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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뭔가로 남겠지

On August 17, 2017 0

윤종신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나는 60세에도 창작자이고 싶어요.” 윤종신에게는 음악가인 그 자신을 괴로워한 시절이 있었다. 콤플렉스와 갈등으로 점철된 청년기가 있었다. 그와의 대화 중에 그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타고난 능력을 고루 건드려보면서, 혹은 아낌없이 다 쓰면서, 못 가진 능력은 먼 훗날에라도 키우면서, 콤플렉스에 굴복하지 않고 오래도록 싸우면서. 그게 다 “하고 싶어 하는 일”일 뿐이라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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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 셔츠와 팬츠는 모두 트렌짓 by 코에보, 브레이슬릿은 까발리에니 by 오프너 숍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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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 많이 받았는데 그런 말 별로 안 좋아한다. 창작자 중에는 기억에 남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데, 피곤한 짓이다. 어떻게든 뭔가로 남겠지.”

 

 

검은색 재킷은 바톤 권오수, 검은색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주변의 또래들은 빨리 터득했다. 나는 좀 늦게 깨닫는 사람이다. 원래 그런 인간인데, 그때는 그걸 몰랐다. 왜 저 사람들은 다 잘할까 하는 콤플렉스가 대단했다. 그 콤플렉스를 견디려고 꾸역꾸역 했다. 잘하는 사람들에게서 잘하는 방식을 배울 수는 없더라. 그 사람들은 그냥 되는 거였고, 나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녹색 차이니스칼라 셔츠는 오디너리 피플, 하이 웨이스트 와이드 팬츠는 하버색 by 오프너 숍, 브레이슬릿은 까발리에니 by 오프너 숍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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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월간 윤종신〉 스튜디오에서 진행 중인 사진전 〈달램〉에 다녀왔다.
아, 거길 다녀왔나? 오랜 친구 사이인 안성진 포토그래퍼가 찍어준 내 사진을 모아서 전시 중이다. 〈달램〉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25년간 찍은 사진들이다.
1980년대 윤종신이 밥 딜런 같은 머릴 하고 옷을 입고 기타를 들고 겨울의 거리를 거닐던 모습도 있었다. 새삼 ‘윤종신이 이런 뮤지션이었지’ 싶더라. 청년 윤종신은 어떤 사람이었나?
어쩌다 보니 우연히 가수가 된 사람.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공부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부족한 사람이었다. 주변의 또래들은 빨리 터득했다. 나는 좀 늦게 깨닫는 사람이다. 원래 그런 인간인데, 그때는 그걸 몰랐다. 왜 저 사람들은 다 잘 알고 다 잘할까 하는 콤플렉스가 대단했다. 그 콤플렉스를 견디려고 꾸역꾸역 했다. 잘하는 사람들에게서 잘하는 방식을 배울 수는 없더라. 그 사람들은 그냥 되는 거였고, 나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결핍이 컸겠다.
그럼. 말하면 입 아플 정도지. 그런데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더라. 그걸 깨닫는 데 10년 넘게 걸렸다.
그 결핍에 많이 휘둘리고, 매달렸나?
유독 안 풀리고, 특히 안 되는 시기를 잘 못 견뎠다. 그래서 그땐 내가 할 줄 아는 것만 했다. 내가 지나온 세월에는 무수히 많은 갈등과 고민, 걱정, 스트레스, 콤플렉스가 있다. 부족하고 좀 늦되는 내가 이 세계에 발붙이고 사는 동안, 자연발생적으로 얻은 그 감정이 모두 내 음악의 에너지가 된 것 같다.
<달램>을 소개하면서 이런 이야길 하지 않았나. 청년기에 안성진과 나눈 대화의 화두는 통제되지 않으려 하는 태도,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이었다고.
