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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미스터리

모기향에 불을 붙이며 생각했다. 누가 죽인 걸까? 한국 추리소설계의 거장 넷이 추천한 추리소설을 쌓아두고 읽었다. 열대야였고, 더위는 잠깐 잊었다.

UpdatedOn August 17, 2016

NOVEL 1 <현실은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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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있는 지금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비 오는 밤에 무척 어울리는 소설이 있다. 바로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들이다. 일본 소설가 에도가와 란포는 미국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를 존경해 만든 필명이다. 본명은 히라이 다로인데 필명으로 독자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작가다.

1894년 태어나 와세다 정경학부를 졸업한 후 무역회사, 조선소 직원, 신문기자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친 후에 1925년 밀실 범죄를 다룬 〈D언덕의 살인사건〉과 후속작 <심리시험>으로 명탐정 아케치 고고로를 창조했다.

난 그의 작품 중에서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애벌레> <천장 위의 산책자> 등 단편소설을 무척이나 아끼고 다시 보기를 좋아하며 이런 생각을 왜 나는 못하는가 안타까워한다.

마침 이 작품들은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에 모두 실려 있다.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는 천으로 만든 공예 액자 속 여인에게 반해 같이 여행하는 한 노인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기차에서 만난 노인이 들고 다니는 공예 액자 속 여자의 생생함에 놀란다. 노인은 주인공에게 액자 속 여인이 수십 년 전 실종된 자신의 형과 관련이 있다는 기이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애벌레>는 전쟁에서 팔다리를 잃은 남자가 부인과 변태적 애욕에 시달리다 비극적 결말을 맞는 단편으로 에도가와 란포가 발표 후 좌익 진영에게서 격려 편지를 받았을 정도로 반전 의식이 있는 작품이다.

<천장 위의 산책자>는 하숙집 천장 위에서 각 방을 엿보고 다니는 사부로가 완전 범죄를 저지르자 이를 밝히는 아케치 탐정의 활약을 그린 작품이다. 세 편 모두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에 발표되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범죄자의 생생한 심리 묘사가 현대적인 감각으로 담겨 있다.

란포는 평소 사인을 받으려는 독자에게 ‘현실은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이라는 문구를 써줬다고 하는데 이보다 더 현실과 꿈의 관계를 잘 정리한 문구가 있을까 싶다.

내 평생 꿈이 란포처럼 기이하고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들어본 것처럼 쓰는 것인데 꼭 이루어보고자 오늘도 노력한다. 한여름 밤의 꿈을 생생하게 꾸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경성 탐정 이상 2: 공중여왕의 면류관>

김재희

전작인 <경성 탐정 이상>은 천재 시인 이상을 주인공으로 쓴 재기 발랄한 탐정소설이다.

시인 이상은 흡사 한국판 셜록 홈스를 떠올리게 하는 총명함으로 스펙터클한 사건을 파헤친다. 홈스에게 왓슨이 있다면, 이상에게는 소설가 구보가 있다는 설정만으로도 흥미를 자아낸다.

올해 출간한 2권에서는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의 신혼집 ‘딜쿠샤’를 모티브로, 당시 서양인의 생활상과 조선인 사이의 반목을 소재로 다섯 개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김재희는 <경성 탐정 이상>으로 2012년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NOVEL 2 <인간의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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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무라 세이치의 <인간의 증명>은 내 소설의 시발점이었고, 내가 쓴 <인간의 증명>은 그의 소설에 대한 오마주다. 그가 쓴 <인간의 증명>을 열 번쯤 읽었다. 처음 접한 것은 25년 전. 막연하게나마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로 이 소설을 다시 접한 것은 같은 제목의 내 소설 <인간의 증명> 초고를 끝내고 몇 달 뒤 2013년 여름이다. 검은숲에서 발간한 것이었다. 이 소설에는 ‘밀짚모자’라는 시가 나온다.

‘어머니, 그 모자는 정말 어떻게 되었을까요? (중략) 그리고 가을에는 회색 안개가 그 언덕을 뒤덮고 / 그 모자 아래서는 밤마다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렸을지도 몰라요.’ 모리무라 세이치는 우연히 본 이 시가 소설의 모티브가 됐다고 고백했다. 우연찮게도 내 소설 <인간의 증명> 역시 ‘몸 밖의 그대1’(채호기)이라는 시가 모티브가 되었다.

