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INTERVIEW MORE+

무한한 진심

하고 싶은 일을 오래 하기를 바라는 정신이 곧 창의력이 된다는 것을 조기석을 통해 목격한다. 그는 경계 없이 다양하게, 비주얼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루는 스물다섯의 비주얼 메이커다.

UpdatedOn November 25, 2016

3 / 10
/upload/arena/article/201611/thumb/32619-190769-sample.jpg

비주얼 메이커 조기석 이미지 메이커, 디렉터, 포토그래퍼, 그래픽 디자이너, 세트 디자이너. 조기석은 이 모두이기도 하고 이러한 타이틀의 경계와는 무관한 사람이기도 하다. 젠틀몬스터 캠페인 작업을 수차례 이어오고 있으며 혁오의 ‘Ohio’ 뮤직비디오 및 아트워크, 뮤지션 딘의 앨범 <130 mood TRBL> 아트워크 등을 작업했다. 지난 1월에는 브랜드 쿠시코크를 만들었다. chogiseok.com

비주얼 메이커 조기석

이미지 메이커, 디렉터, 포토그래퍼, 그래픽 디자이너, 세트 디자이너. 조기석은 이 모두이기도 하고 이러한 타이틀의 경계와는 무관한 사람이기도 하다. 젠틀몬스터 캠페인 작업을 수차례 이어오고 있으며 혁오의 ‘Ohio’ 뮤직비디오 및 아트워크, 뮤지션 딘의 앨범 <130 mood TRBL> 아트워크 등을 작업했다. 지난 1월에는 브랜드 쿠시코크를 만들었다. chogiseok.com


재미없는 미대생

나는 사실 재미없는 사람이다. 미술 대학을 다니던 학생일 때도 그랬다. 미술 대학에 입학한 건 선생님들이 나에게 “그림 잘 그린다”는 이야길 했고, 그림 그리는 일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취향이나 적성에 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를 미술의 길로 이끈, 매혹적인 아티스트도 당시에는 없었다. 나는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는, 대한민국의 미술 대학 입시생일 뿐이었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그럭저럭 지내고만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ffffound’라는 사이트를 발견했다.

핀터레스트 혹은 비핸스와 비슷한 이미지 포트폴리오 사이트다. 우연히 발견한 이 사이트에 며칠을 꼬박 바쳤던 기억이 난다. 세상에는 이런 이미지도 있구나 싶었다. ffffound를 발견하면서 이미지에 관한 태도가 달라졌다. 만들고 싶은 이미지가 생기기 시작했고, 자유롭게 생각하게 됐다. 그때부터 멋진 이미지를 접할 수 있는 사이트를 ‘디깅’하는 일에 몰두했다. 이제는 조금은 질린 것 같기도 하지만.

브랜드 쿠시코크
여러 비주얼 작업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이 시대에 큰 의미를 남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개별적인 프로젝트를 위해 생성한 시각적 결과물은 결국 흐름 위에 놓이게 될 테니까. 잘 만들고 싶다는 바람과는 상관없이, 얄팍한 노력과 시간을 들여 완성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 1월부터 쿠시코크(KUSHKOHC)라는 이름으로 옷을 조금씩 만들고 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시작한 일종의 브랜드다. 아직 각종 오프라인 숍에는 납품하지 않았다. 제의가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쿠시코크는 지금 내가 하는 일 중 가장 유의미한 일이다. 쿠시코크만큼은 어떤 흐름 위에 띄워두고 흘러가게 두지 않을 생각이다. 팔아서 돈 버는 일이 절대로 목적이 될 수 없다. 길게 보고 갈 것이다. 지금은 옷이 중심이긴 하지만 나중에는 그냥 브랜드가 되었으면 한다. 그냥, 브랜드. 첫 시즌은 강렬한 색감의 패턴을 찢거나 이어 레이어링한 옷들이 많았다. 주제는 ‘학생 시위’였다. 나는 미술 대학을 중퇴했다. 성장기의 나는 한국 교육에 불만이 많은 학생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우리 모두가 살고 자라며 느낀 이야기를 소재로 전복적인 메시지와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

다시 사진
세트 스타일링부터 그래픽 디자인까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비주얼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요즘 다시 흥미를 느끼는 일은 사진 작업이다. 맥락 없이, 시류와도 상관없이, 사진으로 만들어내는 비주얼의 다양한 질감에 빠져 있다. 지난달에는 <보그>와 패션 화보 작업을 했고 최근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바로 사진 작업이다. 다시 사진에 집중한 것은 지난해와 올해에 맞은 가장 큰 변화다. 나도 내가 사진을 하게 될 줄 몰랐다.