지금과 비교하자면 그때 느낀 콤플렉스나 고민은 참 수준 낮은 것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렇다. 20대와 30대는 찰나의 연속이다. 불안과 초조의 연속이고. 그 찰나를 온몸으로 받으며 갈등하고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훗날 느지막이 누릴 소중한 시간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아이들의 성공을 내 눈으로 보고 싶다는 바람이 없다. 아이들이 보낼 불안과 초조의 찰나를 애달아하지 않기로 했다. 부모가 자식의 성공을 빨리 보려고 하면 많은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살아생전 자식의 성공은 봐야겠다는 거, 내 자식이 모자람 없이 성공하는 걸 보고 눈감겠다는 건 미련한 생각이다.
성공하기에 알맞은 시기란 없으니까.
자식이 스물이 되면, 자식과 부모는 개인 대 개인의 관계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내 아이들, 라익이와 라임이, 라오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지만, 아이들에게 직업이 생기고 ‘자신의 일’과 ‘자신의 세계’가 명확해지면 자신의 인생을 살도록 떠나보낼 거다. 얼굴 보기도 힘들어지겠지. 하지만 청년기에 들어선 아이들을 자주 보지 못하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 아이들이 스물이 되면 이 넓고 큰 세상을 마구 누비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나와는 1년에 2번 정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이가 스물이 되면 나는 60세다. 1년에 2번을 본다고 하면, 내가 90까지 살더라도 60번 정도밖에 얼굴을 못 본다. 그래서 나는 재미있는 삶을 살아야 된다. 내가 즐겁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아야 모두에게 좋다.
그렇다면 마흔아홉 윤종신의 화두는 무엇인가?
한 달 단위로 떠오르는 일들. 앞으로 한 달 동안 해야 하거나 하고 싶은 일들이다.
실은 인터뷰를 앞두고 흥미로운 문서를 공유받았다. 홍보를 담당하는 에이전트가 ‘윤종신의 2017 아젠다’를 보내왔더라. 매해 그런 걸 만드나?
맞다. 그런데 말 그대로 아젠다다. 구체적인 실천표나 계획표와는 달라서, 안 지키는 것도 있고 이루는 것도 있다.
작사가, 음악가, 문화인으로서 윤종신이 올해 해내고 싶은 것들이 A4 두 장에 담겨 있었다. 이 남자, 참 성실하게 살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그렇게 열심히 살진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포괄적인 목표 정도는 세우면 좋다고 여기는 편이라, 해마다 그 정도는 그리고 시작한다. 그해에 열심히 하면, 왠지 계획한 아젠다의 목표 중 몇 개는 이룰 수 있을 것 같잖아.
그중에서도 올해의 아젠다를 요약하자면, ‘문화인 윤종신’이더라. <월간 윤종신>과 연계한 독립 영화 제작도 추진하고 있던데.
12편의 독립 영화와 12곡의 〈월간 윤종신〉을 낼 작정이다. 좋은 감독들이 실현하지 못하는 단편 영화 아이템이 꽤 많다. 단편 영화는 수익이 안 나오니까. 그런데 이걸 〈월간 윤종신〉과 묶으면 수익이 어느 정도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체가 스마트폰이니까, 손안의 시간을 얻으려는 거니까. 감독들도 좋아하더라. 단편 아이템은 평생 구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떤 식으로든 한두 개라도 구현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이 프로젝트를 위해 펀딩을 해보려는 중이다. 근데 플랫폼이 새롭고 전례가 없어서 쉽지 않다.
〈월간 윤종신〉을 문화 예술적 플랫폼으로 키우고 싶은 건가?
매월 창작물을 내는 플랫폼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지는 오래됐다. 장기적으로 지속되려면, 안 해본 것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하니까. 〈월간 윤종신〉이 크리에이터의 프로젝트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여러 창작자가 만나 창작의 모티브를 공유하며 만드는 프로젝트 말이다.


“다행히 내가 그렇게 ‘비대중적인’ 사람은 아니라서 하고 싶은 걸 던져도 때때로 대중에게서 반응을 얻은 것 같다. 다만, 나는 새로운 걸 좋아하는 편이다. 습관화된 걸 굉장히 지겨워한다. 음악 빼고는 다 지겨워하는 편이다. 방송은 사실 지겨워진 지 오래됐는데, 이젠 나에게 필요한 것이 되어서 지속하는 거다.”


