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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ion

남규리는 목소리가 허스키하고, 말도 느리다. 그녀의 외모와 두 요소가 섞이면, 자꾸 아득해진다. 어딘가로 쓸려가려는 찰나, 그녀의 말을 붙잡는다. “이젠 내려놓기로 했어요.” 남자는 내려놓는다는 여자의 말에 설렌다.

UpdatedOn October 01, 2014

회색 재킷은 푸시버튼 제품.

조금 다르게 접근해보기로 한다. 남규리에겐 인형 같은 외모만 있을까? 그녀가 인형 뺨치게 예쁜 건 맞다. 남규리를 만나러 간다고 하니 모두 부럽다고 했다. 모두 그 ‘인형’과 ‘예쁘다’란 단어에 함몰되어서다. 물론 그 두 단어는 곱씹어도 취할 만하다. 하지만 그녀는 전시된 조각품이 아니다. 그 너머엔 뭐가 있을까? 그다음을 보기로 한다. 예쁜 얼굴형 말고 인상이 바뀌는 턱, 혹은 허공을 쳐다보는 흐트러진 눈동자. 스튜디오를 샹송의 음색으로 채운다. 셔터 소리에 맞춰 사진이 뜨고 진다. 그리고 남규리가 무언가 느낀다. 빠르게 스쳐 가는 사진 속엔 남규리가 있다가도 없다. 촬영하며 이 말이 자꾸 맴돈다. 남규리 같지 않은데? 지금까지 잘못 안 거다. 우리가 멍청하거나 남규리가 똑똑하거나.

자주 보던 모습과는 확실히 다르게 찍었고, 찍혔다.
변하는 지점이 있었다. 아이돌일 땐 어떻게 해야 화면에 예쁘게 나오는지 알잖나. 그러다 배우로 활동하면서, 어느 순간 다 놓게 됐다. 늘 하던 메이크업이나 스타일과 다른 감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화보를 촬영해도 내가 싫어하는 각도로는 안 찍으려고 했다. 찍으면서도 여기저기 수정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지금은 그냥 그런 거 생각하지 않고 감정대로, 감성대로 맡기기로 했다. 지금 들리는 음악이나 분위기나 옷, 메이크업의 느낌에 취하려고 한다. 그렇게 ‘빠져 있는’ 게 좋아졌다.

최근 스마트폰 영화를 찍으면서 ‘빠져’ 있었겠다.
하아, 영화 만드는 게 그렇게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인지 미처 몰랐다, 하하. 노래를 부르든, 연기하든, 화보를 찍든 나만 준비하면 그만이었는데 모든 스태프를 다 신경 써야 하니, 휴. 내가 원하는 톤이나 감정을 분명하게 전달해야 하는데, 연출 전공자도 아니라서 그런 감정을 객관적으로 이해시키려다 보니 너무 힘들었다.

뭘 그리 부담을 많이 느끼고 했나.
쉽게 할 수도 있었는데 욕심이 났다. 딱 두세 가지만 담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스마트폰으로 이렇게 찍었어?’, 두 번째는 ‘감정적으로 저런 메시지를 주려 하는구나’ 하고 두루뭉술하게 전해졌으면 했다. 세 번째는 ‘아, 저 속에 남규리라는 배우가 있구나’ 정도. 그게 생각보다 어렵더라. 그리고 제작비가 4백만원이어서 감당할 수 없었다. 그냥 인맥으로 각 분야에서 훌륭한 분들을 모았다. 스태프와 환경은 준상업 영화 수준이었다. 돈 한푼 못 받으셨지만, 하하. 그래도 이름 달고 나가는 거니 염원을 담아달라고 부탁했다.

◀ 캐멀색 롱 코트와 흰색 퍼 슈즈는 모두 로우클래식, 회색 브이넥 니트는 리플레인, 와인색으로 강조한 스커트는 서리얼 벗 나이스 제품.

배우로서 좋은 경험인 건 틀림없다.
막연하게 넓게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걸 다 피부로 느끼니, 어휴. 그동안 노래하고 싶어서 하다가 연기하고, 연출할 수 있는 기회도 와서 해봤다. 아, 디제잉도 해봤다. 이제는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걸 다 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어차피 한 번 사는 거잖나. 욕심이 많아진 건 아니다. 욕심은 이걸 꼭 어느 정도까지 해내겠다, 하는 마음인데 난 그냥 즐겁게 최선을 다해보자는 마음이다. 결과보다 과정에서 느끼고 즐기는 게 중요하다.

