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LIFE MORE+

'자유의 페달' 마틴 팀퍼레이

광야로 떠나는 사람들. 누가 부른 것도 아닌데 험준한 산과 사막을 찾아가는 사람들. 얄팍한 자전거 바퀴로 자갈길을 지나고, 평야를 지나고, 고원을 넘는다. 목적지는 불분명하다. 그저 페달을 굴리고 대자연에 파고든다. 그 행위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누군가는 도전이라고, 누군가는 자유라고, 또 누군가는 인생을 보상받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자전거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사람들이다.

UpdatedOn May 18, 2021

3 / 10
/upload/arena/article/202105/thumb/48088-453499-sample.jpg

 

 

마틴 팀퍼레이

MartinTimperley @timp_bizkit

어디서 시작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목적지도 중요하지 않다. 흘러가는 것. 바퀴가 굴러가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자전거 여행의 전부다. 마틴 팀퍼레이의 자전거 여행은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시작됐다. 그는 이미 8개월 넘게 북미와 아시아 배낭여행을 했다. 새로운 도전거리를 찾던 중 그는 장거리 모험을 하기에 적합한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그는 홀린 듯 장거리 자전거 여행에 필요한 장비들을 구입했고, 길을 나섰다. 계획은 4개월간 티베트 고원과 중앙아시아의 평원, 야생 고원 지대를 탐험하는 것. 중고 자전거에 몸을 의지한 채 그는 서쪽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중고 자전거
마틴은 자전거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 쓰촨에서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는 미국인에게 2백 달러를 주고 중고 자전거를 구매했다. “운이 좋았죠. 중고 자전거는 티베트 고원 여행의 완벽한 동반자였어요. 굴곡 심한 산비탈과 험한 중국 도로를 매끄럽게 지나갔거든요.” 하지만 이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중앙아시아에 도착하자 거친 흙길이 계속됐고, 비포장 도로를 지나자 그의 자전거는 금세 망가졌다. 이후 2개월 동안 파손된 부품 목록은 늘어만 갔다. 파손된 목록은 다음과 같다. 프레임 3곳, 기어 허브 1개, 휘어진 림 1개, 부러진 스포크 1개, 변속기 휨, 타이어 펑크 4차례다. 자전거가 완전히 망가졌을 때는 마을이 수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어 긴급 수리를 위해 히치하이킹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제 자전거는 머피의 법칙을 따 ‘머프’라고 불러요. 잘못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잘못될 것이라는 속담처럼 제 자전거는 잘못됐죠.” 다행히 마틴은 자전거 정비사를 만나 머프를 수리하고 다시 도로에 나설 수 있었다. 그들의 도움과 라이더들의 조언이 없었다면 장거리 여행은 꿈도 못 꿨을 것이라고 한다.

핵심 아이템
마틴은 장거리 여행을 위해 고가 장비를 구입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는 중고 자전거를 타고 저렴한 장비를 싣고 여행했다. 그래도 투자할 만한 가치가 높은 핵심 아이템은 있다. “가장 중요한 건 텐트죠. 캠핑을 계획한다면 혹독한 기후에 맞설 수 있는 가볍고 튼튼한 텐트를 준비하세요. 당신에게 따뜻하고 건조하고, 안전한 유일한 거처가 될 테니까요.” 그는 높은 산길을 횡단하며 많은 뇌우를 만났고, 그때마다 텐트가 그를 살렸다.

자연재해
마틴은 운이 좋은 편이다. 여행하며 위험한 상황은 거의 겪지 않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따뜻하고 다정했다. 차를 내주거나 식사나 침대를 내주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여행한 지역들은 정치적인 문제를 겪었고, 많은 자전거 여행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그 지역에서 죽음을 맞은 여행객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중앙아시아에서 지역 주민과 문제를 겪는 여성 자전거 여행자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겪은 가장 위험한 문제는 자연재해였다. 티베트 고원을 여행하던 중 불과 몇 미터 앞에 암석 덩어리가 쏟아졌다. 전화를 받느라 주행을 잠시 멈췄는데, TV만 한 바위가 큰 소리를 내며 도로 위로 굴러떨어졌다. 그는 위험에서 벗어난 후 가능한 빨리 계곡을 빠져나갔다.