붉은 프린지가 달린 남색 와이드 팬츠는 류 by 오프너 숍, 흰색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붉은 프린지가 달린 남색 와이드 팬츠는 류 by 오프너 숍, 흰색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붉은 프린지가 달린 남색 와이드 팬츠는 류 by 오프너 숍, 흰색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월간 윤종신〉을 시작한 게 2010년이다. 올해로 8년 차다. 매월 한 곡씩, 8년을 해온 거다. 이렇게까지 오래 할 줄 알았나?
시작부터 지칠 때까지 하려고 했다. 아직은 안 지치고 재미있고 더 해야 할 게 많다고 느낀다. 수익을 개의치 않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
그렇다면 <월간 윤종신>에 제동을 걸 요소는 전무한 것 아닌가. 지금껏 해온 만큼, 혹은 그보다 더 오래갈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내가 수입을 얻는, 외적 활동을 잘해나가야 한다. 그런데 사실 모르는 일이다. 나에게 더 이상 창작 의지가 생기지 않는 날이 온다거나, 아이디어가 궁색하고, 결과물도 보잘것없다면 그만해야지.
어느 순간부터 윤종신은 변화에 능숙한 사람처럼 보였다. 방송 매체에서 노출 빈도가 높아지면서부터인 것도 같다. 윤종신은 자신이 지닌 가치를 그대로 쥐고서 새로운 환경에 재빨리 반응하고 ‘체화’하는 일에 탁월해 보였다.
사실 나는 변하지 않았다.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내 ‘아웃풋’이 바뀐 것이지,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생각나는 걸 하고, 내가 좋아하는 걸 한다. 대중은 신경 안 쓰고. 뭘 해야 잘될까, 그런 생각 사실 안 한다. 하고 싶은 걸 할 뿐이다. 그런데 다행히 내가 그렇게 ‘비대중적인’ 사람은 아니라서 하고 싶은 걸 던져도 때때로 대중에게서 반응을 얻은 것 같다. 다만 나는 새로운 걸 좋아하는 편이다. 습관화된 걸 굉장히 지겨워한다. 음악 빼고는 다 지겨워하는 편이다. 방송은 사실 지겨워진 지 오래됐는데, 이젠 나에게 필요한 것이 되어서 지속하는 거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지 않은 편인가?
박수 많이 받으면 좋지, 평론가도 칭찬하고, 대중도 좋아해주면 좋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결국 ‘인정받는다’는 것에는 기준이 없더라. 누군가에게 인정받기를 기다리기보다 뭐든 내가 직접 던져서 어떤 식이든 반응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런데 요즘 보면 결국 대중에게 많이 굽힌 상태인 것 같다. 온라인 시대가 열리면서 음악도 문화도 자꾸만 대중의 기호를 잘 분석해 그에 맞추는 일에 끌려간다. 그렇게 만든 콘텐츠의 노출 빈도만 점점 높아진다. 결국 대중이 확고한 자기 취향을 갖기 힘든 환경이 만들어지는 거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창작자, 제작사, 기획사가 대중의 호응을 얻어 ‘잘되는’ 매뉴얼을 발견하고 통설을 만들어 그 룰 안에서 콘텐츠를 만들어내니 문제다. 산업화되고 자본화되면서 스코어를 내기 위한 콘텐츠를 각종 분석 결과를 통해 도출해낸다. 나는 그런 분석, 다 엉터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스코어’만을 위해 만든다면 다 ‘히트’해야지. 안 그런가? 창작자는 대중을 백지로 여겨야 한다. 대중의 취향이나 수준을 가늠하지 말고, 뭐든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해야 한다. 대중은 좋은 걸 기막히게 알아본다. 그러니 창작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거 만들고, 잘 안 되면 자신이 못 만든 거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
미스틱의 몸체가 점점 커진다. 최근에는 SM이 미스틱의 최대 주주가 됐다. 여전히 창작자에 기반을 둔 대표 입장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을 것 같은데.
미스틱은 사실 산업적인 구조를 만들기엔 적합하지 않다. 이야기한 대로, 대표를 비롯한 사람들이 창작자에 기반을 둬서. SM은 산업적으로 굉장히 세팅이 잘된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단일 엔터테인먼트사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빨리 깨우쳤고, 자본을 잘 이해했고, 미래에 대한 예측이 빨랐다. 산업적인 인프라가 엄청나게 잘 구축되어 있다. 미스틱은 그들의 인프라 속에서 어떤 힘을 빌릴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창작 아이템이 SM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어야겠지.