7년 전 버스 안에서 벼락같이 이 시가 떠올랐다. ‘내 몸속에는 그대가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죽었다고 하지만 내 몸속에는 그대가 온전히 살아 있습니다. 내가 더 이상 나일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의 사막에 홀로 버려질 때 그대는 내 몸을 찢고 밖으로 나옵니다. 내가 그대를 그토록 사랑했듯 그때야 비로소 나는 없고 오로지 그대만이 있습니다.’

나는 홀린 듯이 수첩에 무엇인가를 끼적였다. 그때의 글이 숙성을 거쳐 2013년 겨울과 봄 사이 초고를 완성했고, 2016년 여름 책으로 출간했다. 수정 작업을 하면서 ‘인간의 증명’이라는 제목에 대해 꽤 많이 생각했다. ‘증명’은 ‘인간’의 그림자와 같다. 둘은 처음부터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이런 이유로 인간은 원하든 원치 않든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증명해야 한다. 그 대상은 타인이거나 나 자신이다. 인간이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는 한 ‘증명’은 필연이다. 인간임을 망각하지 않기 위한 자의식의 발현이 ‘증명’이다.

시 ‘밀짚모자’와 ‘몸 밖의 그대1’, 그리고 모리무라 세이치의 소설 <인간의 증명>과 내 소설 <인간의 증명>은 이런 점에서 일직선상에 있다. 이것이 내 생각의 종착역이었다. 기쁨과 함께 행복을 느끼는 또 하나의 척도가 슬픔이라고 한다. 한여름, 슬픔의 바다에 푹 빠져보길 권유한다.
 

<인간의 증명>

정석화

장르로 구분하자면 스릴러 코너에 두고 싶은 책이다. 도심 속 미지의 존재를 다루며, 쫓고 쫓기는 장면이 긴박감을 조성한다.

짧게 치고 나가는 대사와 리듬감 있는 문장, 생생한 캐릭터는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든다. 여기에 촘촘하게 구성한 플롯은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인다.

무엇보다 소재가 흥미롭다. 도심을 배경으로 사라진 아내, 교통사고, 연쇄살인마 등이 등장한다. 일상의 판타지와 현실이 교묘하게 맞닿아 있다. 펼친 자리에서 완독하게 만드는 힘도 있다.

정석화는 <춤추는 집>으로 2014년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했으며, <계간 미스터리>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인간의 증명>은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NOVEL 3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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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가을, “하드보일드를 쓰시는군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말에 당황했다. 생각나는 대로 썼을 뿐인데 이런 형태가 하드보일드를 닮았다니. 나는 이 말뜻이 궁금해 하드보일드를 파고들었다. 내가 아는 하드보일드 작가는 레이먼드 챈들러와 대실 해밋이다.

두 거장의 문장은 차갑다. 사물을 들여다보며 제멋대로 지껄인다. 내면은 결코 그렇지 않으면서 차가운 척 뱉는 대사와 꼬이는 상황, 언제나 사건은 뜻밖의 종말로 치닫는다. 결말의 씁쓸함에 온더록스를 한 모금 마시며 담배 한 개비를 문다. 연기를 내뿜으며 이것이 바로 인생이지, 속삭인다.

자, 그렇다면 내 소설이 이런 스타일일까? 조금 다른 것 같다는 생각에 좀 더 훑어봤다. 그러자니 묘한 소설이 툭 튀어나왔다. 비트겐슈타인이 절찬한 데다 레이먼드 챈들러가 영향을 받았다는 노버트 데이비스의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읽어보니 이 책, 많이 묘했다. 이게 왜 하드보일드인지 알 수 없었다.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여느 하드보일드와 다르다. 사건을 맡아 우여곡절 끝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맞이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전개가 수다스럽다. 모든 환자가 신경증 환자처럼 떠들어댄다.