미술 대학에서 공부할 때, 사진 수업에서는 평점 D를 맞았다. 그때는 무엇을 찍는 일을 왜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더라. 학교에서는 현상법까지 알려줬는데, 더 이해가 안 됐다. 그때는 배우기 위한 배움이었기 때문이겠지. 지금은 사진으로 만들고 싶은 이미지가 분명히 있고 그 이미지로 확장하고 싶은 작업 형태가 분명히 있다 보니 열성적으로 달려드는 거다. 

쿠시코크의 이미지 작업에 사용한 정물들. 석고상에 원하는 프린트를 붙여 만들었다.

쿠시코크의 이미지 작업에 사용한 정물들. 석고상에 원하는 프린트를 붙여 만들었다.

쿠시코크의 이미지 작업에 사용한 정물들. 석고상에 원하는 프린트를 붙여 만들었다.

을지로3가역 주변 상가의 옥상에 위치한 조기석과 쿠시코크의 작업실에는 그들이 흡수하고 내뱉는 영감들이 빼곡하다.

을지로3가역 주변 상가의 옥상에 위치한 조기석과 쿠시코크의 작업실에는 그들이 흡수하고 내뱉는 영감들이 빼곡하다.

을지로3가역 주변 상가의 옥상에 위치한 조기석과 쿠시코크의 작업실에는 그들이 흡수하고 내뱉는 영감들이 빼곡하다.


아시아 플랫폼
여러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유럽과 뉴욕에서 몇 차례 작업을 해봤다. 자연스럽게 한국에서의 작업과 비교하게 되었는데, 유럽과 뉴욕 등에 비해 한국에서의 작업은 확실히 전반적인 소스가 적고 좋은 프로세스나 시스템이 부족하다. 여기서 말한 소스에는 인적 자원도 포함된다. 지금 이곳에서 아쉬운 것들을 메울 수 있는 적극적인 방법을 찾고 싶다. 유럽에서 만든 화보들이 멋져 보이고, 그들이 한 작업을 흉내 내는 일이 줄었으면 좋겠다. 줄어서 영영 사라졌으면 좋겠다.

아시아 단위로 뭉쳐서 서로의 소스를 좀 더 적극적으로 교차할 수 있는 아시아적 플랫폼이 그 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언젠가는 반드시 잡지를 만들 것이다. 아시아 잡지. 물론 꼭 어떤 형태의 잡지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고, 중국, 일본 등을 비롯한 나라의 크리에이터들이 모여 비주얼 콘텐츠를 창작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 그런 장을 형성하고 싶다는 이야기다. 브랜드 쿠시코크가 이 잡지를 후원할 만큼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닉 나이트
닉 나이트가 알렉산더 맥퀸과 함께한 포트레이트 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했다. 요즘에는 그의 작업 중 꽃을 찍은 정물 프로젝트와 스킨헤드 시리즈에 꽂혀 있다. 닉 나이트는 아직 만나본 적도 없고 그에 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굉장히 좋아하는 크리에이터다. 40년의 경력을 이어오는 동안 계속해서 미래지향적인 프로젝트를 이어올 수 있었던 창의력과 무궁무진한 열정을 사랑한다.

지인 중에 런던에서 닉 나이트를 인터뷰한 기자가 있다. 닉 나이트에 관한 이야길 조금 들었는데 지금도 주말까지 일만 한다고 하더라. 일에 치인다는 느낌이 아니라,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라고. 그렇게 40년 동안 다른 사람들보다 신선한 방향을 찾아온 그는 정말 멋진 아티스트다. 의미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음에도, 그런 길을 걸어오다 보니 의미가 생긴 것 같다. 자신의 일을 지속하는 것, 그렇게 오래 일을 하다 보면 도달하는 경지가 닉 나이트에게서 보인다.

오래 하는 일, 오래 하는 사람들

학생 때부터 오랫동안 품어온 목표이자 정신은 바로 좋아하는 무엇이든 ‘오래 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오래 지속하여 얻는 의미의 가치를 생각한다. 40년 동안 비주얼 메이킹의 바운더리를 확장해온 닉 나이트처럼 말이다. 혹은 브랜드 꼼 데 가르송이나 언더커버처럼. 이들은 유행을 좇는 일이 결코 없다. 유행이 어떻게 흐르든 상관 않는다. 돈 욕심도 별로 없어 보인다. 물론 많이 벌지만 말이다. 멋있지 않은가? 성장을 위해 달리는 이들은 앞으로, 위로 뛴다. 반대로 옆으로 면적을 늘려가는 쪽은 오랫동안 여러 뿌리를 두고 키운다. 브랜드 꼼 데 가르송과 언더커버는 그렇게 지속해왔다. 매출이 어떻고, 순익이 어떤지는 관심사가 아니다. 나 역시 그렇다. 성장보다는 오래 하기를 추구한다.