새 싱글 ‘좋니’의 반응이 좋다. 미스틱의 새로운 음악 플랫폼 ‘리슨’으로 발매한 음원 중 처음으로 순위권에 진입한 곡이기도 하고. 윤종신이 솔직하게, 사실적으로 쓴 가사는 유독 사랑받는 것 같다.
가사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실연한 사람들이 느끼는 포인트를 신랄하게 썼다. 장식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실제 마음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쓴 가사를 좋아하는 것 같다.
노래방이 연관 검색으로 뜨기도 하더라. ‘나도 부르고 싶은’ 노래로 인식하는 것 같다. 1990년대 감성으로 말이다.
곡은 후배가 썼는데, 사실 나는 이런 곡 안 쓴다. 워낙 옛날 스타일이니까. 그런데 ‘좋니’는 참신하게 느꼈다. 아주 오랜만에 1990년대 후반 스타일의 노래를 부르게 됐다. 그런데 다들 ‘좋니’를 윤종신이 언젠가 불렀던 노래로 생각하는 것 같더라. 사실 나는 이런 풍의 노래는 부른 적이 없다. 이건, 사실 ‘야다’ 스타일 밴드가 불렀을 것 같지 않나.
가사 때문인 것 같다. 헤어진 후의 감성을 멋있게 포장할 줄 모르는 노랫말 때문에.
그렇지. 보통은 그 감정을 조금 더 멋있게 포장해야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실제 감정을 말로 내뱉을지언정 글로는 옮기지 않는 거다. 헤어진 이후에 각자 느끼는 감정은 사실 모두 ‘찌질할’ 수밖에 없는데, 노래를 만들 땐 그 ‘찌질한’ 마음으로부터 슬쩍 고개를 돌리는 거다.
‘좋니’를 발표하고서, “더 늦기 전에 이런 노래를 해보고 싶다”는 말을 했던데.
이런 노래를 부르기에 실은 너무 늦었지만, 이미 꽤 어른이지만 더 늦기 전에 또 한 번 불러보고 싶었다.
굳이 늦었다고 해야 할까?
나는 이제 아이들의 아빠다. 무슨 일을 당하든 흐르듯 지나가야 된다. 어떤 감정을 붙잡고 세상이 끝난 듯이 절규하는 건 안 어울린다.
6월부터 7월까지 굉장히 바쁘게 지냈다고 들었다. ‘좋니’도 잘 버티고 있고, 〈월간 윤종신〉 7월호 마감도 마쳤고, 전시도 착착 진행 중이다. 슬슬 자신에게 빈틈을 만들어줄 때가 되지 않았나?
지금은 9월 초에 있을 콘서트를 준비 중이다. 대관 문제를 아직 조율 중이라 발표는 안 했다. 안 그래도 8월 말쯤에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스케줄에 살짝 제동을 걸 예정이다. 그리고 가족과 휴가를 다녀와야지.
올해의 아젠다 말고, 혹 평생의 아젠다가 있나?
60세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간혹 한다. 60세의 내가 스물 먹은 자식에게 온 전화에 “아빠? 엄청 바쁘게 지내지”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60세가 되고 70세가 되어도 떠오르는 것들을 계속 창작하면서 살고 싶다. 그때까지도 창작자이고 싶다. 나는 매 순간 행보를 남길 뿐이고, 뭔가를 남기기 위해 행동하고 있지는 않다. 생긴 대로 산다. 그래서 결국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는데 그런 말 별로 안 좋아한다. 창작자 중에는 기억에 남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데, 피곤한 짓이다. 어떻게든 뭔가로 남겠지.

윤종신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나는 60세에도 창작자이고 싶어요.” 윤종신에게는 음악가인 그 자신을 괴로워한 시절이 있었다. 콤플렉스와 갈등으로 점철된 청년기가 있었다. 그와의 대화 중에 그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타고난 능력을 고루 건드려보면서, 혹은 아낌없이 다 쓰면서, 못 가진 능력은 먼 훗날에라도 키우면서, 콤플렉스에 굴복하지 않고 오래도록 싸우면서. 그게 다 “하고 싶어 하는 일”일 뿐이라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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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경진
PHOTOGRAPHY
박정민
STYLIST
오영주
HAIR
이재영(보이드)
MAKE-UP
최송이(보이드)
ASSISTANT
김윤희

2017년 08월호

이달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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