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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th A-AWARDS

On December 23, 2016 0

<아레나 옴므 플러스> 창간과 함께 시작됐던 올해의 남자 시상식 ‘A-Awards’가 올해로 11회째를 맞이했다. 전대 수상자들에 맞먹는, 2016년을 찬란하게 보낸 7인을 꼽았다. ‘A-Awards’란 이름 아래 함께한 이들은 이 특별한 시상식의 권위가 해가 거듭될수록 수직 상승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존재들. 우리의 친우로서 함께해준 7인의 수상자들과 몽블랑 코리아에게 지면을 통해 감사 인사를 전한다.

매트한 소가죽 소재의 어반 스피릿 반지갑 47만원·기요셰 다이얼 위로 6시 방향의 날짜창과 3개의 서브 카운터를 구현한 4810 크로노그래프 오토매틱 시계 5백70만원·1909년 출시한 첫 번째 만년필을 재해석한 헤리티지 루즈 앤 느와 코랄 만년필 1백4만원 모두 몽블랑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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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색 코트·롱 머플러·진회색 니트·팬츠는 모두 엠포리오 아르마니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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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차승원 + Style

차승원과 멋은 뗄 수 없다. 훤칠한 키에 선 굵은 외모가 도드라지지만, 20대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그 나이에 맞는 자연스러운 멋을 보여줬다. 배우 차승원은 그만의 스타일로, 장르와 역할을 불문하고 늘 기대 이상을 해낸다.

  • ARENA Says
    차승원은 멋있다. 모델 일을 하던 20대에도, 연기자로서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던 30대, 그리고 <삼시세끼>라는 걸출한 예능 프로그램에 도전한 40대에 이르기까지. 차승원은 수십 년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한결같이 나이에 걸맞은 멋을 보여줬다. 단 한 번도 자연스럽지 않은 적이 없었다. 외적인 멋뿐만이 아니다. 코미디와 멜로, 누아르와 스릴러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그 장르에 딱 맞는 연기를 보여줬다. 연기에도 자연스러운 멋이 배어 있다. 그런 그가 올해는 ‘인간적인 매력’까지 발산했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 남자의 외형 속에 숨어 있던 따스함과 의리를 보여줬다. 영화에서는 실존 인물을 연기하며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의 결과를 보여줬다. 차승원은 지난 20여 년을 묵묵히,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로 멋있는 남자로 살아왔다. 2016년에 그런 것처럼 2017년에도 멋있게 살아갈 거다.
스틸 소재의 버클 장식 퍼 코트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검은색 터틀넥 니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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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갈색 더블 브레스트 재킷·검은색 팬츠는 모두 조르지오 아르마니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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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무늬 검은색 수트·진회색 니트·앵클부츠는 모두 조르지오 아르마니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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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에 이어서, 두 번째 에이어워즈 수상이다. 소감이 어떤가?
어떤 상이건 받으면 일단 기분은 좋다. 그리고 어떤 책임감을 느낀다. 어떤 의미로든 나를 인정하고 그에 대해 치하한다는 건데, ‘내가 과연 이런 상을 받을 만큼 뭔가를 이루었던가?’ 반문하게 된다. <아레나>에게 인정받은 만큼 더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차승원의 2016년을 이야기하면서 ‘차줌마 열풍’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따뜻하게 동료를 챙겨주는 차승원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배우 차승원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글쎄, 나는 요즘 자연스러운 게 좋더라. 내가 하는 일, 일상생활 모두 무리한 계획을 세우거나 설정하고 싶지 않았다. <삼시세끼>도 그런 과정 중 하나였다. 작품을 선택할 때도 될 수 있으면 자연스럽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예전에는 ‘이번엔 이런 역할을 했으니까 다음에는 다른 역할을 해야겠다’는 식의 계획을 세우곤 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떤 작품, 캐릭터, 이미지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은 무뎌진 것 같기도 하다.

만재도 편까지만 해도 뭔가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느낌이었다면, 고창 편에서는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함께 출연한 유해진, 손호준, 남주혁과 별일 없이 사는 하루를 보여준 것뿐인데 대중의 반응이 참 뜨거웠다.
순리대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욕심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것이 과해지고 집착이 되면 안 된다. 내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마음보다 이건 그냥 일상적인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있는 그대로를 찍는다. 보는 분들도 그렇겠지만 찍히는 우리도 함께하는 소소한 재미를 느낀다. 두 번의 <삼시세끼>를 경험하면서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라 우리만의 어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편하고, 뭔가를 더하려기보다 자꾸만 덜하게 된다. 아주 자연스럽게.

‘자연스러움’이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자연스럽다는 건 차승원의 가장 큰 매력 같다. 늘 흐트러짐 없이 멋있는데, 결코 나이에 비해 더 젊어 보이려는 노력의 결과는 아니다. 정말 자연스럽게 그 나이만의 멋을 보여준다. 동의하나?
내 나이보다 10년은 젊어 보인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하. 그런 것이 나에게는 이제 무의미하다. 물론 젊음이라는 건 모두가 손꼽는 가치 중 하나겠지만 흐르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다. 열심히, 노력을 기울여서 소위 말하는 ‘안티에이징’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인위적으로 내 모습을 바꾸는 것은 원치 않는다. 모든 남자에게는 자신의 나이대에 맞는 멋이 있다. 다만 그걸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워낙 어려서부터 점잖고 조숙해지길 원하는 사회적 요구 때문일 거다. 일반적으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암묵적으로 공통된 스타일을 요구하지 않나.

그래서 많은 이들이 <아레나>를 보면서 스타일을 공부하는 게 아닐까?
하하. 그렇지. 패션 매거진도 그렇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나만의 멋’을 찾는 방법이 꽤 많아졌다. 그런데 단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차를 모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확실한 내 생각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내가 이런 옷과 구두를 좋아하는데, 왜 좋아하는지 그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남들이 많이 입길래’ ‘요즘 이런 게 유행이라서’ 등등의 이유로는 나만의 멋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몰개성적이고 천편일률적인 남자가 될 수밖에 없을 거다. 내가 왜 좋아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무조건 따라가기만 하는 것을 되도록 경계하고 배제하려고 한다.

만약 배우라는 직업을 갖지 않았더라도, 내 멋을 찾는 남자로 살았을까?

그건 또 모르는 거다. 나는 은근히 보수적인 사람이라 단체 생활, 조직 사회에서 튀기 쉽지 않았을 거다.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내게 맞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고, 환경도 자연스레 조성되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거겠지. 회사 생활을 했다면 이렇게까지 자신 있게 말하진 못했을 거다.

얼마 전에 배우 김응수 씨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내가 함께 연기해본 배우 중 최고는 차승원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늘 상황과 배역에 딱 맞는 연기를 보여준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런 칭찬 들어본 적 있나?

그 형이 나랑 친해서 그런 거다. 하하. 응수 형과는 연극도 같이 했고 영화, 드라마 등 꽤 많은 작품에서 만났다. 주변에 그런 훌륭한 배우들이 있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유해진 같은 배우도 그렇고, 자기의 룰이 확실하고 배우로서 철학이 굳건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나에게도 아주 좋은 영향을 미친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하지 않나. 그런 사람들 덕에 긍정적인 변화도 많이 경험했다. 요즘 혼란스러운 시국을 지켜보면서, 누군가 용기를 내서 희생하는 사람들이 정치권에 많이 있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결과를 낳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만큼 좋은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예술가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제작되는 작품의 경향도, 분위기도 분명 시국을 반영할 테니 말이다.
그렇다. 내 주변을 봐도 그렇고 사회 전반적으로 ‘파이팅’이 없어졌다. 우리는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냐’는 교육을 받고 자라지 않았나? 모두 마음속으로는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 믿음이 한꺼번에 무너져버린 셈이다. 젊은이가 힘든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가장 먼저 포기를 선택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열심히 해봤자’라는 생각으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말이다. 개인은 사회에게, 사회는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면 모두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엔 더욱 더 내 주변이 잘되어야 나도 잘된다는 생각을 한다. 서로 자긍심과 자부심을 북돋우면서 시너지를 내는 일이 참 중요하다.

배우라는 직업 또한 ‘노력하면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무명에서 한국 영화계의 거장으로 올라선 훌륭한 배우가 그 증인이 되지 않았나?
내가 감히, 주제넘게 한마디를 보태자면 지금 이 시간에도 열심히 최고의 배우를 꿈꾸며 노력하는 이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꿈과 열정, 가능성이 무궁무진할 테니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능성을 믿고 노력하면 어떤 방향으로든 잘 풀릴 거다. 20년 넘게 배우로 생활하면서 느낀 결론이니 어느 정도는 믿을 만할 거다.

이럴 때일수록 진짜 기가 막힌 코미디 영화를 한 번 선택해보는 건 어떨까? 차승원표 코미디는 언제나 대환영이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 모두 웃고 싶은 때니까.
나 역시 배우로서는 일말의 책임감 같은 것이 있다. 나조차도 어두운 이야기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배우라는 직업이 물론 자기만족도 크겠지만 대중에 대한 어떤 책임감 또한 가져야 할 것 같다. 누군가 내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섣불리 어떤 선택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은 되도록 좋은 방향이어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 작품은 아주 신중하게 지켜보는 중이다.

