애들이 인터뷰 같은 걸 좋아하겠나?
하지만 그런 애치고 나쁜 애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착할 수밖에 없는 거다. 하하하. 아, 그리고 히틀러가 있다. 히틀러가 미대 지망생이었다.
<이말년씨리즈>만 보고 이말년을 떠올렸을 땐 더 자유분방하고 터프한 성격일 줄 알았다.
사람들은 내가 그럴 줄 안다. 그러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나는 자유분방하지도 않고, 남 눈치도 많이 본다.
<이말년씨리즈>는 언제까지 할 건가?
지금 끝물인데 뭘 할지를 몰라서 못 내리고 있다. 댓글을 보면 욕도 많이 올라온다. 차기작으로 갈아타야 하나? 그런데 그만두면, 그런 거 있지 않나? 도전하기 전의 두려움 같은 거.
계획이 전혀 없나?
<삼국지>로 장편을 해보고 싶다. 근데 내가 길게 하는 걸 잘 못해서 준비가 오래 걸린다.
<이말년씨리즈>가 만화계에 획을 그었다. 보기에 막 그린 것 같은 그림, 어이없는 내용으로도 만화가 된다는 걸 <이말년씨리즈>를 통해 알게 됐다.
우리 어릴 때 한국 것은 더럽게 허접스러웠다. 외제랑 차이가 났다. 공책이라든지 심지어 볼펜도. 그런데 요즘에는 우리나라도 잘 만든다. 세상이 잘된 거로만 꽉 차 있다. 그런 와중에 허술한 만화가 나오니까 오히려 마음 편히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내용도 그림도 정말 말도 안 되게 자유롭다. 그런 이말년도 만화 그릴 때 제약받는 게 있나?
일단 상표가 나오면 안 된다. 그게 별 차이 아닌 것 같지만 미묘한, 있다, 그런 게. 상표의 이름을 말해야 웃기는데, 비슷한 걸 말하면 하나도 안 웃기는 상황. 그리고 간단한 욕이 들어가면 재미있을 상황이 있다. 그런데 욕을 쓸 수가 없다. 웃길 수 있는데 못 웃기는 게 답답하다. 유명인을 대놓고 까는 것도 못한다. 눈치 안 보고 그냥 막 그려야, 그리는 사람도 재밌는데. 혹시 요즘 <패션왕> 보나? 그거 그리는 애가 힘겨워한다는 게 느껴지지 않나?
너무 느껴진다.
누구한테 물어봐도 다 그렇다. 그리면서 쥐어짜는 게 보인다. 그래서 좀 웃긴 장면이 나와도 마냥 웃을 수가 없다.
아이디어는 잘 떠오르는 편인가?
아이디어가 연금도 아니고 꼬박꼬박 나올 리가 있겠나? 하지만 괴롭지 않고 계속 그린다면 그것도 말이 안 되는 거다. 천재가 아닌 이상.
모자 좋아하나? 사진을 찾아봤더니 항상 모자를 쓰고 있었다.
머리 세팅하는 게 귀찮아가지고. 모자 때문에 머리가 숨을 못 쉬어서 탈모가 엄청 심하게 진행되고 있다. 머리가 벗겨지니까 이제 왁스로 세팅해도 휑하다. 휑하니까 결국 모자를 쓸 수밖에 없다. 악순환이다.
예전에 인터뷰한 걸 봤다. <이말년씨리즈> 스타일로 그리는 게 사실 잘 안 맞는다고 말했다.
패러디가 잔뜩 들어간 만화가 안 맞는다는 거다. 요즘은 패러디를 안 넣고 내 아이디어로만 그리고 있다. 그래서 재미가 없어졌다. 반응이 안 좋다. 그래도 하고 싶은 쪽으로 하고 있다.
지금의 그림체는 괜찮나? 
사실 엄청난 고수인데 일부러 못 그리는 척하는 거라고 말해주시는 분도 있다. 아니다. 최대한 그린 거다. 원래 그림 못 그린다. 그림 실력을 늘려야 한다. 그런데 이 스타일 안에서 발전을 해야지. 이를테면 내가 차를 잘 못 그리니까 차와 관련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차를 다 없앤다. 복잡한 거 나오면 일단 다 없앤다. 동물도 잘 못 그려서 일단 그린 다음 화살표를 긋고 아래에 어떤 동물이라고 쓴다. 이제 그러면 안 된다. 
그렇지만 <이말년씨리즈> 첫 단행본에 쓴 작가의 말은 감동적이었다. 그림 잘 못 그려서 다들 만화가 되기 힘들 거라고 했는데 만화가가 됐고 책까지 낸다고 썼다. 
그렇긴 하지만 사람들한테 괜히 헛된 생각을 심어줄까봐 걱정이다. 나는 특채 같은 거다.  정식 채용이 아니다. 나를 일반적인 유형으로 보고 헛된 희망을 가지면 안 된다.
댓글 읽다가 독자랑 싸우고 싶었던 적은 없나?
욕하는 건 괜찮다. 재미가 없다는데, 내가, 넌 재미있어야 돼, 이렇게 우길 순 없다. 내가 봐도 재미없는 게 있는데 어떻게 강요를 하나. 그런데 그런 거랑 상관없이 내 심리를 마치 파악했다는 듯이 댓글 적는 사람들이 있다. 되게 교묘하게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같이 만든다. 그렇게 주위 사람들을 선동한다.
내가 싫어하는 댓글은 ‘뱃대지가 불렀다’다.
근데 나도 뱃대지가 불렀다. 그리고 딱 봐도 대충 그린 티가 나는 작가들이 있다. 본인은 잘하고 싶은데 능력이 안 돼서 뱃대지가 불렀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작가도 있고.
이말년은?
열심히 하는데 잘 안 되는 케이스. 아, 뭐 말하려고 했는데 잊어버렸다. 치매가 오나? 뭐였지? 아. 네이버 공무원이란 댓글도 많다. 철밥통이란 거다. 옛날에 내가 일 시작하기 전에는 재미없는 만화를 보면 쓰레기라고 하면서 막 깠다. 후진 양성을 위해 물러나야 한다고. 하하하. 그랬는데 막상 이 직종에서 일하게 되니… 만화가 재미없을 때 제일 괴로운 건 그걸 그린 사람이다.
작가들을 만나면 대체로 자기 사상이랄까, 미약하나마 추구하는 정신 같은 게 있다. 그런데 이말년은 그런 게 없는 거 같다. 뭐랄까, 그냥 그림 그리는 젊은 애 같다. 기분 나쁜가?
아니다. 실제로 그렇다. 별 생각 없이 그냥 찍찍 싸 갈기는 거다. 그런데 이게 내 만화 스타일과 맞는 거 같다.
웹툰이 돈은 좀 되나?
월급쟁이 평균 월급만큼도 안 된다. 내가 인기에 비해 고료가 적다. 그림이 단순하고 배경도 없고 색도 안 칠 해서 그렇다. 그런데 광고 만화를 그리니까, 2개를 합치면 수입은 그런대로 괜찮다. 그리고 카카오톡에서 이모티콘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엄청 팔리고 있다. 서울의 좋은 집으로 이사 갈 수 있을 것 같다. 아, 그런데 우리도 명절에는 연재 좀 쉬게 해주면 좋겠다. 유급 휴가 같은 거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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