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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디지털 매거진

디지털 매거진은 프린트 매거진의 미래일까? 희미한 질문을 손에 쥐고 지금 가장 만나고 싶은 다섯 명의 디지털 매거진 편집장을 인터뷰했다. 잡지가 잡지에게 묻고, 잡지가 잡지에게 답했다.

UpdatedOn February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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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서울

www.postseoul.com

<포스트 서울>은 서울의 사람, 물건, 공간을 수집한다. 서울의 가장 내밀한 부분까지 들어가 그곳에서 동시대성을 건져 올린다. <포스트 서울>은 모나미의 디자인 철학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책을 써내고, 전통 시장 활성화를 위해 ‘1913 송정역시장’ 프로젝트에 뛰어들었으며, 나승, 이강혁, 이윤호, 이차령, 정유진까지 젊은 사진가 5명이 포착한 서울을 소개하는 전시 <YOUNG SEOUL by POST SEOUL>의 기획을 맡은 뉴프레스(Newpress)에 뿌리를 두고 있다. 콘텐츠 만들기의 장인이라고 부르고 싶은 뉴프레스는 월간 <디자인>, 디자인 전문지 <디자인네트> 등에서 기자로 있던 임나리, 우해미가 힘을 합쳐 만든 스튜디오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포스트 서울>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지난 2016년 2월 창간했다. 1년간 서울의 곳곳을 누볐다. 그 과정에서 지금 서울의 모습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다고 느낀 인물이 있었나?
서울은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거대 도시다. 해외에도 이렇게 큰 도시는 많지 않다. 땅덩어리는 작은 듯 크고, 빈부 격차가 크고, 사람들이 사는 방식 또한 무척 다양하다. 어느 한 사람이 서울을 오롯이 대변한다는 건 사실 힘든 일이다. 서울의 단편적인 부분이 그간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녹아 있다.

매달 서울을 탐구하고 해부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포스트 서울>을 처음 만들기 시작할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이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겼나?

서울은 몇 년 전만 해도 굉장히 핫한 도시였다. <월페이퍼(Wallpaper)>나 <홀리데이 매거진(Holiday Magazine)> 등 해외 잡지들은 서울에 굉장한 관심을 가지며 이 도시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최근 그 거품이 많이 꺼졌다. <포스트 서울>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역시 서울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할 것이라는 기대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서울은 정말 이 사람들 하나하나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재미있고 흥미로운 도시구나. 잡지를 처음 만들기 시작할 때 알던 서울과 지금의 서울은 많이 다르다. 확실히 다르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 프린트 매거진에 몸담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나 새롭게 만든 <포스트 서울>은 디지털 형식이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은 잡지 시장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시기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2000년대 중반 각자 잡지사에 입사했다. 회사에서 들은 이야기는 항상 “어렵다” “연봉 동결이다”가 전부였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왜 굳이 프린트 매거진에 목매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콘텐츠를 디지털 형식으로 풀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콘텐츠가 너무 가볍고 또 쉬워서는 안 됐다. 우리 둘 다 기자 출신이라 콘텐츠에 어느 정도 묵직함은 있어야 한다는 기본 약속을 정했다.

수많은 디지털 매거진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 속에서 <포스트 서울>이 쥐고 있는 생존 전략은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자본이다. 콘텐츠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자본이다. 그래서 열심히 일한다. 외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유다.

그동안 착실히 서울을 포스트해왔다. 서울 다음으로 포스트하고 싶은 도시가 있나?

방콕을 주목하고 있다. 방콕은 어쩌면 서울보다 더 흥미로운 도시다. 흔히 사람들은 전형적인 이미지로 방콕을 재단한다. 하지만 방콕은 도쿄, 뉴욕, 그 어느 도시보다 디자인, 인테리어 면에서 선진화되어 있다. 방콕의 디자이너 브랜드 WWA만 살펴보더라도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_Interview with 임나리, 우해미(<포스트 서울> 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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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보이

www.bellboymagazine.com

<벨보이>는 2014년까지 남성 잡지 <GQ>의 패션 에디터였던 박태일이 편집장으로 있는 디지털 매거진이다. 2016년 5월 창간했다. 지난 1월 청담동에서 새로 문을 연 <벨보이> 매거진 사무실에서 박태일을 만났고 그는 에디터의 질문에 여러 번 “말로 설명하기 힘들 것 같다”고 답했다. 확실히 <벨보이> 매거진을 읽으면 언어로는 오롯이 번역할 수 없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휴양지 수영장에서 발을 살며시 담그고 있을 때 느껴지는 청량함, 하늘을 나는 비행기 안에서 풍겼던 미묘하게 마른 냄새 따위가 떠오른다. 그 연유를 알려면 우선 <벨보이> 매거진의 제호에 대해 물어야 했다.

매거진 이름이 <벨보이>다.