생각해보면 차승원이라는 배우는 멜로, 코미디, 누아르, 스릴러, 액션을 다 소화할 수 있다. 어떤 특정 장르보다 두루두루 다 잘해내다 보니 선택의 고민도 커질 것 같은데?
남들이 생각하는 차승원의 이미지,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차승원의 이미지 사이에 분명 어떤 접점이 있을 거다. 그걸 찾아서 그에 맞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 정체기라고는 할 수 없지만, 생각을 많이 하는 시기임은 분명하다. 작품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내 생활을 즐기는 것이 참 좋다. 또 사회가 안정이 되어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작품을 볼 텐데, 요즘엔 참 걱정이 많다. 괜히 나도 의심이 많아졌다. 어느 자리에 가도 ‘저 사람은 정말 자신의 능력으로 저 자리에 올라간 걸까?’ 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니까 큰일이다, 정말.

맞는 얘기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2016년을 돌이켜봤을 때, 그래도, 그나마 좋았던 기억이 있다면 꼽아볼 수 있나?

나는 정말, 올해 좋은 게 하나도 없었다. 신나는 기억조차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건강이 나빠지진 않았다는 거다. (매니저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 올해 뭐 좋은 게 있었나? (없었다는 답이 돌아온다.) 거봐, 진짜 없었다.

굉장히 의외다. 2016년에 워낙 사람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아 꽤 즐거웠을 줄 알았다. 원래 무던한 성격이라 그런 건 아닐까?
아니다.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일을 떠나서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다. 그리고 연말에 또 우울한 뉴스가 연일 터지면서 결론적으로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다.

계속해서 시국을 걱정한다. 무엇보다 배우로서 가장 염려되는 점은 뭔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도 파장이 꽤 클 것 같다. 지난 시간 동안 한국 영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이 많은데, 이러다 홍콩 영화계처럼 침체될까 걱정이다. 그래서 더더욱 뭔가를 선택하기가 어렵다. 어서 이 혼란스러운 시기가 지나갔으면 좋겠다.

2016년은 어쨌거나 뒤숭숭하게 지나갔다. 2017년엔 그래도 낙관적인 계획을 세워본다면?
물론 지금 살펴보는 작품은 있다. 그것 또한 자연스럽게 하고 싶어서 내년 초쯤에는 결정할 것 같다. 자연스러운 타이밍을 노리는 거다. 하하. 지금은 그냥 주변 사람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별일 없이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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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색 더블브레스트 재킷· 자주색 팬츠는 모두 조르지오 아르마니, 뿔테 안경·감색 터틀넥 니트·검은색 슈즈는 모두 에디터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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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나홍진 + Passion

언젠가 이 자리에 설 줄 알았다. 점점 영화가 상품이 되는 흐름에서 나홍진 감독은 오히려 더 독하게 밀어붙였다. 모두 매콤한 코를 매만지며 이 상황에 어리둥절했다. 한국 영화계는 ‘곡성’이란 두 글자로 들썩였다.

  • ARENA Says
    충격적이었다. 딱히 올해만은 아니었다. 영화감독 나홍진은 매번 관객을 놀라게 했다. 단지 자극적인 장면 때문만은 아니었다. 적나라한 욕망과 욕망이 서로 전력 질주로 맞부딪치는 까닭이다. 그 충돌 지점에서 훅, 뜨거운 열기가 사람들을 휘감았다. 그 관계에 자비란 없다. 단지 서로 바닥까지 내려가 지층을 뚫고 그 밑을 파고든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자세 또한 여지를 두지 않는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더욱 적나라하게 바라본다. 어쩌면 나홍진의 자세에 관객이 놀란다고 해야 할까. 올해 <곡성>으로 그는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관객은 나홍진이 펼쳐놓은 세상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동안 선보인 작품보다 한층 깊고 끈적거렸다. 그 늪 같은 곳에서 뒹굴면서 사람들은 영화의 지적 유희를 즐겼다. 오랜만이었다. 그럴 수 있는 작품이 적은 시대였다. 나홍진은 올해 시대에 함몰되지 않고 자기만의 시위에 성공했다. 여전히 뜨겁고, 여전히 적나라한 자신을 보존했다고 할 수 있다.

청룡영화제와 디렉터스 컷 시상식에서 감독상 수상한 거 축하한다.
별로 동요하지 않고 모든 게 평온한 상태다. 좀 더 찬찬히 느끼고 생각하는 상태. 전처럼 신나서 방방 뛰는 상태가 아니었다. 좀 아쉽다. 과거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이 사라져가는 거니까. 기쁨의 차이를 말하는 게 아니다.

<곡성>의 반응이 워낙 폭발적이라 심리적 만족도가 높아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곡성>이 개봉할 때 관객이 이 영화를 받아들일지가 제일 관심거리였다. 굉장히 궁금했고, 의도대로 봐주길 간절히 바랐다. 내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관심과 말씀을 전해주신 점에서 이미 제일 큰 상을 받은 거다. 이질적인 이 영화를 대중에게 선보이는 그 지점이 제일 두려웠다. 수년간 한국 관객의 관람 성향이나 기록을 분석해보면, <곡성> 같은 영화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자신감 있게 주변에 말했지만 머릿속은 걱정투성이였다.

<황해> 이후로 한 6년 걸렸다. 그 기간 동안 한국 영화는 대기업 수직 계열화하던 시기였다. 감독 개성보다는 수치로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어떻게 설득했나?
같이 일하는 회사가 FIP(폭스 인터내셔널 프로덕션)인데, 그 회사 대표와 <추격자>를 찍고 나서 영화제에서 만났다. 그 양반이 <황해>에도 투자했다. <황해> 끝내고 홍콩영화제에 갔을 때 적극적으로 함께하자고 얘기하더라. 나는 잠시 영화를 쉴 거라고 했는데도, 외국 나가 있을 때도 찾아와 적극적으로 얘기하시더라. 대표님이라는 분이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얘기하니 감사했다. 그래서 일단 계약한 거다.

뭐할지는 모르고?

일단 미국 영화 한 편 해달라고 했다. 제작자도 계속 만났다. 당시 시리즈 액션물이었다. 구체화될 때 갑자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내가 막대한 제작비를 단기간에 사용하는 어마어마한 액션물을 만들 준비가 돼 있나, 하는 생각. 다른 하나는 한국 영화를 한 편 더 하고 싶었다. 난 <황해>가 정말 좋다. 애착이 많이 간다. 개봉할 당시, 개봉 시기나 후반 작업 등 여러 상황이 걸렸다. 솔직히 말해 억울해서 4년 동안 잠을 거의 못 잤다. 왜 거기서 버티지 못했느냐, 싸우지 못했느냐 하면서 나 자신에게 너무 많이 화가 났다. 그래서 한국 영화 한 편만 더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함께하게 됐다.

이미 신뢰가 있긴 했지만, <곡성>은 찍기 전에는 어떻게 나올지 모를 영화였을 게다. 그런 점을 어떻게 설명했나?

영화 자체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이런 식이었다. ‘누가 이 회사 안에 나홍진과 영화 얘기할 수 있나. 그냥 조용히 들어라.’ 누군가 시나리오 회의를 한다고 하면 ‘나홍진과 시나리오 회의를 하겠다고?’ 하면서 피식, 웃고 그랬다. 명작이라고 생각하는 <세븐> 등 여러 영화를 프로듀스한 분이 그렇게 밀어주시니 감사했다. 지금 그분은 그만두시고 콜롬비아 픽쳐스 스튜디오 대표로 가셨다.

아까 사진 촬영할 때 <곡성>의 장르 얘기를 했다. 고딕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장르를 넘어 개념 같은 건데 어떻게 거기까지 도달했나?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어떤 스타일로 풀어나갈 것이냐는 선택하기 나름이다. 당시 내가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할 때, 개인적인 경험도, 사회적인 현상과 느낌도 있었다.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동안 그런 것들에 영향받았다. <추격자>나 <황해>는 명확하게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어떤 타깃이 가능한 얘기였다. 그런데 현실 어디에 맞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나온 게 초자연이다. 초자연을 들이대니까 모든 아귀가 맞더라.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닌가, 쉽게 타협한 건 아닌가 고민했다. 하지만 초자연 외에는 내가 찾아낼 수 있는 답이 없었다. 이 분야를 배우려고 서적을 구입했다. 읽다 보니 방대해서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할 수 없는 얘기 같았다. 할까 말까 고민하면서도, 이야기는 계속 전진했다. 결국 나만의 방법을 찾다 보니 초상위 개념인 고딕이 떠올랐다. 호러, 좀비, 미스터리일 필요가 없었다. 고딕 안에서라면 자유롭게 디자인할 수 있었다. 음습하고 축축하고 어둡고 횃불이 불타는 느낌들.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이런저런 의견이 분분한 현상이 재밌었다. 바둑판에 커다란 수를 놓고 풀어봐라, 하는 감독의 의도가 읽혔다.
장르 영화로 인식된 이 영화가 좋은 성과를 올리려면 몇 가지 단계가 필요했다. 첫 번째, 일반 관객이 쉽게 이해하도록 표면적 플롯은 쉽고 명확해야 한다. 거기서 이탈자는 단 한 명도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 명확한 플롯 안에 또 다른 플롯을 집어넣는다. 그 플롯은 표면적 플롯과 일치하기도 벌어지기도 한다. 그다음 점 같은 세 번째 플롯이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비주얼적으로 익숙하지 않을 테지만 서사적으로 매우 익숙한 작품을 오마주한다. 예를 들면 성경, 예술, 악마 같은 것들. 이게 내 계획이었다. 일단 영화를 매우 관심 있게 보는 사람들이 이 세 가지를 분명히 찾아낼 거라고 생각했다. 대신 정답은 없다. 각자 그것에 대해 말하려면 이 영화를 세 번은 봐야 한다. 그러려면 필히 재밌어야 하고 완성도가 높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했다. 이 조건이 성사되면 상위 20퍼센트의 마니아층이 광적인 움직임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이, 너무나 죄송한 이야기지만 충돌하기 시작할 거다. 그 충돌이 일반 관객을 유입시킬 거고, 그러다 보면 이 영화를 평생 안 볼 거 같은 관객조차 유입될 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미리 디자인했다.