폭풍우를 뚫고
자전거 여행의 묘미는 자신이 속도와 방향, 일정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험한 지형을 만나면 속도를 늦추고 시간을 끌거나 더 쉬운 길을 택할 수도 있다. 마틴은 도전을 원했기 때문에 어려운 길도 주저하지 않았다. “키르기스스탄의 톈산 산맥은 여행 중 가장 힘든 구간이었어요. 남쪽에 위치한 계곡을 탐험하기 위해, 외딴 고갯길을 통과해 광활한 산맥을 넘어야 했거든요.” 마틴은 해발고도 2,300m 이상의 비포장 도로를 자전거를 끌고 올라야 했다. 그가 지금껏 극복한 경험과는 차원이 다른 고난이었다. 산 중턱에서 캠핑해야 할 정도로 그는 육체적 한계에 내몰렸고, 정상 근처에 오르자 날씨는 악화됐다. 천둥이 치고 폭풍이 일었다. 그럼에도 마틴은 가파른 산길로 힘겹게 자전거를 밀어 올렸다. 그의 노력은 유목민들과 야생마들만 사는 고산 계곡을 3일 동안 내리 달리는 것으로 보상받았다. 그의 여행 중 가장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는 라이더들은 대부분 유럽에서 아시아로 향한다. 마틴과는 반대되는 방향이다. 그래서 다른 여행자들과 어울릴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가 중앙아시아를 달린 기간은 45일이었고, 그중 단 6일만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39일 동안은 홀로 질주해야 했다. 39일은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다. 머릿속에 상념이 꽉 차 있다면 이러한 여행은 외롭고, 우울하다. 하지만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기회이기도 하다. “약간의 ‘스토아적 지혜(Stoic Wisdom)’를 자신의 관점에 주입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멀리하고 대부분의 상황에서 밝은 면을 볼 수 있음을 발견했죠.” 마틴은 매일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 쉬운 상황에 직면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불안으로 이끌려 들어가기 쉽다. 그는 4,000m 높이의 파미르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매일 강풍을 맞아야만 했다. 거센 바람은 자전거 라이딩을 어렵게 만들었다. 속도는 훨씬 느려지고, 페달은 더 오래 굴려야만 한다. 특히 험한 산길을 올라갈 때면 바람에 맞서야만 했다. 끊임없이 불어오는 모래는 시야를 막고, 체감온도는 영하로 뚝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경험의 일부로서 바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저는 도전에 맞서기 위해 여기에 왔고, 바람은 이 척박하고 불결한 땅을 여행하게 만드는 요소일 뿐이에요. 본능적이고 흥미진진한 도전이죠. 강풍은 무섭지만 제 목적은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었기에, 매일 아침 강풍을 기대하며 깨어났어요.” 마틴은 진정한 도전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고 말한다.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 그가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이었다.

파미르 고원
마틴은 중앙아시아에서 독특한 경험을 많이 했지만 최고의 순간은 타지키스탄에 위치한 파미르 고속도로 주행을 꼽았다. 파미르 고속도로는 알타이, 파미르, 와칸, 힌두쿠시 산맥 사이의 황량한 고원을 가로지는 길이다. 키르기스스탄 국경에서 시작해 해발 4,655m까지 올랐다가 아프가니스탄 국경인 와칸 계곡 사막의 오아시스까지 뻗어 있다. 그 길을 이동하며 마주하는 풍경은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고 한다. 그는 매일 멀리 떨어진 높은 산맥과 광활한 사막, 무성하고 비옥한 계곡 풍경의 경이로움을 체감했다.

