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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려는 자, 폭로하는 자

지금은 고인이 된 홍기선 감독의 ‘사회 고발 3부작’의 종결점, <1급기밀>.

UpdatedOn January 3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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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경은 공군 군수품 비리를 폭로하려는 박대익 중령 역을 맡았다.

김상경은 공군 군수품 비리를 폭로하려는 박대익 중령 역을 맡았다.

감독이 말하려 하는 ‘내부자’의 용기, 그것이 세상을 나아가게 한다.

감독이 말하려 하는 ‘내부자’의 용기, 그것이 세상을 나아가게 한다.

감독이 말하려 하는 ‘내부자’의 용기, 그것이 세상을 나아가게 한다.

이명박 때 집필하고 박근혜 때 촬영해서 문재인 때 개봉하는 영화 〈1급기밀〉. 작품의 영어 제목(‘The Discloser’)이 알려주듯, ‘폭로’가 핵심 테마다. 그 폭로는 ‘정의’를 위해서였고, ‘용기’를 통해서였다. ‘그들이 감추려 했던, 모두가 알아야 하는’ 이 현재진행형 비리 폭로극은 우리의 세금이 들어간 국방 예산의 사적 유용과 조직적 전횡에 관한 ‘사실 기반의 허구적 창작물’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는 세 건의 실화가 바탕이 됐다. 1998년 1월, 국방부 조달본부의 비리 커넥션을 폭로한 사건이 주요 모티브다. 1997년 당시 구매담당관이었던 박대기 중령의 양심선언이 기폭제였다. 해외 무기 부품 구매 과정에서 국방부가 제작비의 (45배, 4백50배도 아닌) 최고 4천5백 배까지 비싸게 들여와 예산을 터무니없이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발한 사건. 김상경이 연기한 ‘박대익’ 중령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002년 3월에는, 당시 차세대 전투기 사업(F-X사업)의 시험 평가 책임자였던 공군시험평가단 부단장 조주형 대령의 방송사 제보가 있었다.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그러나 미국 내에서도 사실상 단종된 특정 기종(F-15K)의 선택은 물론 평가 과정에도 부당한 압력 행사가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2009년 10월에는 해군 납품 비리가 고발됐다. 당시 김영수 소령은 MBC <PD수첩>에 모자이크 처리도 없이 출연해 계룡대 근무지원단 간부들의 횡령 사실을 신고했으나 징계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1998년 1월의 폭로자 박대기 중령은 대내외 여론에 못 이겨 경질됐다가, 대한민국 월드컵 4강 당시 쓸쓸히 타계했다. 2002년 3월의 폭로자 조주형 대령은 군사 기밀 누설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2009년 10월의 폭로자 김영수 소령은 배신자로 낙인 찍혀 한직을 전전하다 2011년 국민권익위원회의 주요 부패 신고자로 선정돼 훈장까지 받았지만 스스로 전역했다. 2018년, 새 정부 들어 방산비리합동수사단이 적발한 방위 산업 불법 계약 규모는 해군 1천2백65억원, 공군 2백43억원을 포함해 모두 1천6백39억원에 달한다. 단가 3천원도 안 되는 USB는 95만원으로 둔갑해 있었고, 총알에 무력한 방탄복도 뉴스에 자주 오르내렸다. 뿌리 깊은 사리사욕 챙기기 관행, 구조화된 부정 비리 커넥션이 낳은 총체적 폐단이었다.

영화에서처럼 그들은 ‘가족’이었고 ‘식구’였기에, ‘배신’을 죄악시하고 엄히 다스렸다. 때문에 더 단단한 배타적 이익 공동체, 그야말로 ‘한통속’이 될 수 있었다. 폭로를 맞닥뜨렸을 때는 회유와 협박과 감시와 제압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입을 틀어막았다. 진실에 접근한 언론까지 조작하고 통제했다. 그럴 수 있었다, 그때는. 이른바 ‘군피아’가 저질러놓은 이러한 국가적 범죄는, 보안과 기밀을 이유로 폐쇄적으로 존재하는 군대라서 더욱 은밀하면서도 노골적으로 자행될 수 있었을 테다. 뇌물 수수 관련 조항이 없는 군형법을 악용한 이 고질적 유착 고리는 지금도 우리 장병의 생명을 위협하고 국민의 안녕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동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아닌 게 아니라 거기서 비롯된 악영향은 세월호 참사 때도 구조 작전 불가라는 ‘무용지물’의 결과로 드러난 바 있다.

김홍선 감독은 2016년 12월 15일 생을 마감했다. 이 작품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홍선 감독은 2016년 12월 15일 생을 마감했다. 이 작품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홍선 감독은 2016년 12월 15일 생을 마감했다. 이 작품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기교 같은 거 잘 모르고, 속임수 없이 단도직입적이며, 메시지 또한 묵직해서 그만큼 더 후련한 정치적 각성의 카타르시스를 전하는 <1급기밀>. 표현이 다소 투박하다 느낄지는 모르겠으나, 텍스트에 살아 있는 정의감만큼은 또렷하게 각인될 작품이다. 세계 최장기 정치범으로 기록된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의 삶을 극화한 〈선택〉(2003), 이태원 맥도날드 살인 사건을 재조명해 실제 용의자를 송환, 징역 20년형 선고로 이어지게 한 〈이태원 살인사건〉(2009), 그리고 유작이 돼버린 2018년의 〈1급기밀〉까지. “언제나 약자 편에 서고, 사회적 진실을 추구하며,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이야기해야 하는 것”을 만들겠다는 신념과 철학을 고수했던 고(故) 홍기선 감독의 ‘사회 고발 3부작’은 의미 있게 완성됐다. (촬영을 마치고 세상을 떠난 홍기선 감독을 대신해, 〈1급기밀〉 후반 작업은 1980년대 영화운동 때부터 함께해온 ‘동지’ 이은 감독이 책임을 맡아줬다.)

“영화의 역할은 우선 현실을 알리고 기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을 개인화시키고 경쟁시키기 때문에, 인간 사회는 더욱 더 악화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인간성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아야 할 것이며, 영화는 바로 그러한 희망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영화를 안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아무거나 만드는 감독이 되고 싶지는 않다.” 유언처럼 남은 홍기선 감독의 말이다. 방관자이거나 가담자가 되기를 거부한 ‘내부자들’의 용기와 정의감이, 감독이 꿈꿨던 희망 세상을 한 발짝 더 앞당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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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주영
WORDS 송지환

201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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