그런 경험이 다음 영화를 찍을 때 영향을 주겠지?
분명히 그렇다. 내가 점점 나이를 먹어간다는 거다. 이 템포로 영화를 계속 찍을 수 없다. 물론 이번에는 작품의 특이성 때문에 오래 걸리긴 했다. 하지만 이젠 내가 확신하는 신과 대사를 덜 부끄러워하면서 해나갈 수 있을 듯하다. 경험이 쌓이면서 편집에서 날려버리는 부분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다시 <곡성> 같은 영화를 만나도 그전보다 빨리 완성할 자신이 있다. 이제 경험해봤으니까.

<곡성>을 보고 나서 나홍진이란 감독의 다음 작품이 더 안갯속에 빠졌다.

난 시나리오 작가이면서 영화감독이기에 둘의 목적이 일치된 상황에서 스타트를 끊는다. 난 둘이 필요로 하는 조건이 다르다고 여긴다. 영화감독은 기술직이잖나. 경험이 많을수록 유리하다. 반면 작가는 파릇하고, 거칠어도 뭔가 뛰어난 지점이 있어야 한다. 둘의 그래프는, 사실 반대로 향한다. 둘의 접합점을 고민한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 모호한 상황이기에 더 기대감이 생긴다. 원래도 기대가 컸지만.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 점은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다. 그렇게 궁금해하니 기분 좋다. 어쨌거나 내 작품의 공통점은 이렇다고 생각한다. 서사가 뭐든, 만듦새가 어떻든, 모든 관객은 아니 모든 인간은 선을 지향한다고. 나는 그 선에 대한 지향을 어떻게 가장 부각시킬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한다. 그 선이 존재하는 공간이 악하면 악할수록 그 선은 돋보이리라. 이런 우습기도 유치할 수 있는 생각을 하는데, 아마 내 작품은 앞으로도 그런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난 빛이 온 세상을 비추는 밝음을 표현하는 것보다 어두운 곳을 계속 걸어갔더니 눈곱만 한 빛이 보이고 그 빛을 따라가는 과정, 그 빛이 생성되는 과정이 재밌는 서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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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보트넥 스웨터·라이닝 장식이 있는 체크 패턴 재킷· 울 팬츠·자주색 머플러는 모두 엠포리오 아르마니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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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김성주 + Confidence

김성주는 참 배려심이 넘치는 진행자다. 자신을 돋보이려 애쓰는 ‘프로 예능꾼’들 사이에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거나 깎아내리지 않으면서도 재치 있게 프로그램을 진행할 줄 안다. 튀지 않더라도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바로 그 배려심의 원천이다.

  • ARENA Says
    무조건 튀어야 사는 방송가에서 ‘배려’는 어쩌면 불필요한 덕목일지도 모르겠다. 독하게 말할수록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거나 대중에게 각인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나운서이자 방송인 김성주는 조화와 배려를 택했다. 출연자들이 돋보일 수 있도록 자신을 많이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절대 심심하지 않다. 편안하게 프로그램 전반을 이끌고 나가면서 중간중간 지루하지 않게 재치를 불어넣을 줄 안다. 이렇게 강약을 조절하는 김성주에게서 시청자는 신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냉장고를 부탁해> <복면가왕> <슈퍼스타K> 등 2016년 굵직한 프로그램에서 그를 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연 프로그램에서는 긴장감을 유지하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편안함을 유지한다. 매해 연말 시상식 진행자로 ‘시상’을 하던 그가 이번엔 에이어워즈에서 ‘수상’했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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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어워즈에서 ‘컨피던스’ 부문을 수상한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 같아 나 역시 기분이 좋다.
하하. 굉장히 당황스러운 한편 감사하고 기쁘다. 사실 나는 상을 받는 입장이라기보다는 상 받는 사람을 소개하는 역할이 더 익숙하다. “2016년 올해의 남자는 바로~ 접니다!” 해야 하는 이 상황이 어색하지만 기분 좋다. 내년에도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 더 많은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기뻐하는 게 티가 많이 났나 보다.

하하. 일주일 동안 TV에 몇 번 나오나? 고정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꽤 많지 않나?
지금은 많이 줄였다. 하도 ‘많이 한다’고 하는 의견이 있어서. 하하. 무조건 많이 하면 좋은 건 줄 알았는데 자기 관리도 필요하고 해서 줄여나가는 중이다. <복면가왕> <냉장고를 부탁해> <뭉쳐야 뜬다> <슈퍼스타K> <명단공개> 다섯 개 정도를 진행한다.

생방송이 필요한 프로그램에서 특히 김성주를 많이 찾는 것 같다. 스스로도 생방송에 강점이 있는 진행자라고 생각하나?
이야기한 것처럼 생방송 프로그램에서 많이 불러주고, 칭찬도 많이 받는 편이다. 어떤 이들은 녹화 시간이 길지 않아서 좋다는 이유로 생방송을 선호한다고 하던데, 나는 그런 이유보다는 내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이라서 좋아한다. 아나운서 출신으로서 다른 진행자와 차별화되는 부분, 강점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방송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상황만 던져주고 진행자 역량에 맡기는 프로그램도 있을 거고, 대본에 정말 충실해야 하는 프로그램도 있을 거다. 둘 중 어떤 것이 더 편한가?
<냉장고를 부탁해>는 출연자의 근황과 냉장고를 뒤질 때 빼고는 거의 애드리브라고 보면 된다. 어떤 요리가 나오는지, 요리 과정에서 어떤 상황이 튀어나오는지는 모두 진행자가 끌고 가야 할 몫이다. 예전에 교양, 시사 프로그램 진행할 때에는 반드시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가 있고 기획 의도가 확실해서 대본을 정확히 숙지해야 했다. 예능 프로그램은 ‘김성주 씨가 하고 싶은 대로, 상황을 정리해주세요’라는 식이다. 나를 믿고 맡기는 부분이 크기에 더 열심히 노력하게 된다.

<슈퍼스타K> 시리즈를 오랫동안 진행해왔기에 각종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는 자신 있을 것 같다. 어떤가?

정말 생각도 못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합격자와 탈락자의 이름이 바뀌기도 하고, 무대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기도 하고. 녹화 방송이라면 끊고 다시 하겠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진행자인 내가 상황을 정리해줘야 한다. <복면가왕>도 녹화 방송이긴 하지만, 생방송과 다를 바 없이 긴박하게 진행된다. 출연자가 노래를 실수했다고 해서 다시 녹화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투표가 최대한 공정하게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LED로 만든 문이 열리지 않아서 다시 녹화를 한 적이 있다. 그럴 땐 방송에 나가지는 않지만 진행자인 내가 관객에게 상황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혹시나 특정 출연자에게 혜택을 준다고 오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경험하면서 배운 점이 정말 많다.

진행하는 방식 또한 유행을 탄다. 곤란한 질문을 해서 상대를 당황시킨다든가, 깎아내리는 것 등. 시청자 입장에서 진행자 김성주는 누군가를 곤란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재미있게 이끌어가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아, 정말 잘 봤다. 하하.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런 방식이 예능계에서는 조금 심심할 수도 있다. 고민이 되지 않던가?
그렇다. 방송을 하다 보면 흔히 말하는 대체 불가의 존재감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이런 사람들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단숨에 주목받는다. 실시간 검색어로도 바로 올라가고 말이다. 나는 방송을 아무리 많이 해도 실시간 검색어로 올라가본 적이 거의 없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을 난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예능에서 확실한 캐릭터를 가지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기본이 탄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튼튼하게 틀을 잡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프로그램은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금방 무너질 수 있으니까.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일부 튀는 사람들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것 같지만, 자기 자리에서 역할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방송을 할 때 그 누구와도 호흡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레 녹아들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배려하는 것이 나의 기본 임무다. 그게 아나운서 생활을 하면서 배운 자세이기도 하고. 기본에 충실한 게 별것 아닌 거 같아도 그게 없어진 후에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튀는 사람들이 주로 살아남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이지 않게 높낮이를 조율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예전에 이런 얘기를 들었다. ‘김성주는 아나운서 시절에 출연료가 저렴하니까 많이 기용한 것’이라고. 만약 방송국에 소속되지 않아서 출연료를 비싸게 받았다면 김성주를 기용하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였다. 그게 엄청 자극이 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내가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감’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 요즘엔 내 역할을 인정해주는 이들이 많아져서 기쁘고 좋다.