언제나 사람들
여행 중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작은 마을에서 우연히 현지인들을 만났을 때다. 마틴은 티베트 외곽에서 캠핑 장소를 찾는 동안 몇몇 주민들에게 초대받아 그들의 집을 방문했다. 주민들은 다과회를 열었고, 자신이 학교 영어 선생님이라고 소개한 여성이 마틴에게 말을 걸었다. 마틴은 그녀와 몇 시간 동안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 지역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됐다. 다음 날 그녀는 마틴을 자신의 학교에 데려가 학생들에게 소개했고, 마틴은 영어 수업을 도왔다.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준 것이었다. 학생들은 전통 춤으로 화답했고, 마틴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마틴은 지금도 SNS를 통해 그녀와 연을 이어가고 있다.

우연한 만남
자전거 여행은 한 나라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라고 마틴은 말한다. 자전거로는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어렵지만, 여행객이 거의 방문하지 않는 지역을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대부분의 여행자가 방문하지 않는 지역을 여행하는 게 오히려 여행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인연을 맺을 수도 있거든요.” 패키지 여행에선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체감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좋아하는 기억은 유목민과의 인연이에요. 그녀의 딸과 야크 버터 차를 마시던 순간, 티베트 승마 축제 현장, 수도원 벽에 텐트를 쳐달라는 부탁을 받던 순간이요.” 자동차 여행은 우연한 만남의 기회를 줄인다. 반대로 자전거 여행은 우연한 만남을 만든다. 뜻하지 않은 경험을 하는 것. 그 경험이 삶을 바꾼다.

3 / 10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조진혁
GUEST EDITOR 정소진

2021년 05월호

MOST POPULAR

  • 1
    Very Big & Small
  • 2
    꽃구경도 식후경
  • 3
    Greenery Days
  • 4
    연기 없는 저녁
  • 5
    모유 수유와 럭셔리

RELATED STORIES

  • LIFE

    가격대 별 '자토바이' 입문 가이드

    지금 가장 스타일리시한 교통수단.

  • LIFE

    연기 없는 저녁

    아이코스는 ‘IQOS Together X’ 이벤트를 통해 어떤 말을 건네고 싶었을까? 그 이야기 속에는 꽤 진지하고 유쾌한 미래가 있었다.

  • LIFE

    아메리칸 차이니즈 레스토랑 4

    한국에서 만나는 미국식 중국의 맛.

  • LIFE

    가자! 촌캉스

    지금 이 계절, 촌캉스를 떠나야 할 때.

  • LIFE

    봄의 공기청정기

    미세먼지가 걱정스러운 계절이라 모아본 오늘날의 공기청정기 4종.

MORE FROM ARENA

  • INTERVIEW

    전설의 입담-진선유

    방송사들은 동계올림픽 중계로 바쁘다. 중계의 꽃인 해설위원을 섭외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였다. KBS는 동계올림픽의 전설들을 해설위원으로 모셨다. 스피드스케이팅에는 이상화와 이강석, 쇼트트랙에는 진선유와 이정수, 피겨스케이팅은 곽민정이 해설을 맡는다. KBS 해설위원들의 출정식을 <아레나>가 함께했다.

  • INTERVIEW

    그 남자네 집: 챈스챈스 디자이너 김찬

    유독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었던 올 한 해. 라이프스타일이 각기 다른 남자들에게 집에서 시간을 보낸 방법과 연말에 대한 구상을 물었다. 그리고 저마다 애착 가는 물건에 대해서도.

  • CAR

    시승 논객

    미니 일렉트릭에 대한 두 기자의 상반된 의견.

  • LIFE

    워케이션을 위한 파라다이스

    해외여행 중 미처 끝내지 못한 업무가 머릿속을 스친다면 워케이션(Worcation)에 최적화된 호텔, ‘크라운 플라자 푸꾸옥 스타베이’를 고민 없이 추천한다.

  • FASHION

    패션, 낭만, 그리고 미래

    신이 빚어낸 도시 피렌체의 시간은 언뜻 고요함 속에 잠긴 듯 보이지만, 피티 워모는 그곳에서 찬란하고 지속가능한 남성복의 미래를 꿈꾸는 중이다.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