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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타블로

요새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타블로가 가장 많이 하는 대답이 있다. ‘쓸데없이 바쁘지 뭐.’ 음반 레이블 하이그라운드의 대표이자 데뷔 13년 차를 맞이한 에픽하이의 멤버, 하루네 아빠 타블로는 정말 바쁘다. 그런 그가 두 번째 책을 냈다.

UpdatedOn December 1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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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스웨터는 누디진스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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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의 <블로노트>는 일상의 단상을 모아 엮은 책이다. 하루를 스치고 간, 그래서 자기 전에 문득 떠오른 생각의 조각이 책으로 완성됐다. 그가 지난 8년 동안 진행한 <꿈꾸는 라디오>의 클로징 멘트가 기록으로 남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수많은 생각을 다듬고 걸러내 3백 페이지에 가깝게 편집했다. 처음 책을 펼쳐 든 사람은 약간 당황할 수 있다. 가장 긴 문장이라야 4줄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30분 만에도 읽을 수 있는 책 같지만 짧은 생각을 곱씹다 보면 의외로 꽤 긴 시간이 소요된다. 타블로는 ‘쿨’해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2008년, 20대 청년 타블로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가감 없이 표현했다.

혹자는 ‘오글거린다’고도 말한다. 정작 타블로는 ‘오글거림’이 이상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정을 그렇게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요즘 타블로는 참 바쁘다. 매일 아침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다 보면 오전이 금방 흘러간다. 오후엔 하이그라운드 소속 뮤지션들의 음악을 봐주고, 에픽하이 공연을 다닌다. 다시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와 아이와 놀고, 영화 한 편을 보다 잠이 든다. 일상을 소소한 행복으로 꽉 채우면서, 타블로는 이렇게 별일 없이 살고 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블로노트>는 라디오의 클로징 멘트를 모아놓은 것이다. 지난 8년간의 일기장인 셈인가?

그렇다고도 볼 수 있지만, 라디오의 특성상 나만의 생각이라고 규정할 순 없다. 방송을 하는 2시간 동안 많은 사람과 공감하고 교류하다 엔딩 때 떠오르는 생각을 말한 거라서. 정확히 말하면 나만의 생각은 아니고 그날 그 방송을 통해 영감 준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낸 문장이다.

이 책을 기획한 계기가 있나?

근사한 계기는 딱히 없다. 라디오 진행 당시 청취자 중 정말 많은 분들이 클로징 멘트를 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터넷을 찾아보면 여기저기 클로징 문장이 퍼져 있는데,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서 들고 다니고 싶다는 청이 많았다. 내 경영 철학이 ‘해달라고 청하는 건 하자’는 주의라서 망설임 없이 책으로 엮었다. 하하.

책을 읽다 보면 손 글씨로 직접 쓴 문구들이 눈에 띈다. 박찬욱 감독, 지드래곤부터 학생, 직장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박찬욱 감독님이 손으로 써준 문장은 이거다. ‘다들 영화처럼 살고 싶다고 하는데 그럼 두 시간만 살 건가.’ 이걸 누구의 글씨로 옮기면 재미있을까 고민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님이 이 문장을 적어준다면 설득력이 있을 것 같았다. 지드래곤은 내 생각에 ‘착한 남자’와 ‘나쁜 남자’를 오가는 이미지다. 그래서 ‘천사에겐 악마가 천사가 아니지만 악마에겐 천사가 악마다’라는 문장을 맡겼다. 유희열 선배님도 참여해주셨는데, 그 형은 노래할 때 열창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흥얼대는 편이다. 그래서 ‘열창하듯 사랑했는데 그 사람은 나를 흥얼거림 정도로 느꼈나 보다’라는 문장을 부탁했다. 손 글씨를 써주는 다양한 사람들의 정서를 어느 정도 생각하고 맡겼다.