그래도 너무 착하게만 진행할 순 없지 않나? 재미 있으려면 약간 깐죽거리는 면도 있어야 한다.
맞다. 나도 요즘 트렌드에 발맞춰 함께 출연하는 사람들에게 깐죽거리기도 하고 깎아내리기도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으면 재미가 없다. 하지만 내겐 가이드라인이 분명 있다. 내가 암만 깐족거려도 상대가 기분 나빠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아무리 일탈하더라도 나라는 사람의 기본 토양이 있기 때문에 적정선 이상을 넘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있다. 무리할 경우에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알게 됐다. 하하.

경연 프로그램의 진행도 참 잘한다. 진행자는 단순히 당락을 소개하는 것 외에 어떤 덕목이 필요한가?
대결 구도로 구성된 프로그램이기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확함, 그리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함이다. 그래야 시청자와 관객이 진행자에게 신뢰를 갖는다. 또 하나 이야기하자면 경연 프로그램은 돌발 상황도 많다. 제 시간 안에 끝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는 진행자의 과감한 결단력이 필요하다. 어떤 것은 넘기고, 어떤 것은 꼭 보여주고 이런 걸 제작진과 상의할 시간이 없기에 오로지 내 판단으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지금 진행하는 프로그램 중에서 기존의 김성주를 뛰어넘는,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 있다면?
<뭉쳐야 뜬다>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언제나 익숙하지 않다. 나는 호스트로서 누군가를 초대하고, 그 사람을 알리는 것에 더 익숙하다. 나를 누군가에게 알리는 것은 참 부담스럽다. 앞서 언급했듯 방송 진행자로서 신뢰, 중립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나라는 사람을 공개했을 경우 거기서 오는 부담감이 상당하다. 몇 년 전에 <아빠 어디가> 출연할 때도 사람들이 그러지 않았나. ‘김성주 씨는 자상할 줄 알았는데, 아이들에게 꽤 가부장적이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건 아직까지도 낯설고 자신이 없다. <뭉쳐야 뜬다>는 김용만 형, 안정환, 정형돈과 함께 패키지 여행을 떠나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제안받았을 때 걱정이 굉장히 많았다. 그래도 워낙 친한 사람들과 만드는 방송이라 두려움과 부담을 안고 강행하는 중이다. 아직도 촬영을 마치면 이게 어떻게 방송이 될까 싶다.

첫 방송 봤나? 생각보다 엄청 재밌더라.
봤다. 어느 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어떤 여행에선 갑자기 내가 안 나오기도 할 거다. 중국에 가니까 몇백 년 된 거북이를 가둬놓고 사진 찍고 돈을 받더라. 태국에서는 호랑이 묶어놓고 채찍으로 때리면서 ‘어흥’ 할 때 사진 찍고 돈 받고. 나는 암만 방송이라 해도 그런 게 싫더라고. 그래서 빠져 있었다. 내가 옳고 이런 관광 프로그램을 즐기는 사람들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충분히 그런 걸 즐기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 생각하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다. 어쨌거나 이런 내 생각과 가치관이 방송에 고스란히 나간다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걱정된다.

우려와 달리 첫 회가 JTBC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넘겼다고 들었다. 굉장히 드문 경우 아닌가?
우리끼리 여행 다니는 걸 재미있게 봐주실까 걱정했는데 감사한 일이다. 사실 연예인이 해외여행 다니면서 쉽게 돈 번다는 이야기 들을까봐 걱정했다. 프로그램의 취지는 일반적으로 많은 이들이 택하는 패키지 여행을 직접 체험하고, 소개한다는 것이다. 일단 작위적인 상황 설정도 없고 정말 우리와 함께 관광버스 타고 하루 종일 여행 다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다. 몸은 고되지만 재미있게 촬영하고 있다.

2017년에도 딱 2016년 정도로만 활동할 생각인가? 뭔가 더 무리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엿보이기도 한다.
2016년엔 생각의 변화가 많았다. 내가 많이 의지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이 가장 크다. 아버지가 내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시니까, 더 많이 출연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를 돌아보니 건강도 챙기지 않고 너무 달려온 것 같았다. 2017년에는 더욱 선택과 집중을 잘해서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

2016년엔 한국보다 해외에서 진행한 방송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유난히 해외에 나갈 일이 많은 2016년이었다. <쿡가대표>에서는 셰프들과 함께 홍콩, 두바이, 샌프란시스코 등을 다녀왔다. 올림픽 중계 때문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한 달 넘게 생활하기도 했다. <뭉쳐야 뜬다>에서는 태국, 중국, 하와이 등을 여행하게 될 거고. 이렇게 넓은 세상을 다니다 보니 방송 외에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너무 방송만 생각하지 않고 다른 분야에서 나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고민해보고 싶기도 하다. 만약 그 과감한 시도와 실험이 성공한다면 2017년에도 <아레나>가 선정한 올해의 남자로 2년 연속 수상하게 되지 않을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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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탁환 + Innovation

김탁환은 20년 동안 글을 썼다. 20주년 기념작은 <거짓말이다>. 그가 지금까지 써온 소설과 조금 다른 소설이다. 꾸준히 써왔으며, 그 시간의 깊이를 담아 새로운 걸 썼다. 이 이상 소설가에게 뭐가 필요할까?

  • ARENA Says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보내는 방식은 다르다. 김탁환이 보낸 20년은 소설과 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올해 그는 데뷔 20주년을 맞이했다. 시간과 시간 사이, 수많은 소설이 그 틈을 채웠다. 그는 무엇보다 역사 속에서 반짝이는 걸 찾았다. 시대의 격랑에 맞선 형형한 눈빛의 인물을 건져 올렸다. 그 인물들은 과거의 인물이지만 현재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들의 이야기에 우리는 또 여러 번 울고 웃었다. 이 모든 과정이 김탁환의 20년을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2016년에도, 언제나 그렇듯이 김탁환은 다시 한 번 이야기를 건넸다. 이번에는 문서에 박제된 인물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와 동시대에서 숨 쉬는 인물들이었다. 그는 세월호 사건의 그늘에 있던 민간 잠수사를 조명했다. 그의 신작 <거짓말이다>가 20주년 기념작이 된 이유다. 소설가가 지금, 자기 자리에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이기도 하다. 김탁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이유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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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개월 동안 정말 바쁘게 활동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연하고 사람들과 만났다.
그냥 세월호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책 내고 2~3주 얘기하면 끝이다. 너무 많이 하는 것도 ‘오바’잖나. 그런데 이건 좀 많이 해야 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 책을 중심으로 세월호 활동하시는 분들에게 도움 줄 수 있겠다고 생각해 두세 달 했다. 지금은 촛불 정국과 맞물려서 활동할 상황이 더 늘어났다.

<목격자들>부터 지금까지 여러 가지를 생각한 듯하다. 소설과 사회가 연결된 활동을 하면서 소설가로서 생각이 많아졌겠다.
이 책을 내고 독자를 만났을 때 반응이 다르더라. 보통 책 재밌네요, 남자 주인공 멋있어요, 하는 반응을 보이는데, 이번에는 열에 아홉 명은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책을, 소설을 냈는데 고맙다는 반응이니 되게 다르잖나. 그게 화두였다. 이 사람들이 왜 나한테 고맙다고 할까. 이 책의 특별함이 제목 다섯 글자에 다 들어 있는 거 같다. 집필을 시작했을 때 이게 기존의 소설이냐 아니냐, 하는 것보다 잘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벌어진 일을 독자에게 정확하고 흥미롭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다. 너희들이 이걸 소설이라 부르든, 뭐라 부르든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 이런 태도였다.

새로운 방식이긴 하다. 상황도 그렇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도 익숙하진 않다.
생각해보면 내가 잘하는 방식이더라. 역사적인 한 인간에 대해서 자료를 뒤지고 답사 다니는 것처럼, 특별히 다르다거나 하는 생각이 별로 없었다. 내 소설이 역사 소설로 묶여 있지만 그 안에 다양한 방식이 있는 거니까. 어쨌든 시간이 굉장히 밀착돼 있으니까,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살아 있는 점이 달랐다.

예전 인터뷰에서 인물 평전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이번에는 서적 속 인물 대신 현실 인물이 확, 다가온 건가?
<목격자들>을 쓰고 나서 계속 생각이 머릿속에 있었다. 열심히 쓰긴 했는데 뭔가 미진한 느낌이 있었다. 사실 <목격자들>은 고의 침몰설을 다루니, 내용이 더 센데도 그랬다. 독자가 느끼기에 어쨌든 시간적 거리도 있으니까 그걸 읽고 분노하거나 혹은 고맙다고는 하지 않더라고. 단순하게 우리는 옳고 상대는, 정부는 나쁘다는 이분법으로는 소설로 다룰 수 있는 게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다 문학적 관점으로 접근했다.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그중에서도 인간의 이타성. 인간이 다른 인간을 위해서 어디까지 해줄 수 있나, 하는 점을 바라봤다. 이런 게 내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김관홍 잠수사나 다른 잠수사들이나 그때 이후로 잠수를 못하게 됐잖나. 자기 인생이 끝난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은 그 일을 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 이후 자기에게 돌아오는 상처는 또 어떻게 받아들이고 치유하려 했나. 이런 이야기를 큰 주제로 담아봤다.

