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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예요

On April 27, 2017 0

한쪽 손으로 입고 있던 재킷의 끝자락을 천천히 매만지며, 박은빈은 순수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검은색 자카르 벨 원피스는 푸시버튼 by 프로젝트 앤, 목걸이는 밀튼스텔리, 레이어드 링은 러브캣 비쥬 제품. 

 

순수한 사람이고 싶어요. 그냥 제가 그런 사람인 게, 덜 거북해요. 순수하다, 맑다는 말 좋아해요. 순수하게 사는 것이 재미없는 삶은 아니거든요. 순수하다는 건 오히려 어딘가에 몰입할 수 있는 힘이 크다는 뜻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동안 박은빈은 다릴 꼭 모으고 앉아 있었다. 허리는 꼿꼿하게 세웠다. 스물여섯에도 여전히 순수의 힘을 믿는 청춘은, 순수의 가치를 드높이는 청춘은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맑은 천성을 잘 아는 것 같았다. 모든 질문에 그녀는 기승전결 형식으로 답했다. 주어와 동사가 딱딱 손잡은 문장들이, 작은 입에서 명랑하게 흘러나왔다.


드라마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에 ‘오동희’ 역으로 출연하고 있죠. 연애하는 역할은 데뷔 이래 처음이라면서요. 어느 인터뷰에서 연애해본 적이 없다고 했던 거 기억나요?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여유가 없었다”고 했죠.
아마 학업이나 연기를 의미했을 거예요. 의무감이나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는 편이에요. 그게 제 원동력이거든요.

연애가 우선순위인 적은 없었나요?
연애는 기회 되면 찾아오는 선물 같은 거죠. 제가 외로운 건지 아닌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오랫동안 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살았거든요. 그로부터 파생된 참혹한 결과일 수도 있겠네요. 하하. 그나마 대학교에서 공부하며, 나를 많이 알게 됐어요.

심리학이 전공이죠? 공부하며 알게 된 ‘나’ 중에서, 가장 놀랄 만한 점이 있어요?
알고 보니 저는 화를 잘 못 느끼는 사람이더라고요. 화가 나는데, 스스로는 화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저는 아주 어릴 때, 아역 배우로 이 일을 시작했거든요. 5세 때부터요. 주변에는 늘 어른뿐이었죠. 감정을 드러내기보단 참는 법부터 익혔던 거예요. 스스로 굉장히 억제하고 억압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정말 억울한 순간, 외부로 돌려야 마땅한 화살조차 저 자신을 향했죠.

그런 자신을 알고선 달라졌나요?
안다 해도, 다른 사람을 향해 제 감정을 표출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살기로 했어요. 다행히 연기를 할 수 있는 자리에 있잖아요. 요즘은 나의 감정을 연기로 승화하는 법을 찾는 중이에요.

맑은 사람인 것 같아요.
정말요? 좋은데요. 순수성을 간직한 사람이고 싶거든요. 깨끗하고 맑아 보이는 사람이고 싶어요. 순수하다, 맑다 그런 말 좋아해요.

순수하다는 말을 가치 있게 생각하네요.
순수하다는 말이 나쁜가요? 뭘 좀 모른다 해도 저는 그냥 순수하고 맑은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제가 진짜 순수한지 아닌지는 앞으로 계속 달라질 문제이지만요. 지금의 제가 불순하지 않다는 건 아니에요. 맑은 모습이, 저 스스로 봤을 때 덜 거북할 뿐이죠. 순수해도 다이내믹한 삶을 살 수 있어요. 순수하게 사는 게 재미없는 삶은 아니에요. 또 순수하면 어딘가에 몰입할 수 있는 힘이 크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사소한 일탈은 좀 해요. 집에 돌아와서 메이크업 지우기 전에 빨간 립스틱 같은 걸 발라본다든지요.

박은빈에게 일탈은 그런 것인가요? 바르지 않던 립스틱을 발라보는 것.
새삼스럽게 해보는 일이니까요. 빨간 립스틱이 어렸을 때는 정말 안 어울렸거든요. 근데 이제는 조금씩 덜 어색해지더라고요. 연기 생활하면서 꼭 하고 싶은 역할이 있는데요. 항상 그 역할을 생각하면서 발라봐요. 그 역할에 대해서는 아직 말할 수 없어요. 하하.

그럼 이렇게 물을게요. 왜 그 여자는 빨간 립스틱을 진하게 바르죠?
겉으로는 강하고 속은 여린 거예요. 나름 전형적인 캐릭터죠. 외강내유. 그런 역할 한번 해보고 싶어요. 제가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아, 또 일탈하고 싶은 날이 있었어요. 뭐든 혼자서 해보고 싶어 혼자 명동 가서 쇼핑하고 밥을 먹었어요. 노래방도 갔어요. 근데 이건 조금 부끄러웠고요. 

 

“순수하다는 말이 나쁜가요? 
뭘 좀 모른다 해도 저는 그냥 순수하고 맑은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순수해도 다이내믹한 삶을 살 수 있어요. 
순수하게 사는 게 재미없는 삶은 아니에요. 
순수하면 어딘가에 몰입할 수 있는 힘이 크다고 생각해요.”