무조건 1페이지부터 순차적으로 읽는 것, 손에 집히는 대로 읽는 것. <블로노트>의 저자인 타블로는 어떤 방식으로 읽고 있나?
예전에 써놓은 글을 다듬는 거라 작업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엄청 오래 걸렸다. 편집 과정에서만 1백 번 넘게 순서를 바꿨다. 적당히 무작위인 듯 보이면서도 적당히 흐름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편집의 관건이었다. 별짓 다 해보다 최종적으로 이렇게 완성했다. 나도 이 책을 들고 다니면서 보는데, 가사가 쓰이지 않을 때 주로 펼쳐 읽는다. 글을 써야 하는데 시작점이 애매할 때, 뭘 써야 할지 명확한 주제가 떠오르지 않을 때 손에 잡히는 책 속의 문장을 보고 그걸 바탕으로 가사를 쓰기도 한다.

무려 8년 전의 생각이다.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는 것 같은 문장이 있던가?

물론이다 ‘나 되게 어리석었구나. 뭐 저런 걸 고민했지?’라는 생각은 책에 담지 않았다. 지난 생각들을 정리하다 보니 인생에서 중요한 책갈피가 되는 것 같다. 내가 그때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돌아보고 지금의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볼 수도 있고 말이다. 일부러 앞쪽에 넣은 문장이 있다. ‘비 온 하늘이 너에게 알려주고 싶은 건 너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거야.’ <꿈꾸는 라디오>를 8년 전에 방송했을 때 첫 번째 ‘블로노트’였다. 지금 보면 오그라든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2008년만 해도 ‘오글’이라는 표현이 없었다. 그저 ‘감성적이다’라고만 얘기했는데 요즘엔 약간 부정적 의미를 담아 ‘오글거린다’고 하더라. 그래서 아예 보란 듯이 제일 큰 글씨로 넣었다.

책의 성격을 명확히 보여주려고?

그렇지. 누군가 이 책을 서점에서 살까 말까 고민할 때 이 문장을 보면서 ‘나는 어쩌면 네가 오글거린다고 생각할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무늬가 있는 스웨트 셔츠는 YMC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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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은 무지크, 니트는 YMC, 신발은 발렌티노,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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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다들 쿨한 걸 강요하다 보니 ‘오글거린다’는 말을 참 많이 한다. 다른 얘기지만, 나는 유세윤이 작사하고 부른 ‘중2병’을 정말 좋아한다. ‘이게 바로 나의 허세다’라고 당당하게 노래하지 않나.
재미있게도 유세윤 씨가 이 책이 나왔을 때 SNS에서 가장 활발하게 홍보해줬다. 자꾸만 내 인스타그램에 댓글을 달고 그러더라고. 하하. 공연 도중에 제일 앞줄에 앉은 팬에게 <블로노트>에 사인을 해서 살짝 던져줬는데 그게 영상으로 찍혔다. 그걸 보고 유세윤이 ‘조심히 던져. 네 책은 흉기야. 감성 흉기’ 뭐 이런 댓글을 써놨다. 하하. 나도 유세윤을 되게 좋아하고 서로 팬이다. 어쩌면 ‘중2병’ ‘오글거린다’에 관한 관점이 비슷할 수도 있다.

밥 딜런은 관심이 없었지만, 어쨌거나 그가 노벨 문학상을 탔다. 노랫말이 문학이라는 게 낭만적인 생각이 아님을 공표한 셈이다. 많은 사람이 힙합 뮤지션이 쓰는 가사 역시 현대적인 버전의 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요하듯이 생각하진 않는다. 분명 웹툰 작가 중에서도 자신의 작품을 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 장르나 매체의 종류로 이것은 시가 맞고, 저것은 시가 아니다라고 구분 짓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뭔가를 창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작업물이 ‘시 같다’ ‘문학 같다’ 느낀다면 그걸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그렇다고 모든 창작물이 문학과 같은 용도인 것도 절대 아니고.

형태보다는 본질을 본다는 의미인가?
데뷔했을 당시 나는 랩이 시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좋아한 래퍼들의 가사가 내가 공부하던 시와 별 차이 없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랩이 반드시 ‘시’여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랩 가사를 시로 느끼는 것 역시 각자의 취향이라고 생각하니까.