<거짓말이다>에선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장면도 많다. 문자만이 줄 수 있는 상상력 말이다. 무질서한 공간에서 어떻게 수습할까? 그곳은 어떤 상황일까? 사건을 옮기는 것 이상의 문학적 가치도 전해졌다.
글을 되게 잘 쓰고 싶었다. 물속 공간에 대해서, 그 공간과 그 공간으로 들어가는 잠수사들의 작은 부분까지도 다 생생하게 살려내고 싶었다. 그 부분에 제일 공들였다. 나중에 영상으로 옮긴다면 그 부분이 잘 구현됐으면 좋겠다(이후 오멸 감독이 영화화하기로 했다). <거짓말이다>의 잠수사 나경수에 대해서는 좌파든 우파든 보수든 진보든 다 동의할 테다. 인간의 이타성이란 부분으로 접근하면 설득할 수 있다.

아주 근접한, 시간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근접한 사건을 다뤘다. 기존 쓰던 방식과 달랐을 듯하다.
제약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상상력을 더 넓힐 수 있는 통로였다. 굉장히 집중적으로 써야 했다. 집중해서 아주 깊게 매일 이것만 썼다. 김관홍 잠수사가 민간 잠수사의 삶을 알리고 싶은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계속 발언했지만 한계가 느껴졌는데, 장편 소설로 나가면 금방 확산될 거니까 그 친구가 굉장히 열심히 도와줬다. 그래서 시너지가 많이 났다. 결과적으로 그 친구가 잘못됐지만. 책을 쓰는 과정도 굉장히 특별했다. 주인공 모델이 직접 나를 찾아왔고, 같이 호흡하면서 작업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역사 소설 주인공들은 다 죽었기 때문에 말이 없잖나. 근데 이번엔 주인공이 말하고 움직이고 캐릭터가 살아서 돌아다니니까. 책을 내고 나서도 굉장히 다르다. 그 친구에게 평생 지고 가야 할 부채 의식 같은 게 있다. 세월호 활동을 계속하는 것도 결국 김관홍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의식이 가슴속에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거짓말이다>로 제33회 요산김정한문학상을 받았다. 또 <거짓말이다>는 출판사 대표들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다른 때보다 더 상이 반가웠겠다.
1970~1980년대 리얼리즘 소설이나 조정래 선생님의 대하 소설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했는데, 이젠 그 기능이 굉장히 약화됐다. 이제 소설 기능이라면 인간을 성찰하는 정도로 역할이 국한돼 있다. 소설이 사회 상황에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역할을 한 해 동안 <거짓말이다>가 한 거 같다. 한 해 받은 상은 그런 면에서 격려나 지지가 아닐까. 우리가 한 일을 인정해주니까 기분이 좋다. 세월호 유가족이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셨다. 그게 더 좋았다.

책도 많이 팔렸나?
지금 2만 부를 넘겼으니 일반적으로 보면 많이 팔렸다. 이 작품 인세는 다 기부하기로 했다. 어쨌든 이 책이 나오면서 반향이 엄청 나긴 했다.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서 민간 잠수사 이야기를 알고, 조명하기도 하고, 어쨌든 재판에서 무죄도 받았으니까. 실제 반응이 현실에서 일어난 거다. 책 나오고 8월부터 10월까지 이 책을 통해서 다시 세월호 사건을 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그런 식으로 단순히 반응뿐 아니라 사회적 역할도 충실하게 한 거 같다. 세월호처럼 큰 사건이 나면 외국은 다양한 측면에서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한국은 그런 게 너무 없다. 큰 사건이 일어나도 작가들이 뛰어들어서 작품으로 말하는 일이 없는데, 그 역할을 했다는 게 중요하다.

<거짓말이다>가 이후 집필 목록에 영향을 많이 줄까?
그럴 거 같다. 역사물을 많이 쓰는 작가라는 선입견 아닌 선입견도 많이 걷어낸 거 같다. 당대 현실 이야기를 더 많이 쓸 수 있는 계기가 된 거 같다. 꼭 이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지금을 많이 이야기하려고 한다. 내가 그런 나이가 된 거 같고. 물론 조선 시대는 나한테는 영원한 원천이긴 하다. 조선 시대는 아직 쓸 게 많다. 이거 쓰고 있으면 저거 쓰고 싶고 그렇다. 소재를 계속 찾고 방아쇠를 당기면 된다.

집필 속도가 빠르다고 들었다. 소설가로서 큰 장점이다.
난 전업 작가니까. 월급을 받는 대학교수를 하면서 소설을 쓰는, 혹은 소설을 안 써도 버틸 수 있는 삶이 아니거든. 소설을 계속 써야만 하는 상황에 일부러 들어온 거니까. 스티븐 킹이나 히가시노 게이고가 1년에 장편을 두 편씩 쓴다. 난 그 정도는 아니다. 신작을 두 편씩 냈더니 주위에서 제정신이냐고, 어떻게 장편을 1년에 두 편씩 내냐고 하더라. 보통 난 1년에 한 작품? 혹은 2년에 세 작품 정도를 낸다. 난 그게 전혀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는 게 작가로서 정직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쓰더라도 따라와주는 독자가 필요하고, 이야기의 퀄리티가 있어야 한다. 나도 20년 정도 했으니까 읽어주는 독자도 있고, 너무 빨라서 퀄리티가 떨어지거나 하진 않는다. <거짓말이다>는 넉 달 만에 썼다. 그렇다고 책 나오고 나서 이건 너무 빨리 썼어, 이건 날림 공사야, 하는 말은 한번도 들어보지 않았다. 그냥 이 정도 속도로 써도 내용과 형식과 문장에 완성도를 갖출 수 있다는 거다.

2016년이 데뷔 20주년이다. 마침 다른 방식으로 소설도 냈고, 반응도 좋았다. 역시 20주년이라서 더 의미 있을까?

20년은 약간 기념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10년 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래도 20년은, 이렇게 20년을 살아왔으니까 앞으로 20년을 이렇게 더 살자는 마음이 있다. 중간쯤 와 있구나, 하고. 뭔가 성취했다는 생각보다 이제 터닝 포인트를 돌았구나 싶다. 3월까지는 <거짓말이다>를 쓰겠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20주년 기념작이 뭐가 될지는 몰랐다. 쓰면서 생각했다. 20주년이기 때문에 이런 소설도 넉 달 만에 쓸 수 있구나, 했다. 20년을 헛산 건 아니라고. 2~3년 된 작가들이 이런 소재로 소설을 쓴다고 하면 한 2~3년 걸릴 거다. 생각한 대로 정확하게 딱 끝났다.

앞으로도 이렇게 집필 활동과 외부 활동을 병행할 건가?

외부 활동은 내가 원해서 하는 건 아니다. 어쨌든 역할이 있는 거니까. 지금 생각으로는 2017년 대선까지는, 최소한 세월호 3주기까지는 계속해야 할 듯하다. 4월까지 많으면 8번이나 큰 강연을 해야 하고. 대선 전까지 내가 말해야 하는 요구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게 있으면 할 거다. 그렇다고 내가 모든 사건에 다 이렇게 활동할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부분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사실 작품을 읽은 독자에게 이야기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런 소통을 즐기기도 하고. 하지만 내 책을 안 읽은 사람들이 내가 세월호 관련해 이야기할 때 약간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더라. 이야기하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이잖나. 그게 두렵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이타심이 있진 않은데 엄청나게 이타심 있는 사람으로 본다.

2016년, 잘한 것과 아쉬운 것이 있다면?
2016년 1월부터 팟캐스트 방송을 했다. 김관홍을 만나고 <거짓말이다>란 책을 낸 과정이 하나의 흐름인 거 같다. 이제 팟캐스트 시즌 2도 한다. 이 모든 게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굉장히 일관되게 뭔가 했다. 그러니까 2016년은 세월호 활동을 나름대로 일관되게 했다는 게 중요하다. 생각이 있는 것과 행동하는 건 분명히 다르니까. 아쉬운 건 아무래도 김관홍이다. 계속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나도 한두 번 들었다. 그게 참, 어떤 사람이 어젯밤에 죽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리액션을 잘 못하겠더라. 다독여야 하나 아니면 약 먹으라고 해야 하나 야단을 쳐야 하나.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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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틀넥 스웨터·벨벳 소재 라펠이 달린 재킷·같은 소재의 트레이닝팬츠는 모두 조르지오 아르마니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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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민성진 + Intelligence

민성진은 목표가 분명하다. 좋은 건축을 짓는 것. 그 지향점을 향해 순항하고 있다. 개성적이면서도 믿음직한 크루들과 그의 건축에 열광하는 시대의 바람이 그를 더욱 정진하게 한다. 또 본질에 대한 그의 탐구는 더 좋은 건축을 짓는 원동력으로도 작용했다.