심지어는 개마저도 부산스럽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까지 폭소를 터뜨리게 하다 책장을 덮고 나면 생각에 빠지게 만든다. 자, 이것이 나만의 하드보일드다. 너만의 하드보일드가 무엇인가? 나는 최초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대관절 하드보일드가 무엇인가? 여전히 대답할 말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확고한 나만의 하드보일드는 없는 듯하다. 그래서 막연히 목표를 세워본다. 먼 훗날, 누군가 내 소설을 모두 읽고 났을 때 자신만의 하드보일드가 무엇인가 스스로 물을 수 있을 법한 소설을 쓰자, 라고.
 

<붉은 소파>

조영주

살인, 사진, 실종, 기억. <붉은 소파>의 이야기는 반전을 거듭한다. 비밀을 퍼즐 조각처럼 흩어두고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해가는 심리 스릴러 코드의 소설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15년 전 연쇄살인 사건으로 딸을 잃고, 방황하는 스타 사진작가가 사체 촬영을 제안받는다.

그리고 사진가는 딸과의 추억이 서려 있는 붉은 소파를 이용해 범인을 찾는다. 독특한 설정이다. 소재는 사진작가이자 비디오 아티스트인 호르스트 바커바르트의 동명의 사진 작품집에서 영감을 얻었다.

무엇보다 추리 서사로서 독자와 지적인 게임을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머리를 쓰며 읽게 된다. 조영주 작가는 <붉은 소파>의 신선한 시도로 제12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NOVEL 4 <백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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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새우는 문절망둥어 옆에 있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이다. 소설을 쓴답시고 2년간 휴직을 한 뒤 홀로 제주도 여행을 갔다. 휴직 기간에 반쯤 써놓은 장편소설이 마음에 들지 않아 폐기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구상해야겠다고 결심한 상태였다.

당시 묵은 게스트 하우스 책장에 꽂혀 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을 한낮에 다 읽었고, 관리인에게 여행은 안 하시냐는 말을 들었다. 그날의 독서가 내게는 올레길을 걷거나 협재 바다를 구경하는 것보다 더 즐거웠다. 서두에 언급한 저 한 문장이 9백여 쪽에 달하는 이 소설의 주제를 말해준다.

<백야행>은 추리소설이자, 유키호라는 여자와 료지라는 남자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다. 연인이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통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상처와 부채 의식에 근거한 일방적 헌신으로 이루어진 사랑이다.

적이 나타나면 꼬리지느러미를 흔들어 대포새우에게 위험을 알리는 문절망둥어처럼, 료지는 유키호의 근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유키호의 삶을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유키호의 삶을 빛내기 위해 료지는 어린 시절 그날 이후, 하얀 밤을 걸어가는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유키호와 료지와 엮인 다른 사람들의 시점에서 그들 주변에서 발생하는 범죄와 수상한 사건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소설 안에서 유키호와 료지는 결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백야행>의 힘은 이러한 이야기에 깔린 동양적이고 신파적인 감성에 있다.

1999년에 발표한 이 추리소설은 당시로서는 생소한 개념인 ‘개인 정보’ ‘지적 재산권’과 관련된 신종 범죄 수법을 소개하며 독자에게 충분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동시에 이야기가 품고 있는 안타까움과 슬픔의 정서로 둔중한 울림을 선사한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내가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 알았고, 이후 포기한 원고를 다시 꺼냈다. 그 소설은 2년 후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다.
 

<달리는 조사관>

송시우

탐정은 아니다. 경찰도 아닌 ‘인권증진위원회 조사관들’이 주인공이다. 인권 침해와 차별 행위를 다루는 곳의 공무원이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그 진실이 복수나 개인의 회복이 아닌, 인간의 기본 권리가 침해되었는가에 있다.

이런 설정은 독자로 하여금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사건을 바라보게 한다. 사건 그 자체가 아닌 인권에 무게를 두었다. 그래서 정교한 트릭보다는 범죄의 동기, 인물들 간의 내러티브를 중점적으로 드러낸다.

사건에 대해 가해자와 피해자, 관찰자 모두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남의 일 같지 않다. 작가 송시우는 <라일락 붉게 피던 집> 등 한국적인 서정을 담은 사회파 추리소설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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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Editor 조진혁
PHOTOGRAPHY 박원태
ASSISTANT 김민수
WORDS 김재희, 정석화, 조영주, 송시우

2016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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