배우 관련된 일 말고 뭘 해보고 싶나?
진짜 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알아봤는데 너무 어려워서 포기한 상태다. 그래피티다. 다큐멘터리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에서 뱅크시가 인터뷰한 모습에 빠졌다. 그래서 알아봤는데 배우는 작업도 힘들고, 일단 경찰을 피해야 하니까. 난 경찰과 대면하기가 조금 힘든 직업이잖나, 하하. 생활 면은 보수적인데 하고 싶은 건 자유분방하다. 희한하다. 차라리 일관성이 있으면 편하지 않았을까.

지금 배우로 활동하니까, 자유로운 부분을 좋은 방향으로 발산하고 있는 셈이다.
돌이켜보면 그렇다. 하지만 그 과정은 솔직히 힘들었다. 자신과 많이 싸웠다. 사실은 저쪽으로 가고 싶은데 이쪽으로 가야 할 때도 있고. 그 속에서 괴리감에 빠지기도 하면서 힘들었다. 어쩌면 아이돌이 원한 모습일 수도, 아닐 수도 있잖나. 원한 모습이어도 그렇지 않은 것을 지향하는 내가 있었기에 많이 혼란스러웠다. 사춘기를 왜 이렇게 오래 겪지? 이렇게 생각하며 보내기도 했으니까, 하하.

그런 복잡한 감정을 언제 정리했나?
얼마 안 됐다. <무정도시> 할 때쯤? 그 시기와 작품이 맞물려 더 많이 생각했다. 살아보니까 어느 순간 다 맞물리는 때가 있다.
이런 게 예가 될까. 예전에는 하얗고 모던한 가구만 좋아하다가 어느 순간 나무 질감 가구가 좋아진 거다. 그런데 이사한 집이 나무 질감 나는 가구와 어울리는 곳인 거다. 실제 어제 이사했는데 그랬다. 이처럼 감정과 상황이 절로 맞물릴 때가 있다. 그러면서 복잡한 생각을 다 놓게 됐다. 요새는 편하다. 그전에도 놓는다는 말의 의미는 알았지만, 실제로 놓긴 힘드니까.

이성적으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맞다. 이성적으로 아는 건 한계가 있다. 예전에 드라마 <49일> 찍을 때 행복에 겨워 눈물을 흘려야 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행복해서 울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난 알고 느끼고 슬퍼봐야 그런 연기를 하는 편이다. 기술적으로 울어야 해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그 작품이 끝나고 얼마 지나서 행복해서 우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었다. 그때 이 감정을 알았다면 더 잘했을 텐데 아쉬웠다.

그때 어떤 일로 행복해서 울컥했나?
<신촌좀비만화> 찍고 뒤풀이 자리에서 이준익 감독님이 옆에 앉으셨다. 이준익 감독님이 불쑥 실물이 별로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시더니 화면 속 좀비로 나올 때가 더 예쁘다고, 역시 배우는 빠져서 연기할 때 가장 아름다워, 이러시더라. 그 말을 듣고 너무 행복했다. 그때 행복해서 운다는 감정을 알았다. 그 자리에서 다른 감독님들도 다음에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하셔서 행복했다.

그래도 조금은 나를 알아주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나 보다.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지는 않구나, 하고 느꼈다. 조금, 아주 조금씩이지만 계속 가고 있구나, 스스로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아이돌 출신이 배우에 접근하기는 수월하지만 계속 살아남으려면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니까. 선입견의 벽이 공고하다.
맞다. 그리고 브랜드 자체가 없어지면 다시 처음부터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도 내 생각만큼 잘되진 않았다. 하지만 생각만큼 잘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렇게 조금씩 뭔가 더 알고 진짜로 느끼고 나니까, 빨리 뭔가 이뤘다면 가다가 길을 잃으면 완전히 잃어버렸을 것 같다. 지금은 알면서 어쨌든 조금씩 가고 있으니 어떤 길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을 것 같다.