  • ARENA Says
    우리 시대에 대해 고민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진일보하는 사람들. 그들을 위해 건축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건축가 민성진은 환경이 바뀌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건축가의 역할이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학교나 지하철역과 같은 공공 시설물에서부터 건축은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명 의식은 본질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공간의 본래 목적은 무엇인지 분명히 하는 것. 그래서 그의 설계는 타임라인을 거슬러 올라가고 내려오길 반복하며 이루어졌다. 올해 가장 이슈가 된 회원제 콘도미니엄 아난티클럽 서울 또한 본질에 대한 근원적 탐구의 결실인 셈이다. 건축가 민성진은 믿는다. 건축이 우리에게 조금 더 가까이 온다면 세상은 그러니까 우리의 삶은 분명 더 나아질 것이라고.
얇은 터틀넥 스웨터·회색 배기팬츠·누빔 장식이 돋보이는 가죽 재킷은 모두 엠포리오 아르마니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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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민성진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힐튼 남해 리조트에 대한 찬사다.
회원권이 많이 팔렸다. 예전에는 건축가 하면 단순히 집을 만들어주는 사람이었지만, 요즘은 시각이 바뀐 것 같다. 올해 지은 아난티클럽 서울에서는 영화도 촬영했고, 방송국에서도 많이 왔다. 건축가의 위상이 달라진 것이다. 사람들이 건축에 관심 있는 게 느껴진다. 그만큼 한국 건축가의 수준이 올라갔다고도 볼 수 있고.

건축주가 새로운 건축에 도전하는 경향도 있다.
많은 건축주가 건축을 통해 사업이 잘된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건축가라는 직업은 유명해지기 전에는 너무 힘들다. 박봉에 취직도 잘 안 되고, 유명하지 않으면 일도 없다. 요즘 건축을 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많고,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는 상황이다. 치열한 상황에서 더 좋은 건축이 나올 테지만, 그 안에서 경쟁하는 사람들은 고생이다. 건축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확실하고, 이제는 건축가가 누구인지 만나보고 싶어 하는 단계다.

건축가는 일반인과 동떨어진 직업이었다. 국내에는 사람들이 감탄할 만한 건축이 별로 없었고, 건축의 규모만 강조한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부자가 건축을 이끌었다. 한때는 중후한 유럽 스타일이 유행이었다. 그런 건축물에는 역사가 깃들어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역사를, 그러니까 정통성을 갖고 싶어 하는데, 우리나라 경제는 한국전쟁 이후 발전했으니 부자의 역사는 기껏해야 60년 정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몇백 년 전통이 있는 유럽 부자의 역사를 동경해 그렇게 지었던 것 같다.

하지만 힐튼 남해 리조트와 아난티클럽 서울은 굉장히 모던한 건축물이다.
기존 클럽 하우스는 전통을 강조했다. 모던은 가볍고, 전통은 묵직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다 힐튼 남해 클럽 하우스를 현대적 스타일로 짓자 사람들의 시각이 바뀌었다. 많은 건축인과 더불어 윈스턴 처칠도 말했지만 우리가 건축을 만들고 건축이 사람을 만든다. 건축이 사람을 만들고, 도시도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건축을 잘 쳐다보지 않는다. 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은 건축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건축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또 그걸 원해야 한다. 우리 도시는 우리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건축가나 도시 계획가가 만들어준 대로 그냥 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중매체가 건축을 다뤄주는 것이 고맙다. 사람들이 건축에 관심 있으면 우리의 삶은 더 나아지리라고 믿는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민낯을 어떻게 보나?

무질서와 상업주의 난개발로 이루어진 도시다. 서울을 사는 우리의 민낯이기도 하다. 상업지구 안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고, 그 옆에는 판자촌이 있다. 우리의 국민성은 이러한 풍경에서 생겨났다. 우리가 무질서를 만들면 무질서는 더 강조된다. 뉴욕은 상업주의를 강조했기에 금융에 투자하고, 벤처 기업을 만들며 상업성을 강조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

2016년은 본인에게 어떤 해였나?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좋은 한 해였다. 4월에 7년짜리 프로젝트를 지었고, 건축주와 손님들도 좋아했다. 국가적으로는 충격적이었다. 무기력증에 빠지게 되더라. 성격상 이런 문제에 부딪치면 이론적으로 정리한다. 결론은 인간의 역사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고통을 겪으면서도 더 나은 방향을 향해 가는 것이 우리다. 지금의 사태는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본다.

고통을 겪으면 성숙해지기 마련이다.
정신적으로 성장했다. 이번 사태를 통해 평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에 대해 고민했다. 내 입장을 정리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름 결론도 내리게 되었으니 이런 사태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느꼈다. 상황은 암울하지만 세상이 더 좋아지리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러니 굉장히 성숙해진 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회사는 불우 이웃 돕기를 한다. 앞으로는 이런 활동을 더 할 거다. 사회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한다. 건축가는 사회 공동체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사회 문제를 건축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인가?
건축가의 과대망상일 수 있고, 우리가 꿈꾸는 것일 수도 있다. 세상을 바꿀 정도의 능력이 없음에도 우리는 새로운 도시를 설계하고 기반을 다져야만 한다. 그 도시에 살아갈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은 건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에 필요한 건축은 무엇일까?
서울을 대표하는 멋진 지하철역이 필요하다. 지하철역을 지날 때 역명을 보지 않으면 어떤 역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모습이 비슷하다. 우리는 돈이 생기면 호텔을 짓거나 관공서를 화려하게 만든다. 하지만 대부분 시민은 호텔이나 시청보다 지하철역에 더 자주 간다. 나는 공공 건축이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게 바로 지하철역이고, 학교다. 지하철역은 건축가에게 맡기고, 예산도 더 써서 건축해야 한다. 왜냐하면 가성비가 가장 높은 건축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도 국민 모두가 겪는 공간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가는 학교에 예산을 써서 더 좋은 건축을 만들어야 한다.

학교를 좋은 건축으로 지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행동을 배우는 곳이 학교이기 때문이다. 그 공간이 좋은 건축이어야 학생도 건축을 배울 수 있다.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건축을 경험해봐야 한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멋진 건축 환경에서 공부하는 것은 학생의 창의력 계발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건축은 국민이 많이 이용하는 시설에 다가가야 한다.

올해 가장 큰 업적을 남긴 건축가로서 에이어워즈를 수상하게 되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직원들 덕분이다. 직원들이 많이 도와준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네 명의 직원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올해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목적이라는 큰 그릇의 중요성이다. 우리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팀원의 습관이나 태도, 일하는 방식 등이 목표에 도달하는 데 장애가 안 된다면 문제 삼지 말아야 한다. 큰 목표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좋은 건축물을 만드는 것이다. 그 목표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조직은 어려워진다. 목표가 중요한 것이지 사소한 습관이나 태도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동료의 약점을 들춰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 또 약점이란 상황이나 보는 사람에 따라서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요즘 관심이 있는 건 무엇인가?
철학에 관심이 많다. 건축할 때 이것의 근본이 무엇이냐 고민한다. 클럽 하우스를 설계할 때, 첫 번째 클럽 하우스는 무엇이었는지 찾았다. 골프 끝나고 샤워하기 위해 클럽 하우스가 생겼다. 그래서 어떻게 발전했나? 밥 먹고 경치도 좋고 하니까 웨딩홀이 생겼다. 이런 발전 과정을 통해 원리를 찾는다. 지금의 사회 현상과는 어떤 관계를 갖느냐도 고민한다. 건축주에게 건축물만 주는 것이 아니라 철학을 전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리조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찾으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본질을 탐구하고, 시대성과 연결하는 연구를 통해 미래를 보려고 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 사회적 생각을 알려면 철학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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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가죽 블루종·스카치 소재 칼라 셔츠·남색 스웨터·밝은 회색의 캐럿 팬츠는 모두 엠포리오 아르마니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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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PD 김원석 + Creativity

드라마 <시그널>은 2016년 대한민국에 불현듯 쏟아진 현실이었다. 또 가장 이상적이며, 인상적인 위로였다. 그 뒤에는 이 모두를 섬세하게 조율한 연출자, 김원석 감독이 있었다.

  • ARENA Says
    김원석은 드라마 <미생> <몬스타> <성균관 스캔들>을 연출하며 인물의 성장 서사에 집중해왔다. 2016년 상반기, 안방극장을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수사 추리물 <시그널>은 그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과거와 현재의 형사가 오래된 무전기를 통해 서로 소통한다는, 초자연적인 설정을 열쇠로 삼은 <시그널>은 동시대에 대한 어떤 재현처럼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는 <시그널>과 함께 웃고 울고 화냈다. <시그널>은 불륜, 출생의 비밀, 기억상실 등 한국 드라마에 꼭 들어가는 자극적인 요소를 배제하고도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김혜수, 조진웅, 이제훈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극 안에서 마음껏 놀았다. <시그널>은 좋은 대본, 배우, 스태프에게 필요한 건 결국 훌륭한 연출자라는 사실을 또 한 번 증명했다.
은은한 페이즐리 무늬의 턱시도 재킷·은은한 페이즐리 무늬의 캐럿 팬츠는 모두 조르지오 아르마니, 검은색 터틀넥 스웨터는 에디터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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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연출한 <미생>과 올해 <시그널> 모두 후속작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 행복하겠다.
다행이다. 생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됐으니까. <미생 2>와 <시그널 2>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특히 <미생 2>는 원작이 아직 연재 중이다. 지금은 다른 대본 작업을 하고 있다.