프라이머리 X 오혁 앨범 <Lucky You!> 아트워크.

프라이머리 X 오혁 앨범 <Lucky You!> 아트워크.

프라이머리 X 오혁 앨범 <Lucky You!> 아트워크.

조기석이 참여한 브랜드 9 By 91,2 룩북.

조기석이 참여한 브랜드 9 By 91,2 룩북.

조기석이 참여한 브랜드 9 By 91,2 룩북.

카메라로 촬영한 데이터를 인쇄한 뒤 그 위에 다시 손으로 물감을 덧칠하며 시각화한 아트워크들.

카메라로 촬영한 데이터를 인쇄한 뒤 그 위에 다시 손으로 물감을 덧칠하며 시각화한 아트워크들.

카메라로 촬영한 데이터를 인쇄한 뒤 그 위에 다시 손으로 물감을 덧칠하며 시각화한 아트워크들.

조기석이 완성한 앨범 아트워크. 뮤지션 딘의 앨범 <130 mood TRBL>, 프라이머리의 앨범 등이 놓여 있다.

조기석이 완성한 앨범 아트워크. 뮤지션 딘의 앨범 <130 mood TRBL>, 프라이머리의 앨범 등이 놓여 있다.

조기석이 완성한 앨범 아트워크. 뮤지션 딘의 앨범 <130 mood TRBL>, 프라이머리의 앨범 등이 놓여 있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이경진
PHOTOGRAPHY 김종훈

2016년 11월호

MOST POPULAR

  • 1
    나의 첫 위스키
  • 2
    아메리칸 차이니즈 레스토랑 4
  • 3
    문수진, “내가 듣고 부르고 싶은 음악으로 앨범을 만들고 싶었어요.”
  • 4
    괴짜 자동차
  • 5
    클래식의 정수, 미니멀한 디자인의 수동 면도기 4

RELATED STORIES

  • INTERVIEW

    문수진, “내가 듣고 부르고 싶은 음악으로 앨범을 만들고 싶었어요.”

    싱어송라이터 문수진의 <아레나> 5월호 화보 및 인터뷰 미리보기

  • INTERVIEW

    라도, 지창욱 2024 새로운 캠페인 영상 및 화보 공개

    지창욱과 함께한 라도 캡틴 쿡 하이테크 세라믹 스켈레톤 캠페인이 공개됐다.

  • INTERVIEW

    <아레나> 5월호 커버를 장식한 배우 송중기

    단단한 눈빛이 돋보이는 송중기의 <아레나> 5월호 커버 공개!

  • INTERVIEW

    그녀의 음악은 우리 가슴을 녹일 뿐

    4개 국어 능력자, 싱어송라이터, 인스타 음악 강자… 스텔라장을 수식하는 말들은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의 음악은 우리 가슴을 녹인다는 사실이다.

  • INTERVIEW

    우리가 기다리던 소수빈

    데뷔 8년 차 소수빈은 지난해 <싱어게인3>으로 처음 TV 카메라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지금 보고 있는 사진 역시 그의 첫 번째 단독 화보다. 하지만 소수빈은 이미 우리가 기다리던 스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MORE FROM ARENA

  • LIFE

    배부른 샌드위치

    샌드위치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는 시대는 지났다. 눈과 입 그리고 배를 풍족하게 채워주는 샌드위치를 소개한다.

  • REPORTS

    상 복 넘치는 희서

    인터뷰 이틀 전 최희서는 <박열>의 후미코로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더 이상 놀랍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후미코로 9개의 상을 탔다.

  • LIFE

    HOW COME?

    8월의 새로운 테크 제품에 대한 사소한 궁금증.

  • LIFE

    2022 Weekly Issue #2

    돌아보면 2022년 대한민국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오미크론 확산부터 대선 이슈, 전쟁과 경제 이슈 등 매일이 격동의 나날이었다. 우리는 주 단위로 2022년을 돌아본다. 2022년 1월 첫째 주부터 11월 둘째 주까지 . 우리의 눈과 귀를 번뜩이게 한 국내외 이슈들을 짚는다.

  • INTERVIEW

    햇볕같은 황인엽

    황인엽의 검정 파도 같은 동공에서 느껴진 냉정함은 대화를 시작하자 한순간에 녹아버렸다. 까만 눈동자는 검정 파도가 아닌 따뜻함과 신중함으로 덩어리진 마음이었다.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