벨보이는 무척 옛날부터 존재한 직군이다. <벨보이> 매거진이 좋아하는 클래식한 이미지를 갖추고 있으면서 또 어감 자체가 굉장히 캐주얼하다. 클래식함과 캐주얼함이 어우러진 모습에 가장 <벨보이>다운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또 벨보이는 호텔이라는 공간에서 접객하며 일하는 사람이다. 그것을 콘셉트로 <벨보이> 역시 사람들이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 어쨌든 콘텐츠를 사람들과 나누는 것은 필요하면 도움을 받으라는 뉘앙스가 깔려 있는 거니까.

기존 프린트 매거진이 지닌 매력은 다양하다. 촉각적, 시각적, 청각적, 심지어 후각적 매력도 있다. 이에 대비되는 디지털 매거진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편하게 볼 수 있다는 것? 사실 그것을 제외한 장점은 아직 잘 모르겠다. 압도적인 편의성 외에는 프린트 매거진이 가진 매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둘의 경계는 사실 흐릿하다.
프린트 매거진과 디지털 매거진을 구분 지으려는 이슈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사람들은 프린트 매거진 시장이 없어질 것이라 예측하지만, 실제로 그 시장은 없어지지 않았다. 단지 디지털이라는 하나의 포맷이 생긴 것에 불과하다. 즉, 디지털 매거진이라는 코드가 하나 추가된 거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벨보이>인 것이고.

<벨보이>가 아닌 여러 지면에서 당신의 이름을 보았다. 당신이 기획하고 완성한 스타일링을 보면 자신만의 고유한 미학이 있는 것 같다.
세상에 존재하는, 오래되고 오래되지 않은 모든 종류의 클래식을 지금 시점에서 봤을 때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 나이키 코르테즈, 랄프 로렌 수트, 톰 브라운… 나의 시각에서 이 모든 것은 클래식이다. 세상에는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클래식이 있고, 우리는 이전 세대가 만들어놓은 유산을 마음껏 섞어 활용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세대는 어쩌면 축복받은 거지.

여행하며 혹시 기억에 남는 벨보이가 있었나?

신혼여행을 칸쿤으로 떠났다. 칸쿤으로 가기 전 뉴욕을 경유했다. 그곳에서 두 명의 벨보이를 만났다. 그중 한 명은 에이스 호텔 벨보이였다. 옷을 굉장히 캐주얼하게 입고 캔버스화를 신고 있었다. 그는 무척 친절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다가 짐을 내려주고, 택시도 잡아주고, 길을 물으면 친절하게 답해줬다. 벨보이는 클래식한 업종이지만 애티튜드까지 클래식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자기 방식으로 할 도리를 다 하면 된다.

또 다른 한 명은 바우어리 호텔의 벨보이였다. 애티튜드는 굉장히 쿨한 뉴욕 남자인데 빨간 벨보이 복장을 갖춰 입고 있더라. 젊은 감각의 부티크 호텔에 그가 있는 풍경이 재미있었다. 두 벨보이의 대조적인 모습이 인상 깊었다. 말하고 보니 <벨보이>가 하고 싶은 것들과 비슷한 뉘앙스인 것 같다.
_Interview with 박태일(<벨보이> 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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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라

www.visla.kr

김오키, 신세하 앤 더 타운, 타이거 디스코, 기린, 씨피카 등. 여기 적힌 이름을 대부분 알고 그들의 음악을 즐긴다면 <비슬라> 매거진이 다루는 콘텐츠 또한 분명 좋아할 것이다. <비슬라>가 인터뷰한 인물들을 한꺼번에 수식할 수 있는 단어는 ‘서브컬처’다. 2013년 남들보다 빠르게 디지털 매거진 시장에 발을 담근 <비슬라>는 4년 전부터 현재까지 착실하게 언더그라운드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한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H.O.T.의 노래는 이제 유치하다”며 각자가 가진 힙합 믹스테이프를 주고받던 초등학교 동창 권혁인, 최장민이 만든 <비슬라>는 지난해 어느덧 창간 4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12월 홍대 헨즈 클럽(The Henz Club)에서 창간 4주년 파티를 했다고.

그렇다. 2013년 <비슬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최장민과 함께 본격적으로 매거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8평짜리 단칸방이 사무실이었다. 최장민은 틈틈이 영어 회화 강사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 돈으로 월세를 충당했다. 인스타그램 같은 정사각형 방 안에 컴퓨터 2대만 놓고 기획 회의 하며 기사를 썼다.

매거진 창간 당시 사실 디지털 매거진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비슷하게나마 <쇼프> <힙합퍼>가 있었지만 매체라기보다는 쇼핑몰의 성격이 짙었다.

그렇다. 당시 디지털 매거진이 몇몇 있긴 했으나 대부분 기성 잡지의 문법을 그대로 따라갔다. 우리가 좋아하는 스트리트 컬처를 제대로 다루는 매거진은 없었다. 최장민과 나 둘 다 디깅(Digging)을 즐긴다. 외국 사이트에서 온갖 정보를 수집했다. 콘텐츠의 결은 미국 <프랭크151(Frank151)>과 유사하게 유지하고자 했다. 한편 브랜딩 전략이 탐난 매거진은 <스래셔(Thrasher)>였다. 최장민과 나는 그 둘의 장점을 적절히 조화시킨 매거진을 만들고 싶었다.