내일은 런던에 간다고?
‘인터내셔널 드라마’ 행사에 초청받았다. 전 세계 드라마의 프리미엄 상영, 콘퍼런스 등이 열린다. 여기에 영국 콘텐츠 진흥원이 참가하는데 현지에서 <시그널>의 리메이크를 원한다며 <시그널> 팀을 초청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시그널>이 좋은 반응을 얻지 않았나? 중국의 프리미엄 콘텐츠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인 텐센트에서는 2억5천만 뷰를 기록했다.
영국, 미국, 일본, 중국 등에서 반응이 좋은데 특히 중국의 피드백이 의외였다. 중국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할 줄 몰랐다.

아마도 인류 보편적인 관계, 감정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 아닐까? 김원석의 작품에선 드라마의 기본적인 역할에 관한 고민이 읽힌다.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언정 작은 실마리 하나는 던져보겠다는 간명한 의도가 드러난다.
위로를 주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하지만 이건 최상급 목표다. 가까운 목표는 이야기할 거리를 던지는 거다. 세대와 계층 간의 벽이 점점 두터워진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내놓고 싶다. 세상사는 대부분 대화 혹은 연대를 통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누군가 혼자서, 대화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시그널>도 초창기에는 원톱 드라마로 기획되었는데 후에 3명의 형사가 동등하게 연대하여 사건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원래 지상파에 편성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한류 스타 캐스팅이 어려워지면서 tvN으로 넘어왔다. 한류 스타가 하기 좋은 소재는 아니지 않나. 한류 스타 캐스팅을 위해 박해영 형사 원톱으로 기획했다. 이제는 많이 알려진 이야기지만, 차수현 형사도 처음엔 더 어린 나이로 설정했다. 박해영 형사와의 멜로 라인을 위해서다. 한류 스타 캐스팅이 불발된 다음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과거 형사인 이재한이야말로 <시그널>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인물이다. 그의 대사에 주제와 맞닿은 말이 많다. 이재한의 비중을 키웠고 불필요한 멜로를 지우고 차수현의 나이에도 제한을 두지 않았다.

차수현이 한 축을 담당하려면 나이 어린 형사라는 설정으로는 약했겠다. <시그널>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가 그것 아니었나. 삼각 주인공.
차수현에게도 성장하는 세월이 필요할 테니까. 어린 강력계 형사가 그러한 기지와 무게감을 뿜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농담으로 그랬다. “연령대 높이고 캐릭터 보완해서 김혜수에게 제안해보자!” 그런데 정말 김혜수가 하겠다고 한 거다. 굉장히 흔쾌히. 상상도 못했다. 그렇게 해서 세 형사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구도로 뭉치게 됐다. 좋은 쪽으로 흐른 거다.

한국에서 수사 드라마가 크게 성공한 경우는 많지 않다. <시그널>은 한국 수사 드라마의 획을 다시 그었다.
좋은 배우들과 함께한 것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캐스팅은 연출 행위의 절반을 차지한다.

KBS에서 tvN으로 소속을 옮긴 뒤 이런 말을 했다. “좋은 점이 많지만 지상파에 비해 어려운 점도 많다”고. 그 힘든 점 중 하나가 캐스팅인가?
그랬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이제는 영화 작업을 중점적으로 하는 배우들도 tvN 드라마라면 하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한다.

김혜수는 <시그널>을 두고 “안 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던 작품”이라 했다. 본인에게 <시그널>은 왜 해야 하는 작품이었을까?
이재한 때문이다. 우연히 <시그널> 대본을 3~4회까지 보게 됐다. 보자마자 이재한 형사가 너무 좋았다. 조진웅을 설득할 때 이런 말을 했다. “이재한은 20년 후를 살고 있는 다른 형사에게 ‘그곳은 좀 달라졌겠죠? 지금 내가 사는 세상보다는 훨씬 나아졌겠죠?’ 이렇게 얘기하는 형사입니다.” 그 말을 조진웅이 무척 좋아했다.

<시그널>을 본 모든 사람들이 이재한의 매력을 말했다. 조진웅의 몫이 크지만 연출자가 극과 인물을 섬세하게 직조한 결과이기도 할 테다.
내가 한 일은 조진웅을 캐스팅한 것이다. 좋은 대본으로 조진웅, 김혜수, 이제훈을 캐스팅한 것. 그렇게 50점을 먹고 들어갔다. 이후에는 연기자들이 마음껏 놀 수 있도록 만드는 일에 주의를 기울였다. 드라마는 영화에 비해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물리적으로 짧다. 드라마의 모든 요소, 그것들의 퀄리티가 시간의 영향을 받는다. 유일하게 연기만 제외하고. 연기는 오래 준비한다고 해서 잘 나오지 않는다. 드라마 연기는 ‘오래 준비하지 않아 좋은 지점’을 극대화해야 한다. 연출자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연기가 좋은 순간이라면 조명도 손해보고 촬영도 손해보더라도 현장이 맞춰줘야 한다.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장면을 설명할 때, 꽤 제대로 시범을 보이더라.

자주 그런다. 과장해서 한다. 연출자가 이렇게 나오면 연기자는 부담이 줄어든다. 시범을 보이면서 ‘이렇게 하란 말이야’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거야. 뭔지 알겠지?’라고 말하는 거니까.

아름다운 장면에 집착하는 연출자는 아닌 것 같다. 그보단 인물의 심리를 공감각적으로 드러내는 데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인다. 손짓 등 신체적인 언어에도 굉장히 집중하고.
정말 정확하게 봤다. 좋은 감정과 연기를 능가하는 좋은 장면은 없다. 이게 내 모토다. 그림이 조금 후져도 배우의 연기, 감정이 살아 있으면 결국 멋진 그림이 된다. 멋진 앵글을 잡는 것이 감정을 따라가는 데 방해가 된다면 쓰지 않는다. 하지만 감정을 잘 표현하는 데 필요한 요소라면 팔을 걷어붙이고 고민한다. 손짓, 발짓, 눈빛, 입술의 작은 떨림일 수도, 바람, 빛, 공기의 질감일 수도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가장 자연스럽게, 빨리 이야기와 감정에 이입되게 연출하는 것.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게 그거다.

tvN으로 옮긴 지 5년이다. 나영석, 신원호와 함께 tvN을 대표하는 감독 3인방으로 활약 중인데.
하하. 사람들이 보통 3이라는 숫자를 완전하다고 인식하지 않나. 그래서 나를 얹어주는 것 같다. 영광이지. 그 친구들은 정말 엄청나거든.

나영석, 신원호와는 KBS 입사 동기이기도 하지 않나? 2001년에 셋이 함께 입사했다. 대체 2001년 KBS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하하. 글쎄. 그런 게 있었다. KBS 입사 시험 문제는 원래 천편일률적이었거든. 1999, 2000년도 문제는 이런 거였다. ‘다매체 시대에 공영방송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말하라.’ 지금도 토씨조차 그대로 기억한다. 그런데 2001년에는 달랐다. ‘다음은 어느 방송국 사무실 풍경이다. 당신이 연출자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논하시오’라고 해놓고 아래에는 CP, 조연출, 작가 등이 처한 문제 상황들을 펼쳐놓았다.

다른 문제가 결국 다른 답을 찾은 거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2001년도 같은 시험 문제가 그 이후에 다시 나오지 않더라.

연출 일을 계속하면서 증명하고 싶은 것은 결국 무엇인가?
칭찬을 즐기지 못한다. 내가 가진 인정 욕구에 비해 내공이 부족한 걸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안주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고 싶다. ‘업에 대한 자세만큼은 인정할 만하다’는 이야길 듣고 싶다.

강렬한 붉은색 니트 스웨터는 안데르센-안데르센 by 비이커, 타탄 체크 패턴의 슬랙스는 닐 바렛, 은빛이 감도는 은은한 기요셰 다이얼, 퍼져나가는 듯한 몽블랑 스타 패턴, 레드 골드 플레이팅한 로마 숫자가 우아하게 어우러진 4810 크로노그래프 오토매틱 워치. 중앙의 시·분 바늘과 9시 방향의 서브 다이얼로 기본적인 시간을 확인할 수 있고, 6시 방향의 삼각형 인디케이터로 날짜를 볼 수 있다. 몽블랑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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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크루넥 니트 스웨터는 메종 마르지엘라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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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서강준 + Contemporary

간혹 신인이라는 틀을 금방 벗어버리는 배우가 있다. 자신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일순간 존재감을 키우는 이들. 배우 서강준이 그랬다.

