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LIFE MORE+

NOODLE GAME

알리오 올리오에 링귀네면

애정하지만 얄미운 면에 대한 이야기.

UpdatedOn October 11, 2021

/upload/arena/article/202110/thumb/49210-467643-sample.jpg

일설에 의하면 이탈리아에선 알리오 올리오에 페페론치노(이하 ‘알리오 올리오’)가 한국의 간장달걀버터밥 정도의 정서라고 한다. 냉장고에 저녁거리가 없어? 아, 그럼 대충 알리오 올리오나!

나는 알리오 올리오를 무척 좋아한다. 동시에 무척 미워한다. 알리오 올리오는 먹고 싶어도 식당에서 먹기가 쉽지 않은 메뉴다. 모처럼의 외식이라면 집에 없는 멋진 재료가 풍성하게 들어간 화려한 파스타를 선택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건더기로 마늘과 고추만 덜렁 들어가는 희멀건한 디시의 가격은 대체 얼마로 책정해야 할까? 이 갭 때문에 결국 알리오 올리오는 집에서 종종 시도한다.

내가 만든 알리오 올리오는 빈번히 맛이 없다. 맛있게 만드는 방법은 이론적으로는 무척 쉽다. 마늘과 고추의 향을 기름으로 잘 뽑아내고, 짭짤하게 잘 삶은 면을 마늘, 고추 향 듬뿍 밴 기름에 버무려 고루 코팅하는 것이 전부다. 마늘과 페페론치노는 노릇노릇 튀기는 것이 아니라 진득하게 향을 뽑아내며 익혀야 한다. 편을 얇게 낼수록 향이 잘 빠져나오고, 아예 다진 마늘을 쓰는 것도 방법이다. 확고한 이론과 달리 나는 조급하게 불을 키웠다가 순식간에 마늘을 태우곤 한다. 면 삶는 이론은 바닷물보다 짠 물을 한 솥 끓여 그 안에 기다란 스파게티나 링귀네면이 펄럭펄럭 춤출 수 있게 삶는 것.

이론과 실제의 괴리는 내 경우 언제나 인색함에서 온다. 설거지 귀찮다는 이유로 옹졸한 냄비에 면 끄트머리를 태워가며 삶아서, 아니면 그날따라 소금이 아까웠던지 간이 부족해서. 이 두 가지를 성공했다 해도 제일 중요한 단계가 남아 있다. 팬에 흥건한 향긋하고 감칠맛 나는 기름은 라구 파스타의 라구 소스처럼, 그 자체로 알리오 올리오의 소스다. 이 소스를 면에 골고루 잘 붙이는 것이 완성도의 핵심. 전분이 풀려나온 면수를 한두 국자 넣고 면을 마저 끓이다 불에서 내린 후, 여열과 실온의 온도차를 이용해 세세한 충돌을 빠르게 일으키며 물과 전분, 기름이 에멀션이 되게 해야 한다. 이건 몸이 기억해야 하는 테크닉인데, 팬 속의 면을 들썩들썩 휘휘 저어주는 것을 짧은 시간에 성공해야 한다. 자전거와 달리 몸이 자꾸 까먹기 때문에 에멀션 단계를 실패하는 것이 가장 잦은 실수다.

그리고 내가 만든 알리오 올리오의 마지막 가장 큰 좌절. 좀 부족한가 싶어 더 꺼낸 만큼의 면이다. 탄내 나고 퉁퉁 붓고 싱겁고 기름이 겉돌아 맛대가리 없는 알리오 올리오가 산더미 같은 2인분이라니!
WORDS 이해림(푸드 칼럼니스트)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정소진
PHOTOGRAPHY 박원태

2021년 10월호

MOST POPULAR

  • 1
    배우 송중기의 무수한 인생작 중 캐릭터 VS 본캐의 입장 차이
  • 2
    Destination 2024
  • 3
    '소원 노트'가 생긴다면 10CM는 어떤 소원을 적을까?
  • 4
    POINT OF VIEW
  • 5
    가정의 달을 함께할 5월의 페스티벌 4

RELATED STORIES

  • LIFE

    Green and Green

    광활한 자연에서 마주한 찬란한 순간. ‘매나테크 트루헬스 마스터 챌린지 시즌 18’을 통해 눈부신 챕터를 맞이한 퍼펙트 바디 4인을 <아레나 옴므 플러스> 페이지에 기록하다.

  • LIFE

    잘하는 기준

    인류의 영원한 난제. 섹스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20대 칼럼니스트가 또래 남녀에게 물었다.

  • LIFE

    빈티지 쇼핑의 지름길

    빈티지 쇼핑의 초심자부터 심화반까지 저장해야 할 빈티지 숍 5

  • LIFE

    데이팅 어플 대신 소셜 다이닝

    더 이상 만남을 미룰 수 없다.

  • LIFE

    미래를 지은 건축가

    재미 건축가 김태수는 1991년부터 젊은 건축가들에게 여행 장학금을 주는 ‘김태수 해외건축여행 장학제’를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했다. 장윤규, 나은중, 이치훈 등 보통 사람에게도 잘 알려진 건축가를 포함해 33명의 건축가가 건축 여행을 다녀왔다. 건축 여행 장학금은 북미나 유럽에서 볼 수 있는 선진 장학금인데, 그걸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될 때쯤인 1990년대에 만들어 매년 이어왔다. 창작자가 만드는 건 창작물만이 아니다. 미래를 위한 모든 긍정적 시도 역시 한 창작자가 후대에게 보내는 귀한 선물이다. 장학제 30주년 기념집 <포트폴리오와 여행> 발간을 기념해 한국에 온 김태수를 만났다.

MORE FROM ARENA

  • FASHION

    건축적인 슈즈들

    네모나게 각지거나, 화살표처럼 뾰족한 건축적인 형태의 토 실루엣.

  • FASHION

    빛나는 러닝화

    러닝화는 못생겼다? 아니다. ‘호카오네오네’가 러닝화에 대한 편견을 깨고 멋과 기능을 동시에 충족하는 ‘본디 B (EG X BONDI B)’를 탄생시켰다.

  • LIFE

    금욕 도전기

    이번 챌린지는 인내력 시험이다. 남자는 성욕을 몇 시간 동안 참을 수 있을까? 직접 체험해봤다.

  • INTERVIEW

    채령의 방

    채령의 마음속 방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 FILM

    EP.01 장민호와 정동원의 MBTI 최초 공개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