 

혼자 여행도 가요?
그건 못해봤어요. 앞으로도 그런 마음은 쉽게 먹지 못할 거예요. 안전주의자거든요. 안전에 대한 욕구가 커요. 아마도 지난날 겪은 불안한, 불안정한 순간 때문인 것 같아요. 촬영 현장에는 아찔한 순간이 정말 많아요. 어렸을 때부터 위험한 촬영을 많이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신 차리지 않았다면 죽었겠구나 하는 순간이 정말 많아요.

겉으로 표현은 못했지만,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었나 봐요.
그런 것 같아요. 촬영할 때는 뭐든 다 해요. 반대로 평소에는 보통 사람보다 더 안전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며 살아요. 저는 한 해도 빠짐없이 일했거든요. 1996년에 데뷔한 이후로 계속이요. 여름이면 혹시나 눈병에 걸릴까 수영장도 안 가고, 겨울이면 다리가 부러질까 스키장도 안 갔어요. 안 해본 게 정말 많아요. 못해본 것에 대한 욕구를 연기하며 충족시키는 것 같아요.

조심하며 살아야 하는 것에 불만은 없어요?
없어요. 그렇게 사는 게 습관이 된 것 같아요. 최대한 조심하면서 살고, 연기하면서 만족하는 게 제 오래된 생활 방식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뭐, 배우라고 다 이렇게 지내는 건 아니에요. 다들 조심조심 잘 즐기면서 살더라고요. 하하.

버튼업 재킷은 아웃스탠딩 오디너리, 흰색 슬리브리스는 아르마니 꼴레지오니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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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튜닉 셔츠는 질 샌더, 검은색 펀칭 데님 스커트는 씨위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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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감이나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는 편이에요.
그게 제 원동력이거든요.”

 

다른 면도 보수적인 편인가요?
많이요. 예전 같았으면, 오늘 같은 촬영은 절대 못했을 거예요. 오늘은 마음이… 열리게 하시던데요? 하하.

배꼽이 살짝 보이는 옷을 입을 때조차 많이 부끄러워했어요.
맞아요. 하하. 전 왜 그럴까요. 날 때부터 그랬대요. 그냥 원래 제 DNA에 들어 있는 성향인 것 같아요. 3세 때부터 아빠 앞에서 옷도 안 갈아입었대요. 셔츠 입을 때 보통 윗단추 한두 개는 풀잖아요. 어렸을 때 저는 늘 끝까지 단추를 채웠어요. 누가 그렇게 시킨 것도 아닌데.

부모님께서 그렇게 입어야 단정하다고 가르쳐주신 건 아니고요?
전혀요. 저 스스로 그렇게 하고 다녔대요. 어렸을 땐 엄마가 머리를 묶어주잖아요. 머리카락 한 올 삐져나오는 게 싫어서 늘 엄마에게 더 촘촘한 빗 없냐고, 참빗 같은 걸로 빗어달라고 할 정도였죠.

박은빈 하면 <청춘시대>에서 연기한 송지원부터 떠오르는데, 아예 딴판이네요. 송지원은 털털하기 그지없었잖아요. 음담패설도 잘하고요.
제가 태어나 한번도 입 밖으로 내보지 않은 단어들을 송지원은 마구 썼죠. 거침없이! 촬영장에서는 괜찮은 척하려고 노력했어요. 엄청나게요. 아무도 모를 거예요. 제가 얼마나 괜찮지 않았는지는.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일은 둘 중 하나일 것 같아요. 쾌감이 있거나, 고통스럽거나.
처음에는 많이 고통스러웠어요. 그런데 괜찮아지더라고요. 이태곤 감독님 눈에 제 첫인상이 신사임당 같았대요. 송지원을 연기하며 박은빈 인생도 바뀌기를 바랐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처음엔 늘 두 다리 모으고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면, 촬영이 진행되면서는 ‘짝다리’를 짚고 서 있기도 했나 봐요. 그런 걸 무척 좋아하셨어요.

<청춘시대> 이후로는 ‘신사임당’ 같은 박은빈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나요?
직후에는 좀 편해지고 털털해졌어요. 아쉽게도, 역시 관성은 힘이 센가 봐요. 작품 끝나고 조금 지나니 다시 원래의 박은빈으로 거의 돌아오더라고요. 그래도 지원이라는 캐릭터에게 무척 고마워요. 연기하는 동안 나름 자유로움을 느꼈거든요. 이렇게 사는 삶도 있구나, 하면서요.

햇살이 좋네요. 봄이 진짜 오나 봐요. 촬영이 없는 날이라 들었는데, 인터뷰 끝나면 뭐할 거예요?
수업 들으러 가요. 이번이 마지막 학기거든요. 처음으로 학교 다니면서 촬영하고 있어요. 욕심을 냈죠. 마지막 학기는 좀 여유롭게 다니려고 이전까지 학점 이수를 빡빡하게 해두었어요. 이번에는 9학점만 들으면 돼요.

 

한쪽 손으로 입고 있던 재킷의 끝자락을 천천히 매만지며, 박은빈은 순수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Credit Info

EDITOR
이경진
PHOTOGRAPHY
레스
STYLIST
박송미
HAIR
이한별(제니하우스)
MAKE-UP
오윤희(제니하우스)
COOPERATION
그랜드하얏트서울
ASSISTANT
김윤희

2017년 04월호

이달의 목차
EDITOR
이경진
PHOTOGRAPHY
레스
STYLIST
박송미
HAIR
이한별(제니하우스)
MAKE-UP
오윤희(제니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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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하얏트서울
ASSISTANT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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