  • ARENA Says
    데뷔 이래 서강준은 드라마와 영화, 예능에 꾸준히 얼굴을 내밀었다. 180cm를 훌쩍 넘는 키에 작은 얼굴, 뚜렷한 이목구비, 흑갈색 눈동자까지. 순정 만화책을 찢고 나온 것 같은 외모로 뭇 여자에게 인기를 얻었고 ‘국민 연하남’이라는 타이틀을 쥐기도 했다. 자신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일을 꽤 잘해냈다. 하지만 서강준은 그런 인기, 잠시의 환호, 몇 개의 타이틀에 머물지 않았다. 계속해서 새로운 벽 앞에 섰다. 50부작 사극 <화정>의 주연 자리에 앉기도 하면서, 서슴없이. 올해 그는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에서 배짱 두둑하고 넉살 좋은 청춘, 백인호를 연기하며 또 한 번 반짝였다. 도전을 거듭하며 쌓은 잠재력이 터진 순간이었다. 믿는 것은 연기에 대한 자신의 진심이며 목표는 ‘누군가 믿고 보는 배우가 되는 것’이라 말하는 이 젊은 배우의 다음이 기대된다. 진심은 힘이 세니까.
검은색 니트는 메종 마르지엘라, 골드 버튼 장식의 더블브레스트 재킷은 발망, 검은색 데님 팬츠는 피스워커, 첼시 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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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어땠나?
초반에는 <치즈인더트랩>으로 넘치게 사랑받았고, 기분 좋았다. <안투라지>로는 나름 새로운 도전을 해봤고, 예능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으로 평생 가보기 힘든 정글에도 다녀왔다. 뜻대로 되지 않은 일도 많지만, 원체 내가 마냥 원하는 대로 다 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아니라… 재미있었다. 돌이켜보면 다 재미있었다. 연기에 대한 욕심도 더 커진 상태다. 잘하고 싶다.

<치즈인더트랩>의 서강준에게서는 지금껏 우직하게 쌓아온 밑천이 보이더라.
운이 좋았다.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과 캐릭터를 만났으니까. 백인호라는 배역은 물론이고 함께한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이 굉장히 잘 맞았다. 좋은 시너지가 난 것 같다. 내 몫을 제대로 하는 것처럼 보였다면, 좋은 시너지 덕분일 거다.

서강준은 늘 자신의 가능성을 점치는 것 같았다. 특히 드라마 스페셜 <하늘재 살인사건>이나, 50부작 사극 <화정>을 선택했을 땐 놀랐다.

<화정>은 나에게 정말 중요한 작품이다. 많은 혹평을 들었고 내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할 수 있는 작품이었으니까. <화정> 이전과 이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촬영만 반년을 했고 많이 고생했다. 드라마만 20년 동안 해온 어느 스태프가 “이렇게 힘든 작품은 처음”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분이 이런 말도 덧붙였다. “이런 드라마 한번 해봤으니 아마 앞으로 어떤 힘든 일이 생겨도 잘 견딜 거다.”

<화정>은 분명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대 초반의 배우가 고를 만한 선택지는 아니었다. 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 그 자체로 대단하다.
시작할 땐 잘 몰랐다. 어떤 작품이고 어떤 이점이 나에게 있을지. 얼마나 큰지, 힘들지 잘 몰랐다. 그때는 그저 기회처럼 보였다. 대선배님들과 호흡 맞추며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굉장한 기회. 그래서 나름대로는 기대하고 준비도 많이 했는데 역부족이었던 거지. 가진 게 너무 없는 채로 큰 산에 덤빈 거다. 정말 큰 경험을 했다.

기대한 건 무엇인가?
작품 들어가기 전에 대본을 보면서 내가 할 연기를 상상한다. 조금씩 그려보는 거다. <화정>의 대본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그림을 그려보았는데, 되게 설레더라. 참된 정치를 찾아간다는 이야기의 큰 줄기도 매력적이었다. 그걸 찾아가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이미지나 다음 행보와 같이, 드라마를 끝낸 뒤 수혜를 기대한 건 아니네.
물론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해서 고민한다. 배우로서 잘 살아가야 하는 게 나의 할 일이니까. 그런데 그런 고민이 어떤 중대한 작용을 하지는 않는다. 보통 나는 작품이 마음에 들어오거나, 하기로 결정했다면 작품 자체만 생각한다. 지금 선택하는 작품이 나의 필모그래피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관해서도 생각하지만,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작품 선택하는 데 무엇을 우선순위로 삼는가? 필모그래피에서 취향이나 법칙 같은 게 보이지 않더라.
모든 작품은 소속사와 의논한 끝에 결정하지만, 내 우선순위는 사실 대본이다. 처음 대본을 읽을 때 얼마나 잘 읽히는지가 중요하다. 간혹 안 읽히는 대본이 있다. 일주일 동안 붙들고 읽기도 하는데, 인내로 읽은 대본은 회사에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정말 집중이 안 되었다고. 그런 틈이 사람들에게도 보일 거라고. 인물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을 발견하면 거기에 빠져서 정신없이 읽는 편이다.

<안투라지>는 어땠나?
<안투라지>는 좀 다른 경우였는데, 처음 대본을 접했을 때 생소하고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현장에서 만들 수 있는 재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트콤과 정극 사이에 있으면서도, 로맨틱 코미디는 아닌 드라마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던 형식이라 새로웠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도전이 될 것 같았다.

표면적인 결과인 시청률은 좋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 당연히 있겠지?
아쉽다. 근데 작품 때문이 아니다. 팬들이 너무 마음 아파하는 게 보여서다. 왜 이 작품을 했느냐고 묻는 팬들이 있다. 인스타그램으로 그런 메시지를 보내오는 팬들이 많다. 나를 아껴주는 팬들의 눈에는 내가 결국 얻은 게 없는 것처럼, 많은 걸 잃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 난 항상 사랑받을 수 있는 캐릭터를 맡고 싶은 게 아니거든. 차영빈은 배려심 많고 사랑스러울 때도 있지만, 엄청나게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일 때도 많다. 멋있기보다 밉상인 캐릭터잖아.

그런 면에서 굉장히 현실적인 인물이라 생각했다. 잘생기고 멋있지만, 밉상일 때도 많은 배우라니. 현실에 한 명쯤 있을 법하잖아.

그렇지. 사실 배우들이 멋있기만 하진 않으니까. 영빈이는 그냥 그런, 진짜 현실의 어떤 배우인 거다. 일과 연애는 구분해야 하는데 그것도 잘 못해내고. 내가 봐도 혼쭐내고 싶은 순간이 정말 많다. 그러니까 절대 멋있기 위한 캐릭터는 아니라는 거다. 멋있게 보일 수 있는 역할과는 너무 먼 캐릭터다. 그런데 배우에게 나쁜 드라마나 안 좋은 배역이라는 건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안투라지> 역시 나쁜 선택이었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새로운 문을 열어준 작품이다. 내가 잘되기를, 승승장구하기를 바라는 팬들의 마음은 잘 안다. 그런데 나는 정말 괜찮다. <안투라지>가 성공적인 드라마로 기억되진 못하겠지만 괜찮다. 너무 속상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품은 잘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는 거잖아. 그건 그저 결과일 뿐이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결과적인 실패는 두렵지 않다?
두렵기야 하지. 많은 질타를 받다 보면 휘청거리기도 하고. 그런데 흔들리다가도 금방 중심을 잡을 자신 있다. 힘든 상황이 오면 나는 오히려 강해지는 것 같다.

잘될 때도 자신에게 쉽게 도취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편이다. 잘되면 굉장한 반응이 엄청난 속도로 오고 안 되면 급속도로 싸늘하게 식는 곳이 이 세계다. 잘되는 것에 너무 도취되면 안 됐을 때 매우 힘들 거다. 물론 잘 안 되면 나도 마음이 안 좋지. 나 역시 잘되길 바라니까. 그런데 배우를 하면서는 좀 더 넓게 보려고 노력한다. 나는 이 일을 오래 할 거니까. 20대에 잠시 하고 말 일이 아니니까. 나의 전체적인 필모그래피를 본다면 모든 작품들이 다 소중하다.

지난 인터뷰에서 ‘진심’에 대해 이야기했다. 얼마나 진심으로 하고 있는지, 자신에게는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자신의 진심이 절절히 느껴질 땐 언제인가?

이렇게 작품을 쉬고 있을 때에도, 어디를 가든 뭘 하든 ‘나는 또 무슨 작품을 하게 될까. 어떤 작품에서 어떤 연기를 하게 될까. 어떻게 연기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한다. 배우 마이클 케인이 쓴 책을 자주 뒤적이고. 쉬고 있을 때조차 많은 시간 연기에 관해 생각하는 나를 인식할 때마다 그런 느낌을 받는다. 내 진심이 이 정도구나. 타고난 건 없으니 이 진심이 나의 가능성을 높여줄 밑천이겠구나.

데뷔 초 어떤 인터뷰에서 밝힌 좌우명은 이랬다.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지금은 바뀌었다.

지금은 뭔가?
‘진심은 통한다.’ 통해서 뭘 이루고 싶은 건 아니고. 적어도 나는 내 진심을 믿고 단단히 붙들고 가겠다는 뜻이다. 진심이 통하지 않는 순간이야 수도 없이 만날 것 아닌가.
 

<아레나 옴므 플러스> 창간과 함께 시작됐던 올해의 남자 시상식 ‘A-Awards’가 올해로 11회째를 맞이했다. 전대 수상자들에 맞먹는, 2016년을 찬란하게 보낸 7인을 꼽았다. ‘A-Awards’란 이름 아래 함께한 이들은 이 특별한 시상식의 권위가 해가 거듭될수록 수직 상승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존재들. 우리의 친우로서 함께해준 7인의 수상자들과 몽블랑 코리아에게 지면을 통해 감사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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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호

이달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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