  • 검은색 니트 카디건은 마이클 코어스 제품.
  • 검은색 터틀넥 니트는 로우클래식, 검은색 팬츠는 문영희 제품.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그래도 그 기간 동안 속상했을 텐데?
슬퍼했나? 잘 모르겠다. 물론 힘들 때도 있었지만, 난 워커홀릭은 아니어서 좀 달랐다. 워커홀릭은 계속 일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난 드림홀릭이다. 느껴지지 않는데 일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 부분에 혐오감을 많이 느끼면서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런 말도 안 되는 질문들을 만날 하면서 살았다. 그래서 다작보다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나야 한다.

어떻게 중국에서 드라마를 찍게 됐나?
물 흐르듯이 된 일이다. 2, 3년 전에 드라마를 찍으러 갔을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너무 힘들었다. 정말 죽을 만큼 힘들다는 게 이런 건가? 느껴졌다. 매일 밤 촬영 끝나고 스태프들과 밝게 인사하고 문을 잠그고선 울었다. 꼭 중국이란 나라여서가 아니라 그런 상황이 있었다. 그러다가 다른 걸 떠나, 한국 배우에 대한 편견을 심지 말자란 생각으로 열심히 했다. 매일 대본을 놓지 않고 살았다. 상대 대사, 상황까지 다 외울 정도였으니까. 그러면서 중국에 대해 이것저것 공부했다. 그러다 중국 영화를 더 많이 접하고, 보다 보니 너무 멋있더라. 장이모, 왕가위 감독 영화라든지, 장만옥, 장쯔이, 공리, 판빙빙, 탕웨이 등이 출연한 영화라든지.
너무 매력적인 색채가 있더라. 중국의 색채에 섞여보고 싶었다.

중국 활동도 하려면 앞으로 바빠지겠다.
보이는 면에서는 비슷할 거다. 양쪽으로 나뉘어 보일 테니까. 나만 조금 바쁘겠지, 하하. 조금이 아니라 두 배, 하하. 그래서 요즘 몸을 관리하려고 한다. 한약도 챙겨 먹는다. 정말 건강을 잘 챙겨야겠다. 그래도 몸 만들려고 근력 운동을 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재즈 댄스나 걸스 힙합 같은 재미있는 걸 하면서 몸을 관리하고 싶다.

그런 쪽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해도 잘하겠다.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잘 안 됐다. 꼭 춤을 다룬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라비앙 로즈>나 <블랙스완> 같은 한 예술가의 삶을 다루는 작품엔 출연하고 싶다. 그 안에서 춤이든 노래든 잘 표현해보고 싶다. 일단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열심히 하며 즐기되 조급해하지는 말기. 누구나 각자에게 어울리는 때가 있는 거잖나. 지금 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역이 있긴 하지만. 그런 욕심 때문에 한동안 힘들었다. 앞서 말했듯이 그런 욕심을 버렸다. 사실 난 남보다 훨씬 축복받아왔다. 데뷔 이후로 무명인 적이 없었다. 데뷔하자마자 노래가 잘됐고 골든디스크 수상하면서 여자 가수로 음반도 몇십만 장 팔았다. 연기할 때도 바로 김수현 선생님 작품에 들어가서 다음 작품으로 미니시리즈도 하고. 그런 점에서 지금도 과분하게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급하면 자기만 손해다. 그런다고 상황이 변하지도, 누가 도와주지도 않는다.
맞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일 뿐이다. 사람들이 아직 예전에 가수로 무대에 섰을 때만큼 인상적인 모습을 못 봤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거다. 어쨌든 배우는 배우의 행보를 가야 하는 게 맞다. 진짜 연기할 때 가장 행복하다. 특히 기다렸다가 단비같이 한 번씩 할 때 진짜 미친 듯이 행복하다. 가끔은 내가 변태인가 생각할 때가 있다. 힘든데 너무 즐거울 때도 있으니까, 하하.
그런 감정을 느끼면서 해야 한다.

Editor: 김종훈
PHOTOGRAPHY: 박정민
STYLIST: 박세준
HAIR: 에녹
MAKE-UP: 홍성희
assistant: 이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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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김종훈
Photography 박정민
Stylist 박세준
Hair 에녹
Make-up 홍성희
Assistant 이강욱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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