다양한 채널을 동시에 운영 중이다. 그중 온라인 라디오 스테이션 ‘라디오 VSL(Radio VSL)’이 특히 흥미롭다. 작년 서울 커뮤니티 라디오, 셀 아웃 라디오 등 꽤 많은 온라인 라디오 스테이션이 생기지 않았나?
그렇다. 실제로 라디오 스테이션을 개국하려는 움직임이 많다. 왜냐하면 부담 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그 방식 또한 쿨하지 않은가. <비슬라>에서 전개하는 라디오 VSL은 현재 최장민이 진행을 맡고 있다. 1부와 2부로 나누어 1부에서는 최장민이 고른 음악을 틀고 2부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초대해 그들이 최근 즐긴 음악과 영상을 시청자와 공유한다.

독자 입장에서 <비슬라>가 온라인 라디오 스테이션 다음으로 또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할지 궁금하다.

프린트 매거진을 내고 싶다.

정말?
그렇다. 가끔 디지털 매거진에 몸담고 있다 보면,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항상 그런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또 이런 면도 있다. 음… 혹시 좋아하는 작가가 있나?

소설가 황정은을 좋아한다.
황정은이 쓴 글의 수준과 거의 다를 바 없는 글을 내가 썼다고 하자. 그런데 그 글이 디지털 매거진 형식으로 소개된다. 글은 컴퓨터 모니터 화면 안에 있고, 스마트폰 속에 갇혀 있다. 사람들은 그 글을 마우스로 내려가며 읽을 것이다. 종잇장을 넘겨가면서 읽는 것이 아니고. 나는 어쩌면 그런 일련의 과정이 글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프린트 매거진을 출간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나 하고 있다.

서점에서 곧 <비슬라> 매거진을 볼 수 있을까?

아마도, 곧.
_Interview with 권혁인(<비슬라> 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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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P 저널

www.asapjournal.co.kr

<ASAP 저널>은 영감이 필요한 순간을 위한 디지털 매거진이다. 매일 업로드하는 기사는 대체로 짧은 호흡의 글로 이루어졌다. 또 특정 주제에 매몰되지 않는다. 우연히 클릭한 기사에서 혼다가 만든 로봇 바이크를 요모조모 소개하는가 하면 그 바로 아래에 ‘남녀평등을 노래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걸 크러시’라는 제목의 기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대중문화를 대하는 폭이 좁은 사람이라면 <ASAP 저널>에서 새로운 정보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그보다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이라면 취향 맞는 친구를 발견한 기분이 들 것이다.

제호로 ‘Asap’라는 단어를 빌린다.
반어법을 의도했다. 은 단어의 의미와 반대로 ‘가능한 한 빨리’라는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 물론 최신 정보를 신속히 소개하기도 하지만 빠른 정보보다는 ‘깊은’ 정보를 소개하려 노력한다. 단순히 시의성에 집중하지 않고, 정보의 뿌리까지, 즉 힘들더라도 배경 및 유래 정도를 최대한 소개하려고 한다.

잡지의 색깔은 결국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대중문화 일반에 대한 본인의 취향은 어떤가? 그리고 취향을 다지기 위해 어떤 시절을 통과했나?
나의 취향은 사춘기를 앓던 학창 시절 영감을 받은 문화에 아직까지 머물러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며 다양한 문화가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 시절의 끝자락에 간신히 몸을 걸치고 있었지만, 지금껏 그때만큼 무언가를 강하게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가장 많은 페이지 뷰를 기록한 기사는 무엇인가?
사실 다소 선정적인 이미지가 실린 기사, 자극적인 문구가 들어간 기사가 톱 리스트를 차지한다. 그런 것을 제외한다면, 1970~1980년대 대한민국에서 진행된 산업화 및 도시화의 이면을 담은 닐스 클라우스(Nils Clauss)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소개한 기사가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연령대에 따라 느끼는 바는 다르겠지만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가 있는가?
양승우 사진가. 그는 나에게 ‘아티스트’라는 개념을 다시 일깨워준 사람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그렇게 순수하게 좋아하는 사람을 처음 봤다. 아마 내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인터뷰 기사를 직접 읽어보면 그 느낌을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은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디지털 매거진에서 기성 프린트 매거진과 차별되는 지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동영상, 음악 등의 링크를 첨부하는 편의성을 제공하지만, 대부분 그뿐이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디지털 매거진이었기에 가능했던 <ASAP 저널>만의 작업이 있다면 소개 부탁한다.

<ASAP 저널>에서 보여주는 모든 것이 디지털 매거진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규칙적인 수량으로 매일 업로드되는 콘텐츠나 장르의 경계 없이 즉각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 등. 그리고 동영상, 음악 등의 링크를 첨부하는 작업은 1차적으로 얻고자 했던 정보뿐만이 아니라 그것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정보와 영감을 추가적으로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고 있다. 결국 종이 매체와는 차별화되는 지점은 제한을 두지 않는 모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_Interview with 박정현( 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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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GUEST EDITOR 전여울

2017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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