에픽하이가 데뷔 13년을 맞이했다. 그런데 여전히 본인이 프로 음악인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오래 했다고 모두 프로는 아니다. 나는 ‘프로’라는 단어가 붙으려면 어떤 상황에서건 일정한 퀄리티의 결과물을 제한된 시간 안에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날씨 때문에 우울하면 볼을 못 치는 야구 선수가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은 프로 선수가 되기 어렵지 않을까? 내 기분이 어떻건 간에 공이 날아오면 방망이를 힘껏 휘두를 수 있어야 프로인데, 내 주변에는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워낙 많다. ‘두 시간 안에 슬픈 노래를 하나 써줘’라면 정말 쓸 수 있는 프로들이 많다. 나는 그러지 못한다. 그래서 고민할 때가 정말 많다.

‘주문 제작 음악’이 특히 어렵다는 의미인가?
내가 노래를 만들기 시작할 때 결과가 어떨지에 대해 아예 장담할 수가 없다. 만들다 보면 어쩌다 어떤 노래가 나오게 된다. 언젠가 ‘실수의 반복’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정말 운 좋게 무언가가 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나 자신이 ‘액시덴탈 뮤지션(accidental musician)’ 같다. 우연의 음악을 하는 사람.

사실 타블로가 <당신의 조각들>에 이어 두 번째 책을 낸다고 했을 때 서사가 있는 두툼한 소설이 나올 거라 예상했다. 실제로 그런 글쓰기도 틈틈이 하고 있나?
<블로노트>는 내가 쓴 가사보다도 짧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픽하이 앨범 한 장의 가사를 종이에 적어보면 훨씬 방대할 거다. 워낙 우리 노래 가사가 서사적이고 호흡도 길어서 ‘책을 위한 글쓰기’를 할 때 오히려 더 절제하게 된다.

요즘 타블로는 참 행복해 보인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즐겁게 하는 일이 있다. 이런 요소가 행복을 완성해주던가?

예전에는 행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생각했다. 어떤 즐거움, 자극은 있겠지만 행복은 그냥 단어로만 존재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행복은 분명 있어야 하는 거다. 다만 행복을 거창하고 거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 오늘 라면 먹어야지’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 지금 행복해야지’라고 다짐한다. 이런 식으로 매일 운동하듯이 매 순간 노력해야 하는 것이 행복이다. 완벽한 행복이 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아마도 행복보다 죽음이 먼저 올 거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위해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있다. 내가 불행하면 나만 불행한 게 아니니까. 혼자였으면 굳이 이렇게까지 노력하지는 않았을 거다. 하하.

에픽하이의 앨범 작업은 하고 있나? 소식이 통 없다.

마지막 앨범이 나온 지가 2년이 됐는데, 역대급으로 가장 긴 공백이다. 지금 열심히 작업 중이라 아마도 내년에는 나올 수 있을 거다.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하기도 한다. 예전의 ‘배고픈 열정’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고 말이다. 지쳤거나 싫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내가 치열할 필요가 없어서 그러는 게 절대 아니다. 예전만큼 쉽게 완성되지 않는 것일 뿐이다.

‘변했다’는 말은 대개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사실 누구나 매 순간 변하고 있지 않나?

변해야 한다. 마침 <블로노트>에 이런 문장이 있다. ‘변하지 말라고 하지 말고 나와 함께 변해줄 순 없어?’라는 거. 연애를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너 변했어”라는 말을 듣거나 하게 된다. 대부분 “난 그대로인데, 네가 변했어”라는 말이다. 하지만 같은 방향으로 변하지 않은 것뿐 실은 두 사람 모두 변한 거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은 방향으로 변하는 것이 중요하다. 에픽하이도 마찬가지다. 우리 세 명이 함께한 지 14년이 됐는데 너무 많은 일을 거쳤지만 그대로인 것처럼 보인다. 사실 함께 변해가서다. 누구 하나 멈추지 않고 같이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요즘 새삼스레 깨닫고 있다.

 


무스탕 재킷은 조세프 안, 터틀넥 니트와 팬츠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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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EDITOR 서동현
PHOTOGRAPHY 레스
STYLIST 최유미
HAIR 수빈(by 3STORY)
MAKE-UP 허은, 양진희(by 3STORY)
LOCATION 라이너노트

201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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